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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일 제19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일 제19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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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딸."

새누리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박근혜 의원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말이다. 박 의원을 '독재자의 딸'이라는 프레임에 가둬두면 안 된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가 유력 대선 후보로 부상한 배경에는 박정희의 후광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박 의원이 차기 대통령에 가장 근접한 인물인 만큼, 그가 어떤 철학과 비전과 정책을 갖고 있는지 국민들은 당연히 알아야 한다.

경제와 복지가 가장 중요한 대선 의제가 될 것이지만, 통일외교안보 분야 역시 차기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검증 대상이다.

파탄 난 남북관계, 핵보유국 지위를 노리는 북한, G2 시대에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 그리고 최근 한일군사정보협정 파문에 이르기까지 2013년 청와대의 새 주인이 다뤄야 할 사안들은 넘쳐나고 또 중대하다.

박근혜 의원 "제주도, 하와이처럼 만들면... 새로운 성장동력될 것"

이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제주 해군기지 문제이다. 강정마을에 건설 강행되고 있는 해군기지에는 민주주의에서부터 환경과 개발, 민군관계, 한국의 전략적 위치와 선택에 이르기까지 검토하고 토론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가 국민과 국회 몰래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 및 한-미-일 3각 동맹에 편입해온 것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제주 해군기지 사업 필요성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사유는 더욱 커졌다.

그래서 필자가 일하는 평화네트워크에서는 제주 해군기지를 비롯한 통일외교안보 사안에 대한 박근혜 의원의 발언을 추적해봤다(관련 자료). 박 의원의 키워드는 '노무현', '안보', '하와이'였다. 4·11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을 자주 언급한 이유는 "왜 이제 와서 말을 바꾸느냐"며 야권의 입장 변화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주 해군기지가 국가안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도 즐겨했다.

박 의원의 발언 가운데 시선이 멈춘 부분은 바로 '하와이'였다. 그는 3월 30일 새누리당의 제주 지역 합동 연설에서 "제주도를 세계적인 관광지이면서 해군기지로 유명한 하와이 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제주도를 하와이처럼 만들면 경제와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하와이의 여러 활동가들은 박 의원의 발언을 두고 "하와이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실제로 하와이는 해군기지가 들어서면서 미국에서도 가장 물가가 높은 지역 가운데 하나로 전락했고, 또 해군기지로 인해 환경오염도 심각하다. 무엇보다도 많은 주민이 삶의 터전을 빼앗겨 지금도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제주를 미군기지로 만들려고 했던 박정희

필자가 박근혜의 '하와이' 발언을 새삼 소개한 이유는 그의 발언에서 아버지 박정희의 향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은 일본의 오키나와 반환 요구로 곤궁에 처한 미국에 대안으로 제주도에 미군 기지를 짓자고 제안했다. 1970년 2월 주한 미국대사 윌리엄 포터가 미 상원 청문회에서 밝힌 박정희와의 대화 내용을 재구성해보면 아래와 같다.

포터 : 당신은 미국이 오키나와에서 포기해야 할 것들을 대체하기 위해 남한에 새로운 해군과 공군 기지를 건설할 것을 제안하는 것인가요?
박정희 : 이 점에 관한 한 우리의 입장은 명백합니다. 오키나와가 어떻게 되든 우리는 제주도를 기꺼이 새로운 미군 기지로 제공할 것입니다.

포터 : 만일 미국이 오키나와에서 핵무기를 옮겨다 놓으면 남한은 미국의 핵무기 전진 기지가 될 텐데요.
박정희 : 만일 제주도가 미국의 군사 기지로 이용된다면 핵무기를 설치하는 것은 불가피할 수도 있습니다.

포  터 : 한국 국민이 이를 환영할까요?
박정희 : 환영하지는 않겠지만, 허용할 것입니다.

당시 박정희의 발언은 태평양 전쟁 당시 절멸의 위기를 겪었고 또한 미 군정의 방조로 수 만명이 목숨을 잃은 제주도민의 정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것이었다. 또한 반대 여론쯤이야 손쉽게 진압할 수 있다는 독재자적 풍모도 거듭 확인된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한국에 수백개의 핵무기를 배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주도에 추가 핵기지를 건설하지 않았다.

그런데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박근혜 의원은 '제주도를 하와이로 만들어야 한다'며 제주도민, 특히 강정마을 주민들의 가슴에 대못질을 하고 있다. 물론 제주 해군기지는 한국군 기지이다. 그러나 미군도 사용하고 싶으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미국의 핵무기는 아니더라도 핵추진 잠수함과 항공모함 그리고 MD 기능을 장착한 이지스함이 들락날락거릴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야기해 한국 국익에 치명적인 위험을 수반하게 될 것이라는 점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100% 대한민국" 약속한 박근혜, 강정마을 찾아가야

제주도 강정마을 주민들이 평화랑 함께 놀면서 휴가를 보낼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사진은 2007년 제주 평화축제때 촬영한 가정마을 앞 바다 모습)
 제주도 강정마을 주민들이 평화랑 함께 놀면서 휴가를 보낼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사진은 2007년 제주 평화축제때 촬영한 가정마을 앞 바다 모습)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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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박근혜 의원은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하자, "국민통합으로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모든 세대, 모든 계층 다 끌어안고 함께 가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선거기간 내내, 제 손에 담아주셨던 그 아픔과 눈물, 안타까움, 결코 잊을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박 의원의 발걸음은 강정마을에까지 미치지 못했고, 오히려 이명박 정부의 공사 강행을 적극 지지함으로써 강정마을 주민들의 울분을 자아내고 있다.

박근혜의 대선 슬로건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내'가 박근혜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의미한다면, 여기에는 마땅히 강정마을 주민들 및 이들과 연대하고 있는 수많은 국민의 꿈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들의 꿈은 소박하다. 예전처럼 평화롭고 정겨운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고 천혜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사는 것!

국가안보와 이들의 꿈을 조화롭게 발전시켜야 할 몫은 바로 정치 지도자들에게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바로 대화와 소통이고, 가장 좋은 방법은 박근혜가 강정마을을 찾아가는 것이다.

PS. 강정마을에서는 1만명 참가를 목표로 '강정평화대행진'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정욱식의 뚜벅뚜벅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자세한 내용은 http://www.gangjeong.com 에서 볼 수 있습니다.



태그:#강정마을, #제주 해군기지, #박근혜,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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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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