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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회 무대에 서는 이주노동자들은 사전에 발표를 준비할만한 장소도 없고, 공연을 준비할 시간도 넉넉지 않은 탓에 제대로 된 리허설 한 번 없이 무대에 올라갑니다. 때문에 우리 발표회는 '횟감 같은, 날 것 그대로의 싱싱한 발표회'라고 보시면 됩니다. 조금 어설프고 서툰 면이 없지 않지만, 그런 가운데 좀 더 재미를 느끼죠."

지난 8일, 매년 상하반기마다 개최하는 발표회를 두고 이은하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수석팀장이 하는 말이다. 발표회는 이은하 팀장의 말 그대로 풋풋하고, 열정이 넘치는 자리였다.

"이번 발표회는 이주노동자들을 단순하게 교육의 대상으로만, 쉽게 가르칠 수 있는 존재로서만 대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역시 그들의 시와 문화 예술 등에 대해 배워야 하고, 공유하는 것이 진정한 국제 교류협력임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자리가 되도록 준비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 자리에서 우리의 땀과 열정, 삶, 미래, 내가 가진 것 등 모든 것을 나누는 열린 자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발표회를 'Shring for all'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고된 이주노동에도 불구하고, 매주 한국어와 컴퓨터교실에서 갈고 닦은 한국어, 컴퓨터 실력을 뽐내기도 하고, 그동안 숨겨왔던 끼를 한껏 발산하는 자리인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발표회'가 올해도 어김없이 개최됐다. 그 현장으로 달려가 보자.

이주노동자 합창
▲ 합창 이주노동자 합창
ⓒ K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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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발표회(Sharing for all)는 한국어 15개 반, 컴퓨터 5개 반, 학생 200명과 이주아동·청소년 50여 명 외에도 센터 내 동아리 활동을 포함한 센터 모든 프로그램 참여자와 봉사자가 함께해 그동안 익힌 내용을 선보이는 자리로, 프로그램 참여 이주노동자 대상 시상식과 2년 이상 활동한 자원봉사자 대상 성동구청장 표창이 1부 순서로 진행됐다.

나는 몽골 사람
                                             -D. Natasgdorj

쇠똥냄새 풀풀 나는
유목민의 집에서 태어나
너르고 푸른 초원은
나의 고향, 배냇저고리
푸른 안개 몽글몽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드넓은 고향을 뿌듯한 맘으로 바라볼 때
얼굴을 쓰다듬는
초원을 가르는 바람은
엄마의 입맞춤처럼
모든 것을 품어주시는 엄마의 마음과 같아
기쁨에 겨워 날아갈 듯
가슴은 벌렁벌렁
두 눈엔 그렁그렁
눈물이 가득......

내 고향
                                       
힌티, 항가이, 셔여, 높고 아름다운 산맥이여
북으로는 깊고 우거진 숲
메닌, 샤륵, 너민, 광활한 들판이여
남으로는 바다 같은 너른 사막
여기는 내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헤를렌, 오논, 톨의 맑고 깨끗한 강
맛있는 옹달샘과 광천
훕스굴, 오브스, 보이르의 깊고 너른 호수여
사람이 마시고, 가축이 마시는 샘물이 넘치는
여기는 내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오르홍, 셀렝게, 후후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강들이여
광산 자원의 보고인 수많은 산과 들
산천은 의구한데 남은 것은
옛 도시의 유적들, 남겨진 성터
먼 곳,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탁 트인 넓고 옹골찬 길이 있는
여기는 내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몽골 시 <나는 몽골 사람>과 <내 고향>을 낭독한 엔크체첵은 시 낭송 중간 울컥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객석에 앉아있던 이들도 시가 낭송되는 동안 숙연해 했다.

"몽골에서 시낭송 회원이었을 만큼 문학 소녀였어요. 그런데 결혼이주를 하고 생활에 바빠 시를 잃고 살아왔죠. 그런데 이번 발표회를 통해 몽골에서 애송하던 시를 낭송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향수도 달래고, 몽골 문화에 대한 긍지를 가질 수 있어 너무 기뻐요."

