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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가 건물의 반을 허물고 지나간 자리.
 산사태가 건물의 반을 허물고 지나간 자리.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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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27일 13명의 목숨을 앗아간 강원도 춘천 천전리 산사태 사고의 아픔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사건 발생 1년이 다 돼가는 지금, 산사태가 남기고 간 흔적을 말끔히 씻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때의 공포 역시 주민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산사태 발생 현장, 산자락에 건물 한 동이 현재까지 허물어진 채 방치돼 있다. 승용차 한 대가 흙더미에 쓸려 떠밀려 내려가다 현관 기둥에 받혀서 겨우 멈춰 선 상태로 남아 있다. 처참한 광경이다. 산사태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건물과 자동차 모두 부서지고 우그러들고 어느 한 곳 성한 곳이 없다.

2차 산사태가 난 지역. 처참하게 부서진 채 방치된 자동차.
 2차 산사태가 난 지역. 처참하게 부서진 채 방치된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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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들 모두 1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날,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다. 그렇게 부서지고 깨진 건물 뒤로, 산사태가 발생한 산비탈이 높이 올려다보인다. 그곳에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계곡이 형성돼 있다. 지금은 관에서 복구 작업을 끝낸 터라 그 자리에 배수로가 깔려있다.

배수로 일부는 돌로 쌓아 만들었다. 비탈이 심한 계곡에, 조경하는 데 쓰일 법한 돌로 배수로를 만든 것이 조금 불안해 보인다. 그 배수로가 나무로 울창한 숲을 산자락에서부터 산마루 부근까지 완전히 둘로 쪼개놓고 있다. 가파른 산비탈에 길게 그어진 배수로가 상처가 아물고 난 뒤의 흉터 같다.

지난해 7월, 1차 산사태가 난 지역. 산비탈 위로 배수로가 길게 지나가고 있다.
 지난해 7월, 1차 산사태가 난 지역. 산비탈 위로 배수로가 길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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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로 대다수 사망자가 발생했던 민박집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지금은 그 민박집 뒤와 옆으로 배수로가 지나가고 있다. 그 민박집은 애초 배수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지어졌던 셈이다. 연약 지반과 물이 흘러내리는 방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건물을 지은 결과, 예기치 못한 대참사를 낳았다. 그 건물 벽면에 지금도 흙탕물 자국이 선명하다. 1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다.

춘천시에 따르면, 수해복구 공사는 모두 끝났다. 그런데도 그날 이곳에서 일어난 사고의 흔적을 찾아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복구 작업은 배수로를 만드는 데 그쳤다. 그러나 그때 그 사고 탓인 충격은 사건 현장에 남은 건물들처럼 미처 다 복구가 되지 않은 상태다. 이 사건은 수해복구 작업 같은 것으로는 도저히 가릴 수 없는 속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그 사이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다.

13명 목숨 잃은 산사태, 원인규명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2011년 7월 27일에 일어난 천전리 산사태로 13명이 목숨을 잃고, 24명이 다쳤다. 사망자 중에는 26일 춘천시의 한 초등학교로 봉사 활동을 나온 인하대 대학생 10명이 포함돼 있었다. 인하대 학생들은 봉사 활동을 마친 첫날 단잠에 빠져 있다가 새벽 0시 21분에 사고를 당했다.

산사태가 발생한 마적산은 산림청이 '산사태 위험 1등급 지역'으로 지정한 곳이었다. 산사태가 일어나기 직전, 산림청은 26일 오후 9시 1시간 동안 내린 강우량을 바탕으로 27일 0시까지 3차례에 걸쳐 춘천시에 산사태 주의보를 보냈다. 하지만 이 주의보는 인하대 학생들이 잠든 민박집까지는 전달되지 않았다.

