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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교복은 획일화와 통제의 상징이었다. 70~80년대 학창시절에야 빳빳하게 다림질한 옷깃에 단추 하나를 풀거나 몰래 잡은 치맛주름을 뽐내던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교복은 더는 동일화된 제복이 아니라 또 다른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고 말았다. 어떠한 패션도 감히 이 수준의 완벽한 '혼연일체'는 꿈꾸지 못했으리라. 어떻게든 더 날씬하고 '쫙 빠져' 보이고 싶은, 지금 아이들에게 교복은 가장 훌륭한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었다.

교복 바지 줄이는 이유?  섹시미+폼생폼사+패션+트렌드

다시 만난 고교 얄개 <고교 우량아>에 등장하는 1970년 교복.
 다시 만난 고교 얄개 <고교 우량아>에 등장하는 1970년 교복.
ⓒ 영화 <고교우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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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둘레 깃이 세워진 스탠드칼라 대신 양복 재킷과 넥타이 그리고 전문디자이너의 맵시를 넣었다고 하지만 교복은 어디까지나 교복일 뿐이다. 획일화된 교복의 유일한 탈출구는 개조로 진화한다. 오늘도 아이들은 '더 간지(일본어에서 유래한 말로 '멋있다'는 뜻의 신세대용어)나게, 더 타이트하게, 더 늘씬하게, 더 짧게!'를 표방하며 교복에 색다른 영혼을 부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매일 아침, 교문 앞에 서 있는 학생주임이나 선배의 무서운 시선 때문에 다소 위험성이 있기는 하지만, 개성표현을 위해선 그깟 두려움은 잊은 지 오래다. 

큰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초등학교 때까지 멋도 안 부리고 극히 평범했던 아들이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애당초 내가 아들에게 지나친 기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약하고 여리기만 했던 아들 녀석은 어느새 날라리(?) 교복개조 부대의 대열에 함께 서 있었다. 키도 훌쩍 크고 몸매도 좋아져 늠름하게 변한 모습과 대견함은 어디 가고, 집 앞 세탁소에 들락날락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스키니 스타일?... 내 눈에는 영락없는 '항아리 바지'

녀석이 관망세를 이어가던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추세에 맞춰 교복 바지통을 시험 삼아 6인치로 줄여 봤단다. 학교에서는 교복 변형을 금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워낙 일반화된데다 특별히 선배들의 눈치도 볼 일이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급기야, 2학기가 되자 새로 맞춘 후 아직 입어보지도 않은 동복 바지에 '스키니 진' 패션을 시도해보기로 한 것이다. 녀석은 곧바로 집 앞 수선전문점으로 달려간다. 

1학기가 끝나갈 무렵 교복바지통을 6인치로 줄인 아들. 그나마 이 때는 바지 통이 어느정도 여유가 있어 봐줄 만 했다.
 1학기가 끝나갈 무렵 교복바지통을 6인치로 줄인 아들. 그나마 이 때는 바지 통이 어느정도 여유가 있어 봐줄 만 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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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바지 폭은 5.7통으로 줄여주시고요, 허리부터 발목까지 조금씩 폭이 좁아지게 하여 주세요. 5천 원이면 되죠? 이따 올게요!"

어, 이건 뭐지? 며칠 전 아들 공부방에 걸린 저 옷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저 바지가 정녕 글로벌 스탠더드란 말인가? '스키니 스타일'이라고 주장하는 저 바지. 내가 볼 땐 완전 항아리 바지가 따로 없다.

2학기가 되자, 얼마 전부터 수선 전문점은 때아닌 수요를 만났다. 어차피 획일적으로 교복을 입어야 한다면 교복개조는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가장 큰 수단이다. 내 아들이 문제일까, 트렌드를 이해 못 하는 내가 구닥다리 아빠일까?

집 앞 세탁소에 들렀다가 아주머니에게 이것저것 여쭤보니, 역시 대답하기가 참 애매하다며 겸연쩍게 웃는다.

"자식들 같아서 충고도 해보지만, 자기네들이 저렇게 좋다고 하는 걸…. 내가 뭐라 한다 해도 듣기나 하겠어요? 애들 말로는 교복을 입을 때, 가장 중요한 게 바로 '간지빨'이라는데…. 커가는 아이들에겐 멋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핏'인데 말이에요.

몸무게가 50kg가 넘어가면 6인치 이상은 해야 하는데, 자꾸 줄이니 터질 것 같고 불편하지 않겠어요? 또, 너무 달라붙으니까 넘어지면 바지도 잘 상하지. 5.5 이하로 줄이면 통이 늘어나기 전까지는 체육복 갈아입을 때 발이 걸려서 입기도 어렵지…. 이럴 땐 비닐봉지를 발에 씌우고 입거나 지퍼를 다는 애들도 있는데, 이 수준이면 오히려 측은하죠.

그런데도 아이들은 무작정 쫄쫄이 수준을 원하는데 어떡하겠어요? 혹시 몰라서 수선할 때 될 수 있는 한, 줄인 부분을 잘라내지 않고 단을 접어주는데. 다시 원위치해 달라는 아이들은 거의 없어요. 아무리 추세라지만, 이런 고생 하면서 왜 무리하게 수선을 맡기는지…."

'바지통에 목숨 거는 아들아, 줄여도 좀 적당히 부탁한다!'

그러고 보니 이번 교복은 지난번에 샀던 공동구매제품이 싼 티가 난다는 아이의 말에 혹해서 가장 비싸다는 S사 제품으로 샀지 않았는가? 한번 사면 3년을 입어야 하는데 몇십만 원 선에 달하는 고가 교복을 내년쯤 다시 사야 할 일은 불 보듯 뻔하다.

아이들의 급격한 성장으로 작아졌다면 몰라도 체격과 반비례한 무리한 수선으로 이리저리 줄이다 또 다시 사야 할 것을 생각하니, 부담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세상에 더 예쁘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어른도 마찬가지라지만, 이건 정말 아니지 싶다.

이미 쫄바지가 되어버린 바지를 앞에 놓고 "요즘 누구나 교복개조를 한다는 데, 줄이는 아이들이 오히려 더 획일적이지 않겠어? 튀지 않고 정상적으로 입고 다니는 게 오히려 중심이 서 있는 개성표현 아닐까, 단정한 교복이 오히려 더 멋져 보일 것 같은데?"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설득력도 없을 것 같아 그러지도 못하겠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교복개조, 획일화에 맞선 아이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일까? 아니면 개성도 자기표현도 아닌 외양의 획일화인가? 아, 중학생 아들의 폼생폼사 교복패션 끝은 어디이며, 이 싸움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들아! 무엇 때문에 바지통에 목숨 거는지 모르겠다만, 줄여도 좀 적당히 줄여라. 보기 민망해….


태그:#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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