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우가 지난 10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카디프의 밀레니엄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한국 대 일본 3,4위전에서 승리한 뒤 관중석에서 전달받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그라운드를 달리고 있다. IOC는 이를 문제 삼아 박종우에게 메달 수여식 참가 금지와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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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올림픽축구대표팀을 이끌고 멀리 영국으로 날아간 홍명보호가 소중한 동메달을 따내며 멋진 마무리 잔치를 벌인 덕분에 한여름 무더위에 지친 우리 축구팬들은 결코 잊지 못할 8월의 두 번째 토요일 아침에 그 누구보다 편한 늦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수십 년 전부터 느끼고 사는 것이지만 정말 축구팬 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축구 선수 여러분! 어떤 TV 광고의 카피처럼 우리가 당신들을 응원했지만 사실 당신들이 우리의 깊은 마음 속까지 응원해 준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일을 더 크게 부풀린 IOC의 결정

이렇게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러운 동메달을 목에 걸 생각을 하며 저는 토요일 밤 11시에 시작하는 남자축구 결승전을 봤습니다. 약 20시간 전에 카디프에서 경기를 끝낸 우리 선수들이 바로 그 결승전 직후에 벌어질 시상대에 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결승전은 많은 축구팬의 예상을 깨고 멕시코가 축구의 나라 브라질을 궁지에 몰아넣더니 2-1로 이겨 버렸습니다. 준결승전에서 우리 수비수들을 내내 괴롭히던 브라질의 샛별 네이마르 선수는 경기가 끝난 뒤에도 좀처럼 그라운드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아쉬움을 쏟아내고 있더군요.

브라질 선수들이 월드컵도 아닌 올림픽에서 이렇게 아쉬워하는 장면은 처음 봅니다. 2014년 자국에서 열리는 대망의 월드컵을 앞두고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 올림픽 무대에서 그들은 정말 실력으로 이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장면은 선수 개인의 기술적인 부분 말고도 경기 전체를 읽고 상대 팀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는 전반적인 경기 운영 능력도 그 팀의 축구 실력을 말해주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웸블리 스타디움의 멋진 그라운드 위에는 보기만 해도 웅장한 시상대가 설치되었습니다. 그리고 등장한 선수들을 보니 토요일 새벽에 우리의 심장을 요동치게 했던 그 순간이 또 떠오릅니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모두 18명이어야 하는데 한 명의 자리가 빕니다.

몹시 궁금해 인터넷을 뒤져보니 난리가 났더군요. 설마했던 일이 눈 앞의 현실이 되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박주영, 구자철, 지동원 등의 멋진 골이 터지기까지 미드필드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을 100% 이상 발휘해낸 부산 아이파크의 자랑스러운 수비형 미드필더 박종우 선수가 시상대에 못 올라온 것입니다.

이유를 살펴보니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일본을 2-0으로 돌려보낸 뒤 관중석에서 던져준 손글씨(독도는 우리 땅)를 들고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에 대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분명한 조사 결과나 공식 발표도 없이 선수 개인에게 시상식 불참을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정치적 의도'라구요?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만약에 박종우 선수에게 그러한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면 그 멋진 복근에다가 펜으로 뭐라고 썼거나 흰 속옷에다가 지워지지도 않는 유성 매직으로 찐하게 한마디 갈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박주영 선수의 멋진 오른발 선취골이나 구자철 선수의 훌륭한 오른발 꺾어차기 쐐기골 직후에 펼쳐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박종우 선수는 경기 중에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정치적 의도나 국제축구연맹에서 문제로 삼는 행동을 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저 경기가 끝나고 한참 뒤에 관중석에서 던져준 손글씨를 들고 팬들의 마음을 잠깐 대신해서 펼쳐준 것입니다. 물론, 그의 행동에는 글귀에 대한 자신의 동조된 마음이 어느 정도 담겨있었겠죠.

