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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자영업자들은 얼마나 될까. 2010년 기준으로 15세 이상 생산 가능 인구 가운데 약 16.9%가 자영업자이거나 그들을 돕는 가족들이다. 전체 취업 인구의 28.8%에 이른다. 이와 같은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 물정을 모르는 외국인들이 보면 자영업자들이 수익이 좋아서 많이 하나보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대부분 자영업자들이 호구지책에 가까운 상황이다. 그만큼 한국에서 안정직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서라고 할 수도 있다. 국내에서 정규직 일자리는 전체 생산 가능 인구의 24.8%에 불과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워낙 부족하다보니 자영업이 늘어났다고 하는 것이 현실에 가깝다. - <골목사장 분투기>에서

<골목사장 분투기>(강도현 씀, 인카운터 펴냄)는 '망해봐야만 알 수 있는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의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골목 시장을 누비며 파헤치고 있는 책이다.

<골목사장 분투기> 겉표지
 <골목사장 분투기> 겉표지
ⓒ 인카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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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외국계 금융회사를 다녔으나 어찌어찌 유동인구가 많아 목이 좋기로 소문난 지역 중 하나인 홍대입구(서울)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자영업자다.

책은 주로 최근 몇 년 새 눈에 띄도록 많아진 커피전문점과 편의점의 실태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의 애환을 들려준다. 그리하여 비정상적인 경제구조를 고발함과 동시에 바람직한 경제생태계를 생각해보게 한다.

2006년 2월. 16년째 해오던 가게를 접었다. '봄이 되면 좀 나아지겠지... 신학기가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 선거철이 지나면 좀 나아질 거야' 이런 식으로 좀 지나면 나아지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졌다 내려놓기를 몇 년 동안 미련스럽게 잡고 있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자영업자인 우리가 당시 느꼈던 경기 체감은, 물줄기를 찾아 파고 파 내려가 실낱같이 흐르는 물줄기로 간신히 목을 축이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시 우리가 만났던 다른 업종의 자영업자들 대부분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시 우리를 힘들게 했던 것들은 자동차용품업계에도 불기 시작한 '체인점 바람'과 대형마트와 케이블방송들의 싸구려 물건으로 물건 값 흐리기, 함량 미달의 중국산 제품들 등이었다. 문득, 물건을 계속 납품하려면 자신들의 행사를 위한 일정의 물건을 원가 이하로 납품해달라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해야만 했던) 모 대형마트의 횡포도 생각난다.

자동차용품 업계에도 체인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프랜차이즈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일정 금액을 보증금으로 넣고 본사가 제시하는 인테리어를 하는 것, 매달 일정량의 물건을 본사로부터 받는 것 등이 주요 조건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타산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 책 <골목사장 분투기> 속 '분홍빛 꿈을 안고 빚내서 창업하는 사람들처럼' 빚을 내서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야속하게도 소비자들은 정직한 값으로 파는 물건보다 같은 물건에 홀로그램 딱지 하나 붙여 순정품이라며 곱절이나 비싸게 파는 물건을 더 신용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못 가본 길은 가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길을 선택하며 놓아야만 했기에 아쉬울 수밖에 없다. 2000년 초 당시 빚이라도 내 하고 싶단 생각을 하기도 했던 만큼 체인점에 대한 막연한 아쉬움이 있었나 보다. 지난해 가을 아들이 편의점 알바를 하며 하루 매출 정도를 이야기하며 편의점 운영에 흥미를 느낄 때 나 역시 "편의점도 괜찮겠다"는 아들의 말에 동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가슴이 철렁~! 2000년대 초나 지난해나 프랜차이즈나 편의점을 선택하지 않았음이 천만다행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때 체인점을 했더라면 가게를 접으며 평생 갚기 힘든 빚을 떠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찔한 생각과 함께 말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내 아들이 훗날 편의점을 한다고 해도 크게 말리지 않았을 거란 생각과 이 책을 아들에게 꼭 읽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현 사장? 망했잖아. 그래서 이혼하고 외국까지 나갔던 거잖아. 와이프랑 그렇게 밤낮없이 일해도 남는 돈이 없으니 부부 사이라고 좋았겠어? 와이프하고 직원들까지 만날 바쁘게 일하니 남들이 보기에는 돈을 엄청 많이 버는 것 같아도 빛 좋은 개살구였나봐. 체인점 하다가 망한 거잖아. 체인점이라고 몇 프로 디씨해서 물건 받으면 뭐해. 물건이 팔리든 안 팔리든 매달 본사로부터 3500만 원 어치 물건을 받아야 하고, 그 물건 값을 매달 입금해야 하니 어디 견디겠어? 볼 때마다 죽는 소리 하더니 농담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책을 통해 프랜차이즈 편의점과 커피전문점의 실태를 알아가며, 잊고 있던 현 사장이 생각나 남편에게 물어보니 이처럼 답한다. "우리 주변에는 그 사람 한 사람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망했겠냐?"는 말을 덧붙이며.

