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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예순 번째 생신, 아침이 어느새 밝아 있었습니다. 한국과 영국 축구경기가 있던 지난 8월 5일 새벽, 동네 사람의 고함에 잠을 깨고 맙니다. 마지못해 일어나 승부차기를 보고 약간의 환호를 보내고, 다시 잠을 자려 베개에 머리를 눕힙니다. 그러나 감은 눈 속에서, 가슴 깊은 곳에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휘젓고 다닙니다.

결국, 그 복잡한 마음만이라도 잠재울 겸 다시 일어나고 맙니다. 생각을 잠재우는 확실한 방법은 몸을 움직이고 손을 움직이는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의 화살촉이 나를 겨누고 있고, 그 생각의 대부분이 미안함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해는 벌써 떠올랐고, 찌는 무더위는 새벽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축구 경기가 끝나자 별스러운 일요일 아침의 부산스러움은 사라지고 다시 고요가 찾아옵니다. 조용한 일요일 아침입니다.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갑니다. 부엌도 마찬가지로, 일요일의 고요 속에 묻혀 있습니다. 전기밥솥에서 뜨거운 김이 빠지는 소리도, 가스레인지에서 매운 고추가 들어간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익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냥, 주인 잃은 부엌은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나의 눈치만 보면서 고요에 젖어 있을 뿐입니다.

전날 저녁 언니가 장 봐 놓은 것을 찾아봅니다. 김치냉장고를 열어보니, 콩나물과 숙주가 까만 봉지에 담겨있습니다. 식탁 위에는 무가 놓여있고 부엌 장 아래에는 얼갈이가 보입니다. 콩나물과 숙주나물, 얼갈이를 씻고 삶아서 나물을 무칩니다. 오래전 엄마가 담가 놓으신 조선간장을 부은 다음 참기름을 두르고, 갈아놓은 깨를 뿌립니다. 세 가지 나물을 그릇에 담고, 이 무더위에 금세 시어 버릴까, 바로 냉장고에 넣습니다. 냉장고에는 전날 서울집에서 미리 만들어 그 열대야를 뚫고 4시간을 달려온 빵과 감자샐러드와 무쌈말이가 놓여있습니다. 

그 일주일 전, 언니가 연락을 해왔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 엄마 생신날, 아빠가 같이 밥 먹자고 하시네. 엄마 환갑 되는 생신이라고."

문득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올해가 엄마가 환갑이 되시는 해라고?'

엄마 환갑, 살아계셨으면 큰 의미 두지 않았을지도

엄마가 살아계셨더라면, 어쩌면 큰 의미를 두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엄마가 살아계시지 않기 때문에 '환갑'이라는 두 글자가 머리가 아닌 가슴에 박혀버립니다. 그리고는 울컥해지고 맙니다. '환갑'이라는 두 글자에, 내 어머니가 얼마나 일찍 돌아가셨는지, 깨닫습니다. 혼잣말로 '엄마 정말 일찍 돌아가셨구나!' 내뱉고 맙니다.

친구의 어머니는 내후년이면 칠순이시라하고, 친구의 할머니는 여든 중반이 되셨어도 농사일하고 지내시는데, 내 엄마는 환갑도 못 채우고 돌아가셨구나, 안타까움이 물밀 듯 밀려옵니다. 물론, 엄마의 딸들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고 벌써 서른이 훌쩍 넘어 마흔을 앞두고 있지만, 내 엄마의 어머니인 외할머니께서 아직 정정히 살아 계신 걸 생각하면, 내 엄마는 너무 일찍 먼 곳으로 가신 것 같아 속이 상합니다. 

2년 전 이맘때 엄마의 생신날, 그때도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던 때라 무척 더웠습니다. 엄마는 항암치료를 받느라 서울로 왔다 갔다 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고, 저는 잠깐 일을 쉬게 되어 고향 집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니는 출산을 한달 쯤 앞두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생신날, 언니가 외식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그러나 아빠는 대뜸 "날도 더운데 집에서 먹자"고 말씀을 합니다. 아버지의 그 한마디에 더 이상 누구도 의견을 낼 수 없습니다. 본인의 생신, 더구나 치료받으러 다니시는 엄마가 음식을 하실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만삭의 언니가 음식을 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언니는 시장에 들러 잡채와 여러 가지 먹을거리를 사옵니다. 그리고 부모님과 언니네 식구와 저는 작은 상에 모여 앉고, 케이크에 초를 꽂습니다. 3살 된 조카 머리에 고깔모자를 씌우고 조카와 엄마가 촛불을 끄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2년전 엄마의 생신
 2년전 엄마의 생신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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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와 밥을 먹으면서 그 누구도 그날이 엄마의 마지막 생신이 될 줄은 몰랐을 겁니다. 너무나 무심히 엄마의 생신보다는 여느날처럼 '덥다'는 데 강조점을 찍은 아빠는 그렇게 평범한 날들이 이어지고, 다시 엄마의 생신이 다가올 거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미안함은, 아니 미안함을 넘은 죄스러움까지 느끼는 그 감정의 시작은, 그날 제가 무엇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다 큰딸은, 그 당시 별다른 일 없이 고향 집에서 쉬고만 있던 다 큰딸은, 왜 엄마 드실 잡채 한 그릇 만들지 않았던 걸까요. 왜, 생선 한 마리 굽지 않았던 걸까요.

그래서 이번에는 식구들과 나눠 먹을 음식을 미리 서울 집에서 준비했습니다. 내 엄마는 드시지 못하지만, 엄마 생신날 모인 식구들을 위해 더위가 집어삼키고 있는 서울 집에서 음식을 준비합니다. 바나나를 넣어 빵을 굽고, 무쌈말이를 하고, 감자를 가득 넣어 샐러드를 만듭니다. 저녁에 술 한 잔씩 곁들여 먹으려고 양파와 마늘을 넣어 제육볶음도 준비합니다. 처음으로 엄마 생신날 먹으려고 이것저것 준비했습니다.

 미리 준비해간 감자샐러드와 무쌈말이
 미리 준비해간 감자샐러드와 무쌈말이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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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일요일 아침, 엄마가 없는 엄마 생신, 엄마의 부엌에서 상에 올릴 나물을 무칩니다. 생선을 굽고, 새 밥을 합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다시 밥상을 차립니다. 2년 전 "더우니 집에서 먹자"고 하셨던 아빠는 식구들 먹이려 장어를 장만해 놓았습니다. 장어가 한 가득합니다. 그 장어를 씻고 소금을 뿌려가며 굽습니다. 상추와 깻잎을 씻고 초고추장을 냅니다.

엄마가 안 계신 엄마의 환갑 생신, 살아 있어 밥을 먹어야 하는 우리는 거한 밥을 먹습니다. 내 엄마에게 장어 한 점 싸 드릴 수 없고 무쌈말이 하나 집어 드릴 수 없지만, 식구들은 즐겁게 밥을 먹습니다.

누군가에게 아내였고, 누군가에게 형수였고, 누군가에게 장모였고, 누군가에게 엄마였고, 누군가에게 할머니였던 내 엄마도, 환갑이 되었습니다.


태그:#엄마, #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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