몽골 시를 낭송하고 있는 모습
▲ 시 낭송 몽골 시를 낭송하고 있는 모습
ⓒ K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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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국어 초급반에서 공부했던 인도네시아에서 온 이맘사피아(29)는 특이하게도 <목마와 숙녀>로 유명한 박인환의 1948년도 작품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를 낭송하였다. 시는 인도네시아어로 번역되어 있었는데, 이맘사피아는 면서 자국어로 시를 낭송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뿌듯해 했다.

"대한민국과 이틀 사이를 두고 독립했던 인도네시아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가 더 많았을 시절에 인도네시아 인민을 응원했던 한 시인의 감성이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에서 되살아남을 느꼈다."

박인환의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를 낭송하는 모습
▲ 시 낭송 박인환의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를 낭송하는 모습
ⓒ K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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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한국어 기초반에서 공부했던 바트뭉크(34)는 두터운 몽골 전통 의상을 입고 <우리 아버지는 목자>라는 제목의 몽골 대중가요를 준비했다. 이 노래는 말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는데, 몽골에 있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준비했다고 한다.

몽골 노래 '나의 아버지는 목자'를 부르는 이주노동자
▲ 몽골 노래 몽골 노래 '나의 아버지는 목자'를 부르는 이주노동자
ⓒ K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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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무대에서 인도네시아 출신 쿠산토(33)는 귀국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그 동안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다양한 경험들과 귀국 후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발표했고, 캄보디아 출신 신학(31)은 센터에 와서 느낀 점들과 귀국 후 한국어 통역 일을 하고 싶다는 계획을 이야기했다.

축구동아리에서는 실내라는 특성상 네 명의 동아리 회원만이 무대에 올라왔지만, 로빈 윌리엄스의 < It's only us >의 배경음악에 맞춰 축구왕 슛돌이도 울고 갈 멋진 드리볼 솜씨를 뽐내서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 외에 합창으로 한국어 고급반 과정을 이수한 11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변진섭의 <희망사항>을, 초급반 30명이 박상철의 <무조건>을 노래하고, 또 다른 학생들은 시스타의 <쏘쿨> 댄스를 보여주었다. 컴퓨터 반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멋진 영상을 배경으로 놓고 쿨의 <해변의 여인>을 합창과 함께 열띤 댄스 무대가 있었다. 합창을 위해 무대에 올라 온 이주노동자들은 어디서 그런 흥이 났는지 궁금할 정도로 다들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박수를 치며 즐기는 모습이었다.

발표회에서 춤을 추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 이주노동자 댄스 발표회에서 춤을 추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 K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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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아동·청소년 프로그램에서는 피아노연주와 명랑하고 밝은 이주아동·청소년들 5명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에델바이스>(Edelweiss)를 노래하고, 기타 동아리에서는 한국, 미얀마, 캄보디아, 베트남 4개국 이주노동자가 모여 미얀마 노래 <밍카야오짜>를 불렀는데, 사랑하는 이를 멀리 두고 떠난 연인의 심정을 표현한 곡이라고 한다.

이날 발표회는 횟감 같은 발표회라는 말그대로, 유치원과 같은 곳에서 발표회를 할 때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응원할 때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정겨운 모습이 종종 눈에 띄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가사를 못 외울 것을 대비해서 가사가 적힌 큰지막한 판을 들고 있기도 하고, 하나하나 살피는 모습에서 풋풋한 웃음을 안겨주고 있었다.

가사에 익숙치 않은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선생님들이 가사를 적은 판을 만들어 응원하고 있는 모습
▲ 가사 지원 가사에 익숙치 않은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선생님들이 가사를 적은 판을 만들어 응원하고 있는 모습
ⓒ K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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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이라는 바쁜 일상에서도 일요일마다 공부를 하며, 서로 안면을 익혔던 이들은 오래간만에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끼를 마음껏 발산하였고, 발표회 주체처럼 그들의 삶과 꿈, 열정을 나누는 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태그:#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이주노동자, #인도네시아, #몽골 시, #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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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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