흙더미가 창문을 뚫고 침투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흙더미가 창문을 뚫고 침투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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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전리 산사태는 그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유가족과 이광준 춘천시장 사이에 원인을 규명하자는 합의는 있었지만, 춘천시가 유가족 측이 제시한 조사비용이 너무 높게 책정됐다는 이유로 예산 지원을 거부해 실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춘천시는 천전리 산사태는 '천재'이기 때문에 춘천시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춘천시는 애초 이 사건을 '인재'라고 판단한 유가족이 참여하는 조사에 적극 응할 생각이 없었다. 부모들은 춘천시가 산사태 원인이 될 수 있는 요소를 알고 있었고, 그 요소들을 미리 제거했다면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춘천시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2차 산사태가 난 지역.
 2차 산사태가 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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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천전리 산사태는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서울시가 우면산 산사태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원인 규명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이다. 원인 규명이 난항을 겪으면서 피해자 보상 문제는 협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춘천시는 애초 이 사건과 관련해 아무런 책임이 없기때문에 피해자 보상 역시 있을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피해 보상 문제는 미궁을 헤매다, 결국 춘천시가 아닌 강원도청이 개입하고 나서야 겨우 수습됐다.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춘천시장이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음이 확인됐다. 유가족들은 춘천시장과의 대화를 포기했다. 그 과정에서 유가족들이 겪은 고통이 산사태로 인한 충격 못지않게 컸다.

희생자 잊지 않기 위해 '기념사업회' 운영하는 유가족들

춘천시청 앞, 천전리 산사태의 해결을 촉구하는 유가족 1인 시위(2012년 3월).
 춘천시청 앞, 천전리 산사태의 해결을 촉구하는 유가족 1인 시위(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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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은 이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춘천시가 원인 규명은 물론이고, 피해 보상 문제 역시 거부하는 데 더 큰 상처를 입었다. 산사태가 산사태로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건이 이 상태로 참사 1주기를 맞고 있다. 유가족과 강원도청은 오는 27일, 사건 발생 1주년을 맞아 현장에서 추도식을 할 예정이다.

추도식이 사망자들의 영혼을 달래고, 유가족들이 받은 상처를 어루만지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추도식은 사망자의 넋을 기리는 일 이상으로 꽤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산사태는 천전리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춘천시가 아닌 다른 곳에도 산사태 위험 지역은 부지기수다.

천전리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사건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곳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좀 더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한다. 인하대 학생들의 유가족들은 사건 발생 이후 운영해 온 대책위원회를 '춘천봉사활동 인하대학교 희생자 기념사업회'로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희생자들을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다. 유가족들은 이 기념사업회 이름으로 '장학사업' 등을 펼칠 계획이다.

도로공사를 겸한 수해복구 공사 현장. 춘천시 산림과 관계자의 말과 달리 배수로 공사는 계속 진행중이다.
 도로공사를 겸한 수해복구 공사 현장. 춘천시 산림과 관계자의 말과 달리 배수로 공사는 계속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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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춘천시 산림과의 한 관계자는 21일, "작년 10월에 작업을 시작해 지난 5월로 천전리 산사태 지역은 복구가 100% 완료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춘천시 내 산사태 예방 대책과 관련해 "산사태 취약 지역으로 40군데를 조사했다"며 "해당 지역에 담당 공무원과 반장 등을 지정해 집중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민의 불안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산사태 사건 현장 부근에서는 지금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춘천시는 산사태가 있었던 지역을 지나가는 도로를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 중이다. 주민은 수해복구 공사를 한다면서, 이 장마철에 멀쩡한 경계석을 새로 까는 등 도로공사에 특별히 공을 들이는 춘천시에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주민은 산사태 복구공사에도 그다지 만족스러워하지 않은 기색이다. 한 주민은 "복구공사가 끝났어도 불안한 마음은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에 작년과 같은 집중호우가 내린다면 산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며 "그때는 오히려 배수로를 만드는 데 사용한 돌들이 더 큰 위험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춘천시는 천전리 산사태 복구 현장 역시 당분간 집중적으로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태그:#산사태, #천전리, #춘천, #인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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