박종우 선수의 경기 후 뒤풀이 행동에 대해 '정치적 의도'라고 판단한다면 지금까지 올림픽을 포함한 국제대회 경기장에서 상대 선수나 그 나라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불편하게 했던 모든 행동에 대해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대회에도 북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경기하는 곳 가까운 관중석에 곧이어 경기를 펼칠 우리 선수들을 위해 태극기가 내걸려 있는 것까지 제지했어야 옳은 일입니까?

도대체 '정치적'이라는 수식어가 갖는 의미가 어디까지입니까? 박종우 선수의 그 행동은 더도 덜도 할 것 없이 경기 내내 목청껏 응원해준 우리 축구팬들에 대한 선수로서의 호응이었던 것입니다. 박종우 선수는 미드필더로서의 실력만 출중한 것이 아니라 그리고 경기 외적인 것에만 눈이 먼 속물이 아니라 팬들의 외침에 보람을 느끼고 또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줄 아는 멋진 축구 선수입니다. 팬들의 외침에 잠깐 호응을 해 준 것을 꼬투리 잡는 못된 심보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겁니까?

저는 박종우 선수가 자랑스럽습니다

만약에 IOC나 FIFA(국제축구연맹)에서 이 사실을 심각하게 문제삼는다면 먼저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의 경기장 관리 책임자와 한국과 일본의 동메달 결정전을 진행한 국제축구연맹의 책임자를 먼저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문제삼을 정도로 그렇게 심각한 정치적 의도를 경기 내내 흔들어댄 관중의 손글씨를 사전에 막지 못했고 그것을 또 경기장 안으로 던지도록 내버려두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러니 IOC나 FIFA에서는 한국 선수단, 아니 한국 올림픽 남자축구대표팀에 서면으로 주의 사항을 전달하여 앞으로 선수들의 작은 행동이 '정치적 의도'로 왜곡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과 박종우 선수의 동메달을 건네면 되는 것입니다.

이 사안을 자꾸 문제삼아 키우기만 한다면 한일전 당시 구자철 선수의 쐐기골 '만세 삼창' 뒤풀이에 가담한 우리 선수 모두의 행동 또한 심각하게 문제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 장면을 새벽에 지켜본 옆나라 일본 국민들은 얼마나 '정치적'으로 불편했겠습니까?

정말 우스운 일입니다. 그냥 축구를 축구 자체로만 즐기도록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못된 꼼수를 쓰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정치적으로 왜곡될 우려가 있는 일들은 선수나 팬들이 최대한 자제하도록 노력해야겠지요.

우리 선수들이 멋진 승리를 거둔 바로 그 전 날에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여 매우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도'를 드러낸 바 있습니다. 그 분이 독도에 적혀 있는 한자 글씨 '韓國領'이라는 세 글자를 어루만지는 사진을 보면서 저는 축구팬으로서 '한국영' 선수의 이름을 떠올렸습니다. 한국영 선수는 런던올림픽 개막 직전에 뜻밖의 부상을 당해 안타깝게 정우영 선수로 교체된 우리 올림픽대표팀의 수비형 미드필더입니다.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제 이마를 스쳐지나가더군요. 우리의 대통령은 축구 선수가 아니기에 저렇게 노골적으로 '정치적 의도'를 드러낼 수 있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오히려 그곳을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우익 세력이 바라던 바 아니겠습니까?

어떤 축구팬이 던져준 손글씨를 들고 승리의 기쁨을 잠시 나눈 박종우 선수의 행동이 이렇게 절묘한 시점에 왜곡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겹쳐집니다. IOC와 FIFA의 현재 대응 수준 또한 특정 세력에 엄청나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아닐까요? 이거 뭐 축구 선수나 축구팬 무서워서 더 하겠습니까? 자연인으로서의 축구 선수와 축구팬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도대체 어디까지입니까?

여러분들은 누가 더 자랑스러우신가요?

박종우 동메달 런던올림픽 축구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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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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