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공연 포스터
 공연 포스터
ⓒ 인터파크 플레이디비

관련사진보기


'친일'만큼 우리 사회에 예민한 문제는 없다. 최근 일본의 태도만 봐도 그렇다. 역사 속으로 그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다 보면,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게 바로 '친일'이라는 두 글자다. 친일이라는 말 그 자체는 갑론을박의 여지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친일청산이 제대로 안 됐기 때문에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민족정기가 바로 서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한 개인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동정론을 조심스레 제기하는 것도 사실이다.

국립극단이 야심차게 준비한 '삼국유사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 <꿈>(최용훈 연출, 김명화 작)은 우리 사회의 '금기'와 같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린다. 그렇게 내세운 이들이 바로 춘원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이다. '독립선언문'을 집필할 정도로 근대의 대표적 지식인이었지만, 일본 유학생들 앞에서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라"며 학병 지원을 강요한 사실은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그렇다고 연극이 여타 작품처럼 이들에게 엄격한 역사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고뇌와 고통에 휩싸인 '개인의 감정'에 더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과거에 관한 후회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항변을 반복하는 모습은 이들의 친일행적을 더욱 돌아보게 한다.

연극은 이광수(강신일)가 최남선(남명렬)의 권유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 '조신의 꿈'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면서 시작된다. 한때 존경받는 문인이었다가 변절자가 되어 버린 춘원은 '조신'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낙산사에 있던 조신 스님이 태수와 딸 월례와 사랑에 빠져 '계율'을 깨뜨리는 모습에서 상해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한국 최초의 여의사 허영숙(김수진)을 만나 조선행을 택하는 자신을 떠올린다.

이 둘의 삶은 '욕망'을 이겨내지 못해 대가를 치르는 모습까지도 묘하게 오버랩된다. 도망자로 쫓기게 된 조신은 그 과정에서 자식을 잃고, 월례와도 헤어지고 만다. 춘원은 천재적 문학성을 친일에 사용한 대가로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 관객들은 같은 배우가 늙은 월례와 허영숙을 연기하는 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조신과 춘원의 비슷한 삶을 의식하며, 그 의미를 따라가게 된다.

이광수 역의 강신일 배우와 최남선 역의 남명렬 배우(오른쪽)가 열연을 하고 있다.
 이광수 역의 강신일 배우와 최남선 역의 남명렬 배우(오른쪽)가 열연을 하고 있다.
ⓒ 국립극단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조신지몽'이라는 설화의 제목에서 보듯, 조신의 끔찍한 현실은 결국 '꿈'으로 끝나지만, 춘원에게 이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꿈속에서 자신의 변절을 비난하는 젊은이를 만나 자신의 처지에 대해 항변하지만 깨어나도 달라지는 건 없다.

"돌아가신 부모는 다시 못 살리더라도 유린당한 조국만은 껴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하고 싶었지. 망국의 청년으로 현해탄을 건너가 먼저 개화의 물결을 쐬었으니 조국의 부끄럽지 않은 선각자가 되고 싶었지. 그런데 어쩌다 일본 제국의 앞잡이가 되어 있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데, 어째서 기다리는 것은 반민족주의자, 친일분자 이광수인가."

오히려 자신을 향해 싸늘하게 "만해 한용운 선생은 총독부 방향이 싫다고 집마저 북향으로 돌려버리셨지"라고 쏘아대던 젊은이가 자신인 걸 알고 더욱 고통스러워한다. 친일행적은 깨고 싶은 '꿈'이 아니라 책임지고 짊어지고 가야 할 '현실'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결국 소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광수는 부인 허영숙에게 이렇게 말한다.

"수치스러운 내 옆에서 나와 함께 가주겠소?"

연극은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얘기를 지루하게 끌고 가지 않는다. 여기에는 이광수 역을 맡은 강신일, 최남선 역의 남명렬과 같은 배우들이 가진 내공이 만만치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극에 양념처럼 들어있는 원효와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의 에피소드도 극의 흡입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그렇게 2시간여의 러닝 타임동안 '조신의 꿈'을 따라가다 보면, "현실에서 한 발 빠져나와 신화의 시선으로 조망하면, 진흙 밭에서 이전투구 하는 우리의 모습을 담담하게 혹은 착잡한 연민으로 좀 다르게 조망할 수 있다"는 작가의 의도와 만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 연극 꿈 = 오는 16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평일 20시 / 토,일 15시 / 월요일 공연없음. 일반 3만원 / 청소년(24세까지) 2만원 / 소년소녀(19세까지) 1만원. 공연문의 1688-5966



태그:#연극 꿈, #이광수, #강신일, #국립극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