업종은 다르지만, 현 사장의 비극과 책 속 사례자들의 실태는 거의 같아 보인다. 편의점한다고 3년 동안 죽어라 고생만 하더니 결국 폐업한 뒤 생돈 바쳐 계약을 해지한 책 속 사례자인 모씨도 그 중 한 사람. 그는 현재(책속 기준) 프랜차이즈의 노예 족쇄에서 벗어나 신촌에서 요즘 참 보기 드문 일반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모씨가 편의점을 하게 된 것은 2003년. 신촌에서 직원 두 명을 두고 구두 매장을 운영하던 그에게 매일 편의점 컨설턴트(대리점 모집 영업사원)가 찾아와 눈에 보이는 장점만을 부각해 6개월 동안 설득, 결국 그는 모 편의점 계약을 하게 된다. 당시 중국산 구두들이 수입되면서 제화업계의 사정이 좋지 않았던지라 어떤 돌파구든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체인점 본사의 횡포 다룬 뉴스 일부
 체인점 본사의 횡포 다룬 뉴스 일부
ⓒ 포털사이트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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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씨는 자기 점포가 있었기 때문에 65:35, 즉 전체 매출의 65%를 갖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본사가 35%를 먹고. 모씨처럼 자기 점포 자본력이 없는 경우는 본사가 점포를 제공함으로써 이와 반대로 본사가 이익 중 65%를 가져가고 실질적으로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람은 35%를 가져간다고 한다. 참고로 지난 10월 8일, 편의점 본사의 의 이런 실태를 알리는 뉴스들이 보도됐다.(이미지 참고)

모씨가 편의점을 개업한 2003년 당시는 지금보다 경기도 힘들지 않았고 편의점 수도 그다지 많지 않아 본사에 35%의 매출이익을 주고도 1000만 원이 조금 넘는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임대료와 인건비, 전기요금과 같은 관리비 등을 내고 나니 남는 돈은 거의 없어 자신의 몫은 없었던 것.

직접 운영하지 않고 점장 체제로 시작해 이익이 더욱 없었다. 자신이 점장이 되어 운영했다면 점장에게 주는 월급이 자신의 몫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나이도 어리지 않은 데다가 영업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새삼 무엇을 배워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함께 일해오던 사람에게 편의점 운영에 필요한 점장 교육들을 받게 해 운영했던 것. 결과, 여하간 자신의 몫은 없었다.

그야말로 내 자본을 누군가들을 위해 고스란히 바치고 자신은 다른 일을 찾아 자신의 생활을 해결해야 하는 웃기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본사와 5년을 계약했지만 어찌어찌 3년을 버텨낸 모씨는 본사에 폐업을 알린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본사가 위약금조로 제시한 돈은 1억 500만 원. 그는 본사와 어렵게 타협해 생돈 7000여만 원을 본사에 입금한 후에야 대기업의 체인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3년간 고생만 하고 해지를 하려고 보니까 위약금을 내라 하더라고. 위약금이 뭐냐고 하면 그동안 발생한 이익의 일정 부분, 처음에 본사에서 부담한 시설비, 인테리어 등 등 해서 1억 500만원을 내놓으라 하더라고. 너무 황당하잖아? 3년간 죽어라고 고생했는데, 나한테 오히려 1억 원을 물어내라니까. 그동안 35%씩 다 가져가놓고 말이야. 결국 3년간 나간 인건비 하나 못 건지고 고생만 하다가 위약금까지 물게 생긴 거지(…)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 나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라 대기업이 자기네 이익 올리려고 일반적으로 하는 수법이야. 인터넷에 들어가면 안티편의점 모임이 있어. 거기 보면 이런 사례들이 죽 나열되어 있어.

24시간 열어야 하니까 혼자서는 절대로 못하거든. 임대료, 인건비, 각종 비용 다 부담하고도 본인 인건비는 나와야 하잖아. 내가 볼 때 태반은 12시간 이상씩 일하고 150만원도 못 벌어. 도저히 안 되는 경우는 간판을 내려야 하잖아. 그럼 보증금마저 떼이는 거지. 문 닫고 싶어도 보증금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운영한다는 사람들 이야기가 수두룩해. 그런데 진짜 그런 사람들이 왜 이렇게 편의점을 하려고 할까? 한쪽에서는 제발 문 닫게 해달라고 아우성이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하고 싶다고 아우성이야. 사실 편의점 사업의 계약은 철저히 대기업 위주로 만들어져 있거든. 사업을 실제로 하는 영세업자들에게는 불리한 조항들이 많아. 그런데 우리 영세업자 중에 그런 조항들을 일일이 체크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우선 조금이라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골목사장 분투기>에서)

며칠 전(10월 18일~19일자), '지난해 우리나라 자영업자 6명 중 1명이 폐업했다'는 뉴스가 보도된 바 있다. 10월 18일 국세청이 집계 발표한 '2011년 개인사업자 폐업 현황'에 의하면 2011년에 폐업한 자영업자는 82만9669명. 이는 2010년의 80만 5066명보다 2만4000여명(3%) 많은 숫자로, 전체 개인사업자 519만5918명 가운데 16%를 차지한다고 한다.

<골목사장 분투기>는 나와 내 주변의 자영업자들이 망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해 6명 중 1명이 폐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망해봐야만 알 수 있는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이 맞닥뜨린 구조적인 문제들을, 매년 60만 명 등록하지만 그중 상당수인 58만 명이 조만간 퇴출당할 수밖에 없는 자영업의 치열한 현실 등을 들려준다.

아울러 이 어두운 경제불황에도 불구하고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도 제시한다. 물론 자영업자인 저자 스스로 발로 뛰어 취재한 결과물들이 바탕이 되고 있어 신용도 높은 정보임은 말할 것도 없겠다. 바라건대, 책 속 사실들이 많이 알려져 무엇보다 대기업의 거대한 자본 때문에 흐려질 대로 흐려진 대한민국의 경제생태계가 하루빨리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골목 사장 분투기>ㅣ강도현 (지은이) | 인카운터 | 2012-09-15 ㅣ12000원



골목 사장 분투기 - 개정판, 자영업으로 보는 대한민국 경제 생태계

강도현 지음, 북인더갭(2014)


태그:#자영업, #폐업, #프랜차이즈, #편의점, #체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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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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