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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0년대 전주는 1만명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주시장에 모인 사람들은 참 많습니다. 시장은 역시 부쩍거려야 합니다
 1890년대 전주는 1만명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주시장에 모인 사람들은 참 많습니다. 시장은 역시 부쩍거려야 합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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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전주 다녀온 기사를 쓰다 보니, 생각보다 전주가 참 컸습니다. 다른 지역은 1~2번이면 다 끝날 것인데 4번째입니다. 물론 마지막 여행기입니다. 아이들과 발길을 돌린 곳은 전주대학교 안에 있는 박물관입니다. 189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전주 지역 모습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습니다. 1890년대 전주는 1만 명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주시장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 굉장히 참 많습니다. 시장은 역시 부쩍거려야 합니다.

옛날 시장, 역시 사람사는 세상...

 1890년대 전주는 1만명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주시장에 모인 사람들은 참 많습니다. 시장은 역시 부쩍거려야 합니다
 1890년대 전주는 1만명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주시장에 모인 사람들은 참 많습니다. 시장은 역시 부쩍거려야 합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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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팔아 고추를 산 사람, 고추를 팔아 쌀을 사는 사람, 그리고 몇날만에 만나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며 힘든 인생살이를 주고 받았을 것입니다. 또 장날은 다른 지역 소식을 듣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스마트 폰이 없어도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사람냄새 나는 세상이었습니다.

1896년쯤에 찍은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초가와 서양 선교사, 그리고 조선사람. 어울릴 듯하면서 조금은 어색합니다. 저도 초등 3학년까지는 초가에 살았습니다. 초가에 살아본 분들이 알겠지만 해마다 한 번씩 지붕을 새로 이어야 합니다. 가을걷이를 다 끝내고 새볏짚으로 갈아 입어면 몸도 깨끗해집니다. 정말 이상한 것은 물이 새지 않습니다. 최첨단으로 지은 요즘 건물도 물이 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볏짚으로 이은 초가는 물이 새지 않습니다. 자연이 준 귀한 선물입니다. 아무리 사람 능력이 뛰어나도 자연 앞에서 얼마나 부족한지 초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초가와 돛단배... 자연과 더불어

 1896년쯤에 찍은 사진입니다. 초가와 서양 선교사 그리고 조선사람. 어울릴듯하면서 조금은 어색합니다. 저도 초등3학년까지는 초가에 살았습니다.
 1896년쯤에 찍은 사진입니다. 초가와 서양 선교사 그리고 조선사람. 어울릴듯하면서 조금은 어색합니다. 저도 초등3학년까지는 초가에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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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초가집에서 살았다."
"정말이예요?"
"그럼 아빠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지금 할머니 집을 지었어. 2학년 때까지는 초가집이었어."
"초가에 살면 무섭지 않아요."
"아니 요즘 집보다 더 비도 새지 않고, 따뜻하고, 시원해. 생각하면 초가가 더 좋았어. 하지만 지금 초가에 살라고 하면 살지는 못하겠다."

 약 100년 전에는 돛단배를 타고 의료봉사를 했습니다. 저도 초등 3학년 때까지 돛단배가 있었습니다. 이 사진을 보면서 아버지와 돛단배를 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약 100년 전에는 돛단배를 타고 의료봉사를 했습니다. 저도 초등 3학년 때까지 돛단배가 있었습니다. 이 사진을 보면서 아버지와 돛단배를 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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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0년 전에는 돛단배를 타고 의료봉사를 했습니다. 저도 초등 3학년 때까지 돛단배가 있었습니다. 이 사진을 보면서 아버지와 돛단배를 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돛단배는 기계 힘이 아니라 바람의 힘으로 나아갑니다. 역시 자연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바람 방향에 따라 돛을 잘 조절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배가 가거나 아니면 제자리에서 뱅뱅돕니다.

"아빠도 할아버지 살아계실 때 돛단배 타 봤다."
"정말 타 봤어요?"
"그럼. 돛단배만 아니라 노로 직접 젓기도 했어. 요즘는 기계배잖아. 빠르기는 하지만 재미가 없어."

"아빠는 재밌게 살았네요."
"그럼. 요즘 너희들이 오히려 더 불쌍해보여."

