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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국방부가 혈세 수백억을 지원해 군인 자녀를 위한 기숙형 사립고등학교(정원 1200명, 군인자녀 70%)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국방부는 이 학교에 올해까지 60억, 내년에는 290억의 혈세를 지원하고, 개교 후에도 매년 30억 이상(교과부 지원금 포함)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진성준 민주통합당 의원실 자료를 근거로 한 <한겨레> 5일자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는 수백억의 국민 세금을 들여 2014년 개교 목표로 현재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한민고등학교' 설립을 추진 중이다.

수백억 혈세 지원하면서 사립학교?

국방부는 지난해 학교법인 '한민학원'을 설립했으며, 이사장은 이 사업 추진을 지휘했던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이고, 김 전 장관의 육사 혹은 경기고 동문인 장종대·김재민 예비역 소장, 홍두승 서울대 교수(전 국방선진화위원) 등이 이사로 임명되었다.

국민 세금으로 군인자녀를 위한 학교를 설립하는데 대해서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 기막히는 것은 이렇게 수백억의 국고를 들여서 짓고 있는 이 학교가 국립이나 공립학교가 아니라 사립학교라는 점이다.

김태영 전 국방장관. (자료사진)
 김태영 전 국방장관. (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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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국방부는 국립고 설립을 추진했으나 법적 장벽에 부딪혔다. 현재 대통령령인 국립학교설치령에 의한 국립고는 대학의 부속학교를 제외하면 부산과 인천에 있는 해사고와 특수학교밖에 없다. 또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0조에 따르면 특수분야의 전문 인재양성을 위한 과학고, 외국어고, 체육고, 예술고 등만 가능하다.

결국 국방부가 힌트를 얻은 곳이 강원외고인 듯하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제3조(학교의 구분)에 의하면 국립학교는 국가가, 공립학교는 지방자치단체(광역시도), 사립학교는 법인 또는 개인이 설립할 수 있다.

최근 입학비리로 물의를 일으킨 강원외고는 도내에 외국어고가 하나도 없다는 지역여론을 등에 업고 양구군이 나서서 만들어진 학교다. 학교 설립 때부터 불법 논란이 생겼다. 실제로 감사원과 법제처는 기초지자체인 양구'군'이 학교를 설립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도립학교 또는 민간운영학교로 전환하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결국 강원외고는 불법 시비를 세금을 출연하여 법인을 설립하고, 그 법인이 학교를 운영하는 편법으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니까 국민세금을 설립자금으로 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것이지만 실제 운영형태는 사립학교였다. 결국 이렇게해서 전국 최초이자 유일의 '공립형 사립학교'라는 기형적인 고등학교가 탄생한 것.

대기업이 사립학교를 운영하는 경우는 가끔 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자율형사립고 중 서울 중동고는 삼성(2014년까지만 지원), 천안 북일고는 한화, 포항 포철고는 포스코, 울산 현대고는 현대 등이 바로 그런 예이다. 그러나 이렇게 기업이 지원하는 사립학교도 입학 자격에 그 회사 자녀라는 제한을 두지는 않는다.

물론 그 학교에 그 기업의 직원 자녀들이 많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그 지역에 그 기업의 직원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생기는 일이다. 사실 이런 기업이 설립한 자율형사립고도 사회 통합을 지향하는 교육의 가치 상 적합한 것이냐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공립형사립고인 강원외고도 입학 자격에 제한을 두지는 않는다. 그런데, 지금 국방부가 추진하는 학교는 설립자금도 국방부에서 세금으로 대고, 운영자금도 세금으로 지원하며, 나아가 입학 자격도 70%를 군인자녀로 제한하겠다는 전혀 새로운 유형의 학교다.

자율형사립고에 이어 공립형사립고(강원외고)에 이어 국립형사립고까지. 공립형사립고도 웃기는 이름이지만 국립형사립고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어떻게 국가의 국민세금으로 세운 학교가 '사립학교'가 될 수 있는가?

군인 특수성은 이해하지만...이 방식은 아니다

물론 국방부가 왜 이런 학교 설립을 추진했는지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군인이라는 직업의 특수성 때문에 전근이 잦고, 그로 인해 가족들도 수시로 이사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당연히 자녀들이 전학을 자주 다녀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군인자녀만을 위한 학교 설립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서, 학자금 지원이라든지 아니면 이주비 지원, 또는 주택자금 지원 등 복지나 지원을 확대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풀 수 있다.

경찰,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판사, 검사 등은 상대적으로 자주, 전국을 대상으로 근무지를 옮겨 다녀야 한다. 국방부의 논리대로라면 경찰 자녀학교, 출입국관리소직원 자녀학교, 검사·판사자녀학교도 만들어져야 한다. 국가공무원들의 경우 어느 정도 근무지 변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공무원자녀 전용학교를 만들자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찬성하지는 않지만 차라리 하사관 같은 직업 군인양성을 위한 특수목적고를 만든다고 하면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군인자녀들만을 위한 학교는 이해되기 힘들다. 특정 직업집단의 자녀를 위한 학교는 사회통합을 위해도 적합하지 않으며, 추구해야할 공교육의 본질적 가치와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군인자녀들도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직업을 가진 부모의 자녀 학생들과 어울려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 공교육의 기본 정신에도 맞다. 부모가 군인인 학생들이 대부분인 학교 학생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부모의 계급에 따라 아이들까지 서열이 달라지지 않을까? 교육적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전세계에 유례없이 사립학교의 비율이 높은 나라이다. 그 사립학교마저도 사학비리, 입시비리, 족벌운영 등으로 국민들의 불신이 높다.  그런데, 이런 현실을 두고 지방자치단체가 국민의 세금으로 지역인재 유출 어쩌고 하면서 '공립형사립고'를 만들어서 물의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제는 급기야 국가가 혈세를 들여서, 그것도 특정직업 집단의 자녀들을 위한 '국립형사립고'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국방부와 교육부는 학교 설립에 대해 원점에서부터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태그:#군인자녀전용, #국립형사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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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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