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일시 및 장소 : 2012년 6월 19일 저녁 7시 반, 홍대 <까페더웨이>
- 대담자 및 주제 : 이택광, 고은태가 말하는 불통과 소통 (진행 : 더체인지 하승창)

현재 우리는 최첨단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와 인터넷, 스마트폰, SNS 등 플랫폼과 도구의 발달로 그 어느 때보다 소통이 더 편리해졌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통이 잘 안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상하로, 좌우로 빈부 간으로 단절과 갈등, 혼란은 점점 커져 이른바 '불통사회'로 치닫고 있는 지금, 토론불가 트위터 밖에서 진영논리와 열심히 싸우고 있는 '전사' 두 분을 모시고 얘기 나눴습니다.

우리 시대 대표적 피플페서, 문화평론가 이택광 교수님과 국제엠네스티 집행위원 고은태 교수님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블로그·트위터 등을 통해 정치·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담론을 생성하며 논쟁을 주도하고 있는 고수 두 분과 함께 우리 사회 불통의 원인과 그 해법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대담을 나누고 있는 모습.
 대담을 나누고 있는 모습.
ⓒ 이차령

관련사진보기


하승창 : "두 분은 최근 진중권 교수님을 비롯한 진보 논객들과 함께 '리트머스'라는 토론 팀블로그에서 활동하시는데요, 새로운 담론 공간에 참여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고은태 : "선호 위주로 흐르는 지금의 사회에서 옳고 그름을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지금을 전 좋고 나쁨의 시대, 즉 선호와 욕망이 지배하는 시대라고 보는데요. 난 쟤가 좋아, 난 쟤가 싫어, 그러면 사실 소통의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다는 문제인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이택광 : "공론의 장이라든가 민주주의적 토론 문화의 측면으로 봤을 때 최근 상당히 우려스러운 현상들이 많이 벌어졌죠. 자기편에 불리한 이야기를 하는 상대방의 입을 막으려고 한다든가 다른 이견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이버 린치를 가한다든가 이런 일들이요. 트위터의 140자 한계나 문제 같은 것들로 봤을 때 트위터만으로는 되지 않고 다른 방식의 토론의 장, 좀 더 긴 글을 쓸 수 있는, 쉽게 말해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리트머스는 바로 그런 취지에서 만들어졌죠."

하승창 : "양방향 소통도구로 트위터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소통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말씀이신데, 그렇다면 트위터의 문제는 무엇이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고은태 : "트위터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속보성이죠.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사람과 사람을 점핑해서 만날 수 있고요. 옛날에는 보통 누군가를 만날 때는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 받고 했는데, 트위터는 중간 매개자 없이도 시공을 초월해서 알 수 있단 말이죠. 그런 식의 대화에 있어서 강점도 분명히 있지만 단점도 있죠. 제가 요새 많이 느끼는 건데, 트위터의 눈에 띄는 특성이 뭐냐 하면, 굉장히 감성적이라는 거예요. 상대방에게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는 측면도 있지만 그것이 분명히 공공의 대화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걸 사적으로 받아들여요. 그러니까 사람 사귀기에는 아주 좋아요. 공감을 끌어내기에도 정말 좋은 매체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그게 감정의 문제로 흐를 수 있다는 게 문제죠. 140자짜리 한두 개만 딱 보고도 '저 놈은 미워', '저 놈은 싫어', 아주 극단적인 감정들까지 불러일으키기도 하니까요."

이택광 : "트위터 내에서는 이게 좋으냐 안 좋으냐의 호불호의 관점이 작동한다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판단들 자체가 굉장히 윤리적인 판단이 돼 버려요. 쉽게 말해 좋은 놈, 나쁜 놈 이렇게 나뉘어져 버리고, 어떤 사안에서도 좋은 것, 나쁜 것 이렇게 선이 그어진다는 거죠. 즉, 더 이상의 토론이 개입되지 않는 거죠. 제가 생각했을 때 사람들이 트위터를 하는 이유는 감성적인 위로를 받기 위한 것이에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구나 하고 소속감을 느끼는 거예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와 모여가지고 어쨌든 한 명을 까든지, 한 명을 칭찬하던지, 어떻게 보면 팬덤 같은 거죠. 소통이 되는 사람들끼리는 트위터가 소통의 강력한 도구가 되지만 그 소통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배타적인 분위기가 형성이 되는 거죠."

고은태 : "사실 트위터의 강점은 뭐니 뭐니 해도 평소에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거죠. 트위터는 근본적으로는 1대 다의 관계예요. 모든 사람이 1대 다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데 그게 집단적 소통이라 하기도 어렵고, 1대 1의 소통도 아니면서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재편되어 있다고 착각에 빠지기 쉽다는 거죠. 트위터의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존재하고 재편되어 있으니까요. 예컨대 나는 A라는 정치인을 지지하는데, 우리 회사에선 아무도 지지 안 해요. 그런데 트위터에선 내 주변의 100명이 다 A를 지지하는 거예요. 그럼 환장하는 거죠. 이성이라든가 논리보다는 감성으로 맺어진 돈독한 관계라고 할까요."

