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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나목 설악산 중청봉 아래 벌거벗은 나목 한 그루
▲ 설악산 나목 설악산 중청봉 아래 벌거벗은 나목 한 그루
ⓒ 장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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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도 너무 빠른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이 느림의 미학이라니…. 산에 오르거나 긴 여정으로 트래킹을 하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게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건만 스스로 알아서 터득하는 기술이다. 그걸 사람들은 '알아서 긴다'라고 말하는 것인지. 힘든 산행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은 땅바닥으로 향하게 되고 호흡이 지칠수록 말수가 적어진다. 이런 현상은 등산이나 트래킹 등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에게 기본적으로 나타나는 생리적 변화다. 참 힘든 일인 것이다.

그런데 똑같이 산행이나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 중에 유독 힘들어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산행 장면 등 다큐를 기록하는 카메라맨들이다. 그들은 남들 다 가는 코스를 함께 이동하는가 하면, 남들이 안 가는 코스 등으로 벗어나 목적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곤 한다. 언제인가 히말라야 등정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모습을 보고 정말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히말라야의 다큐는 물론 세계 오지의 비경을 안방에서 편안히 볼 수 없을 것이다.

설악산 끝청봉 설악산 끝청봉 능선에서 바라본 끝청봉과 귀떼기청봉
▲ 설악산 끝청봉 설악산 끝청봉 능선에서 바라본 끝청봉과 귀떼기청봉
ⓒ 장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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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그런 일을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 같은 데서 '탐험가'라는 이름표를 달고 탐험에 나선 사람들이 주로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평면과 입체적으로 카메라에 담아온 모습들은 '놀라움(amazing)' 그 자체였다. 아마도 글쓴이가 좀 더 젊었다면 그 일에 도전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겠다. 그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피사체에 접근하는가 하면 오랜 시간 동안 한 장면을 위해 잠복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여태껏 한 번도 보지못한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들이 사용하는 카메라는 최첨단 디지털 기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정작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매우 느렸던 것이다. 그들은 느림의 미학을 카메라에 담아 안방에 보내며 빨라도 너무 빠른 디지털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황량한 가슴을 촉촉한 감성으로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카메라맨들은 사람들이 건성건성 지나칠 만한 피사체를 잘도 찾아내는 한편 그 피사체가 가진 특성이나 매력을 기막히게 조명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용아정성과 봉정암 설악산 끝청봉에서 바라본 용아정성과 봉정암
▲ 용아정성과 봉정암 설악산 끝청봉에서 바라본 용아정성과 봉정암
ⓒ 장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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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그런 장면을 볼 때 마다 세상 모든 것 보다 부러워 했다. 그 카메라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제 어디로 다니던지 늘 카메라를 소지하고 다니므로, 기회만 닿으면 그들의 습관을 따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욕심은 체력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가능한 일이고, 기술이나 열정 조차 톡톡 튈 정도라야 최소한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행복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걸 알만 할 즈음 스스로 알아서 기게 될 줄 알았던가.

설악산을 등반할 때 마다 느끼는 게 '산행의 고통'을 잊을 만 할 때라야 다시 오를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특히 그 고통은 내설악의 공룡능선의 황홀함을 맛 본 뒤에는 더 강하게 다가왔다. 시쳇말로 육신은 '죽을 맛'이었지만 감동은 살아서 펄펄 뛰었던 것이다. 그런데 설악산은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산장에서 숙박을 하지 않을 경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한 시간에 반드시 통과를 해야 한다. 산에 발을 디디는 순간 누가 도와줄 사람도 없으며 심지어 자기가 마실 물조차 타인에게 구걸(?)해서는 안 되는 거 다 아는 사실이다. 얼마나 힘이들었으면 이런 금기사항(?)이 생겼을까.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혼자 살아남는 법을 산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설악산 끝청봉 끝청봉 능선에서 바라본 끝청봉
▲ 설악산 끝청봉 끝청봉 능선에서 바라본 끝청봉
ⓒ 장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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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힘이 들어 느리게 걷는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없다. 능력껏 걸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 때 그냥 퍼질러 쉴 게 아니라 행동식(간식)을 먹어가며, 힘 닿는대로 꾸준히 걸으며 눈 앞에 또는 주변에 펼쳐진 풍광에 흠껏 빠져보는 것이다. 특히 알아서 길 때(?) 발 밑 또는 등산로 옆에 홀로 피어있는 야생화 등을 발견하게 되면 피곤이 싹 사라지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피로에 지친 당신을 향해 '좀 쉬었다 가세요'라며 말을 걸 텐데, 그 걸 알아차릴 정도가 되면 '낫지오(National Geographic)' 탐험가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내공에 다다르지 않았을까.

