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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한미FTA 반대 <나는꼼수다> 특별 야외공연
 지난해 11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한미FTA 반대 <나는꼼수다> 특별 야외공연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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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에서 남편과 대판 싸운 것은 지난 초봄쯤이었다. 발단은 나의 사랑 김연아 선수가 TV조선에 출연한 것을 두고 남편과 설전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피겨 스케이팅의 준전문가급(주변의 평가에 의하면) 팬이고 또한 김연아 선수의 팬이다. 물론 그녀가 TV조선에 등장한 것이 나도 좋지 못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이 김연아 선수를 마치 <조선일보>에 놀아나, 아무런 사회적 의식이 없이 사는 백치쯤으로 취급하자 기분이 확 나빠졌다. 남편이 "하여튼 생각도 없이! 어떻게 그런 데 출연을 할 수가 있어? 그러니까 안티 생기고 욕먹는 거야"라며 비웃는 바람에 결국 말다툼이 크게 번지고야 말았다.

전날 밤, 남편은 일부 연예인들과 김연아 선수의 '닭짓'을 마구마구 까대는 트윗을 날렸다. 박원순·안철수가 TV조선에 개국 축하 꽃다발이나 메시지를 보낸 것도 잘못된 일이라 질타하며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남편은 <나는꼼수다(나꼼수)>에 완전히 미쳐 있었다. <나꼼수>가 방송되는 날은 날밤을 새며 방송을 듣고 트위터의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었는데, 그렇게 한바탕 열정을 쏟고 나면 다음 날 아침에는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피곤해 했다.

게다가 날이면 날마다 방송 듣고 트위터 하고 누리꾼 반응을 체크하느라고 각방을 쓰게 되었으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독수공방 신세가 된 내가 <나꼼수>에 좋은 감정을 가졌을 리가 없다. 정말이지, 스마트폰을 사준 이 손을 도끼로 찍고 싶었다.

갑자기 바뀐 남편의 말투... 알고 보니!

그뿐이랴. 남편은 <나꼼수>의 '비키니 성희롱 사건'이나 김용민의 막말 파문이 터졌을 때도 철저히 <나꼼수>를 옹호했다. 비난하는 사람들은 '진실'의 맥락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 아마도 <나꼼수>를 잘 안 듣는 사람들이기에 오해를 하는 "잘못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총선 막판에 일부 언론에서 김용민의 용퇴를 논했을 때는 "절대 반대야, 안 돼"를 외쳤다. 굉장히 낯선 어투의, 당시에 갑자기 등장한 남편의 말투가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막상 <나꼼수>를 듣고 나서야 그 말투가 김어준의 말투라는 것을 알았다. 오, 세상에!

당시 남편의 가장 큰 욕은 "이 보수꼴통 같은!"이었고 가장 자주 쓰는 격려의 말은 "쫄지 마!"였다. 평소 남을 쉽게 믿지 않고 꼼꼼하고 논리적으로 따지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왜 이러는 것인지 어리둥절하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었다. 자연히 밥상머리나 지하철 출퇴근길에서 사소한 말다툼이 늘어갔다. 하지만 나의 비판에 남편은 꼭 이렇게 응수하는 것이었다.

"내가 뭐 <나꼼수>를 전적으로 옳다고만 보는 건 아니야. 비판적으로 볼 거는 비판적으로 보고, 사실이랑 사실이 아닐 것 같은 건 구별한다고. 내가 그 정도도 못할 것 같아?"

"과연 그런가? 내가 보기엔 팬덤인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으로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치력을 발휘하는 남편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는 때도 있었다. 이런 열망과 몰입이 얼마 만인가. 이제 40대가 되어 필사적으로 삶의, 미래의 희망을 찾고 싶은 남편의 몸부림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나는꼼수다>의 진행자인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나는꼼수다>의 진행자인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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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냥 이번에 투표하지 마세요"


이러한 남편의 가장 큰 적은 누구인가. 이명박도 박근혜도 '조중동'도 아니었다. 우습게도 남편이 어쩌지 못하는 가장 '쎈' 적은 바로 어머님이었으니, 어머님이 어느 날 밥상머리에서 신나게 박근혜와 새누리당에게 연신 폭격을 퍼붓는 남편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리신 것이다.

"그래봤자 내가 보기엔 박근혜 쪽이 된다. 난 박근혜 팬이야. 꼭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어."
"엄마, 박근혜가 되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30년은 더 후퇴하고…."

남편의 속사포 반격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남편의 화력은 나름 막강했지만 적은 남편의 총알을 마치 슈퍼맨이 손바닥으로 총알을 막아내듯 손쉽게 막아버렸다. 묵묵부답.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밥을 맛나게 드시면서 '개야 짖어라' 하는 표정을 지으시는 데는 도리가 없는 법.

나는 속으로 은근히 '쌤통'이다 싶었다. 최근 남편의 행보는 완전히 흑백논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나나 남편, 혹은 자주 놀러오는 시누이가 머리를 맞대고 이명박 정부를 욕하고, 박정희 시대를 비판하며 정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머님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듣고 마는 편이셨다. 평소에도 정치에 별 관심없다고 말씀하셨지만, 확실한 것은 어머님이 새누리당과 박근혜를 찍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엄마. 굶던 사람들 밥 먹게 해준 거는 박정희 공이 아니고요, 그때 국민들이 한번 잘 살아보자고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그렇게 된 거예요. 다 국민들이 스스로 일궈낸 거라고요."
"그전에 딴 사람들이 대통령 할 때도 국민들은 열심히 일했어 뭘. 언제는 국민들이 열심히 일 안 했냐? 지도자가 중요한 거지."

"박정희는 완전히 왕이라니까 왕. 박근혜도 그런 걸 보고 커서 아주 독재적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도 지 아부지 밑에서 보고 배운 것도 많고 자기가 당도 잘 운영하니까 좋지 뭘. 그 뭐 안철순가 그 사람은 정치도 한 번 안 해봤다면서."

"문재인 있잖아요, 문재인."
"문재인? 그게 누구야?"

이러니 막강 화력의 남편도 할 말이 없을 수밖에. 결국 남편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렇게 주워섬겼다.

"엄마, 그냥 이번에 투표하지 마세요."

- ②편에서 계속


태그:#사는 이야기, #나꼼수, #총선,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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