이택광 : "트위터는 또, 굉장히 휘발성이 강하죠.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집중력도 강하구요. 따지고 보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들어와서 한꺼번에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면 전혀 축적이 되지 않는 게 트위터의 특징이에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올린 트위터를 캡쳐를 해가지고 블로그에 올린다거나 그런 식으로 저장을 시켜요. 그런데 사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트위터 본래의 휘발적 속성에 대한 피로감이라고도 볼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트위터에선 진지한 얘기를 하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주 가벼운 이야기 또는 140자 내에 아주 축약적인 마치 광고의 카피 같은 그런 것들을 던져주기를 바라는 거죠."

"트위터는 개인들이 언론사 된 것... 휘발성 강하지만 집중력도 강해"

대담을 하고 있는 고은태 교수의 모습.
 대담을 하고 있는 고은태 교수의 모습.
ⓒ 이차령

관련사진보기

하승창 : "정보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트위터를 비롯한 SNS가 효과적인 소통의 도구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보완되고 강화되어야 할까요?"

이택광 : "<제3의 물결>에서 앨빈 토플러가 앞으로의 뉴스는 쏘아주는 뉴스가 될 거라고 얘기했죠, 언론사들이 쏘아주는 걸 받아보는 뉴스가 될 거라고요. 트위터는 말 그대로 개인들이 다 언론사가 된 거예요. 내가 추천하는 정보, 내가 읽은 기사 중에 굉장히 좋은 기사였다, 내가 읽은 책 중에 굉장히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이런 게 사실은 다 언론의 게이트키핑(뉴스 및 정보의 취사선택) 기능이거든요. 그러니까 옛날에 언론사 편집국이 했던 기능을 이제는 그 수많은 개인들이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게 제가 봤을 때 트위터의 가장 큰 장점이고, 트위터에 구현되어 있는, 굳이 말한다면 민주주의 속성이라는 거죠."

고은태 : "140자 평등주의 안에서 속된 말로 맞짱 뜰 수 있달까요, 그게 누구든 말이죠. 전파력은 차이가 있지만 이 사람에게도 저 사람에게도 보낼 수가 있어요, 네 의견에 반대한다고. 사실 평소에는 그럴 기회가 없잖아요. 그런데 트위터에서는 상대방의 답이야 있건 없건 간에 막 던져볼 수 있고, 괴롭힐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각자의 무대에서 싸우는 콜로세움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또 하나 생각해볼 문제는 트위터가 편향되어 있다는 거죠. 우파는 담론을 만들어내고 메시지의 생산기능을 가진 사람이 없을까요? 아마 있을 거예요. 근데 우파는 시간이 나면 이런 거 안 해요. 돈을 벌지. (이택광: 친구를 사귀든지) 그러다보니 당연히 트위터 내의 담론의 질과 양에서 차이가 있고 한쪽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하승창 : "'쏘아주는 뉴스'로써 나꼼수는 새로운 미디어 형태를 구축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대중이 열광한 나꼼수 현상을 두 분은 어떤 시각으로 보셨는지요?"

고은태 : "나꼼수는 두 가지 측면에서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첫 번째는 그야말로 이 시대가 필요한 테크놀로지를 제대로 이용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앉아서 글을 읽을 수 없는 사회, 혹은 책을 읽지 못하는 사회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이동 중에도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즉 소비하기 좋은 테크놀로지를 통해 아주 파괴력 있게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거죠. 두 번째는 소위 구진보로 일컬어지는 이들이 반성해야 할 문제인데요, 맨날 공자왈 맹자왈 이러면 당연히 재미없거든요. 사람들한테 더 이상 매력어필 할 수가 없죠. 그런데 나꼼수는 메시지에 매력을, 스타일을 얹을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공감의 양식으로 메시지를 표현할 줄 알았다고 할까요." 

이택광 : "지금 현재 우리 삶의 패턴이라는 게 굉장히 흐르는 삶이 됐어요. 유동적 삶이 됐다는 거죠. 그러니까 본방사수가 안 되고 TV같은 것도 IPTV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사실 IPTV가 팟캐스트와 같은 거죠, 언제든지 다운받아서 볼 수 있는…. 문화양식이 소비되는 패턴이 바뀌었다는 거예요. 거기에 나꼼수가 일찍 눈을 떴다는 사실은 굉장히 중요해요. 다른 팟캐스트들도 있었는데 왜 유독 나꼼수였느냐 하면 그 차이는 바로 메시지를 스타일로 만들었다는 거죠. '쫄지마 ○○' 같이 적절한 수사학을 써 가지고 메시지를 굉장히 재미있는 형식으로 전달했어요. 그런 실험적인 스타일이 현재의 분위기와 맞아 떨어졌던 거죠. 거기에 트위터를 통한 파급 효과도 폭발적이었고요. 앞으로도 이런 식의 감수성에 대한 코드가 맞는다면 제2, 제3의 나꼼수도 계속 나올 수 있다고 봐요."

