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2 팔도 프로야구 두산과 삼성의 경기 삼성 선발 배영수가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1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2 팔도 프로야구 두산과 삼성의 경기 삼성 선발 배영수가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 연합뉴스


삼성 배영수가 한국 프로야구 역대 23번째로 개인 통산 100승 투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배영수는 지난 26일 잠실 LG전에서 7이닝 동안 볼넷 없이 4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 투수가 됐다(삼성 11-2 LG).

2000년 데뷔한 배영수가 100승 고지에 오르기까지는 13시즌이 걸렸다. 100승과 동시에 올 시즌 10승 고지와 통산 1000탈삼진도 돌파했다.  배영수가 두 자리 수 승리를 거둔 것은 지난 2005년 이후 무려 7년 만이다.

프로 투수들에게 있어 통산 세 자리 수 승리란 매우 상징적인 의미로 작용한다. 보통 한 시즌에 10승만 거둬도 준수한 선발 투수로 평가받는 요즘 시대에, 무려 10년 동안 매 시즌 두 자리 수 승리를 기록해야 겨우 채울 수 있는 기록이 바로 '통산 100승'이다. 다른 개인 기록과 달리, 투수의 승리는 혼자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타선과 불펜의 지원도 있어야 하고, 설사 잘나가는 선수라고 해도 10년 가까이 굴곡 없이 전성기를 유지하며 꾸준한 성적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 새로운 별들이 뜨고 지는 치열한 경쟁의 세계 속에서 세 자리 수 승리란 오랜 세월을 꾸준히 버텨온 이들에게만 허용되는 영광의 훈장이다.

그나마 대기록을 달성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선수들은 다행이지만, 오히려 한 시대를 풍미하는 기량을 뽐내고도 아쉽게 100승 고지를 넘지 못한 채 유니폼을 벗은 선수들도 의외로 많다. 성준(삼성·97승), 염종석(롯데·93승), 김정수(해태·92승), 주형광(롯데·87승) 등 정상급 투수들이 바로 그들이다.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100승 달성'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100승 투수는 김시진 현 넥센 감독(1987년 달성)이다. 김시진 감독은 데뷔 5년 차였던 1987년 10월 3일 OB(현 두산)전에서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100승 투수에 이름을 올렸다. 역대 최소 경기(186경기)·최단기간 100승 달성도 김시진의 몫이다.

한국 프로야구 통산 최다승(210승)에 빛나는 송진우는 유일하게 100승을 넘어 200승을 돌파한 선수로 역사에 남아 있다. 역시 은퇴한 정민철이 161승으로 뒤를 잇고 있으며, 현역 최다승은 김수경(넥센·115승)으로 송진우와는 무려 95승이나 차이가 난다.

정민철은 역대 최연소 100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99년 6월 30일 해태전에서 프로야구 역대 최연소(27세 3개월 2일)이자 통산 11번째로 100승 고지에 이름을 올렸다. 김시진은 선동열-김수경이 100승을 달성할 때 나이와 연차는 같았지만, 날짜에서 근소하게 앞섰다.

오늘날 100승 투수의 희소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2000년대 마구잡이 기용과 혹사로 단명하는 투수들은 줄어든 대신, 체계화된 투수 분업화와 관리로 인해 수준급 투수라도 단기간에 많은 승수를 몰아 따내기는 그만큼 어려워졌다. 타자들의 기술이 투수들보다 한발 앞서 발전하고, 과거보다 불펜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현대 야구에서 선발승을 올리기가 예전보다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장수하는 대형투수들이 줄어들고 있는 현상과 궤를 같이한다.

