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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구 광화문점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원장의 신간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돼 진열되어 있자, 서점을 찾은 시민들이 관심을 보이며 책을 읽고 있다.

 

지난 7월 19일 오랜 침묵을 깨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안철수의 생각 >(이하 생각)이라는 대담집을 전격적으로 출간했다. 이 책에는 안철수 자신의 정책구상과 국정철학이 담겨 있어, 정치권과 언론은 사실상 안철수가 대선출마를 선언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MB 정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함께 남북관계, 한미FTA, 용산참사, 4대강 사업 등 다양한 정치 현안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견해를 드러내고 있어, 사회 이슈에 대한 입장이 없다는 세간의 비판과 궁금증을 상당부분 해소할 것으로 보인다.

 

그 '입장'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안철수의 행보와 발언에서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호사가들에게는 약간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내 주변에는 안철수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사업가 출신이라 한미FTA를 적극적으로 찬성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안철수는 <생각>에서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무조건 자유무역협정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회의적이다. 자유무역협정을 통한 고용 창출 효과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밝혔다. 이 문제를 포함해 대부분의 이슈에 대한 '안철수의 생각'은 범야권의 목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안철수의 <생각>은 그가 확실한 '야권후보'임을 만천하에 공표했다.

 

뒤이어 7월 23일 방송된 SBS의 <힐링캠프>에 출연한 안철수는 "<생각>을 통해 국민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평가받겠다"고 밝혔다. 그 결과에 따라 대선 출마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상의 대권출마 선언(지극히 안철수적인 방식이긴 하지만)으로 보인다. 날짜를 23일에 맞춰 방송과 책 출간을 맞춘 것은 올림픽이 개막하기 전에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리려는 계산에서 비롯된 듯하다.

 

안철수 지지율의 비결  

 

안철수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는 박근혜를 이길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안철수는 왜 그렇게 지지율이 높은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이 안철수는 보수와 진보를 아우른다. 사실 이것은 안철수의 지지율이 높다는 말의 동어반복에 가깝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지 않고서는 50%에 가까운 지지율을 얻기가, 그래서 가상의 양자대결에서 박근혜와 엇비슷하거나 이기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안철수는 다자대결이든 양자대결이든 야당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문재인보다도 대략 10%p 정도 더 높은 지지율을 확보해 왔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출연한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가장 최근의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근혜-문재인 양자대결에서는 박근혜 50.8%, 문재인 41.0%, 무응답이 8.2%인 것에 비해 박근혜-안철수 양자대결에서는 박근혜 48.7%, 안철수 46.5%, 무응답 4.8%였다(<오마이뉴스>와 리서치뷰, http://bit.ly/LzsBqP). 이 결과는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되기 직전의 여론조사라 <생각>이 출간된 이후의 변화를 반영하지는 못하지만 문재인과 비교해 보면 여전히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위 여론조사 결과를 산술적으로 해석해보자면 안철수가 박근혜와의 양자대결에서 문재인보다 5.5%p 더 높은 지지율을 얻은 이유는 안철수가 박근혜에게서 2.1%(=50.8%-48.7%), 무응답에서 3.4%(=8.2%-4.8%)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전의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확실히 안철수는 문재인에 비해 보수와 진보, 그리고 무당파 층까지도 더욱 아우르는 힘이 있다. 바로 이 차이가 양자대결에서 박근혜를 이기느냐 박근혜가 이기느냐를 결정한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나는 '안철수 현상'을 볼 때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낡은 패러다임을 교체하는 과학혁명의 과정이 떠오른다.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해서 과학혁명의 과정을 설명한 사람은 토머스 쿤이었다. 그는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의 발전이 단순히 직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회혁명이 일어나듯 단절적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이 단절적인 혁명은 하나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교체됨으로써 완성된다.

