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미군 수사관이 현장에서 촬영한 고 김훈 중위의 시신. 좌측 상단 청바지 차림의 미군 수사관 다리가 보이고 김 중위의 양손에는 화약 잔재를 채취하기 위해 봉투가 끼워져 있다. (유족의 양해를 얻어 김 중위의 사진을 공개합니다)
▲ 미군 수사관이 현장에서 촬영한 고 김훈 중위의 시신 미군 수사관이 현장에서 촬영한 고 김훈 중위의 시신. 좌측 상단 청바지 차림의 미군 수사관 다리가 보이고 김 중위의 양손에는 화약 잔재를 채취하기 위해 봉투가 끼워져 있다. (유족의 양해를 얻어 김 중위의 사진을 공개합니다)
ⓒ 김척

관련사진보기


얼마 전 독자 한 분이 쪽지를 보냈습니다. 왜 김훈 중위 사건에 그렇게 집착을 하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방부에서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결론을 고수하는 데는 다 그만한 근거가 있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14년 전 일어났던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는 이유에 대해 말씀 드려볼까 합니다.

잘 아시는 대로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씨는 육군 중장으로 군문을 떠난 예비역 장성입니다. 그는 아들이 숨지기 불과 석 달 전까지 군에 몸을 담고 있었습니다. 김척씨는 저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식을 군에 보냈다가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었던 이 땅의 수많은 군의문사 가족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3성 장군의 아들이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다른 가족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반드시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훈이 죽음의 진상을 밝혀내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대부분의 건강한 청년들이 군복을 입어야 하는 이 땅에서는 아직도 한해 100명이 훨씬 넘는 군인들이 병영에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고나 자살로 인한 사망자도 포함되어 있지만 유족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군 당국의 수사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며 의문사로 규정한 사건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죠. 이런 의미에서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은 우리 군의 인권 수준을 나타내주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국회와 대법원, 군 의문사위원회가 김훈 중위의 사인에 대해 "적어도 자살은 아니다"란 결론을 내렸음에도 국방부는 줄기차게 자살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과학 근거도 이들 앞에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밝혀진 사실은 이런 국방부의 당당함이 오만과 독선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군 또한 사인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점에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김 중위 사인 오리무중, 한국군과 미군 공동 책임

고 김훈 중위
 고 김훈 중위
ⓒ 김척

관련사진보기

잠시 시간을 14년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1998년 2월 24일 정오 무렵 김훈 중위는 판문점 인근 비무장지대 241GP(관측소)의 한 벙커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당일 오후 3시 30분에 미군 CID(범죄수사대) 소속 수사관 4명은 현장 감식을 실시하고 현장에서 발견된 M9 베레타 권총과 탄피, 전투모, 사망한 김 중위의 손을 면봉으로 닦아낸 시료 등 유류품들을 수거하죠. 이렇게 채취된 시료는 김 중위가 사망 당시 입고 있던 야전상의와 함께 미 육군 범죄수사연구소로 보내집니다.

이후 미군 군의관은 김훈 중위의 시신을 캠프 보니파스 내의 대대 의무실로 후송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하죠. 미군 군의관이 김훈 중위의 시신에서 총알이 들어간 오른쪽 관자놀이 부위를 깨끗이 닦아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총기 사망사건의 경우 총알이 들어간 사입구 주변의 매연(화약으로 인한) 여부와 크기는 총이 어느 정도 거리에서 발사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즉 총구를 피부에 꽉 밀착해서 쏘는 밀착접사의 경우 화약흔은 피부 표면에 남지 않고 모두 총알이 지나간 인체 조직 내부에서 시꺼멓게 나타나게 됩니다. 반대로 총구와 피부가 어느 정도 떨어진 상태에서 발사된 근접사의 경우는 사입구 주변으로 시꺼먼 매연이 흡착되고 총알이 지나간 인체 조직 내부는 깨끗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밀착접사냐 근접사냐가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가릴 수 있는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수거된 M9 베레타 권총은 무게가 1.145kg에 길이는 21.7cm인 비교적 큰 권총입니다. 이 큰 권총을 이용하여 자살을 하려면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구를 꼭 붙이고 방아쇠를 당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자살자의 심리를 보여주는 것으로 자살하려는 사람이라면 끔찍한 고통을 두 번 겪고 싶지 않기에 확실하게 단 한 발로 목숨을 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대형 권총인 M9베레타를 이용해 자살을 하려면 총구를 관자놀이에 꽉 붙이고 쏠 수 밖에 없고, 그것은 밀착접사의 특징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김 중위의 오른쪽 관자놀이를 찍은 사진에는 총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발사되었음을 의미하는 매연이 사입구를 중심으로 둥글게 부착되어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있었죠. 이 흔적을 미군 군의관이 깨끗이 닦아버린 것입니다. 총기 사고가 한국보다 월등히 많은 미국인 만큼  미 군의관이 사인규명에 큰 영향을 미칠 총상부위의 상태를 왜 변형했는지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입니다.