청진기가 천장에 달려 있네...

 원래 청진기는 목에 걸고 다니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 때는 청진기를 줄에 매달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원래 청진기는 목에 걸고 다니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 때는 청진기를 줄에 매달아 사용한 것 같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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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청진기는 목에 걸고 다니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때는 청진기를 줄에 매달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저 청진기로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한 사람은 청진를 하고, 한 사람은 들었을까요? 의사들도 저렇게 생긴 청진기는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의술만 발전한 것이 아니하 의료기구도 정말 많이 발전했습니다.

 1900년 신흥학교 수업 모습입니다. 저 때도 공부하기 싫어 몰래 도망치는 아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무릎꿇은 학생과 팔을 허리에 걸친 선생님 그리고 서까래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1900년 신흥학교 수업 모습입니다. 저 때도 공부하기 싫어 몰래 도망치는 아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무릎꿇은 학생과 팔을 허리에 걸친 선생님 그리고 서까래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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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신흥학교 수업 모습입니다. 저 때도 공부하기 싫어 몰래 도망치는 아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무릎꿇은 학생과 팔을 허리에 걸친 선생님 그리고 서까래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김막둥 너 공부하기 싫지. 여기 봐라 무릎을 꿇고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있다."
"의자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무릎을 꿇고 공부를 했을까요."
"공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것이지. 하지만 저 때도 틀림없이 막둥이 너 처럼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이 있었을거야."

'기역자 예배당'... 현대 예배당보다 더 예배당 다워

 기역자 예배당입니다. 예배당 왼쪽은 여성, 오른쪽 남성이 앉았습니다. 그리고 중앙에 인도자가 서서 예배를 인도했다고 합니다.
 기역자 예배당입니다. 예배당 왼쪽은 여성, 오른쪽 남성이 앉았습니다. 그리고 중앙에 인도자가 서서 예배를 인도했다고 합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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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역자 예배당입니다. 예배당 왼쪽은 여성, 오른쪽 남성이 앉았습니다. 그리고 중앙에 인도자가 서서 예배를 인도했다고 합니다. 요즘 예배당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남녀구별만 빼고 수 천 억원 짜리 예배당보다 훨씬 낫습니다. 사람이 욕심이 배이지 않는, 인간의 탐욕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 예배당은 인간 탐욕이 배였습니다. 겉만 화려할 뿐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지요.

나쁜 시력 때문에 눈을 비비면서 본 사진 한 장이 있었습니다. 1923년 김인전 목사 장례식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소개한 이유는 이 분들 중에 이동년, 여운형, 조소앙, 김구, 이시영, 안창호 선생 등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눈썰미가 좋으신 분들은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김구 선생을 찾으셨나요

 1923년 김인전 목사 장례식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소개한 이유는 이분들 중에 이동년, 여운형,조소앙,김구, 이시영, 안창호 선생등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눈썰미가 좋으신 분들은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1923년 김인전 목사 장례식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소개한 이유는 이분들 중에 이동년, 여운형,조소앙,김구, 이시영, 안창호 선생등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눈썰미가 좋으신 분들은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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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을 찾으셨나요. 저는 찾은 것 같습니다. 김구 선생이 1876년 생이니 1923년이면 우리 나이로 마흔 일곱입니다. 딱 제 나입니다. 괜히 부끄럽습니다. 김구 선생 이때 임시정부 중심으로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고 계셨는데 저는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여운형, 조소앙, 이동년, 안창호 선생을 사진 한 장으로 볼 수 있다니 정말 감격했습니다.

"김구, 여운형, 조소앙, 이동년, 안창호 선생님들이야. 사진이 워낙 작아 잘 보이지 않지. 아빠도 이 분들 얼굴을 잘 구별할 수는 없어."
"아빠가 모르는 데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하지만 얼굴을 잘 구별할 수 없어도. 이 분들이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헌신하셨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해. 안타까운 것은 이 분들 후손들은 전셋방과 월세방에 살고, 친일파 후손들은 떵떵거리면서 살아."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통탄할 일이야."

이 사진 한 장이 1박 2일 동안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원본 사진 저작권은 전주대학교 박물관에 있음을 밝힙니다. 박물관에 전시한 사진을 촬영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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