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임된 한화 한대화 감독

해임된 한화 한대화 감독 ⓒ 연합뉴스


'야왕'의 꿈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한대화(52) 감독이 전격 경질됐다.

한대화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를 지내던 지난 2009년 9월 김인식 전 감독의 후임으로 한화의 8대 사령탑에 내정돼 3년 계약에 서명을 했으나 계속된 성적부진으로 얼마 남지 않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퇴진하게 됐다. 한화 구단은 28일 한 감독의 경질을 공식 발표하고 당분간 한용덕 수석코치 대행체제로 남은 시즌을 치를 예정이다.

한 감독의 낙마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일각에서는 한 감독이 한화에 부임한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데다 올 시즌도 최하위에 머물러 재계약 자체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올스타전 휴식기를 전후로 조기 경질설이 수차례 수면 위에 떠오른 상황에서 최근 한화가 4연패 늪에 빠지며(39승 2무 64패) 사실상 탈꼴찌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구단 측이 분위기 전환을 위해 중도 하차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한 감독의 실패는 팬들에게 여러 가지 감정을 교차하게 만든다. 대전 출신인 한 감독은 한화 이글스 역사상 연고지 출신 인사가 사령탑으로 선임된 첫 사례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대화 감독은 현역 시절 화려한 선수 경력에도 고향 팀에서는 한 번도 뛰어보지 못했다. 대전고와 동국대를 졸업한 한 감독은 프로에서는 1983년 OB를 시작으로 해태(1986년), LG(1994년), 쌍방울(1997년)을 거치며 프로야구 정상급 타자로 군림했고, 지도자로 변신한 이후에는 삼성에서 선동열 감독과 호흡을 맞춰 수석 코치로 활약했으나 그동안 고향 팀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마침내 감독이 돼 대전에서 고향팀 재건을 맡은 한 감독은 남다른 감회와 의욕을 보인 바 있다.

시작부터 불운을 맞았던 한대화 감독

하지만 한 감독은 시작부터 불운했다. 한화는 이미 한 감독이 팀을 맡기 전인 2009시즌 꼴찌로 추락하며 암흑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한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축 선수들이 하나둘씩 은퇴하며 세대교체 실패와 선수 노쇠화로 이미 전력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심지어 한 감독이 부임하자마자 야수진의 핵이던 김태균과 이범호가 일본으로 한꺼번에 진출했다. 한 감독은 금의환향의 기쁨을 누릴 틈도 없이 감독 인생의 시작과 동시에 '거덜 난 곳간'을 물려받아 머리를 싸매야 했다.

한화는 한 감독 부임 첫해인 2010시즌 49승 2무 82패에 그치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2년 연속 꼴찌에 머물렀다. 하지만 한 감독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착실하게 리빌딩을 시도하며 새로운 팀의 틀을 잡아나갔다.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마운드와 야수진에 젊은 선수들을 꾸준히 주전으로 기용했고, 타 구단과의 적극적인 트레이드를 통해 베테랑 선수들도 보강했다. 김태완·최진행·송광민·김혁민 등이 '한대화 사단'을 통해 한화의 주전급으로 부상했고, 장성호·이대수·정원석 등 타 팀에서 버림받은 선수들도 한화에서 재기의 기회를 얻으며 새롭게 부상했다. 사실상 팀 내 유일한 스타였던 에이스 류현진은 2010년 커리어 최고 시즌을 보낸 데 이어 2011시즌에도 두 자리 수 승리(6년 연속)을 이어가며 고달픈 한화에 필승 보증 수표 역할을 꾸준히 해냈다.

2011시즌은 한화 리빌딩의 가능성을 확인한 시즌으로 기억된다. 한화는 이해 59승 2무 72패를 기록하며 이전 시즌에 비해 10승을 더 달성했고, 순위도 LG와 함께 공동 6위로 상승하며 3년 만에 꼴찌 탈출에 성공했다. 특히 한화는 약한 전력에도 박빙의 승부와 연장전에서 유난히 강한 모습을 보이며 2011시즌 최다 끝내기 승리(10회)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전력의 차이를 떠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끈한 근성과 투지는 한화 야구의 희망을 되살린 원동력이었다.

