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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쯤 전 일이다. 우리집 암탉 두 마리가 다시 알을 품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알을 품는게 아니라 알이 없는 빈 둥지를 품고 있는 거였다.

닭들은 일년에 두 번(봄, 가을) 정도 알을 품어 병아리를 깐다고 한다. 물론 이때 품는 알은 '유정란'이어야 병아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집에는 장성한 수탉이 없다. 청소년쯤 되는 숫병아리는 몇 있어도 교미할 정도로 자라진 못했다. 그러니 암탉이 낳는 알은 '무정란'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집 두 암탉은 무정란을, 또는 빈 둥지를 품고 앉아있다. 우리가 보기엔 바보같은 짓이지만 그게 호르몬의 작용때문이라 탓할 수만도 없다.

문제는 그런 상태로 계속 두면 애매한 상황이 된다. 빈 둥지를 품는 동안에는 알을 낳지도 않고 밥도 안 먹으며 지내게 되는 거였다. 그럴 바에야 어떤 조치를 취해줘야 한다. 할 수 없이 근처 자연방사닭을 키우는 사람에게 연락해서 '유정란'을 구했다.

그렇게 구입한 유정란은 적당한 타이밍에 맞춰 암탉들에게 넣어줬다. 암탉들이 모이를 먹으러 둥지를 잠시 비울 때를 노린 것이다. 알의 갯수는 각각 10개씩으로 맞췄다.

다행히 닭들은 새로 넣어준 알들을 별 의심없이 품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이 할 일은 다 한 셈이다.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병아리 부화기간은 삼칠일(3*7 = 21일)이므로 3주 가량 후면 병아리들이 태어날 것이다. 물론 암탉들은 남의 새끼를 자신의 새끼인 줄 알고 키우게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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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삼칠일이 흘러 며칠 전 부화일이 되었을 때다. 오전에 닭장을 살피니 이상한 풍경이 보이는 거였다. 각자의 분만실에 앉아있어야 할 암탉들이 한 군데 몰려 앉아 있었다. A, B. 이렇게 두 군데 분만실을 만들어줬고, 3주간 그렇게 잘 해오던 녀석들이었는데 말이다.

병아리 소리도 들리는 걸 보니 병아리들도 부화한 것 같았다. 둥지 B에는 병아리가 부화한 흔적인 빈 알껍질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세개의 알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7마리는 부화하고 세 개는 실패인 듯했다.

그제야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감이 왔다. 암탉간에 병아리 쟁탈전이 벌어진 거였다. 둥지 A의 주인인 암탉은 봄에도 병아리를 부화시킨 적이 있는 경험자다. 노련한 아줌마란 뜻이다. 그에 비해 둥지 B의 주인인 암탉은 분만 경험이 없는 무경험자다. 미숙한 아줌마쯤으로 부를 수 있을 게다.

어리바리하고 미숙한 아줌마 닭이 노련한 암탉에게 자기 병아리를 빼앗긴 모양이었다. 노련한 아줌마 닭은 자기 병아리는 병아리대로 다 부화시키고도 옆집 병아리들을 유괴한 듯했다. 한마리씩 한 마리씩 빼앗기던 '어리바리 암탉'이 더 참지 못하고 그쪽 둥지로 쳐들어간 거였다.

"아차" 싶었다. 암탉들은 알 욕심도 많고 병아리 욕심도 많다. 당연히 그걸 생각했어야 하는데 나의 실수였다. 분만실을 따로 따로 해서 그 사이에 그물을 쳐서 격리 시켰어야 하는 거였다. 이제 후회해 봐야 늦었다.

그렇게 한참을 한 둥지에서 씨름 하던 두 암탉 중 '어리바리 암탉'이 움직였다. 병아리 한 마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 닭장 안 더 넓은 곳으로 옮겼다. 실랑이 끝에 겨우 한 마리 건진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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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그렇게 해서 싸움이 정리된 뒤의 모습이다.

욕심많은 암탉이 독차지한 병아리들
▲ 병아리 부화 욕심많은 암탉이 독차지한 병아리들
ⓒ 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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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 어미닭 주변에 모인 병아리들
▲ 병아리들 깨어나 어미닭 주변에 모인 병아리들
ⓒ 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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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두 사진은 '노련한 암탉'이 쟁취한 병아리들 모습이다.
             병아리 총 열 여섯마리다. 뒤늦게 그물을 쳐서 한 가족 따로 분리시켜 주었다.)

겨우 한마리만 건진 불쌍한 암탉
▲ 외로운 병아리 겨우 한마리만 건진 불쌍한 암탉
ⓒ 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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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의 사진은 한마리의 병아리만 거느리게된 암탉 모습이다.
                  여러 다른 닭들 사이에 있는 한마리 병아리가 애처로워 보인다.
                  병아리를 기준으로 11시 방향에 대가리 들고 있는 닭이 어미다.
                  불쌍한 '어리바리 암탉'.
                  미안하다 내 탓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태그:#귀농, #병아리, #암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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