 

보수-진보 구도로 설명 안 되는 '안철수 현상'

 

쿤은 경쟁하는 두 패러다임 사이에는 공유되는 가치가 전혀 없다는 이른바 '공약불가성(incommensurability)'을 주장했지만 실제 현직 과학자들은 대체로 회의적이다. 과학의 발전은 서로 배타적인 패러다임들 사이의 경쟁 속에서 하나가 선택되는 역사가 아니라 (쿤의 틀을 따르자면) 좀 더 포괄적인 패러다임이 이전의 패러다임을 확장해 온 역사에 가깝다.

 

흔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뉴턴의 고전역학을 완전히 밀어냈다고들 하지만,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물체의 속도가 광속에 비해 현저히 느리면 고전역학의 결과가 재현되며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중력이 매우 약하면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얻게 된다.

 

특히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구축할 때 이 점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였다. 일반상대성이론을 기술하는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에 뉴턴의 중력상수가 들어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뉴턴의 고전역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확장되었다고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안철수 패러다임'의 장점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박근혜로 대표되는 한국 보수의 키워드는 한마디로 성장과 안보이다. 한국 현대사는 성장과 안보를 위해 다른 모든 가치를 희생한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5.16쿠데타도 결국 안보 때문에 저지른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하지 않던가. 안보와 성장을 위해서는 다소간의 부정과 부패, 비리와 편법과 특권이 수반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보수, 혹은 이른바 '산업화 세력'의 논리였고, 우리 사회는 그것을 용인해 왔다.

 

그런 까닭에 그 정점에 있는 인물인 박정희는 여전히 인기가 높은 전직 대통령이고 박근혜는 그 적자로서 지금 대권을 목전에 두고 있다. 우연치고는 놀랍게도 박정희 시절 현장을 누볐던 산업화의 일꾼 이명박은 '도덕성보다는 능력'을 인정받아 이미 5년 전에 대권에 올랐다. 악마적 성장이냐 민주적 정체냐, 우리에게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안철수의 성공신화는 이 이분법적 구도를 완전히 깨버렸다. 말하자면 그는 한국사회에서 사악하지 않고서도 성공할 수 있음을 직접 보여주었다. 안철수의 등장으로 우리는 더 이상 소모적인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으로 이미 진입해 버렸다. 안철수의 패러다임은 이렇듯 한국 사회의 기존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포섭하면서 확장한 의미가 있다.

 

이는 기존의 진보 패러다임이 보수 패러다임과 상호배제적인 성격을 가졌던 것(혹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친 것)과 확연히 구분된다. 예컨대 진보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은 한마디로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로 요약할 수 있는데 적어도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각인된 진보의 패러다임은 "다 같이"만 강렬하게 남아 "잘 먹고 잘 살자"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은 한국 현대사가 겪었던 군사독재와 5.18 광주항쟁, 민주-반민주 대립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만약 1987년 민주항쟁이 독재 권력과 그 부역자를 완전히 심판하고 청산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아마도 지금 우리에게 좀 더 수월한 선택의 여지가 남았을 것이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는 두고두고 우리에게 부담으로 남는다.

 

지금은 민주-반민주의 대립이나, 보수-진보의 대립이 그저 낡아빠진 역사의 질곡일 뿐이다. 그 추악한 모습의 일단이 진보정당에 아직 남아 있었다는 것(물론 MB 정부에 엄청나게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은 역사의 비극이다. 이 모든 것이 아마도 시대가 던지는 과제를 그때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업보가 아닐까.

 

특전사 '코스프레' 문재인... 낡았다

 

안철수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누차 밝혀왔듯이 자신이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의 낡은 대립구도가 더 이상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즉 상호배제적 패러다임의 경쟁시대가 이미 종말을 고한 셈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포괄하는 안철수 패러다임이 뜨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왼쪽) 7월 18일 오후 강원도 철원 육군 3사단 백골부대를 방문한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 (오른쪽) 6월 24일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특전사마라톤대회에 참석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

 