그 때 남들이 빠르게 이동하며 그냥 지나친 장면들을 가슴에만 담을 게 아니라 카메라에 담아두면, 두고두고 그 장면들은 평생을 통해 잊지못할 추억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니 느림의 미학이란 게 주로 그런 것이었다. 스스로 알아서 기면서 터득한 세상을 보는 방법이자, 카메라만 손에 쥐게 되면 저절로 느림의 미학 속으로 빠져들 게 되는 것이다. (산행 시간을 넉넉히 잡고) 천천히 걷게 되면 더 맛있는 산행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유만 된다면 카메라가 피사체를 향하는 순간 감동의 맥박은 빨라지고 호흡은 제자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한 번 가 보면 두 번 다시 잊을 수 없는 설악의 비경들은 그렇게 내 가슴에 다가온 것이다.

한 번 가 보면 두 번 다시 잊을 수 없는 설악의 마력

끝청봉 능선 설악산 끝청봉 능선에서 내설악 단풍을 즐기는 사람들
▲ 끝청봉 능선 설악산 끝청봉 능선에서 내설악 단풍을 즐기는 사람들
ⓒ 장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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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일 정오 무렵 우리는 끝청봉에서 중청봉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곧 중청봉과 소청봉에 다다를 것이나 끝청봉에서 바라본 내설악의 마력이 우리를 붙들어 놓았다. 우리만 붙들어 놓은 게 아니라 끝청봉 능선을 따라 중청으로 이동하는 등산객 전부를 붙들어 놓은 것이다. 내설악의 무슨 마력이 우리를 붙들어 놓았는지.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끝청봉의 벼랑 끄트머리에 옹기종기 모여서 셔터음을 날리고 있었다.

용아정성과 봉정암 내설악의 용아장성과 봉정암이 단풍에 휩싸여 있다
▲ 용아정성과 봉정암 내설악의 용아장성과 봉정암이 단풍에 휩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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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는 양희은 선생이 노래한 <한계령>의 원작시자 '한사 정덕수 선생(위 그림 중 왼쪽 모자 쓰신 분)'도 포함되어 있었다. 멀리 중청봉이 보이는가 하면 발 아래 저편으로 용아장성과 봉정암이 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설악산에서 봉정암을 볼 수 있는 능선은 끝청-중청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귀떼기청이 위치한 서부능선이 전부이나 끝청에서 바라보이는 봉정암은 정말 명품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그곳은 불자들이 꼭 가 보고 싶은 적멸보궁이자 세 번만 가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널리 알려진 암자이다.

내설악 내설악 전경, 멀리 용대리가 점으로 보인다.
▲ 내설악 내설악 전경, 멀리 용대리가 점으로 보인다.
ⓒ 장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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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설악산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게 되면 산장과 봉정암은 만원사례로 이어지며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는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만 내설악에 시선을 뺏기는 날이면 그 날부터 설악산을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마력 깊숙히 빠져드는 수려한 명산인 것이다. 우리가 다녀온 후로 단풍이 절정에 이르렀을 지난 주말에는 8만 명의 등산객이 운집했다고 알려졌으므로 그 마력을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본 포스트에 담은 설악산 풍경들은 끝청-중청-소청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바라본 장면인 데 글쓴이의 능력껏 느리게 느리게 이동하면서 카메라에 담은 모습들이다. 본의 아니게 설악산을 바람처럼 날아다니는 정 선생께는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가뜩에나 느린 걸음에 설악의 마력에 빠져 걸음을 지체하고 있었으므로, 정 선생이나 안사람이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어쩌누 ㅜㅜ). 정 선생처럼 설악산에 2000번 이상의 발도장(?)을 찍을 형편도 안 되니 모처럼 설악산 단풍놀이에 나섰으면 본전(?)이라도 뽑아야 될 게 아닌가.

끝청봉에서 중청봉으로 이어지는 내설악의 가을

내설악 단풍 끝청봉 능선에서 바라본 내설악 전경
▲ 내설악 단풍 끝청봉 능선에서 바라본 내설악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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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청봉 능선에서 내려다 본 내설악은 아직 단풍이 보이지 않는다. 단풍은 발아래서 오롯이 펼쳐지고 있었다.

