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도르프의 비너스(왼쪽)와 밀로의 비너스

발렌도르프의 비너스(왼쪽)와 밀로의 비너스 ⓒ www.encyber.com


아름다움은 존재하는가?"

이 물음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rf). 이 짜리몽땅하고 펑퍼짐한 여인의 나상을 아마 한번쯤은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깨보다 넓은 하복부에, 얼굴만 한 가슴과 허벅지. 석기시대 인류는 이런 체형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던 걸까.

아마 지금으로 치면,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탈바꿈하기 전의 김아중 정도 일 텐데. 영화 속 그녀의 인생이 변신 전후 어떻게 변했는지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의 기준이 시대에 따라 변화 한다는 주장을 이보다 극적으로 뒷받침 할 근거가 있을까.

이번엔 연대의 눈금을 조금 아래로 맞춰보자. 고대 그리스 '밀로의 비너스'(Vénus de Milo). 비록 지금의 미인 체형 보다는 풍만하지만, 우리의 심미안으로도 이런 외모가 한때 미의 표상이었단 걸 수긍하는 게 어렵진 않다. 이 두 명의 비너스는 아름다움에 관한 몇 가지 시사를 던져준다. 

'추물'이었던 서양인, 미의 기준이 되다

언젠가 가장 한국적인 미인으로 배우 김태희가 선정된 적이 있다. 하지만 과거의 사료와 도화를 종합해보면, 김태희는 '한국적'인 미인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얼굴이다. 전통적인 미인의 요체는 선이 가는 아담함이다. 작고 얇은 눈매와 눈썹, 역시 작고 도톰한 입술, 높지 않은 코. 오히려 동양에서는 커다란 눈망울엔 못된 성정이 도사리고 있다고 여겼다.

 <마이 프린세스> 일본 콘서트 중 김태희

<마이 프린세스> 일본 콘서트 중 김태희 ⓒ (주)커튼콜미디어


김태희처럼 분명하고 오뚝한 이목구비는 사실 서구적인 외모와 닮아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눈과 머릿속을 은연중에 서구적인 표준이 잠식했다는 방증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심심풀이 삼아 종종 오가는 얘기가 있다. "한국의 미녀들이 외국에 진출해도 여전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우리 눈에 예쁜 사람은 서양인들이 보기에도 예쁘다." 예컨대 아름다움 역시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문화를 불문하고 '취존'이란 얘기일 게다. 

여기에 대해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아주 예전, 동양인에게 서양인은 원래 추물이었다. 한서(漢書) 제 96권 서역(西域)전엔, 당인(唐人)들이 호인(胡人)의 푸른 눈과 붉은 털, 기괴한 용모를 보고 짐승을 떠올렸음이 기록돼 있다. 이런 거부감은 비교적 최근까지 지속되었다. 아편전쟁에서 청이 패하며, 동서양의 우열이 분명해졌고, 이후 서구적 외모에 대한 인식도 전도된 것이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 선사시대엔 다산의 상징같은 비만이 미녀의 기준이었다. 역시 동양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지만, 서구문화에 제압된 오늘, 고대 그리스의 비너스는 우리들 눈에도 낯설지 않은 것이다. 즉, 아름다움의 기준은 변하는 동시에 지배적 헤게모니에 종속된다.

성형, 아름다움을 향한 통로의 개척

과거 인간의 아름다움은 선택받은 특권이자 축복이었다. 시공마다 정해진 미의 기준, 그리고 그 기준을 충족하는 외모는 유전적 특혜의 결과였다. 소수의 미인들이 있었고, 그들은 선망과 욕망의 대상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이보다 분명히 정해진 재능의 격차가 있을까. 게다가 그 용모의 갭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좁힐 수도 없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며 아름다움의 성채는 그 문을 열기 시작했다. '성형'의 등장. 과거에는 미추가 고정된 채 분리돼 있었지만, 지금은 미의 기준에 자신을 뜯어 맞출 수 있다. 아름다움을 향한 통로가 개척된 것이다.

일종의 유사 성형까지 포함시킨다면, 성형의 연원과 갈래는 꽤 다양하다. 일본의 헤이안 시대에는 흑치(黑齒)가 미인의 조건이었다. 그래서 여인들은 치아를 검게 물들이곤 했다. 중세 유럽에선 넒은 이마를 중요시 했기에, 눈썹을 뽑아 버리는 게 유행이었다. 태국의 카렌족은 목이 긴 사람을 미녀라 여겨, 어릴 때부터 링을 차고 억지로 늘린다. 중국의 전족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듯 손쉽고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유사 성형은 차별적 위계라기보다, 전제조건이다. 즉 동일한 기준에 맞춰서 전체적인 하한선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성형은 그 범위가 방대할뿐더러, 시술 역시 정교한 높낮이를 가진다. 개인의 의지와 여건에 따라 추녀라도 우월한 여신이 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외모가 곧 경쟁력인 시대에 성형은 자신을 구원하는 동아줄이 된다. 과거의 여신들은 현실과 분리된 조형물 속에 존재했다. 당대의 예술가들이 만들어 낸 그림과 조각상. 하지만 오늘날 미의 표상들은 살아 움직이며 우리 곁을 배회한다. TV와 인터넷에선 온갖 종류의 여신들이 범람하며 종일토록 우리를 유혹한다. 아름다움은 넘쳐나는 동시에 너무도 가까이 있다.

미의 홍수는 끊임없이 우리의 신체적 결핍을 환기시킨다. 이 결핍에서 비롯된 죄의식은 곧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진다. 이따금 유출되는 '여신급 미모' 배우들의 과거사진은 내가 그들과 다를 게 없다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그리하여 돈을 모으고 시간을 빼내 수술대로 달려갈 계획을 세운다.

