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영동 1985> 포스터

영화 <남영동 1985> 포스터 ⓒ 아우라픽쳐스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지난 6일 오전,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부러진 화살>을 선 보였던 정지영 감독이,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자전적 수기 <남영동>을 극화 한 영화 <남영동 1985>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남영동 1985>는 전두환 정권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는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민주화운동 청년연합 의장을 역임하던 1985년 9월, 집앞에서 연행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22일 간 당한 고문을 그렸다. 김 전 고문의 수기 <남영동>을 토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는 김종태로 묘사되는 고 김근태 전 고문(박원상 분)의 생애나 공과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고문 그 자체에 집중해 한 공간에서 한 인물에 가해지는 고문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그렇게함으로써 정지영 감독은 고문이 얼마나 잔혹한지, 어떻게 한 인간의 영혼을 파괴시키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 국가 권력이 어떻게 한 개인을 무참하게 모멸시키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부당한 국가 권력의 횡포를 고발한다.

 영화 <남영동 1985> 중 한 장면

영화 <남영동 1985> 중 한 장면 ⓒ 아우라픽쳐스


영화는 고문의 묘사에 집중한다. 실제로 영화 상영시간의 상당 부분이 고문 묘사에 할애돼 있으며, 김종태 역을 맡은 배우 박원상과 이두한 역을 맡은 배우 이경영이 고문을 받고, 가하는 연기를 치떨리는 사실감으로 구현한다.

작은 방에서 김종태에게 가해지는 고문은 물고문·칠성판고문·전기고문 등으로 다른 형사들까지 '장의사'라고 부를 정도로 악랄한 고문 기술자 이두한은 태연하게 고춧가루를 코와 입에 들이붓고, 몸에 소금을 칠하고 전기고문을 가한다.

잠도 재우지 않고 계속 가해지는 각종 고문. 신념을 굽히지 않던 김종태도 결국 "시키는 대로 하겠다"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불러주는 대로 자술서를 쓰게 된다. 이로써 민주화청년운동연합은 '공산주의 폭력혁명을 목적으로 한 간첩 조직'으로 조작돼 대중에 알려지게 된다.

고문이라는 소재를 담은 <남영동 1985>는 지루하지 않았다. 감독은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연기 부분에서도 연출력을 발휘해 지루함을 덜어내고 때로는 미소를 던지게 만들기도.

"<남영동 1985>, 영화 인생 중 가장 힘들었다"

 <남영동 1985>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는 정지영 감독

<남영동 1985>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는 정지영 감독 ⓒ 임순혜


<남영동 1985>시사회가 끝난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지영 감독은 "고문은 영화 감독들이 달리 선택하는 소재이자 테마인 것 같다"며 "아웃사이더 쪽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영화를 바라보다 보니 이 소재를 택하게 됐다, 오래 전부터 고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남영동 1985>는 내 30년 영화 인생 중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라며 "찍고 난 뒤 후유증으로 한참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정 감독은 "고문에 집중해서 영화를 만들었다, 관객을 아프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며 "관객들이 김종태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공유하면 좋겠다, 많은 국민들이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을 보면서도 침묵을 지켰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덧붙였다.

정지영 감독은 '언제 개봉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정치의 계절에 맞춰 개봉하는 게 맞을 것 같다"며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개봉한 뒤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은 감독의 보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선을 앞두고 개봉해 영화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다.

'대선 후보를 초청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정지영 감독은 "반드시 초청하겠다, 대선 후보들이 모두 보면 좋겠다"며 "영화를 통해 통합과 화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그러나 메이저 배급사에 접촉해봤지만, 아직 답변이 없다"며 개봉 날짜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음을 알렸다.

김종태를 연기한 배우 박원상은 숭실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1993년 MBC 대학가요제 은상 수상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지닌 배우다. 연극 무대와 영화 단역으로 오랜 기간 무명 시절을 보냈으며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으며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박원상은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실>(2011)에서 '양아치 변호사' 박준 역을 맡은 바 있다. '고문받는 역할을 어떻게 연기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박원상은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노비의 몸으로 견뎌냈다"고 답했다.

고문 기술자 이두한 역을 맡은 배우 이경영은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연산일기>(1987)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비 오는 날 수채화>(1989) <있잖아요 비밀이에요>(1990) 등 청춘 멜로물에 출연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사의 찬미>(1991)에서 홍난파 선생을 연기해 대종상을 비롯한 각종 영화제의 남우조연상을 휩쓸며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최근 <푸른 소금>(2011) <최종병기 활>(2011) <부러진 화살>(2011) <후궁 : 제왕의 첩>(2012)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잔인한 고문기술자 역을 맡은 부담 때문인지 이경영은 "죄송하다, 애 이렇게 가슴이 먹먹하고 아픈지 모르겠다"며 "새로운 시대는 이런 아픔들이 치유되는 시대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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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남영동 1985> 중 한 장면

영화 <남영동 1985> 중 한 장면 ⓒ 아우라픽쳐스


이날 오후 4시 관객 시사회에 참석한 고 김근태 고문의 부인 인재근 의원은 "박원상씨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감사하다"며 껴안고 눈물을 흘려 시사회장을 숙연케 했다.

인재근 의원은 "짐승처럼 당하고도 가족에 대한 사랑과 의지로 살아서 돌아와 준 남편이 오랜 세월 동안 아이들을 키우고, 정치 발전에 기여도 했다"며 "김근태는 고문을 겪은 후에도 따뜻한 사람이었고, 따뜻한 아버지였으며, 훌륭한 정치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를 보니 이근안씨가 당시 '섬세한 기술'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남편이 한순간에 죽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분에게도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 <남영동1985> 시사회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는 정지영 감독 ⓒ 임순혜



부산국제영화제 남영동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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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미디어기독연대 대표,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운영위원장, 언론개혁시민연대 감사, 가짜뉴스체크센터 상임공동대표, 5.18영화제 집행위원장이며, NCCK언론위원장,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특별위원, 방송통신위원회 보편적시청권확대보장위원, 한신대 외래교수,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심의위원을 지냈으며, 영화와 미디어 평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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