한 감독에게 '야왕'이란 별명이 붙으며 신드롬이 일어난 것도 이때였다. 처음에는 비아냥의 의미가 담겨 있었지만, 한화가 시즌 중반 끈끈한 야구로 호평을 얻으며 성적도 향상되자 한 감독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6위팀 감독에게 '야왕'이라는 찬사는 낯설지만, 역으로 보면 그만큼 한화가 얼마나 스타와 승리에 굶주렸는지를 알 수 있다. 직설적이고 톡톡 튀는 한 감독의 어록과 명장면을 모은 패러디물도 봇물을 이뤘다. 무엇보다 약한 팀 전력 속에서도 근성 있는 야구를 보여준 데 대한 찬사와 앞으로의 리빌딩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를 바라는 팬들의 기대가 담긴 신드롬이었다.

김태균·박찬호의 등장에 팬들의 기대는 하늘을 찔렀지만...

 한화 이글스 박찬호 선수

한화 이글스 박찬호 선수 ⓒ 연합뉴스


2012시즌을 앞두고 한화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여느 때보다 높았다. 지난 2년간 꾸준한 리빌딩으로 구축된 팀 전력에 일본에서 돌아온 4번 타자 김태균·원조 메이저리거 박찬호·FA로 영입된 송신영 등이 가세하며 한대화 감독 부임이후 모처럼 최고의 전력을 구축했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4강 이상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장밋빛 전망이 돌았다.

하지만 뚜껑이 열린 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화는 시즌 초반부터 투타에서 엇박자를 드러내며 일찌감치 최하위로 추락했다. 지난 4월 이후 단 한 번도 꼴찌를 벗어나지 못했을 만큼 한화의 공수는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에 빠졌다. 지난 시즌 박빙의 승부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던 한화는 올 시즌 8개 구단 최다 역전패라는 불명예를 안으며 '허약한 팀'으로 추락했다. 한 감독이 공들인 리빌딩은 3년 만에 결국 물거품이 된 셈이다.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서 한 감독도 쫓기는 모습을 보였다. 개막전에서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가 퇴장을 당하기도 했는데 이는 한화가 마주하게 될 험난한 앞길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지난 2년간 리빌딩이라는 명분 아래 비교적 성적의 부담감에서 자유로웠던 것과는 달리, 올 시즌 한 감독은 잦은 타순 변경과 무리한 선수 기용으로 압박에 쫓기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한화의 엉성한 수비와 주루 플레이가 자주 도마위에 오르고 한대화 감독의 용병술이 실패로 돌아갈 때마다 비난 여론은 점차 높아졌다.

사실 올 시즌 한화의 키플레이어로 꼽힌 주축 선수들은 나름 제 몫을 다했다. 김태균은 4할대에 육박하는 타율을 기록했고, 마운드에서는 박찬호가 불혹의 나이에 팀의 2선발을 맡으며 역투했다. 에이스 류현진도 승수를 제외하면 이닝과 자책점, 탈삼진 등에서 팀을 리드하며 무려 16회의 퀄리티스타트로 마운드를 지켰다. 하지만 이들의 활약이 정작 팀 성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한화의 팀 전력 자체가 근본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화의 리빌딩은 모래성 위에 지어진 집처럼 아직 기반이 취약했다. 한 감독이 취임한 지난 3년간 젊은 선수들 중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 잡은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최진행은 올 시즌 초반 극도의 슬럼프에 허덕였고, 김혁민-안승민-유창식-양훈 등은 하나같이 기복이 심했다. 기껏 주전급으로 성장했던 김태완과 송광민은 군 복무라는 또 다른 암초에 부딪혔다. 게다가 어느새 조롱거리로 전락한 한화의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 능력은 한 감독 임기 내내 골칫거리로 작용했다.

'꼴찌 한화'라는 불명예... 원인은 따로 있다

이쯤 되면 한 감독의 책임을 논하기에 앞서 한화 구단 측이 그간 근본적으로 팀 전력을 재건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한 감독은 임기 내내 구단으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한화는 김태균을 잡기 위해 프로야구 역대 최고 연봉(15억 원)을 배팅했지만, 한두 명의 특급 스타에 국한된 이벤트성에 불과할 뿐, 구단의 체질 개선을 위한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투자는 부족했다는 평이다.

팀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외면한 채 4강이나 우승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이 한화의 암흑기를 장기화시킨 진짜 원인이다. 앞으로 한 감독의 후임이 누가 되든 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한대화 감독은 한화 사령탑으로 재임한 세 시즌 간 371경기를 지휘하며 147승 6무 218패(.402)라는 초라한 승률만을 남긴 채 고향 팀과의 작별을 고하게 됐다. 현역 시절 무수한 위기에서 팬들을 열광시켰던 '해결사'로서의 위용은 재연되지 못했다. 한화의 재건과 야왕 신드롬의 부활을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못내 아쉬운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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