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2 팔도 프로야구 두산과 삼성의 경기 삼성 선발 배영수가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 연합뉴스
삼성 라이온즈의 우완투수 배영수에게는 '배열사'라는 별명이 있다. 열사의 사전적 정의는 '나라를 위하여 절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하여 싸운 사람', 배영수의 별명에 들어간 '열사'는 이 열사를 일컫는다.
배영수는 지난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당시 국가대표로 출전해 소위 '30년 망언'으로 팬들의 공분을 자아냈던 일본의 간판타자 이치로의 엉덩이를 향해 시속 146km짜리 강속구를 던져 화제에 올랐다. 또한, 한국시리즈에서는 팔꿈치 부상을 안고 마운드에 올라 눈부신 역투로 소속팀 삼성의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이렇게 대표팀에서든 프로팀에서든 몸 담은 팀을 위해 몸 사리지 않고 헌신한 배영수에게 '열사'라는 칭호가 붙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만큼 팬들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0년대 초중반 최고 투수로 꼽혔던 에이스, 하지만...하지만 영광은 짧았고, 배영수가 짊어져야 할 대가는 혹독했다. 2000년대 초중반 프로야구 최고의 우완으로 꼽혔던 배영수는 무리한 등판의 후유증으로 한동안 수술과 재활을 오가는 고난의 시기를 거쳐야 했다. 지금도 삼성 팬들은 당시의 우승을 '배영수의 팔꿈치와 바꾼 영광'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배영수는 데뷔 후 여섯 시즌 동안 60승을 기록했다. 해마다 평균 두 자리 수 승리를 거둔 셈. 전성기였던 2004년에는 17승 2패 평균자책점 2.61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 우완으로 자리매김했고, 그해 명승부로 팬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한국시리즈 4차전(삼성 vs. 현대)에서는 타선 지원 없이 10이닝 동안 노히트 쾌투를 펼치며 프로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하지만 2005년을 끝으로 최근 여섯 시즌 동안 배영수는 두 자리 수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말 그대로 혹사의 후유증이었다. 수술 당시 혹사당한 배영수의 팔을 확인한 의사가 "내 환자 중에서 이 정도로 심한 상태는 본 적이 없다, 인대가 너덜너덜해져 있다, 그동안 공을 던진 것 자체가 기적"이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수술 후에도 배영수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부상 후유증으로 전성기의 구속과 구위를 잃었다. 지난 2009년 그는 1승 12패를 거둬 시즌 최저 승률과 최다패의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올시즌까지 지난 6년 동안 배영수가 거둔 승수는 총 30승에 불과했다. 모두 배영수의 전성기는 끝났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배영수, 7년 만에 10승 고지 밟을 수 있을까그러나 배영수는 꺾이지 않았다. 때로는 선발 경쟁에서 밀려 중간계투로 강등되기도 하고,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기로에 섰을 때도 그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그런 그가 올시즌 화려한 재기에 성공했다. 올시즌 삼성의 에이스로 화려하게 돌아온 배영수는 7년 만에 한 시즌 10승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배영수는 지난 19일 잠실 두산전에 선발로 나서 7이닝 동안 5피안타(탈삼진 5개, 사사구 1개) 1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9승(5패)를 챙겼다. 이 승리로 배영수는 지난 2005년 11승 이후 7년 만의 한 시즌 10승을 눈앞에 뒀다. 배영수는 이번 시즌 장원삼-미치 탈보트와 함께 삼성 선발진의 든든한 한 축을 맡으며 소속팀의 선두 독주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또한 배영수가 앞으로 1승을 추가할 경우, 자신의 프로 통산 100승 고지도 동시에 밟게 된다. 배영수가 통산 100승을 차지하면, 프로 통산 23번째 100승 투수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30년을 넘긴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아직 22명밖에 나오지 않은 세 자리 수 승리 고지에 오른다는 것은 배영수의 야구 인생에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는 이력이다.
무엇보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배영수의 부활이 팬들에게 주는 감격은 참 크다. 잘하면 영웅, 못하면 역적이 되는 것은 프로 선수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만, 삼성 팬들에게 배영수의 존재는 남달랐다. 배영수가 등판해 난타당하고 내려온 날이라도 삼성 팬들이 배영수를 비난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팀을 위해 자신의 미래를 희생하며 헌신한 에이스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었다.
많은 정상급 투수들이 부상의 악몽을 극복하지 못하고 전성기에서 내려온 이후 쓸쓸하게 퇴장하는 수순과 달리,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재활에 성공한 배영수의 신화는 삼성 팬들에게는 감동 그 자체다. 오랜 인고의 시간을 거쳐 7년 만에 10승과 통산 100승을 눈앞에 두고 있는 배영수의 기적은 지금도 부상과 슬럼프가 낳은 시련과 싸우고 있는 야구선수들에게 희망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