끝청봉 능선 끝청봉 능서에서 바라본 중청봉과 대청봉
▲ 끝청봉 능선 끝청봉 능서에서 바라본 중청봉과 대청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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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려 우측으로 바라보니 중청봉과 대청봉이 한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이동해야 할 곳이다.

내설악 단풍 끝청봉에서 바라본 내설악 단풍
▲ 내설악 단풍 끝청봉에서 바라본 내설악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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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청봉 능선아래로 펼쳐진 기막힌 광경. 설악산의 진정한 마력이 이런 단풍 때문이었을까.

내설악 단풍 끝청봉 능선에서 바라본 화려한 내설악 단풍
▲ 내설악 단풍 끝청봉 능선에서 바라본 화려한 내설악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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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풍경은 파타고니아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곳은 수종(樹種)이 단조로웠기 때문이며 4계절이 뚜렷하지 않고 바람이 너무 많은 땅이기도 했다. 내설악 풍경을 황홀하게 만드는 건 은빛을 발산하는 자작나무와 전나무와 소나무와 단풍나무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것 같다. 이런 풍경은 설악산을 다녀온 후로 다시 찾을 때까지 가슴 깊숙이 자리잡고 늘 그리움으로 피어올랐던지.


봉정암과 용아장성 끝청봉 능선에서 바라본 화려한 봉정암
▲ 봉정암과 용아장성 끝청봉 능선에서 바라본 화려한 봉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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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청봉 능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연신 눈길이 가는 곳은 봉정암과 용아장성이다. 용의 이빨이 드문드문 박힌 것처럼 생긴 암봉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용아장성을 다녀왔지만 그곳은 출입금지구역이자 매우 위험한 산행코스이므로 그림의 떡인 셈이다. 그러나 보면 볼 수록 마력과 매력을 동시에 갖춘 곳이다.


내설악 단풍 끝청봉 능선에서 바라본 내설악 단풍
▲ 내설악 단풍 끝청봉 능선에서 바라본 내설악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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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입맛만 다신다.



외설악 단풍 끝청봉 능선에서 바라본 화려한 외설악(오색지구) 단풍
▲ 외설악 단풍 끝청봉 능선에서 바라본 화려한 외설악(오색지구)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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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까지 두 발로 기듯이 느리게 느리게 온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ㅜㅜ



중청봉 단풍 중청봉 능선의 화려한 단풍, 뒤로 대청봉 실루엣이 드러나 있다.
▲ 중청봉 단풍 중청봉 능선의 화려한 단풍, 뒤로 대청봉 실루엣이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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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중청봉에 다다랐다. 2012년 10월 1일 경 설악산의 단풍은 대청봉에서 소청으로 서서히 몸을 낮추고 있었던 것이다.


대청봉 중청봉 능선에서 소청봉,중청봉산장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본 대청봉
▲ 대청봉 중청봉 능선에서 소청봉,중청봉산장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본 대청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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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추석 연휴를 맞아 설악산 단풍놀이에 나선 사람들은 대청봉 까지 줄을 잇고 있었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중청봉 가는 길  중청봉 능선에서 중청봉산장으로 이어지는 길, 뒤로 대청봉이 보인다
▲ 중청봉 가는 길 중청봉 능선에서 중청봉산장으로 이어지는 길, 뒤로 대청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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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의 무슨 마력이 조상님들을 내팽개치고(?) 이곳 까지 오게 만들었는지.



대청봉 중청봉에서 바라본 대청봉
▲ 대청봉 중청봉에서 바라본 대청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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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를 관련 포스트에서 언급한 바 있다.



중청봉의 야생화 설악산 중청봉에서 만난 이름모를 풀꽃
▲ 중청봉의 야생화 설악산 중청봉에서 만난 이름모를 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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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의 풀꽃 한 포기 조차 모두 저 혼자의 힘으로 된 게 없는 것이다. 정말 위대한 자연이 언제나 우리를 보듬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야생화와 시인 꽃을 떨군 야생화 곁으로 <한계령> 원작시자 '한사 정덕수 선생'이 지나치고 있다.
▲ 야생화와 시인 꽃을 떨군 야생화 곁으로 <한계령> 원작시자 '한사 정덕수 선생'이 지나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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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을 떨군 한 야생화와 함께 대청봉을 바라보는 사이, 정 선생이 길을 재촉하고 있다(배낭을 보시면 질리지 않나요.ㅜㅜ).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휴식을 취하며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이번 산행코스에서 대청봉은 빠졌다. 그 대신 희운각에서 공룡능선의 신선암을 돌아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갈 길이 바쁜 것이다.