또 이렇게 '변형된' 시신을 국군 수도통합병원으로 이송해 한국군 부검 군의관이 부검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죠. 김 중위의 시신을 부검한 한국군 군의관은 시신 상태가 변형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성급하게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려 버린 겁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CID 수사

행복했던 김훈 중위 가족. 1998년 2월 24일, 그날 이후 이 가정의 행복한 일상은 사라졌다.
▲ 김훈 중위 가족의 일상 행복했던 김훈 중위 가족. 1998년 2월 24일, 그날 이후 이 가정의 행복한 일상은 사라졌다.
ⓒ 고상만

관련사진보기


1998년 4월 29일, 주한미군 범죄수사대장 워잭 중령은 "한국군 부검 군의관이 자살소견을 보내와 이를 참고해 수사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합니다. 워잭 중령은 이런 결론을 내린 근거로 현장에서 발견된 권총이 김훈 중위에게 지급된 개인 화기였고, 김 중위 시신에서 권총 자살자의 전형적인 특징인 밀착접사의 흔적인 총구 누름자국이 나타났으며, 머리에 바짝 대고 쏘았기 때문에 두개강이 소음기 역할을 해 총성이 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한국군 주도로 진행된 2차 수사 결과 워잭 중령의 발표 내용이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죠. 즉, 현장에서 발견된 권총은 김훈 중위의 것이 아니었으며, 밀착접사의 증거라던 총구 누름자국이 김 중위의 시신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또 인근 GP 근무자들이 김 중위 사망 추정 시간에 총성을 들었다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2차 조사를 담당했던 육군 고등검찰부가 내린 결론은 '김훈 중위 시신에 남겨진 흔적은 (권총자살의 유력한 증거인) 밀착접사가 아니고 근접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론은 이후 국방부 특별 합동조사단(아래 특조단)의 3차 조사에서 다시 뒤집힙니다. 1999년 1월 15일 국방부 특조단은 자신들이 주최한 법의학토론회에서 미 국방부 사체감식관 제리 더글러스 스펜서 박사가 작성한 소견서를 자살의 또 다른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이 소견서를 요약하면 "김 중위 시신의 사입구에 총구 누름자국이 있는 것은 밀착접사로 그가 자살했음을 입증한다. (중략) M9 베레타 같은 반자동 권총은 일반적으로 발사자의 손에 뇌관화약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김 중위 오른손에서도 화약흔이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입니다.

미국 수사기관 자료와는 전혀 다른 스펜서의 자살 소견

그런데 스펜서 박사의 이런 소견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2차 조사를 담당한 육군 고등검찰부가 이미 김훈 중위의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구 누름자국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스펜서 박사에게 김훈 중위 사체와 관련된 정보를 전달한 것이 초동수사 결과를 발표했던 미군 CID라는 것을 감안하면 스펜서 박사가 잘못된 정보에 근거해서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스펜서 박사의 소견서를 꼼꼼히 살펴보면 의문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는 "일반적으로 반자동 권총은 발사자 손에 뇌관화약 성분이 남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지만, 이는 미국의 여러 수사기관에서 시험한 결과와는 전혀 다릅니다. 총기 소지가 자유로워서 총기 관련 사망 사건이 많은 미국의 특성상 총기발사자의 손에서 발견되는 뇌관화약 성분에 대한 자료는 풍부하게 축적되어 있습니다.

