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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질 문제로 시민사회의 사퇴 압력을 받아왔던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을 청와대가 연임시키기로 내정한 가운데 지난 6월 20일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국가인권위제자리찾기 공동행동''인권단체연석회의' 회원들이 사퇴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자질 문제로 시민사회의 사퇴 압력을 받아왔던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을 청와대가 연임시키기로 내정한 가운데 지난 6월 20일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국가인권위제자리찾기 공동행동''인권단체연석회의' 회원들이 사퇴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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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四面楚歌). 사방에서 빗발치는 비난 속에 외톨이가 된 상태를 비유하는 사자성어다. 지난 6월 청와대가 연임을 확정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상황이기도 하다. 인권위 내부는 물론 정당, 시민단체, 학계까지 그의 인권위원장 연임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권위 지부는 9일 성명서를 내고 "인권위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현 위원장은 스스로 떠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대대표는 같은 날 "현 위원장이 지난 3년간 인권위를 퇴행시켰다, 그의 연임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인권단체들로 구성된 '현병철 인권위원장 연임 반대와 인권위 바로세우기 전국 긴급행동'은 11일 서울 중구 인권위 건물 앞에서 천막을 치고 노숙투쟁을 시작했다.

지난 10일에는 법학교수 및 변호사, 연구자들 396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현 위원장 연임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인권 감수성과 전문성을 지니고, 인권위의 독립성을 회복할 수 있는 인사를 임명하라"고 요구했다.

인권감수성, 전문성, 독립성. 사방에서 현 위원장의 연임을 막으려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 가지 측면에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2009년 7월 위원장으로 내정된 이후 했던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인권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모르는 게 장점"

현 위원장의 반인권적 발언들은 재임기간 논란이 됐다. 취임 직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우리나라에 아직도 여성차별이 존재하느냐"고 말해 여성계의 거센 반발을 샀다. 2010년 7월 사법연수생들과 한 간담회 자리에서는 "우리 사회는 다문화 사회가 되었어요, '깜둥이'도 같이 살고"라고 말해 곤욕을 치렀다.

이주 외국인 앞에서 민족차별적인 말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2010년 4월 재한몽골학교에 방문해 몽골 학생들을 앞에 두고 "야만족이 유럽을 200년이나 지배한 건 대단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몽골학생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해 학교 관계자는 물론 동행했던 인권이 직원이 당황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현 위원장이 취임 당시 했던 발언을 보면 알 수 있다. 위원장 내정 사실이 발표된 2009년 7월 16일.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권위 또는 인권 현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차라리 모르는 게 장점으로 작용한 것 같다."

현 위원장 내정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전문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인권 관련 연구 실적과 경험이 전혀 없어서다. 실제로 그가 교수 시절 쓴 논문 21편 중 인권 관련 주제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인터뷰에서 한 말은 스스로 전문성 결여 문제를 증명하기도 했다.

그가 재임한 3년간 불거진 가장 큰 문제는 인권위 본연의 역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동안 현 위원장은 '용산참사', < PD수첩 >, 민간인 사찰 등 현 정권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인권 문제에 의견 제출을 하지 않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단순히 안 한 게 아니다. 인권위원들이 의견제출을 안건으로 올리면 독단적인 방식으로 이를 막았다. 이 과정에서 망언 수준의 발언들이 나왔다.

인권위 직원에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 올리지 마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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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용산참사' 관련 의견제출을 두고 그가 했던 발언들이 대표적이다. 당시 인권위원들이 '용산참사' 재판에 의견을 제출하자는 안건을 전원위원회 회의에 올리려 하자, 현 위원장은 담당 조사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든 상정을 막아야 한다."

12월 28일에 열린 제24차 전원위 회의에서 분위기가 안건 가결 쪽으로 흐르자, 그는 황급히 폐회를 선언하고 나서면서 또 이렇게 말했다.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

두 발언은 지금까지 맹렬한 비난을 받고 있다.

같은 해에 열린 22차 전원위 회의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회의에 < PD수첩 > 관련 의견제출 안건이 올라왔다.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 PD수첩 >의 광우병 소 관련 보도가 존중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안건에 인권위원 5명이 찬성, 4명이 반대했다. 재적인원 6명이 찬성해야 안건이 채택될 수 있다. < PD수첩 > 안건 가결 여부는 현 위원장의 판단에 맡겼다. 그가 찬성하면 가결, 반대하면 부결이었다. 하지만 현 위원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 안건은 부결된 것으로 하겠습니다."

찬성, 반대가 아닌 '부결'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기권 혹은 반대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이에 인권위 관계자는 "본인 스스로 < PD수첩 >과 관련해 의견을 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 위원장 체제에 반대하며 인권위를 떠난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현 위원장의 취임 초기부터 그런 모습을 봤다고 회상했다.

"당시 인권정책과장이던 내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올리지 마라'고 부탁했다. 사회적 현안 관련 안건을 보고하러 온 직원에게는 '이거 안 하면 안 되나'라고 말했다. 정치적 쟁점이 된 인권 문제는 외면하고 생활밀착형 인권 문제에만 집중하려 했다. 이건 잘못됐다고 본다. 국민의 기본권에 눈 감으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연임하지 않은 적이 없다"

김 소장은 현 위원장이 간혹 상식 수준을 의심하게 하는 발언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현 위원장은 "에이즈 옮을까봐 공중목욕탕에 가기 꺼린 적도 있다"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내뱉었다.  "평생 나는 신문과 뉴스도 안 보고 산 사람이다, 청와대에서 내정 받은 뒤 KBS 9시뉴스를 보기 시작했고 <동아일보> 구독도 신청했다"는 말도 나왔다.

사면초가에 놓인 현 위원장은 자신의 연임을 어떻게 생각할까. 인권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그는 청와대의 연임 발표 직후 직원조회에서 "나는 연임하지 않는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한양대학교 교수 시절 행정대학원 원장, 사이버대학교 학장 등을 연이어 역임했다.

오는 16일, 현 위원장의 연임 여부가 사실상 결정될 인사청문회가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열린다.


태그:#현병철, #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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