야생화 설악산 중청봉에서 꽃잎을 떨군 야생화
▲ 야생화 설악산 중청봉에서 꽃잎을 떨군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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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청봉에서 바라본 설악의 매력


중청봉 산장 중청봉에서 바라본 중청봉 산장
▲ 중청봉 산장 중청봉에서 바라본 중청봉 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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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청봉에 오르면 대청봉이 코 앞에 보인다. 대략 40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그런데 이때 등산로에서 마주친 한 젊은 여성이 내게 말을 걸오고 있었다. 그녀의 등에는 배낭이 보이지 않았다. 손에는 작은 물통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그녀가 내게 "대청봉까지 (시간이)얼마나 걸리나요"라며 물었다. 그래서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걸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속았다"라며 짜증투로 말했다.




중청봉 산장과 대청봉 중청봉에서 바라본 중청봉 산장과 대청봉
▲ 중청봉 산장과 대청봉 중청봉에서 바라본 중청봉 산장과 대청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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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 그녀 한테 같은 물음에 대해 30분 정도면 될 거라고 귀띔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히려 더 큰 걱정은 나의 몫이었다. 이른바 '저질체력'의 젊은 여성이 대청봉 바로 아래까지 당도한 것까지는 좋으나, 하산할 일이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대청봉이 문제가 아니라 하산할 일이 더 문제였던 것이다.






천불동 계곡 중청봉에서 바라본 천불동 계곡
▲ 천불동 계곡 중청봉에서 바라본 천불동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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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바닥난 체력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를 선택해야 한다면 대청봉에서 오색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그러나 그곳은 등산로가 깍아지른 '깔딱고개'여서 관절에 무리가 따를 것이며 종아리나 허벅지 등에 상당한 무리가 따를 것이다. 그녀는 한계령에서부터 대청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무리하게 산행을 강행했던 것이다. 일행이 둘이라고 했다. 그 중 한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지만 꽤나 고생했을 거 같다.


중청봉과 천불동 그리고 등산객 중청봉에서 바라본 천불동과 동해 해안선 그리고 등산객
▲ 중청봉과 천불동 그리고 등산객 중청봉에서 바라본 천불동과 동해 해안선 그리고 등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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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청산장이 빤히 보이는 곳에서 짐을 내려놓고 땀을 식히고 있었다. 멀리 발 아래로 천불동계곡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늘 그리워지던 풍경이었다. 저 계곡으로 발길을 옮기면 세상 시름 전부를 털어낼 것만 같은 옥수가 바위 사이를 흐르고 있는 곳이다. 자나깨나 그리워하던 풍경이 발 아래에서 손에 잡힐 듯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천불동계곡  중청봉에서 바라본 천불동계곡, 골짜기 사이로 희운각(흰점)이 보인다.
▲ 천불동계곡 중청봉에서 바라본 천불동계곡, 골짜기 사이로 희운각(흰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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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동계곡에서 만난 옥수는 세상에서 가장 청정한 지역이라고 하는 파타고니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풍광이었다. 우리가 150일 동안 파타고니아 투어를 통해 늘 가슴 한 구석이 시린 듯 허전하게 만든 풍경이 천불동계곡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중청봉이나대청봉에 당도하면 습관처럼 맨 먼저 내려다 보는 게 희운각 너머 천불동계곡이었다. 희운각(산장)이 골짜기 아래 흰 점으로 보인다.



동해를 두른 설악산  설악산 중청봉에서 바라본 동해 해안선
▲ 동해를 두른 설악산 설악산 중청봉에서 바라본 동해 해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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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중청봉에 올라서면 멀리 동해안의 속초시가 한 눈에 들어오고 울산바위가 손에 잡힐 듯 하다. 좀 더 가까이 당겨보고 싶었지만 24-105mm 렌즈로는 부족하다. 더 가까이 보고 싶은 곳은 영랑호였다. 동해의 해안선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설악산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속초 영랑호 중청봉에서 바라본 속초 영랑호
▲ 속초 영랑호 중청봉에서 바라본 속초 영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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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단풍은 아직은 일러 절정기에 다다르려면 대략 열흘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목과 천불동계곡 중청봉에서 나목이 천불동계곡을 바라보고 있다
▲ 나목과 천불동계곡 중청봉에서 나목이 천불동계곡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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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설악산 중청봉에 오르게 되면 굳이 단풍이 필요없어도 된다. 이곳에서 만난게 되는 풍경만으로도 가슴이 벅찰 정도다.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랄까. 사람들이 한가위 (연휴)날을 택해 산에 오르는 이유도 어쩌면 갑갑한 일상에서 얻게된 스트레스 전부를 산행을 통해서 얻고 싶은지 모를 일이다. 산은 어버이처럼 아무 값 없이 언제 어느 때나 누구든 싫다하지 않고 온 몸으로 품어주기 때문 아닌가. 



