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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과 정부는 반값등록금 요구를 거부한 채 지난해 등록금 부담완화를 위한 방안으로 국가장학금제도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부터 적용되는 국가장학금제도에 대해 대학생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반값등록금국민본부와 참여연대를 통해 들어온 '국가장학금 분노기와 실망기'를 게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최씨는 대출금을 갚기 위해 시험기간에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자료사진).
 최씨는 대출금을 갚기 위해 시험기간에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자료사진).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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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1학년 입학 때였다. 신입생 새로배움터(이하 새터)에서 우리학교 비리재단 문제에 대해서 듣게 된 때는. 대학 생활의 첫 시작부터 우리학교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듣게 되니 학교가 하는 일들은 모두 부정적으로 보였다. 대학교에 들어오기 전부터 고액 등록금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집회에도 나가보고 싶었지만 내가 사는 구미에서는 집회를 잘 열지 않았다. 어쨌든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이라는 곳은 앞으로 내가 가야 하는 곳이고 내 동생도 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비싼 등록금에 대해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잠깐, 우리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까지만 해도 아버지께서 대기업에서 꽤 괜찮은 직급으로 일하셨기 때문에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하지만 6학년 무렵 아버지가 갑자기 명예퇴직을 하시고, 장사를 시작하면서 형편이 점점 어려워졌다.

6학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으니 아껴 쓰는 법이 자연스럽게 몸에 뱄고,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쓰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수능이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알바 인생은 시작되었다. 두 달을 열심히 일해서 번 돈 120만 원. 어린 나이에 적지 않은 돈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상경해서 고시원을 구하려고 보니 보증금과 집세를 내기에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학교보다 편의점 가는 횟수 많아졌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면 절대로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었기 때문에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가 없었다. 그나마 학교 근처에 가장 싼 집을 구했는데 보증금이 60만 원에 월세가 38만 원이었다. 집세를 내고 나니 두 달 힘들게 하루도 빠짐없이 일해서 번 돈이 20만 원 밖에 남지 않았다.

다시 알바를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개강과 동시에 알바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낯선 서울에서 그조차 쉽지 않았다. 여러 곳에서 퇴짜를 맞고 속상해 하고 있던 차에 과 선배가 편의점 알바를 소개해줬고, 겨우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편의점 내부 모습.
 편의점 내부 모습.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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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아르바이트 시급이었지만,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내 생활비는 전적으로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의존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편의점의 노예가 되었다. 학교에 가는 횟수보다 편의점에 가는 횟수가 많았고, 평상복 입는 시간과 알바 유니폼을 입는 시간이 비슷했다. 아니 오히려 유니폼을 입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편의점은 야간에 시급을 더 주기 때문에 야간 알바를 주로 했는데, 수업과제나 공부는 거의 대부분 편의점에서 해야 했다. 일 자체가 힘들지는 않았지만, 잠을 못 자는 게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오후10시부터 오전 8시까지 일을 하는 데 다음날에 1교시가 있는 날이면 집 에 가서 씻고 준비해서 바로 수업을 들으러 가야했다.

수업도 열심히 들으려고 노력했지만 성적은 만족할 만큼 나오지 못했다. 물론 성적장학금을 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성적장학금은 대학에 들어올 때 나의 목표 중 하나였는데,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실망감이 컸다. 등록금도 학자금 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장학금을 받아야 했다.

반가웠던 '국가장학금', 고맙다고 하기엔...

슬퍼할 틈도 없이, 내가 학교에서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이 혹시라도 없을까 찾아봤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장학금이 있었다. 그런데 공지도 제대로 안 돼 있을 뿐더러 필요한 서류가 너무 많았다. 집이 지방인 난, 서류준비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자취생이 등본이나 소득증명서를 들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우여곡절 끝에 장학금을 받긴 했지만 25%정도의 장학금이었고 등록금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면서 높은 등록금에 더욱더 불만이 생기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알바하면서 고생하는 것 또한 등록금이 싸지면 해결될 것인데, 지금까지 내가 고생한 것에 분노가 치밀었다. 올해 들어서면서 우리학교는 '등록금 2% 인하와 장학금 3% 확충'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한 학기 수업일수를 16주에서 15주로 줄였다. 이 무슨 치사한 짓인가.

학생들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행위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그래 좋다. 한 주를 줄인다고 하자. 그럼 수업일수가 6.25% 줄어든 만큼 수업료도 6.25%낮춰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장학금도 말로는 3%확충이지만 3%늘려 봤자 얼마나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늘어날지 가늠하기 힘들다.

한국대학생연합 회원들이 10일 오전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 대선출마 선언식이 열리는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반값등록금 약속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대학생연합 회원들이 10일 오전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 대선출마 선언식이 열리는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반값등록금 약속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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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나 후배들과 얘기를 해봐도 가장 큰 고민은 역시 등록금과 생활비 걱정이다. 특히 자취하는 후배들이 많이 힘들어한다. 그러던 중 정부에서 발표한 국가장학금. 후배들은 좋아했다. 국가장학금을 신청한다고 난리들이었다. 물론 나도 그랬다. 국가장학금이라도 받아서 조금이라도 내 빚을 줄여보고 싶었다.

하지만 국가장학금은 고작 90만 원이고, 내 한 학기 등록금은 400만 원이다. "90만 원이라도 부담을 덜어줘서 고맙습니다~" 라고 하기에는 아르바이트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 내 삶이 너무 처량하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이조차도 못 받는 학생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복잡한 정책 결정 과정이 있었겠지만 이 비정상적으로 비싼 등록금에 고통 받는 국민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배려한다면, 이렇게 얕은 수법들로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는 그만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반값등록금국민본부와 참여연대 등은 7월 말까지 '국가장학금 분노기와 실망기'를 공모하고 있습니다. 장학금에 대한 문의나 분노기-실망기를 보내주실 분은 02-723-5303/min@pspd.org으로 연락주시거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가입해 직접 기사를 입력해주시면 됩니다.



태그:#국가장학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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