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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랫줄 대용으로 사용되는 대나무, 좁은 마당임을 짐작케 한다.
▲ 홍제동 개미마을 빨랫줄 대용으로 사용되는 대나무, 좁은 마당임을 짐작케 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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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동 개미마을이 나름 유명한 출사지가 된 것은 50여 점의 벽화가 그려지면서부터라고 한다.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라는 것이 더해지면서 개미마을은 카메라를 든 외지인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벽화마을을 방문해서 벽화를 카메라에 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낡고 허물어진 건물과 계단 등에 그려진 벽화를 보면서 희망의 빛을 찾아보려는 몸부림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곳엔 붓으로 그린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삶의 그림들이 있다.

지붕에 올려진 벽돌, 바람에 지붕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 홍제동 개미마을 지붕에 올려진 벽돌, 바람에 지붕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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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트 지붕이나 기와지붕 할 것 없이 비를 막기 위한 장판이나 바람에 지붕이 날아가지 않도록 벽돌을 올려놓은 집들이 많았다. 그 모든 것들은 그들의 삶의 무게처럼 느껴진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오른 것 같이 그들은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언제나 한 가지 표정, 나름 웃고 있는 모습이 예쁘다.
▲ 허수아비 언제나 한 가지 표정, 나름 웃고 있는 모습이 예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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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들은 항상 웃고 싶다. 척박한 삶이라고 웃을 수 있는 자유마저 박탈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이 희망인 이유는 절망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모두 절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희망이면서 동시에 절망이기도 한 것은 희망의 빛이 가득함에도 절망의 빛을 보고자 하면 그 빛만 보인다는 것이다.

사람은 웃지 못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이다.

붉은 색깔이 백일홍, 꽃은 피어나는 곳이 어디라도 제 빛으로 피어난다.
▲ 홍제동 개미마을 붉은 색깔이 백일홍, 꽃은 피어나는 곳이 어디라도 제 빛으로 피어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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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다. 꽃이 피어날 때에 가난한 집의 뜰이라고 부잣집 뜰이라고 다르게 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 공평함이 때론 무심한 마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연의 힘 앞에서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는 여린 삶이기에 다른 이들의 아픔을 더 많이 껴안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가을 햇살에 말라가고 있는 녹두와 고추, 콩깍지.
▲ 홍제동 개미마을 가을 햇살에 말라가고 있는 녹두와 고추, 콩깍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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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 몇 개, 고추 몇 개. 그 작은 것들을 소홀하게 여기지 않으며 살아왔지만, 그들에게 강요되는 현실은 여전히 아프다. 그런 이들이 풍요롭게 사는 세상이었다면 하나님 나라, 천국이 도래한 것일 터이다. 그렇지 않아 세상이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 혹은 천국, 여타에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극락정토에 대한 꿈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때론 민중의 아편이라고 해도, 그것마저 없이 모든 현실이 다 까발려졌을 때에도 여전히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

가을 햇살에 붉은 고추가 말라간다.
▲ 홍제동 개미마을 가을 햇살에 붉은 고추가 말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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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에 고추가 아주 잘 말랐다. 그 곁에서 눅눅하던 신발도 뽀송뽀송하게 말랐다. 제 안에 품었던 물기를 다 말리고 나서야 제대로 쓰임새를 갖추는 고추와 신발. 어쩌면, 우리네 가슴에 남아있는 눈물도 다 말라버리고 나서야 사람답게 사는 첫걸음을 떼는 것은 아닐까 싶다. 작은 텃밭에서 하나 둘 거둔 붉은 고추들, 방앗간에 가져가 빻아도 한 근도 안 나올 양이지만 그 안에는 온 우주의 무게를 간직하고 있을 터이다. 가을 햇살과 바람과 농부의 손길과 흙의 기운과 비 그리고…….

가을빛이 그린 그림자
▲ 홍제동 개미마을 가을빛이 그린 그림자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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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 한 시각이라도 같은 그림인 적이 없다. 벽에 그려진 벽화가 오래되어 그 빛깔이 퇴색되어 갈 때에도 햇살이 만든 그림자는 늘 그려지는 중이었다. 그려지고 있다는 것, 진행 중이라는 것은 늘 신선하다는 것과 통한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오후 4시의 빛깔, 그러니까 중년의 빛깔이다.

바위 틈에서 자란 강아지풀, 그들의 삶과 닮았다.
▲ 홍제동 개미마을 바위 틈에서 자란 강아지풀, 그들의 삶과 닮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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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은 바위산이다. 그 바위가 기초가 되고, 바위들을 벽 삼아 콘크리트를 치고 집을 짓기도 했다. 바위능선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며 지어진 집들, 달과 가까운 달동네가 된 까닭이다. 밀어붙이거나 폭파를 해서 평평하게 지은 집이 아니라 바위와 암석들을 받아들이며 지어진 집들, 그래서 경계도 모호할 것이다.

그 바위에 강아지풀이 피었다. 척박하기에 여느 곳에 뿌리내린 것보다 일찍 가을빛을 담았다. 그 강아지풀이나 그곳에 사는 이들이나 잡초라고 불리는 풀과 서민이라고 하기에도 더 열악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닮았다.

좁은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아낙
▲ 홍제동 개미마을 좁은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아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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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도 그림이다.
▲ 홍제동 개미마을 빨래도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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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와 빨랫줄과 옷걸이와 빨래집게. 팽팽한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빨랫줄과 항상 이를 앙 다물고 있는 빨래집게. 그들만큼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 오로지 한 일에만 매진하다 명을 다하는 것은 얼마나 될까?

홍제동 개미마을, 그곳에는 붓으로 그린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삶으로 그린 그림들이 골목길마다 지붕마다, 좁다란 골목길을 오르다 보면 내려다보이는 낡은 지붕 아래 좁은 마당이나 가을 햇살 머물다 지나가는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이 있다.


태그:#개미마을, #벽화, #허수아비, #강아지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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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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