나목과 천불동계곡 중청봉의 나목이 천불동을 응시하는 듯한 풍경
▲ 나목과 천불동계곡 중청봉의 나목이 천불동을 응시하는 듯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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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평생을 통해 설악산 구석구석을 내 집 같이 드나든 정 선생은, '엄마가 보고싶을 때'도 그랬고 '세상일이 녹녹치 않을 때' 등 시도 때도 없이 설악산을 찾아 위로를 받으며 산사람으로 거듭난 '사나이'였다. 산이 좋아 산에 산 사람이자 당신을 품어준 산 때문에 산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그가 <한계령>이라는 시를 쓴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자, 설악산에 올라 그의 노래를 음미하면 설악의 골짜기와 숲과 능선을 감싸고 넘나드는 바람과 구름이 절로 느껴지는 것이다. 느림의 미학은 그렇게 완성된다고나 할까. 음미하면 할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정 선생의 한계령 노래(1절)는 이러했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빈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대청봉 중청봉에서 대청봉으로 가는 등산객들
▲ 대청봉 중청봉에서 대청봉으로 가는 등산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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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청봉에서 잠시 짐을 내려놓고 퍼질러 앉아 쉬면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그들이 바람이자 구름이었다.



나목 설악산 중청봉의 고사목이 한낮의 볕을 쬐고있다.
▲ 나목 설악산 중청봉의 고사목이 한낮의 볕을 쬐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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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에 우리도 포함돼 있었다. 우리도 잠시 구름과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질 인생들 아닌가.



산과 사람과 바다 중청봉에서 소청봉으로 이동하는 등산객 뒤로 천불동계곡과 동해가 조화롭다.
▲ 산과 사람과 바다 중청봉에서 소청봉으로 이동하는 등산객 뒤로 천불동계곡과 동해가 조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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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생이 아둥바둥 세상에 살아오면서 느낀 건 행복이 전부만은 아니었다.



단풍놀이 등산객 설악산 단풍놀이에 나선 등산객들이 중청봉을 지나 소청으로 이동하고 있다.
▲ 단풍놀이 등산객 설악산 단풍놀이에 나선 등산객들이 중청봉을 지나 소청으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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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행복 보다 불행한 일이 더 많았을 지도 모르며, 또 어떤 사람들은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더 불행해 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산에 오르는 그 순간 만큼은 행불행의 척도는 저만치 사라지고 가슴 가득 형용할 수 없는 위로와 환희가 넘쳐나는 지. 사람들의 무거운 발걸음이 점차 가벼워지며 하산을 재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힘들게 올라왔던 능선을 굽어보며 '우리 삶도 이러했는가' 싶은 생각이 단박에 드는 것이다.


내설악 단풍 중청봉에서 바라본 내설악과 귀떼기청봉
▲ 내설악 단풍 중청봉에서 바라본 내설악과 귀떼기청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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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봉을 향해 내려가면서 본 내설악의 단풍은 산그림자처럼 서서히 산기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단풍들은 곧 이 산을 찾는 사람들의 가슴 한가운데 알록달록한 추억을 수 놓으며 당신을 찾은 사람을 위로할 테지. 단풍은 내설악 용아장성을 물들이고 있었다. 지난 10월 초하룻날(양력) 모습이라고 했다.



용아장성 중청봉에서 바라본 용아장성, 내설악 최고의 비경 중 하나다.
▲ 용아장성 중청봉에서 바라본 용아장성, 내설악 최고의 비경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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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청에서 소청으로 이동하면서 본 용아장성...골짜기 너머로 봉정암이 숨어들었다.