'헬레네'가 아닌 '성괴'의 탄생?

고대 그리스의 화가 제욱시스(Zeuxis)는 크리톤 시의 의뢰를 받고 당대 미인의 대명사, 헬레네를 그렸다. 그는 그림의 완성을 위해 다섯 명의 여인을 선발했다. 현실에서 완벽한 아름다움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각각의 처녀들이 가진 신체미를 조합해 한 명의 인물화를 완성한 것이다.

성형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 역시 제욱시스가 된다. 의뢰인의 한 몸에 김태희의 눈, 한가인의 코, 이나영의 턱, 김혜수의 가슴을 이식한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의사는 제욱시스의 재능을 소유하지 못했고, 사람의 신체는 화폭이 아니기에, 헬레네가 아닌 '성괴'가 탄생할 때도 있다.

성형비용은 견적에 따라 다르지만, 같은 부위라도 가격이 차이가 난다. 코 수술비용이 150만원에서 1000만원이라면, 코스에 따라 보형물이 달라지고 자연스러움의 정도가 좌우되는 것이다. 요즘엔 터무니없는 금리의 성형대출까지 등장했지만, 결국 돈을 많이 들이지 않을수록 '성괴'가 될 확률도 높아진다.

사람의 외모 중에서도 '얼굴'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누구도 일생토록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볼 수가 없다. 단지 거울과 사진, 영상을 통해 조명과 프레임에 왜곡된 형상을 확인할 뿐이다. 그래서 화장실 거울 속의 수려한 외모에 흐뭇해하지만, 노상의 쇼윈도 앞에선 '오징어'가 되는 굴욕감을 맛본다.

그렇기에 얼굴은 존재하지 않는다. 볼 수도, 객관적인 실체를 확인할 수도 없는 것을 과연 '존재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자신의 얼굴은 타인에 의해서만 변별되고 존재할 뿐이다. 그렇기에 얼굴은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는 얼굴에 실존과 의미를 부여해 존재하는 것으로 묶어두려 했는지도 모른다. 활짝 핀 '장미'같은 입술, '보름달' 같은 얼굴, '백옥'같은 용모. 혹은 생김새 하나하나에 성품을 연결 짓곤 했었다.

물론 지금도 관상을 얘기하거나, 이목구비를 사물에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지와 영상의 발달은 더 이상 '얼굴', 나아가 '외모'를 묘사 하는데 굳이 은유와 비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베이글녀', '동안녀', '훈녀', '얼짱'. 즉자적이고 단말마적인 표현으로도 전달과 파악이 가능하다. 그도 아니면 생김새가 비슷한 연예인을 거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즉,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과 굳이 묶어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람의 얼굴은 여타 의미와 분리된 채, 오로지 심미안적 기능을 수행한다. '얼굴' 나아가 '외모'는 전적으로 타인의 평가와 즐거움에 귀속되는 것이다. 

소녀들이 수술대 오르지 않고도 꿈 꿀 수 있기를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커질수록, 존재하지 않는 것이 실존하는 인격을 잠식해 간다. 외모는 상품과 도구가 된다. 그리고 이 '상품'의 값어치를 평가하고 구매하는 것은 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권력이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소비하는 대중일수도, 자본일수도, 미인을 얻는 것이 성공의 척도인 엄친아들일 수도 있다.

성형기술의 발달로 너도 나도 김태희, 손예진이 되려는 미인의 범람. 이 상품의 홍수 속에서 진짜와 가짜를 감별하기 위해 그들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여신'에게서 '성괴'를 솎아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과거사진은 불량 상품을 추려내는 유력한 신호가 된다.

요즘은 성형 연령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네이버 지식인에서도 성형견적을 뽑고 싶어 하는 중고생들의 질문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그녀들은 자신이 소중하기 때문에 성형을 꿈 꾼다고 얘기한다. 강요받은 콤플렉스를 없애고, 성공을 위해 수술을 하려 든다. 자기애의 홍수 속에 신체를 잘라내고, 보형물을 덧대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미스코리아 2012

미스코리아 2012 ⓒ 미스코리아 2012


얼마 전 미스코리아 대회가 있었다. 역시나 예년처럼 존재감이 전무했지만, 이번엔 미스코리아 진의 과거사진이 유출되며 입방아에 올랐다. 과거사진을 보기 전까진 역대 급 미모라 감탄하던 이들이, 180도 태도를 바꿔버렸다. 인터넷에 올라 온 각종 성토와 실소의 댓글은, 마치 과장 광고에 속아 홈쇼핑 불량상품을 배송 받은 이들의 후기를 연상시킨다. 타인의 과거를 비난하며 공정한 거래를 얘기한다.

이 사태를 마주하며 내린 결론은 오늘날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은 명확히 상품이란 것이다. 끝없이 자신의 부족함을 자책하게 만드는 미디어와 사회 속에서, 외모에 대한 죄의식은 일상화 된다. 아름다움을 타고 나지 못한 다수의 여성들은 '오크'로 남거나, 성형을 해야 하는 양자택일에 시달린다.

돈을 모으고 방학을 틈 타 어렵게 결심한 후엔, 낮지 않은 확률로 '성괴'가 될 위험에 처한다. 행여나 운 좋게 '여신'으로 거듭나도, 과거사진을 끝없이 단속해야만 한다. 나는 성형수술 자체엔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 자신의 신체를 자신의 뜻대로 변형할 자유와 권리는 역시 개인에게 속하는 것이다.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욕망 역시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누구도 그것을 비난할 수 없다. 다만, 더 이상 소녀들이 수술대에 눕지 않고도 꿈을 꿀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미스코리아2012 성형 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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