콜로라도주 덴버 경찰청 홈페이지를 한 번 볼까요. 이곳에는 김훈 중위 사망 사건에 사용된 M9 베레타 같은 반자동 권총을 발사한 경우에는 방아쇠를 당긴 손 바륨과 안티몬, 납 등 뇌관화약 성분이 다량 부착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덴버 경찰청뿐만 아니라 제가 입수한 미국 범죄수사학 교과서(Advanced Forensic Criminal Defense Investigations)에도 "반자동 권총은 발사시에 손에 뇌관화약 잔재물이 부착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스펜서 박사의 견해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무엇보다 스펜서 박사는 자신이 내린 이런 결론에 대해 그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견서에 그저 "경험칙상"이라는 애매한 단어를 쓰고 있을 뿐이죠. 그가 왜 명백한 자료를 부정하면서 일반적으로 반자동 권총에서는 뇌관화약 성분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소견서를 보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김훈 중위 유족은 스펜서 박사가 왜 이런 소견을 냈는지 알기 위해 몇 년 동안 그의 행방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습니다. 얼마 전 유족은 스펜서 박사와 관련한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바로 스펜서 박사의 도덕성과 관련된 중요한 사실이었죠.

자살 소견 보낸 미국 법의학자는 비윤리적 행위로 파면

스펜서 박사의 해고 사실을 보도한 2003년 10월 7일자 <러벅 온라인>
 스펜서 박사의 해고 사실을 보도한 2003년 10월 7일자 <러벅 온라인>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1999년 국방부 특조단에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소견서를 보낸 스펜서 박사는 그해 미 국방부를 떠나 텍사스 공과대학 병리학 교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는 같은 기간 텍사스주 러벅 카운티의 법의학 검시관으로도 활동했는데, 지난 2003년 10월 검시관 직에서 해임당하고 맙니다. 동시에 텍사스 공대에서도 쫓겨났는데요, 그 이유는 현지 신문 보도를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2003년 10월 7일자 텍사스주 <러벅 온라인>과 <아마릴로 뉴스>는 스펜서 박사의 비윤리적 부검 행위와 이로 인한 해고를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기사를 요약하면 스펜서 박사는 여성 사체를 부검하면서 유방확대 수술에 사용된 가슴성형 보조물과 질 내 피임기구를 무단으로 척출·제거함으로써 사인 규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윤리적 행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왜 이런 행위를 했는지는 기사에 나와 있지 않지만 해고 사유가 될 정도의 무거운 불법 행위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스펜서 박사는 1999년 12월 1일 <아마릴로 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과거 자신이 사인을 잘못 판정한 사실을 고백했다.
 스펜서 박사는 1999년 12월 1일 <아마릴로 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과거 자신이 사인을 잘못 판정한 사실을 고백했다.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스펜서 박사는 또 1999년 12월 1일 <아마릴로 뉴스>와 한 또 다른 인터뷰에서 과거 자신이 자살이었다는 소견을 낸 여성이 사실은 타살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부검 당시 타살로 확실시되는 상처가 있었지만 사건의 스토리 흐름에 부합하지 않는 것 같아 검찰 신문 과정에서 검찰 측 반대신문에 나가 자살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그 사실을 후회한다. 나에게 다시 그 사건을 판정하라고 한다면 타살이라고 하겠다"는 것이 당시 그의 고백이었습니다.

국방부가 자살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세우고 있는 몇 안 되는 증거가 이런 사람이 작성한 것이라면 과연 거기에 수긍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자살과 배치되는 수많은 과학 증거들에는 애써 눈을 감는 국방부에 차라리 연민이 느껴지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태그:#김훈 중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