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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온 국민이 피부로 느낄 만큼 명확한데도 이에 대한 논의는 생산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전경련을 앞세운 재계는 헌법을 들먹이며 재벌개혁이 위헌이라고 반박한다. 어떤 이들은 재벌개혁을 무조건 재벌해체로 몰아가기도 한다. 이제 재벌개혁의 구체적인 방안을 두고 토론해야 한다. 무엇을 목표로 하여,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나 규제할 것인지에 대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 새사연이 먼저 재벌개혁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 기자말

지난 달 30일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특별위원장이 "순환출자, 출자총액제(출총제) 등은 경제민주화의 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가장 큰 핵심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새누리당과 대선 후보 박근혜 캠프는 순환출자의 경우 신규 출자에만 적용하며, 출총제는 부활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특별위원장이 지난 8월 29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특별위원장이 지난 8월 29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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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의 기본, 출총제와 순환출자금지

김종인 위원장의 말은 맞다. 지금 한국 경제에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전방위에 걸쳐 매우 심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사전적 제도인 출총제나 순환출자금지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이다. 사전적 제도란,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재벌이 앞으로 독점력을 강화하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이미 일어난 경제력 집중 상태에 대해서는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음을 뜻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비대해진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사후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계열분리/기업분할 명령제와 같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한 구조적으로 재벌을 인정함과 동시에 적절히 규제할 수 있는 기업집단법 제정이 가장 중요한 대책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출총제와 순환출자금지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재벌 총수들이 소수의 지분을 가지고 계열사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계열사의 자금을 끌어다가 새로운 계열사를 늘리는 한국의 기업 체계에서는 특히나 필요한 규제들이다.

출총제는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여 보유할 수 있는 총액을 제한하는 것이다. 출자 총액에 제한을 두지 않을 경우 자본이 풍부한 재벌은 계열사를 손쉽게 늘릴 수 있게 된다. 1986년 처음 도입되었으며 상위 30대 기업집단에 대해 순자산의 40%로 출자 총액을 제한했다. 이후 1994년에는 25%로 강화되었다가 1998년 외환위기로 인한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폐지되었다. 이후 2001년에 다시 도입되어 자산규모 5조원 이상 기업집단에게 순자산의 25%로 제한을 두었다.

2003년 참여정부에서는 지배구조가 우수하거나 미래성장동력에 투자하는 경우 출총제에서 제외시켜주는 방식을 통해 출총제를 완화시켰다.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이던 대상을 6조원 이상으로 높였다. 2007년에는 제한 비율을 25%에서 40%로 완화시켰다. 그 결과 2008년에는 출총제 해당 기업집단 543개 중 대부분인 512개가 출총제를 면제 받았다. 거의 실효성이 없는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2009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출총제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MB정부 4년간 삼성 계열사 27개 증가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삼성의 경우 27개의 계열사가 늘어나서, 올해 초 기준으로 총 80개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의료 장비, 소프트웨어 부문뿐 아니라, 재벌의 빵집 장악으로 문제가 되었던 보나비나 콜롬보코리아 같은 계열사들도 이 기간 동안 생겼다.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늘어난 삼성그룹의 계열사는 총 27개이다.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늘어난 삼성그룹의 계열사는 총 27개이다.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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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수많은 삼성의 계열사 중에서 총수 일가의 지분이 단 1주라도 있는 회사는 10개에 불과하다. 결국 계열사의 자금을 이용해서 또 다른 계열사를 늘렸다는 것인데, 이는 출총제가 강력하게 시행되고 있었다면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출총제 부활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수단이다. 또한 단순히 2009년 이명박 정부에 의해 출총제가 폐지되기 전 수준으로 부활해서는 안된다. 앞서 설명했듯이 그 때는 이미 참여정부에서 출총제를 대폭 완화시켜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 이전인 2002년 수준의 출총제로 부활해야 실효성이 있다. 자산규모 5조원 이상 기업집단의 전 계열사에 대해 순자산의 25% 내로 출자를 제한하는 방향이다. 최근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상위 30대 기업집단에 대해 순자산의 25% 내로 출자를 제한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꼬리를 무는 순환 출자로 총수 일가의 계열사 지배 가능

한편 계열사를 늘린 후 재벌은 순환출자를 이용해서 계열사를 지배한다. 순환출자는 계열사 A, B, C가의 출자 관계가 A→ B→ C→ A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태로 이루어진 경우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삼성과 현대차 그룹이 순환출자로 연결되어 있으며, 총수 일가가 매우 적은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핵심 고리이다. 또한 이 경우 만약 한 계열사가 부도가 날 경우 순환출자의 고리를 타고 다른 계열사까지 부실해질 수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공정위가 지난 7월 발표한 63개 자산규모 5조원 이상 기업집단들의 소유지분도는 이들의 복잡한 순환출자 관계를 보여준다. A4 종이 한 장에 그려넣기 어려울 정도로 빽빽한 화살표들이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2012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것이다. 원본 자료는 대규모 기업집단 공개시스템(http://groupopni.ftc.go.kr)에서 볼 수 있다.
▲ 삼성그룹 계열사 지분도 2012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것이다. 원본 자료는 대규모 기업집단 공개시스템(http://groupopni.ftc.go.kr)에서 볼 수 있다.

☞ 삼성그룹 계열사 지분도 크게 보기

현재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일가의 보유 지분율은 0.95%,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 일가의 보유 지분율은 3.68%, SK그룹 최태원 회장 일가의 보유 지분율은 0.6%, LG그룹 구본무 회장 일가의 보유 지분율은 3.91%이지만 저마다 그룹 내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내부 지분율인데, 상위 10대 기업집단의 내부 지분율은 55.7%로 지난해에 비해 2.2%포인트 높아졌다. 가장 많이 증가한 곳은 역시 삼성으로 16.6%포인트 늘어났다. 내부지분율이 늘어났다는 것은 총수 일가의 입김이 강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호출자는 안되지만, 순환출자는 괜찮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감소한 가운데 전체 내부 지분율이 증가한 것은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 간 출자를 이용해 집단 전체를 지배하는 현상이 심화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부분 수평방사형 출자 등 다양한 형태가 존속되고 일부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순환출자가 문제가 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현재 우리 법에서는 상호출자(양 기업 간에 서로 자본을 교환하는 식의 출자)의 경우는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의 기업집단에 대해서 금지하고 있으나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법은 없다. 하지만 순환출자는 결국 상호출자의 변형과 다를 바 없다. 또한 재벌의 경제력 집중, 그 중에서도 재벌 총수 일가의 경제력 집중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순환출자에 대한 금지가 필요하다.

어떤가? 여전히 김종인 위원장의 말대로 출총제와 순환출자금지는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실시해야 할 조치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태그:#재벌개혁, #출총제, #순환출자, #상호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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