소청봉으로 가는 길 중청봉에서 소청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다.
▲ 소청봉으로 가는 길 중청봉에서 소청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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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청에서 소청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이채롭다. 한때 이 곳도 자연산(?) 등산로였건만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자연이 많이도 훼손됐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설악산의 매력이 널리 알려진 점 때문에)세상에서 위로 받고 싶은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명산이 가진 최고의 '힐링효과'가 사람들을 불러들인 게 아니겠나.



내설악 단풍 중청봉에서 소청봉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내설악 단풍이 너무 곱다
▲ 내설악 단풍 중청봉에서 소청봉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내설악 단풍이 너무 곱다
ⓒ 장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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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 장면이 중청에서 소청으로 이동하는 동안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이 능선이 조금전에 돌아온 끝청에서 중청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이런 장면은 설악산에서만 볼 수 있는 명품이 아닌가 싶다. 자작나무와 소나무와 주목 등이 떨기나무와 기막히게 어우러진 모습이다. 아마도 천상에 만들어진 정원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이런 풍경(단풍)이 설악산 대청봉을 중심으로 대략 1500m 정도까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느리게 걸으면 더 맛있는 산행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내 마음 속의 힐링포토는 그렇게 느리게 느리게 한 장면 한 장면씩 카메라 메모리칩에 쌓이고 가슴 속을 후련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내 마음 속의 힐링포토



소청봉 가는 길 중청봉에서 소청봉으로 가는 길
▲ 소청봉 가는 길 중청봉에서 소청봉으로 가는 길
ⓒ 장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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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봉으로 가는 길



망부석 중청봉에서 소청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곁에 서 있는 망부석
▲ 망부석 중청봉에서 소청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곁에 서 있는 망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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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바람 눈보라를 견디며 인고의 세월을 견뎌온 바위 하나가 내설악을 응시하고 서 있다.




설악산 단풍 중청봉에서 소청봉으로 하산길에 만난 설악산 단풍
▲ 설악산 단풍 중청봉에서 소청봉으로 하산길에 만난 설악산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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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알록달록한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한 풍경 아래로 희운각(하얀점)과 천불동계곡이 펼쳐져 있다.



천불동 계곡 소청에서 바라본 천불동계곡, 사진 아래로 희운각이 보인다.
▲ 천불동 계곡 소청에서 바라본 천불동계곡, 사진 아래로 희운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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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운각과 천불동계곡


동해 해안선 소청봉에서 바라본 동해 해안선이 하늘과 맞닿은 모습이다.
▲ 동해 해안선 소청봉에서 바라본 동해 해안선이 하늘과 맞닿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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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동계곡 만물상 너머로 동해와 속초시가 시원스럽게 탁트여 있다.




설악산 단풍 소청봉에서 바라본 설악산 단풍
▲ 설악산 단풍 소청봉에서 바라본 설악산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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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을 온통 알록달록하게 수 놓은 만산홍엽 위로 까만 점 하나...구름과 바람대신 이름모를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설악산 단풍 소청봉에서 바라본 설악산 단풍, 뒤로 울산바위가 손에 잡힐듯 하다.
▲ 설악산 단풍 소청봉에서 바라본 설악산 단풍, 뒤로 울산바위가 손에 잡힐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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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도 날씨 조차 기막히게 좋았다. 양력 10월 초하룻날이었다.

설악산 단풍 설악산 단풍 너머로 울산바위가 위용을 드러냈다.
▲ 설악산 단풍 설악산 단풍 너머로 울산바위가 위용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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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을 최대로 당겨 울산바위를 당겨봤다. 아직 1500m 아래 고도는 새파란 초록빛. 단풍은 멀었다.




내설악단풍 소청봉에서 바라본 귀떼기청봉과 내설악 단풍
▲ 내설악단풍 소청봉에서 바라본 귀떼기청봉과 내설악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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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잘 보셨나요. ^^ 동영상 하나 첨부합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V-6VoQ1ENHA)




서두에 잠시 느림의 미학을 언급했다. 후다닥 긁어내리신 분들은 느림의 미학에 대해 별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55개의 파일 전부를 하나 하나씩 살펴보신 분들이라면 '낫지오' 못지않은 기록으로 봐 주실 거 같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느리게 걷다가 잠시 호흡을 멈추고 발로(?) 찍은 사진들이다. 다음편은 보다 더 짜릿한 비경을 준비했다. 내설악의 진가가 무엇인지 절로 감탄하게 될 장면들이 아닌가 여겨진다. 길게 이어진 '작은 다큐' 봐 주셔서 감사드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내가 꿈꾸는 그곳(www.tsori.net)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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