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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가 되니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 삶의 의미를 그에게서 배우고 그의 삶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내 삶을 깨닫는다. 그렇게 해마다 삶의 의미가 되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 백현기 선생님 또한 지난 해 첫 만남을 계기로 내가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한 분이었다.

지난 해 여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연초부터 온 힘을 다해 마을시집 만드는 일에 매달리고 있었다. 이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여러 난관을 하나씩하나씩 풀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모은 시 원고를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고령화 사회가 의미를 가지기 위해 어떤 삶이 되어야 할지를 함께 고민하고 있는 백현기 선생님(앞줄 가운데)과 고현석 전 곡성군수, 김화중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농민인문학 참가자들과 함께
▲ 백현기 선생님과 함께 고령화 사회가 의미를 가지기 위해 어떤 삶이 되어야 할지를 함께 고민하고 있는 백현기 선생님(앞줄 가운데)과 고현석 전 곡성군수, 김화중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농민인문학 참가자들과 함께
ⓒ 김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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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원고를 보여드린 이유는 선생님께서 한 해 뒤에 서울에서 이곳 죽곡으로 삶의 터전을 옮길 준비를 하고 계셨고, 죽곡에 오면서 출판을 해볼 생각으로 곡성군에 출판사 등록을 해두신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때 죽곡에 만들어지고 있는 은퇴자마을인 '강빛마을'에 입주할 계획과 함께 고령화사회를 어떻게 맞을지에 대해 지식인으로서 깊이 고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원고를 보신 선생님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까지 그 원고의 의미를 더 많이 읽어 주셨다. 80년대 이오덕 선생님께서 농촌 아이들과 함께 만든 시집을 읽는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하시면서, 시집이 갖는 의미를 꼼꼼하게 짚어주기도 하셨다. 그 이후 죽곡 마을시집은 선생님의 큰 도움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백현기 선생님은 우리 농민인문학 강좌의 강의까지 기꺼이 맡아주셨다. 선생님께서 2012년 여름 농민인문학 첫 강의를 한 6월 23일은 '한국의 인구가 5천만이 되는 날'이었다.

인구 5천만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이면서 인구 5천만 이상인 20-50클럽 국가가 되는 점이다. 수리적 의미에서 세계 7위 선진국가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의미는 세계 최저 출산율 상황에서 인구 5천만이 된 것이 의미하는 고령화사회의 덫이다.

두 가지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사회적 과제도 가진다. 선생님은 특히 두 번째 과제인 고령화사회를 맞는 지식인의 역할을 자신의 과제로 받아들였고, 죽곡 '강빛마을'에서 고령화사회에 대응하는 삶의 모델을 만들며 스스로 그를 실천할 계획도 가지고 계셨다. 그런 까닭에 선생님의 강의 주제는 당연히 '고령화사회에 대비한 농촌의 삶'이었다.

요즘 지하철을 타보면 '노인철'이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하루 종일 지하철을 타고 소일하시는 노인들이 많아졌다. 그 분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어쩐지 화가 잔뜩 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버이연합 같은 단체의 노인들이 보이는 분노의 모습은 시위 현장에서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주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고령화사회라는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인류 유사 이래로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 구성에서 10%를 넘어서고 지역에 따라서는 20%에 육박하는 사회가 있었던 적이 없다. 당연히 이런 사회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지혜도 없고, 그 피해를 해당 당사자들이 고스란히 겪고 있는 중이다.

거기다 출산율의 저하와 평균 연령의 상승에 따라,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2040년 정도가 되면 환갑인 60살이 중간 나이가 된다. 이게 '100세 장수시대'의 꿈이 될지, 초고령화사회의 재앙이 될지 가늠하지 못한 채 불안한 갈림길에 서 있는 게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백현기 선생님은 이런 흐름의 갈림길을 '다이내믹한 변화와 쏠림의 불균형'으로 설명했다. 한국인의 유전자에는 다이내믹한 역동성이 있다. 한국은 20-50클럽에 가입한 첫 번째 개발도상국가이다. 이것은 한국인의 역동성이 가져온 성과이면서, 동시에 지나치게 급격한 변화에 따른 쏠림의 불균형으로 나타기도 한다는 것이다.

고령화사회에 대한 이해와 대응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갖가지 노인 정책과 시설이 생겨나고 있지만 그런 노인 시설에서 행복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가장 완벽한 시설을 자랑하는 실버타운에 입주한 사람들의 노화가 더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노인들에게 맞춤형 식단과 건강에 유익한 프로그램 등 각종 취미활동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노년의 삶이 무조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건강 식단과 각종 취미 프로그램이 필요조건이 될 수는 있지만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노년에 접어들수록 자신의 삶에 의미가 있고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건강에 유익한 프로그램을 하더라도 재미가 없으면 안 되듯이 자신의 삶을 긍정하며 보람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공기 좋은 곳에서 좋은 집 짓고, 같은 계층의 동호인들끼리 모여 사는 방식이 실패하는 것도 이러한 점을 간과한 때문이다.

이제 고령화사회에서 노인들이 어떤 삶의 가치를 실현해야 의미 있는 삶이 될지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모델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런 점에서 백현기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지식인들이 힘을 모아 추진하고 있는 '강빛마을' 조성사업은 그 결과에 따라 고령화사회의 대비책에 대한 시금석이 될 수도 있다.

죽곡농민열린도서관에서 2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조성되는 '강빛마을'은 이제 기초 토목공사를 완료하고 올해 10월 안에 주택 건설이 완료되어 입주가 시작된다. '강빛마을'은 부부인 고현석(전 곡성군수), 김화중(전 보건복지부장관) 두 분이 평생에 걸친 농민운동, 지역 사회운동, 보건운동의 경험과 의지를 모아 '고령화사회 대안 삶'의 모델을 제안하기 위해 그 뜻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는 '가치 지향 실버타운'이다.

존경받는 삶을 살았던 지식인과 공무원, 교사 등이 참여하여 고령화사회의 미래를 책임감을 가지고 맞을 준비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제 돈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 책임은 외면하고 그저 노년을 편안하게 보내겠다는 계획으로 만든 실버타운은 입주자에게도 불행하고 지역사회에도 유익이 될 수 없다.

백현기 선생님은 강빛마을 건설 이후 그곳에서의 삶의 내용을 기획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으며, 현재 강빛마을 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마을 운영의 실제적인 내용을 만들어가는 데 힘쓰고 있다. 20대 젊은 시절 민청련의 기관지인 '민주화의 길'을 만들었고,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옥고를 겪기도 했으며, 한겨레신문 창립 멤버로 들어가 17년간 언론인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현재는 취약계층 영유아 복지·교육을 목표로 설립된 한솔교육희망재단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20대 이후 사회운동에 투척하면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평생을 바쳐온 언론인이 이제 마지막 삶의 과제로 맞이하고 있는 농촌마을에서의 새로운 삶은 어떤 모습일까. 전남 곡성에서도 외진 산골 마을인 죽곡에서 죽곡농민열린도서관의 문화활동과 강빛마을의 고령화사회 시대정신이 만나 새로운 삶의 내용이 만들어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농민인문학 강좌는 6월 30일 토요일 오후 2시 안도현 시인이 강의한다.


태그:#농민인문학, #강빛마을, #죽곡농민열린도서관, #백현기, #고령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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