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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어머니가 이번 추석에는 오지 않아도  된대. 명절휴가 받았어."
"응. 왜? 무슨 일 있었니?"

난 괜스레 걱정이 되었다. 혹시 딸과 시어머니와의 사이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하는 노파심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런데 왜 추석에 안와도 된대?"
"왜냐하면..."

시어머니에게 명절 휴가 받은 딸아이, 목소리가...

딸아이가 설명을 해준다. 추석과 사부인의 생신은 며칠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여 추석 일 주일 전 주말에 생일 파티를 미리 했다고 한다. 이번 생신 때에는 딸아이와 아랫 동서가 미역국과 약간의 음식을 해가지고 가서 생일상을 차려주었다고 한다.

두 며느리가 정성껏 마련해 온 생일상을 받은 시어머니는 무척 좋아했단다. 생일상을 받더니 "이거 누구 아이디어니? 나 친구들한테 자랑할 것이 너무나 많다" 하면서. 그 아이디어는 딸아이의 생각이었다.

딸아이는 시댁에 가기 전 내게 전화를 해서 "엄마, 우리 시어머니 생신 때 미역국 끓여가면 어떨까? 좋아하실까?" 했었다. 내가 "그럼, 좋아하시고 말고. 네가 그렇게 마음 먹었으면 힘들어도 끓여 가거라"했더니 딸아이도 "다른 반찬은 안 하고 미역국만 맛있게 끓여 가려고" 했다. 그리곤 제 동서와 의논을 해서 약간의 반찬을 만들어갔다고 한다. 동서도 음식을 맛있게 해왔다고 한다. 그런 며느리들의 마음이 시어머니께도 잘 전달이 되었나 보다.

생각지도 않은 생일상을 받은 시어머니는 "이젠 네 시아버지와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닐란다. 니네들은 우리 걱정말고 잘 살아. 아참, 그리고 이번 추석에는 너희들에게도 휴가를 줄 테니깐 너희들 마음대로 해라. 여행을 가든 잠을 자든" 하시더란다.

두 며느리는 의아해서 시어머니 얼굴을 쳐다보면서 이랬단다.

"그럼 큰집에는 어떻게…."
"큰집에는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깐 걱정하지 말고."

두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진심이 느껴져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하여 딸아이는 추석 전 날 제 시동생 부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추석날 친정에 오겠다며 전화를 한 것이다. 보통 때 명절에 사부인은 아들, 며느리, 손주들을 앞세우고 큰집에 갔다. 그러던 시어머니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은 역시나 며느리들의 진정한 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나도 그런 소리를 들으니 정말 감사했다. 명절 때만 되면 딸도 며느리 노릇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하기사 평소에도 며느리들한테 명절 스트레스를 주지 않은 편이라 그다지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에 내린 결정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며느리'란 시가 있다.

요즘은 예전과는 달리 남편들이 많이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 했다.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며느리들.
 요즘은 예전과는 달리 남편들이 많이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 했다.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며느리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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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제사 지나갔네
두달만에 또 제사네
할 수없이 그냥하네
제일 먼저 나물볶네
네가지나 볶았다네
이제부터 가부좌네
다섯시간 전 부치네

허리 한 번 펴고 싶네
한 시간만 눕고 싶네
남자들은 티비보네
뒤통수를 째려 봤네
주방에다 소리치네
물떠달라 지랄떠네
제사상은 내가 했네
지네들은 놀았다네

절하는 건 지들이네
이내몸은 부엌있네
이제서야 동서오네
낯짝보니 치고싶네
손님들이 일어나네
이제서야 간다하네
바리바리 싸준다네
내가 한거 다준다네

아까워도 줘야하네
그래야만 착하다네

피곤해서 누웠다네
허리아파 잠안오네

명절되면 죽고싶네
일주일만 죽고싶네
십년동안 이짓했네
수십년은 더 남았네

명절이란 것이 며느리들에게 얼마나 힘들면 이런 시가 다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예전과는 달리 남편들이 많이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했다. 아직까지는 여자들이 더 힘든 것도 사실이다. 시장 보기부터, 손님맞이 대청소, 음식 만들기, 대접, 설거지 등 만만치 않다.

"우리 남편은 주방이 어딨는지도 몰라요"

송편 빚기가 한창인 모습.
▲ 추석맞이 송편빚기 송편 빚기가 한창인 모습.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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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중에 젊은 남편인데도 주방 쪽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제법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며칠 전 추석 준비를 조금씩 하느라 시장에 갔다 오다가 이웃에 사는 여인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며칠 있으면 추석이지요. 명절이란 것이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남편의 나이와는 상관이 없는 듯했다. 67세가 된 남편은 퇴근해서도 주방일, 세탁기, 청소 등을 아주 잘 도와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며 40대 초반의 젊은 남편은 라면도 제 손으로 끓여 먹지 않고 아내가 끓여주어야만 먹을 정도이고 우스갯소리로 "우리 남편은 주방이 어디있는지 몰라요. 그러니 명절 때 음식 만드는 일을 도와주겠어요. 안 봐도 비디오지요"한다.

그들과 나눈 이야기가 생각나면서 사부인이 더욱 고마워졌다. 나도 며느리를 보면 명절휴가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명절 휴가를 받은 딸아이의 목소리가 날개를 단 것처럼 상쾌하게 들린다.

"그렇게 좋으니?"
"그럼 좋고 말고."

그것은 그날 일을 안 해서가 아니라, 시어머니가 며느리들의 고충을 잘 알고 이해해주고 있다는 것은 아닐는지. 시어머니도 얼마 전까지는 며느리였으니. 아마도 다음 명절에는 두 며느리가 더 잘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니 말이다.


태그:#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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