따라서 안철수의 <생각>을 들여다보며 안철수가 보수냐 진보냐를 논하는 것은 지극히 무의미한 일이며 시대의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하는 처사다. 강준만 교수가 안철수 지지선언을 하면서 "증오의 시대를 끝낼 적임자"이라고 논평한 것도 이런 맥락인 것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안철수로 대변되는 '포괄적 패러다임의 시대'라는 관점으로 다시 현실을 들여다보면 문재인과 심지어 박근혜의 한계가 명확하게 보인다. 둘 다 상호배제적인 패러다임에 여전히 갇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박근혜 패러다임은 한국의 현대사를 오랜 기간 다스려온 지배적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문재인 패러다임을 압도하고 있을 뿐이다. 대세라는 박근혜의 지지율이 답보상태를 보이는 것, 특히 수도권에서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것도 그가 낡은 패러다임에서 한 치도 못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역시 그의 정체성이 노무현 패러다임에서 크게 벗어나기 힘들다. 반칙과 특권의 역사를 없애자던 노무현 패러다임은 참여정부 시절에 그 역사적 과제를 어느 정도라도 달성했어야만 했다. 어쩌면 그때가 1987년 체제를 완전히 극복할 마지막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지금은 이미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것이 당위적으로 좋으냐 나쁘냐 하는 문제를 떠나서)이다.

 

따라서 문재인이 특전사 군복을 입고 '대한민국 남성성'을 강조하는 전략은 대단히 유아적이다. 그것은 보수 패러다임을 단순히 기계적으로 흉내내는 것일 뿐 포괄적 패러다임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차라리 지금까지 보수의 전유물이자 진보의 취약점으로 인식돼 온 '안보'의 문제를 새롭게 해석하는 방법이 '특전사 코스프레'보다 훨씬 유익할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냉전적인 국가안보,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맞선 군사적 국가안보만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21세기의 국가안보는 보다 광범위하고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규정될 수밖에 없다. 아니 국가안보라는 개념 자체가 새롭게 정립되어야만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30일 저녁 부산대 경암체육관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안철수가 '사악하지 않은 성장' 혹은 '착한 성장'으로 한국사회의 지배적 패러다임을 포괄적으로 극복하고 있다면, 문재인은 재래적인 '안보'의 패러다임을 포괄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군복사진보다 훨씬 생산적이다. 예컨대 남북한의 획기적인 군축회담을 추진하는 것(미국과 중국이 보증하는)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안철수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문재인은 이번 대선에서 결코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지 못할 것이다. 노무현 패러다임을 넘어 안철수를 벤치마킹 하는 것, 지금 문재인에게는 그것이 필요하다.

 

안철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답답하다

 

포괄적 패러다임으로서의 안철수 현상은 뉴턴역학을 극복하기 시작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과학자들은 상대성이론의 실험적 증거가 나오기 한참 전부터 이 새로운 이론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아니라고 거부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의 질서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에너지가 있을 때 주변의 시공간이 휘어지고 물체는 그 휘어진 시공간을 따라 움직인다. 이 내용을 간단한 수식으로 정리한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은 물리학자들이 꼽는 가장 아름다운 방정식 가운데 하나이다. 안철수가 현실 정치인으로서 전혀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제3후보로서는 전례 없이 높은 지지율을 향유하는 것(정주영, 이인제, 정몽준, 문국현 등의 경우와 비교하면 경이로울 지경이다.)도 비슷한 맥락이다.

 

현실 정치의 논리(보수든 진보든)로 봤을 때 안철수의 이런 등장, 높은 지지율, 침묵의 행보, 애매한 입장 등등이 얼마나 합당한 것인지 과연 올바른 것인지 나로서는 지금 판단할 능력이 없다. 다만 우리가 한 개인 안철수의 등장 이면에 숨겨진 '안철수 현상'의 본질, 그리고 그 현상을 강제한 시대적 요구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기존의 정치권에도 아직 혁신의 기회는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시대를 돌아보기 전에 안철수에게만 이러쿵저러쿵하는 현실의 정치권을 보면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 그저 답답한 마음뿐이다. 결국 안철수 현상의 일차적인 원인은 기성 정치권에 있지 않은가. 이분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어느 유명한 영화의 대사 한 마디가 문득 생각난다.

 

"너나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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