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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묵엇다고 하는 초가
▲ 초가 궁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묵엇다고 하는 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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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듯하다. 시쳇말로 백 없고 돈도 없고, 거기다가 줄도 없으면, 그야말로 세상살이가 힘들어진다. 가끔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씁쓸한 때가 있다. 넓은 평수에 사는 사람들이, 임대주택의 아이들과는 한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없다고 억지를 부렸다는 소식을 접할 때 말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에 소재한 궁집. 영조의 막내딸인 화길옹주가 살던 집이다. 아마도 화길옹주가 이곳으로 시집을 왔을 때, 시비들이 이곳으로 따라왔을 것이다. 또한 능성위 구민화의 집에도 아랫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궁집 옆으로 초가가 한 채 보인다. 바로 궁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묵었다는 집이다.

남양주 평내의 옹주가 살았다는 궁집 옆에 지어진 초가
▲ 초가 남양주 평내의 옹주가 살았다는 궁집 옆에 지어진 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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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초가

하지만 궁에서 따라 나온 시비들이나, 마름 등은 이 초가에 묵었을 것으로 생각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궁집 안에도 행랑채가 있어, 마름들이나 궁에서 나온 시비들은 그곳에서 생활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살 수 없는 사람들. 아마도 그보다 신분이 낮은 머슴이나 종들이 살던 집은 아니었을까.

궁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묵었다고 전하는 이 초가는, 궁집을 지었을 때와 같은 시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 집도 250년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집이다. 이 초가는 현재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옛 고택들 중에서도 특히 초가의 경우 사람이 살지 않으면 퇴락해 버리고 만다. 이 초가 역시 많이 훼손됐다.

초가의 사랑채 중 대문의 우측에는 방을 드렸다. 많은 일꾼들이 묵을 수 있도록 한 듯
▲ 사랑 초가의 사랑채 중 대문의 우측에는 방을 드렸다. 많은 일꾼들이 묵을 수 있도록 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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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의 좌측(안에서 볼 때)에도 큰 방을 드리고 앞으로는 툇마루를 놓았다
▲ 사랑채 좌측 사랑채의 좌측(안에서 볼 때)에도 큰 방을 드리고 앞으로는 툇마루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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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륜을 알 수 있는 주변의 경관

궁집의 하인들이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초가. 주변으로는 꽤 오래 묵은 듯한 나무들이 서 있어, 이 집의 역사를 가늠할 수가 있다. 초가는 ㄷ자 형으로 되었다. 앞으로 사랑채를 놓고, 그 중간에 대문을 내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ㄴ자의 꺾인 부분에 대청을 두고, 양편으로 방과 부엌을 드렸다.

이 초가는 일반적인 초가와는 조금 다른 형태로 꾸며졌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양편에 방에 불을 때기가 편하도록 깊게 골을 파서 연결했다. 한 사람이 양편에 불을 한꺼번에 땔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아궁이의 형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안으로 들어가면 양편으로는 방을 드렸다. 아마도 초가의 사랑으로 사용한 듯하다.

대문에서 바라다 본 안채
▲ 안채 대문에서 바라다 본 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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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에 붙여지은 안체는 ㄱ 자형이다
▲ 안채 사랑채에 붙여지은 안체는 ㄱ 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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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가에 살던 사람들이 신분이 낮았으니, 아랫사람을 두고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양편의 방을 일꾼들이 사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랑의 밖으로는 툇마루를 놓아 주변 경관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다.

안채의 특이한 구성, 머슴들이 산 집이었나?

사랑채에 비해 안채는 간결하게 꾸며졌다. 사랑채에 붙여 ㄱ자로 지은 안채는 작은 방 하나를 놓고 부엌과 안방을 드렸다. 안방은 뒤로 물려 앞을 마루를 놓았으며, 꺾인 부분에는 넓은 대청을 놓았다. 그리고 건넌방을 드렸다. 이런 구조로 볼 때 이 초가에는 주로 일을 하는 머슴들 위주로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채에는 세 개의 방이 있다. ㄱ 자로 구성한 안채는 꺾인부분에 대청을 놓았다
▲ 안채 안채에는 세 개의 방이 있다. ㄱ 자로 구성한 안채는 꺾인부분에 대청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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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낸 사랑채의 안
▲ 사랑채 안 대문을 낸 사랑채의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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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볼 때는 일반적인 중부지방의 초가와 다름이 없지만, 그 집의 구성으로 볼 때는 상당히 특이한 형태인 초가. 부엌 뒤편으로는 장독을 놓았으며, 사랑채를 맞물려 안채의 뒤편으로 연결이 될 수 있도록 담장을 둘렀다.

아궁이 앞을 깊게 파서 연결을 해 한 사람이 양편에 불을 땔 수 있도록 했다
▲ 아궁이 아궁이 앞을 깊게 파서 연결을 해 한 사람이 양편에 불을 땔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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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은 사랑채에 연결하여 안채의 뒤로 돌게 만들었다
▲ 담장 담장은 사랑채에 연결하여 안채의 뒤로 돌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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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재신이나 신분에 따라 달라지는 집의 형태. 그런 집들을 돌아보면서 참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신분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지난 17일에 찾아간 남양주시 평내동의 궁집. 그곳에는 또 다른 신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기리포트와 다음 뷰에도 송고가 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잡 쓴 기사에 한해서 중복송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궁집의 하인, #남양주, #초가, #250년, #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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