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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란코캠프에서 카란카캠프로 가는 길에서 정상을 뒤로 한 채 만세
 바란코캠프에서 카란카캠프로 가는 길에서 정상을 뒤로 한 채 만세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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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캠프(3840m)에서 바란코캠프(3950m)까지의 거리는 약 13㎞쯤으로 등반 고도를 약 100m정도 밖에 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캠프를 출발해 목적지 바란코캠프까지 가는 중간에는 4천미터가 넘는 고개가 나온다. 우리가 선택한 마차메루트의 장점은 이와 같이 올라갔다 내려 왔다를 반복하며 고산병에 몸을 적응시키는 것이다.

3100미터의 마차메캠프에서부터 시라캠프에 오는 동안 여러 명의 동료들이 고산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해 일행을 겁먹게 했다. 고산병에 걸리면 두통, 구토, 식욕부진, 피로감, 어지러움, 불면증 등이 나타난다. 저절로 호전되기도 하지만 심하면 고소폐부종과 같은 치명적인 질환에 걸려 사망하기도 한다.

4천 미터의 습기없는 부분에서 볼 수 있는 식물 중 몇 안되는 엉겅퀴. 아프리카 마다가스칼 섬의 여우원숭이가 서있는 모습을 닮았다
 4천 미터의 습기없는 부분에서 볼 수 있는 식물 중 몇 안되는 엉겅퀴. 아프리카 마다가스칼 섬의 여우원숭이가 서있는 모습을 닮았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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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에버래스팅 꽃이 말라 죽으며 후손을 남기기 위해 꽃씨와 함께 붙어있다. 바람이 불면 민들레처럼 날릴 것으로 예측된다
 노란 에버래스팅 꽃이 말라 죽으며 후손을 남기기 위해 꽃씨와 함께 붙어있다. 바람이 불면 민들레처럼 날릴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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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 일행 중에 의사가 다섯명이나 되고 각자가 고산병 약과 주사기까지 준비해 왔다. 하지만 일단 고산병에 걸리면 장사가 없다. 무조건 저지대에 내려가 하산하던지 회복을 하고 다시 올라오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바란코캠프로 출발하는 날 아침 77세의 최고령 등반자가 등반을 포기하고 하산을 결정했다. 일행은 현지 가이드인 엘리어스가 가져온 기계를 손가락 끝에 꼽아 고산병에 대한 각자의 몸상태를 점검했다. 내 손가락에서 나온 수치는 산소포화도 97에 심장박동수 45로 양호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사람이 5천 미터를 올라가면 산소가 평지의 50%밖에 안 된다고 한다. 따라서 부족한 산소를 보충하는 방법으로 하루에 3~5리터의 물을 마셔 피속에 산소를 공급해야 한다. 일행은 억지로 물을 마시며 고산병약인 다이아막스를 한 알씩 먹고 잤다.

고산병은 뇌 속에 혈관이 팽창해 부종이 생기는 것으로 머리가 아픈 증상을 동반한다. 이뇨제인 다이아막스를 먹으면 몸속에 있는 노폐물을 배출해 두통이 사라진다. 엄대장은 고산에서 잘 때 춥다고 텐트쟈크를 꼭 닫고 자면 산소가 부족하니 1/3을 열어놓고 자라고 강조했다.

자이언트 세네시아와 마주선 킬리만자로 정상의 모습.
 자이언트 세네시아와 마주선 킬리만자로 정상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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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약을 먹고 잠자리에 들면 자주 소변이 마려워 일어나야 한다. 거기에 텐트 문을 1/3쯤 열어놓고 자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영하의 날씨에 옆자리 동료를 깨울까봐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밤중에 일어나 하늘을 보면 수많은 별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의사들이 권장하는 또 하나의 약은 비아그라다. 의학계에서 에베레스트까지 올라 실험한 바로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 됐다는 것이다. 혈관을 확장해줘 산소 공급을 원활하게 해준다는 것. 엄홍길 대장이 일행들에게 틈나면 강조하는 얘기는 "힘을 비축하라. 체온 유지하라. 오버페이스 말라"고 강조했다. "산은 절대로 욕심내서는 안 된다"는 것.

