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와 외국인들은 먹는 밥이 다르다. 우리의 밥에는 우리만의 고유한 감정이나 가치 등이 스며 있다. 밥뿐이랴. 우리의 삶과 관련된 모든 우리말에는 우리 고유의 정서와 감정, 문화, 풍습, 사고, 가치관 등 우리의 삶 전반이 들어있다.

<우리말, 가슴을 울리다>(조현용 저, 하우 펴냄)는 이처럼 우리말에 스며있는 우리의 모든 것들을 살펴보게 하는 우리말 살핌이 책이다. 저자는 10년 가까이 우리말 어휘 연구와 우리말에 스며있는 우리 삶과 관련된 것들을 탐구해오고 있는 국어 학자.

10년 가까이 우리말을 알고 배우려는 국내·외 거주 외국인들에게 우리말을 강의해오고 있는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 뜻하는 것, 관련된 말들, 관련된 문화나 풍습 등을 다양하게 들려줌으로써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우리말을 살펴보게 한다.

'개판'이라는 말은 아주 질서 없고, 지저분한 광경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개소리'도 완전 쓸데없는 소리로 '말'이라고 쓸 수 없는 경우에 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서 개가 짖나?'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 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됩니다. '개 같다'는 말에는 귀여움이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라는 말도 '천한 일을 가리지 않고 일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개만도 못한 인간' 하고는 더더욱 한시라도 있고 싶지 않습니다. '개자식'은 최악의 욕이었습니다. 사실 '개자식'은 자식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욕하는 것이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은 그 속뜻이 뭐건 간에 두 마리 개가 다 더러운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원래 우리의 개는 깨끗한 것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주로 변견(便犬)들이 많은데 이를 안방에서 귀엽다고 쓰다듬고 있으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 좋은 것들에 '개'를 붙입니다. 꿈에 개가 안 나타나도 의미 없는 꿈이면 '개꿈'이라고 합니다. 떡 중에서 모양 없이 만든 떡을 맛에 상관없이 '개떡' 이라고 합니다. - <우리말, 가슴을 울리다> '개고기' 중에서

이 부분을 읽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 무렵에 나온 <국가대표 허벅지들>(엄윤숙 저, 포럼 펴냄)이란 책의 한 부분이 떠오르기도 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 이야기'란 부제로 우리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사소한 에피소드 등을 묶은 책인데, 책에 의하면 외국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외국 선수들이 반 조롱조로 묻곤 하는 말이 "개고기를 어떻게 먹을 수 있느냐?"는 것.

여기에 박지성은 어린 시절에 그의 아버지가 개구리를 먹여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게 한 일화 때문에 보신탕에 개구리 관련 조롱까지 더해 더욱 모멸스러운 말을 종종 듣곤 했다고 한다. 책에 의하면 말이다.

<우리말,가슴을 울리다> 겉표지
 <우리말,가슴을 울리다> 겉표지
ⓒ 하우

관련사진보기

이처럼 우리의 개고기 문화는 걸핏하면 외국인들이 우리를 야만인 취급하며 조롱하는 무기로 둔갑하기도 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개고기를 선호하지 않는다. 어렸을 적부터 개와 함께 자랐는지라 개와 관련된 추억도 많고 또 개를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나쁘단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런지라 이렇다 할 동물들의 고기는 다 먹으면서 유독 우리의 개고기 문화에 민감한 외국인들의 반응이 못마땅하고 기분 나쁘기만 하다.

그들의 그런 태도는 자신들의 애견문화만이 옳다는, 자신들의 문화나 사고방식이 세상의 잣대라 착각하며 누구든 그에 맞추길 바라는, 상대방 혹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문화는 전혀 알려고 하지 않거나 배려하지 않는 등과 같은 이기심과 오만함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를 애완용이라고 생각하는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개고기 문화가 이상하고 끔찍한 것처럼 그다지 좋지 못한 것에 '개'를 빗대었던 우리에게 서양인들의 애견문화가 100% 공감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우리의 개고기 문화가 오래전부터 있어온 우리 고유의 문화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이해받기를 바라는 것도 옳지 않은 것 같다. 그간 외국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등 우리의 애견 문화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여하간 '개고기'란 말에는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가 스며있는 한편, 외국인들과의 문화적 차이와 편견의 문제 또한 스며있다. 이런 개고기란 말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우리와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한 자세이다.

