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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온 국민이 피부로 느낄 만큼 명확한데도 이에 대한 논의는 생산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전경련을 앞세운 재계는 헌법을 들먹이며 재벌개혁이 위헌이라고 반박한다. 어떤 이들은 재벌개혁을 무조건 재벌해체로 몰아가기도 한다. 이제 재벌개혁의 구체적인 방안을 두고 토론해야 한다. 무엇을 목표로 하여,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나 규제할 것인지에 대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 새사연이 먼저 재벌개혁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 기자말

20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자로 선출된 박근혜 후보가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 일자리를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로 제시했다.
 20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자로 선출된 박근혜 후보가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 일자리를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로 제시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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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재벌규제를 말하는 시대다.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에서마저 재벌의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등에 대해서 엄격히 규제하고, 지분매각명령까지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좋은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정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어떤 기업이 '재벌'에 해당하는지, 또 어떤 기업이 재벌의 '계열사'에 해당하는지, 어떤 경우가 '부당 내부 거래로서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하는지 명확히 규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법에는 이런 것들에 대한 정의가 없다. 공정거래법에서 '동일인이 대통령이 정하는 기준에 의해 사실상 그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회사의 집단 중 자산총액이 5조 원 이상인 경우'를 대기업집단이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적절한 재벌규제를 위해서는 재벌의 현실적인 모습을 반영하여 그 실체를 법적으로 정의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기업집단법(재벌규제법)이다.

그렇다면 기업집단법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할까?

재벌, 계열사...기본개념에 대한 정의가 우선돼야

먼저 기본개념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회사의 실체를 규정하는 법은 상법의 회사편인데, 주로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규정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면서 발생하는 경영자와 주주 사이의 이해관계 충돌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감독기관이나 감시제도 등이다.

하지만 개별 기업을 넘어서는 경제적 이해관계 집단, 즉 기업집단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간 공정거래법에 간략하게 명시되었던 기업집단을 상법에서 구체적으로 정의해야 한다. 공정거래법과 유사한 방식으로 규모에 관계없이 기업집단의 일반적 정의를 한 후, 독점규제의 대상이 되는 규모를 정하되 더 구체적으로 정의해야 한다. 이 외에도 지배주주, 지배 등 재벌의 운영을 설명할 때 필요한 개념들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이어서 재벌을 구성하는 기업들 즉, 계열사 관계 성립과 해지 요건, 계열사 편입의 법적 허용 범위 등이 규정되어야 한다. 현재는 출자 지분율 요건 등에 대해 대통령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계열사를 규명하도록 되어 있다. 이를 법률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때 명목적인 출자 지분에 의한 계열사 규명은 물론이며, 실질적 지배개념을 적용하여 위장 계열사 등의 논란을 가급적 축소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순환출자 구조 등을 아예 합법적인 기업 집단 구성 요건에서 배제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또한 기업 집단 전체의 지휘 통제 구조를 규정해야 한다. 지휘통제의 동일인이 재벌총수인지 지배기업인지 등에 대해 규정이 있어야 하고 구조조정본부(구조본)와 같은 지휘통제 조직의 존재와 법적 지위도 규정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재벌, 재벌을 이루는 계열사, 재벌의 지휘 통제 구조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이다.

기업결합· 지주회사 등 몸집 키우기에 관한 규제 필요

다음으로 담겨야 할 내용은 재벌의 독점력을 막기 위한 기업결합 제한 및 경제력 집중 억제에 관한 내용이다. 이미 공정거래법에 이런 내용이 상당 부분 담겨있는데, 이를 어느 정도까지 기업집단법으로 옮겨놓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현재는 공정거래법에 존재하는 기업 결합 요건, 그리고 특히 지주회사에 대한 규정은 전반적으로 기업집단법으로 이동하여 포함되는 것이 적절하다. 지주회사체제는 한국경제에서 이제 기업 집단의 가장 중요한 형식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공정거래법에 담겨 있는 대규모 내부 거래의 이사회 의결이나 비상장회사 공시, 기업집단현황 공시 등도 기업집단법으로 옮기는 것이 좋다. 이는 경쟁법보다는 회사법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상호출자 금지, 채무보증 금지, 금융회사 의결권 제한 등은 공정거래법에 남겨놓을 수 있다고 보인다.

다음으로 개별 독립 법인(주주)의 이익과 전체 기업집단의 이익 사이의 이해상충을 해결하는 규정이 기업집단법의 중요 내용이 되어야 한다. 우선 기업집단에 속하는 개별 기업 이사회와 경영자, 그리고 기업집단 총수의 책임관계가 규정되어야 하고, 동시에 개별 기업의 소수주주권 보호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규정되어야 한다. 또한 최근에도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내부거래의 인정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도 포함된다.

통상 기업집단법은 기업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개별 기업(계열사) 사이의 내부 거래에 대해 일정하게 인정해준다. 계열사끼리의 거래를 통한 양의 외부효과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각 기업들이 집단을 이룰 이유가 없다. 특히 내부 거래의 결과 특정 계열사에게는 일정한 기간 손실이 오더라도 기업 집단 전체로 보아 이익이 될 경우라면 이때의 내부거래는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전체기업 집단을 통하여 지배주주와 특수 관계인의 사익 추구를 위하여 계열사에게 손실을 초래케 했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이에 대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재벌은 각 계열사를 연결하고 있는 소유관계의 끈이 취약하다. 일반적으로 50%의 지분에도 못 미치는 내부 지분율로 연결되어 있고, 그나마 재벌 총수 일가의 보유지분은 매우 미미하다. 이런 점에서 재벌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한 내부거래는 부당한 거래가 될 수밖에 없다.

재벌규제, 구체적인 법안 내용까지 언급돼야

대체로 위와 같은 내용이 새로 제정해야 할 기업집단법의 주요 내용을 이룰 것이다. 그 동안 재벌이라는 기업집단과 관련하여 논쟁이 되어 온 적지 않은 쟁점들이 정리되어 법률에 반영되어야 한다. 때문에 경제학계와 법학계의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며 현실 경제여건 속에서 변화된 환경을 감안해야 한다. 동시에 공정거래법의 전면 재개정이 같은 무게로 다뤄져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 정치권에서 대선주자들을 중심으로 경제민주화와 재벌규제가 논의되고 있는데, 이 기회에 기업집단법 제정과 구체적인 법안 내용으로까지 논의가 확장되기를 바란다. 법적 실체를 정의하고, 재벌이 저지를 수 있는 독점과 내부 거래 등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태그:#기업집단법, #재벌규제,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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