용암이 녹아 굳어진 라바가 널려 있는 곳
 
라바는 화산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굳어진 바위를 말한다. 분화구 인근에서 굳어진 용암이 널려있는 이곳은 기기묘묘한 바위를 만들기도 했지만 척박한 바위사이를 지나가야만하는 등산객들을 지치게 만든다. 제2캠프에서 제3캠프로 가는 정상부근은 4455m나 됐다. 그래도 몸이 어느 정도 적응이 됐는지 첫날보다는 나았다. 

정상에서 용암이  흘러내려 굳어진 라바들이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등산객들은 이 사이를 헤쳐 지나가며 자연의 위대함을 맛본다
 정상에서 용암이 흘러내려 굳어진 라바들이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등산객들은 이 사이를 헤쳐 지나가며 자연의 위대함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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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가이드 엘리어스가 라바를 깨어 보여준 모습. 고열인 용암이 굳어진 모습이 보인다
 현지 가이드 엘리어스가 라바를 깨어 보여준 모습. 고열인 용암이 굳어진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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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미터나 되는 이곳은 날씨가 차고 라바에 뚫린 기공으로 빗물이 스며들어 물이 거의 없다. 그나마 몇 그루의 식물이 자라는 곳은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계곡인근이다. 수 킬로미터를 등산객들이 걸으며 난 길을 따라가자니 서부영화에 나오는 황량한 미국의 서부 사막 같은 느낌이 든다.

눈 덮인 정상을 끼고 돌아가는 길. 힐끔 보니 몇백 미터도 안 돼 달려가면 금방이라도 정복할 것 같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고산병에는 괜찮다는 판정을 받은 것.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잠시 쉬다가 가족과 함께한 유하니씨. 20대 남동생보다 더 산을 잘 탄다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잠시 쉬다가 가족과 함께한 유하니씨. 20대 남동생보다 더 산을 잘 탄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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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이런 험한 곳까지 올라와서 고생을 하는 걸까. 자신과의 싸움? 공명심? 대부분의 일행이 이미 도착해 기다리는 데 한 분이 안 온다. 걱정이 되지만 가이드 중에는 낙오자의 가방을 대신 메고 보조를 맞추며 끝까지 데려오는 가이드 아미니(Amini)가 있어 든든하다.

여러 나라에서 온 등정대를 안내해 온 현지 가이드들이 모여 신나게 춤추며 노래한다. 내일 정상에 도전하느라 불안해 할 등산객들의 마음을 달래주려는 걸까. 현지인들은 낙천적 성격이 타고났나 보다. 우리는 5㎏정도의 배낭을 메고도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20㎏정도의 짐을 지고 뒤에는 무거운 진공관 라디오를 메고 노래에 맞춰 흥얼거린다.

여러나라의 등산가들과 포터들이 함께 어울려  현지인들의 노래 '잠보'를 부르며 춤추고 있다
 여러나라의 등산가들과 포터들이 함께 어울려 현지인들의 노래 '잠보'를 부르며 춤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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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보 부와나( Jambo Bwana) -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바리 가니( Habari Gani)  - 안녕하세요?
음주리 사나(Mzuri Sana) - 아주 좋아요
와그니 (Wagni) - 관광객 여러분
와카리비슈(Mwakaribishwa) - 환영합니다
킬리만자로(Kilimanjaro) -킬리만자로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a) - 걱정마세요

가급적 공평하게 짐을 나누기 위해 포터들이 저울로 재고있다. 윈칙은 20킬로미터 내외지만 실제로는 더 많이 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가급적 공평하게 짐을 나누기 위해 포터들이 저울로 재고있다. 윈칙은 20킬로미터 내외지만 실제로는 더 많이 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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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이언 킹>에도 나왔던 이 노래를 들으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이들은 모이기만 하면 그리고 관광객과 헤어질 때도 이 노래를 부르며 아듀를 고했다. 킬리만자로만 생각하면 지금도 귀에 쟁쟁한 노래 '잠보'.

흐뭇해졌던 마음으로 정상을 바라본다. 훨씬 가까워진 정상. 내일 밤 12시에 드디어 정상에 도전한단다. 겁난다. 모두들 무사히 정상에 올라야 할 텐데.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과 ''문화촌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킬리만자로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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