혹은 나와 다른 누군가에 대한 이해의 자세이다. 책은 이처럼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속에 스며있는 것들을 통해 우리의 생활과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우리말을 살펴보게 한다.

한국에서는 국격을 높이는 방안을 정부 부처마다 열심히 연구하고 있고 실행 방안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국격을 높일 수 있을까요?(…)교육을 할 때는 지켜야 할 가치와 바꾸어야 할 가치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국격을 높이자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들 바꾸어야 할 것에 대해서만 말하는데 사실 지켜야 할 가치도 많습니다. 관리의 청렴결백, 효와 경로사상, 이웃 간의 정 등은 여전히 우리에게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이런 가치들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지에 대해 노력하는 것이 한국의 국격을 높이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들도 많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나라가 나라다워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국격이라고 생각합니다.(…)국격은 우리가 스스로 좋아졌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우리를 보면서 판단해 주는 것입니다. - <우리말, 가슴을 울리다> '국격' 중에서

최근 몇 년 전 생긴 신조어이기 때문인지 한글 프로그램에서도 빨간 밑줄이 그어지는 '국격'에 관한 글 중 이 부분도 꼭 소개하고 싶다.

국격이라는 말은 일반인들보다 주로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많이 통용되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계기로 국격이란 말을 접했는지 모르겠는데, 필자는 '2010 서울 G20 정상회의' 홍보를 통해서 가장 먼저 접한 것 같다. 성공적인 G20 개최를 통해 국격을 높이자는 말을 들은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한.

사실 일반인인 내게 국격이란 말은 전혀 익숙하지 못하다. 글로벌적인 일, 즉 국가적인 일을 하지 않는지라 써먹을 일이 전혀 없기 때문인가 보다. 때문에 개인의 어떤 격에 해당하는 인격보다 서먹서먹한 말이다.

사실 이 국격이란 말은 이 책에서 만난 수많은 우리말 중 가장 익숙하지 못한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국격이란 말이 반가워(?) 인상 깊게, 그리고 어떤 의미를 담아 읽은 이유는 저자의 글에 대한 공감도 공감이지만, 나 아닌 누군가와 함께 우리의 국격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G20 이후 우리의 국격이 높아졌는가? 그렇다면 얼마나 높아졌는가? 어떤 나라가 국격이 높은 나라인가? 우리의 국격의 깊이는 어느 정도인가? 외국인들에게 우리는 어떤 국격의 국민들인가? 등을 말이다.

개고기와 국격 외에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우리말들은 마음을 놓다, 먹고 살만하다, 눈에 밟히다, 못살다, 기를 살리다, 나다와 들다, 사람이 되다, 야하다, 배우다와 깨닫다, 맨날 술이야!, 감탄사가 절로 난다,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 며늘아기, 한 세시쯤, 토를 달다 등. 무엇보다 어떤 단어보다 우리 생활에서 흔히 쓰는 표현들을 많이 다루고 있어서 흥미롭다.

이런 이 책의 장점을 말하라면 그간 우리말을 제대로 쓰자는 의미의 우리말 공부(가르침?) 관련 책은 많이 나왔지만 이처럼 우리가 흔히 쓰는 말에 담겨진 우리의 감정이나 정서, 문화 가치관 등을 통해 우리말을 살펴보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우리말에 관심 두게 하는 책의 거의 없다는 것. 아마도 내가 아는 한 이 책이 유일하다.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었는데, 제4부 '한국어를 가르치며'의 22꼭지 글들은 저자가 지난  10년 동안 우리말을 외국인들에게 가르치며 얻은 것들을 바탕으로 쓴 것들. 외국인들의 우리말에 대한 관심과 우리말의 희망(한글 수출 등)을 알 수 있는 글들이다. 저자가 쓴 다른 책으로는 <우리말 깨달음 사전>과 <우리말로 깨닫다><한국인의 신체 언어> 등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우리말, 가슴을 울리다>ㅣ저자:조현용| 출판사:하우|펴낸날: 2012-07-12ㅣ정가 1만4000원



우리말, 가슴을 울리다

조현용 지음, 하우출판사(2012)


태그:#우리말, #개고기, #보신탕, #국격, #조현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