100승 투수들의 기록에는 파란만장한 야구 인생의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경우가 많다. 가장 극적으로 100승 고지에 오른 인물은 한화 이상군이다. 이상군은 데뷔 후 10년(1986~1995년) 동안 94승을 거두고 1996년 현역 은퇴를 선언했으나, 2년 만에 다시 그라운드에 플레잉 코치로 복귀하며 세 시즌간 6승을 추가했다, 마지막 2000시즌에는 10경기에 등판해 단 1승만(4월 30일 잠실 LG전 선발승)을 거뒀는데, 공교롭게도 프로 마지막 승리를 대망의 100승으로 장식하는 극적인 순간을 연출했다. 당시 만 38세였던 이상군은 역대 최고령 100승 투수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100승을 달성하기까지 가장 오랜 기간이 걸린 투수는 한화·롯데에서 활약했던 이상목이다. 1990년에 데뷔한 이상목은 2008년이 돼서야 100승 고지에 도달했는데, 무려 19시즌 만에 이뤄낸 업적이었다.

배영수, '라이온즈 넘버 원 투수'될 수 있을까

가장 최근에 100승 클럽에 가입한 이대진과 박명환·배영수 등은 하나같이 데뷔 초기 화려한 전성기를 거친 뒤 부상과 슬럼프로 한동안 부침의 세월을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역대 21번째 100승 투수인 이대진은 1993년 해태에 입단해 1998년까지 여섯 시즌 만에 무려 76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이후 계속된 부상으로 인한 수술과 재활, 타자 전향 등의 우여곡절을 거치며 100승을 채우기까지는 11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걸렸다. 이대진은 2009년 9월 11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개인통산 17시즌 만에 뒤늦게 100승 고지를 밟았다. 이대진이 100승에 도달하기까지는 무려 3전 4기를 거치는 우여곡절이 있었던 데다 공교롭게도 이 승리는 이대진이 타이거즈에서 거둔 마지막 승리가 되기도 했다.

22번째 100승 투수인 박명환의 대기록 달성도 극적이었다. 1996년 두산에서 데뷔한 이래 리그를 대표하는 우완 에이스로 군림했던 박명환은 2007년 LG 입단 이후 거듭된 부상으로 무너지며 잊힌 투수로 전락했다. 박명환은 15시즌 298경기 만인 지난 2010년 4월 24일 잠실 한화전에서 마침내 통산 100승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이대진과 박명환은 현재 LG 유니폼을 입고 있다.

배영수의 여정도 선배들과 비슷하다. 2000년 데뷔 후 여섯 시즌 동안 60승을 기록하며 삼성의 대표 우완 에이스로 활약했던 배영수지만, 2005년을 끝으로 최근 여섯 시즌 동안 39승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그는 팔꿈치 수술과 재활을 거치며 전성기의 구속을 잃어버렸고, 2009년에는 1승 12패를 거둬 당시 시즌 최저 승률과 최다패의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배영수는 올 시즌 완벽하게 부활했다. 올해 삼성의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키며 10승(전체 6위) 자책점 3.11(5위)로 리그 정상급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이대진이나 박명환이 100승 이후 더 이상 승수를 추가하지 못하며 잊힌 것과 달리 올 시즌 배영수의 활약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또한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이기도 한 그는 오직 삼성한 팀에서만 100승을 거뒀다.

역대 삼성 투수 최다승 기록은 첫 100승 투수였던 김시진이 기록한 111승이다. 김시진은 1983년부터 1988년까지 여섯 시즌 간 삼성에서 활약했고, 1989년 롯데로 트레이드 돼 세 시즌 간 13승을 추가하며 총 124승을 달성했다. 배영수가 아직 31세의 젊은 나이임을 감안, 현재의 컨디션을 유지한다고 가정했을 때, 1~2년 내에 김시진의 기록을 뛰어넘는 것도 점쳐볼 수 있다. 말 그대로 '라이온즈 역대 넘버 원 투수'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이 아니란 이야기다.

배영수에 이어 한국 프로야구 통산 24번째 100승 기록에 가장 근접한 투수는 한화 류현진이다. 통산 94승을 기록하고 있는 류현진은 앞으로 6승만 추가하면 팀 선배 정민철의 기록을 뛰어넘는 '역대 최연소 100승 고지'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류현진은 올 시즌 타선과 수비 지원 부재 속에 단 5승을 추가하는 데 그치고 있어 연내 대기록 경신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류현진이 올 시즌 이후 해외진출 자격을 얻게 된다는 점도 100승 기록의 또 다른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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