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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10여 년간 세계 여러 곳을 다녀 보았다. 인권법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그 공부의 전제로서 인간을 이해하고 싶었다. 도대체 인간은 왜 문화와 문명에 따라 달리 살아 왔는가, 그럼에도 무엇인가 유사성은 발견되지 않는가 등등의 의문을 푸는 방법으로 여행만한 것이 없었다.

이런 의문을 품고 여행을 한지라 편한 여행은 될 수 없었다. 사전에 공부를 해야 했고, 돌아 온 다음에는 무엇인가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여행은 고역이 되리라. 하지만 나는 이런 여행을 행복 중의 행복으로 여겨왔다. 앞으로 힘이 닿는 한 이런 여행은 계속되리라 믿는다.

앞으로 연재할 글들은 나의 문명기행을 정리한 것이다. 거창하게 세계문명기행기라 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저 박아무개 교수가 직접 다녀 본 곳을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정도로 이해해 주면 좋겠다. 관심 있는 독자의 일독을 기대한다. - 기자 말

나일문명 비밀을 푸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는 '상형문자'

나일문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 중 하나는 바로 상형문자다. 나일문명은 어느 문명보다 많은 문자를 후세에 남겼다. 이것은 문명사적으로 기적과 같은 것이었다. 물론 중국문명도 3천 년 전, 아니 그 이전의 갑골문을 남겼지만 나일문명은 그 이전,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전의 일을 문자로 남겼다. 이것은 아마도 건조한 기후와 문자를 남긴 소재가 나무나 종이가 아니라 돌이라는 특징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나일문명은 기원전 3천 년부터 남긴 상형문자로 인해 가장 정확한 역사를 알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문명이 되었다.

원래 상형문자란 그리스인들이 'hieroglyphs'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어로 'hiero'는 '신성한'이라는 의미이고, 'glyphe'는 '새기다'라는 의미이니, 상형문자의 의미는 '신성한 문자'라는 뜻이다.

이 문자는 기원전 3천 년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약 3천 년 동안 사용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상형문자는 로마가 이집트를 지배하면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였는데 최후의 기록은 기원후 394년 8월 24일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아스완의 필레 신전에서 발견되었다.

이때는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되면서 기독교가 국교가 되어 가는 때이다. 따라서 기독교가 이집트에 들어오면서 고대의 이집트 신전이 하나 둘 문을 닫아 가면서 상형문자도 사라지게 되었다. 이집트에 상형문자가 사라진 것은 기독교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상형문자는 기원후 5세기 이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수많은 문자가 이집트의 유적지에서 발견되었지만, 그것은 단지 그림에 불과하였다. 그러는 시간이 어언 1500년이 흘렀고, 이 기간에 어느 누구도 상형문자를 해독한 이가 없었다. 나일문명은 그저 베일에 쌓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상형문자가 세상의 사람들에게 새롭게 나타난 것은 공교롭게도 나폴레옹의 업적이다. 나폴레옹은 1798년 이집트 원정에 나서면서 수백 명의 고고학자를 대동한다. 아마도 젊어서부터 들어 온 이집트 고대문명에 관한 관심이 발동한 모양이었다.

로제타 스톤
 로제타 스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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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정에서 프랑스 한 장교가 엘-라시드의 포트 줄리앙이라는 곳에서 화강석 석판을 발견한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로제타 스톤이다. (현재 이것은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있다. 나폴레옹이 넬슨 제독에 패해 이 보물은 영국의 전리품이 된 것이다)

이 석판은 높이 1.1미터, 폭 72센티미터의 크기인데, 이곳에는 14줄의 상형문자(신관문자, 이는 정통 상형문자로 종교적인 목적에 주로 사용하였음)와 32줄의 민용문자(상형문자를 좀 더 간편하게 만든 것으로 주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였음), 그리고 54줄의 그리스어가 새겨져 있었다. 사람들은 발견 당시 드디어 난공불락의 상형문자가 해독되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그리스어와 상형문자를 대조하면 금방 상형문자의 문자체계를 이해할 수 있고 그로 인해 해독의 단서를 잡을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천재적 고고학자 샹폴리옹
 천재적 고고학자 샹폴리옹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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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못했다. 이것을 제대로 해독한 것은 그 뒤 20여 년이 흐른 뒤였다. 천재적 고고학자 샹폴리옹이 나타나 이 문제의 해답을 얻었던 것이다. 샹폴리옹은 1808년 그의 나이 18세에 로제타 스톤의 탁본을 입수한 뒤 이집트 상형문자의 해독에 들어갔다.

고대 그리스어에 능통했던 샹폴리옹은 파라오의 이름을 새긴 것으로 보이는 타원형 부분(카르투슈)과 그리스어를 비교했다. 그것은 다른 학자에 의해 그리스어 프톨레마이오스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 부분이었다.

샹폴리옹은 파라오의 이름을 알파벳처럼 소리로 읽어야 하며, 각각의 상형문자가 독립된 글자를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카르투슈에서 이집트 상형문자의 알파벳 일부를 작성하였다. 샹폴리옹은 다른 연구를 통해 좀 더 많은 알파벳 기호를 알아냈다. 마침내 그는 이집트 상형문자가 의미인 동시에 소리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이에 따른 상형문자의 문법체계를 정리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그것이 1822년의 일이다.

샹폴리옹의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지난 1500년간 잊힌 글자, 이집트 상형문자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나일강가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상형문자가 낱낱이 해독되었고, 이로 인해 나일문명의 역사는 확연하게 인식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오랜 세월 닫혀 있었던 고대 나일문명의 관문이 열린 것이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흥미 있었던 것은 상당수의 이집트인이 상형문자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사실이었다. 유적지에서 만난 이집트인 현지 가이드는 신전의 이곳 저곳에 새겨진 상형문자를 읽어가면서 설명하고 있었다. 내가 3일 동안 탔던 나일 크루즈의 선상 선물가게 주인은 상형문자를 기념품에 써 주면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우리 집 아이들에게 선물로 은목걸이를 샀는데, 그 주인은 목걸이에 아이들 이름을 새겨 주었다.

사실 이 정도의 상형문자 쓰기 실력은 조금만 공부하면 가능하다. 여행에서 돌아와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집트 상형문자에 관한 사이트가 수없이 발견된다. 거기에서 샹폴레옹이 만든 상형문자와 알파벳 비교표를 다운받았다. 이것만 있으면 얼마든지 소리나는 대로 상형문자를 쓸 수 있다. 아래 표를 보면 그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게 될 것이다.

상형문자를 알파벳과 비교한 문자표
 상형문자를 알파벳과 비교한 문자표

본격적인 나일투어를 떠나기에 앞서

자, 이제 나일문명의 기초를 알아보았으니 나와 함께 본격적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내가 열흘 동안 본 나일문명의 정수를 내가 찍은 사진과 함께 감상해 보자. 그리고 볼품없지만 내 설명을 들어 보시라. 내가 간 곳 전부는 소개하지 않겠다. 모두 소개할 능력도, 그럴 필요도 없다. 내가 받은 감동을 그대로 전하고 싶지만 그것도 불가능하다. 직접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장면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말 한 마디만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세계문명기행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일문명 기행은 가급적 뒤로 미루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것을 보고 나면 다른 문명이 너무 시시하기 때문이다. 나일문명은 정말로 압도적이다. 인류가 이런 문명을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전에, 아니 그 이전에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 경이적이다.


태그:#나일문명기행, #나폴레옹, #로데타 스톤, #상형문자, #샹폴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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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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