하승창 : "요즘 유행하는 토크콘서트를 보더라도 기존의 권위주의적인 모습과 일방적 내용 전달에서 벗어나 청중과 진행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소통을 이어나가는 게 특징이죠."

고은태 : "한국 사람들은 스펙터클에 대한 열망이 있어요. 즉, 자기들이 만드는 스펙터클요. 2002년도 월드컵 경기 때 시청 앞 광장에 몇백만 명이 모인 그 원인이 뭐냐고 생각을 해본다면, 물론 첫 번째 원인으로는 축구를 응원하러 갔을테고, 두 번째로는 옆 사람과 공감을 느끼러 나갔겠죠. 그런데 전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뭔가를 보여주자', 거기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고 봐요. 약소국과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항상 억눌려왔던 대중의 욕망이 분출한거죠. 멋지고 드라마틱한 것들을 보며 단순히 공감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걸 키워서 웅장한 것을 만들어내겠어' 하는 생각들이 있었던 거죠. 자신들의 지지를 결집해서 창조하는 것, 즉 대중이 스펙터클을 연출하는 거예요. 1987년 6월 항쟁에서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 2002 월드컵, 나꼼수에 이르기까지 성공한 모든 기획들이 그랬다고 생각해요."

이택광 : "심리학에서 '피어 프레셔 Peer Pressure'라는 말이 있어요. 동료집단으로부터 받는 사회적 압력을 뜻하는데요. 서로 쳐다보면서 압력을 가하는 거죠. 그러니까 쾌락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거울상이에요. 내가 친구나 다른 이들과 뭔가 함께 할 때 굉장히 즐거워지죠. 왜냐하면 서로서로가 거울이 되기 때문에 서로 비춰주는 거예요. 월드컵 때 시청 앞 광장의 스크린은 굉장히 상징적이에요. 거기에서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쾌락의 스펙터클을 보게 된 거예요. 서로를 보는 것도 있지만 거기에 내가 주인공으로 재현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런 점에서 블로그라든가 인터넷 문화 역시 마찬가지로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인 셈이죠. 지금 가장 극상에 있는 것이 트위터예요. 실시간으로 재현해주는 동영상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작은 손거울들이 모여서 모자이크를 만든 거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굉장히 민주적인 측면도 있지만 사실 뒤집어서 보면 파시즘이 될 수도 있어요. 전 나꼼수 현상도 그런 부분이 있었다고 봐요. 키 하나를 잘못 돌리면 전혀 다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거죠."

"불통을 극복하는 건 결국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희망"

대담을 하고 있는 이택광 교수의 모습.
 대담을 하고 있는 이택광 교수의 모습.
ⓒ 이차령

관련사진보기

하승창 : "현재 우리 사회 소통의 특징과 불통의 원인에 대해 어떤 진단과 전망을 내리시는지요?"

이택광 : "전 2002년 월드컵이 지금과 같은 소통 형식들의 기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걸 전 월드컵 주체라고 부르는데요, 그들은 각자가 관객으로 참여합니다. 역사의 주체는 아니에요. 역사의 주체는 그 플레이를 뛰는 사람들이죠. 이런 극장의 구조에서 대중이 관객으로 머물지 않고 직접 뛰어들 때 그게 정말 정치입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 한국 관객들은 무대 위로 뛰어오르진 않았어요. 정당정치가 어떻게 보면 무대라고 할 수 있는데요, 관객들은 배우에게 연기를 잘하라고 요구하며 아직까지 기대하는 거죠. 그들은 자기에게 승리감을 주지 않는 후보는 절대 선택하지 않아요. 다시 말하면, 지금 이 사람을 뽑음으로써 스펙터클을 만들어내고 승리감을 느끼게 만들 수 있느냐 그런 거죠. '쾌락은 평등하다'라고 생각하는 이 월드컵 주체들에게 정치인이나 지식인의 토크콘서트도 똑같이 월드컵 상황을 옮겨놓은 것이지요. 열심히 플레이를 해봐라, 우리는 감동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죠. 그 앞에선 얼마나 플레이를 잘해줄 것인가가 핵심이에요. 지금 현재 한국 사회의 소통 구조는 이런 극장 구조라고 전 생각합니다."

고은태 : "옛날하고 다른 것은 수동적인 관객이 아니라 콜로세움에 있는 관객이지만 저 검투사를 죽여라, 살려라를 결정할 수 있는 관객이라는 거죠, 지금의 대중은. 전 한국 사회 소통에는 3가지 특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표리부동이에요. 사실, 한국처럼 겉과 속이 다른 사회는 없을 거예요. 적어도 공적인 공간, 공개된 공간에선 완벽하게 옳은 말, 도덕적 말만 해요. 솔직해지지 못하는 거, 이게 바로 소통의 발목 잡는 거거든요. 두 번째로는 다른 것에 대한 혐오와 증오. 나와 다른 것은 무조건 때려눕히려고 하죠. 세 번째는 공과 사의 차이라고 할까요. 공인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방귀도 뀌면 안 돼요, 그에 반해 나는 일반인이기 때문에 뭘 해도 된다는 그런 비대칭적인 사고가 있어요. 이런 것들 세 개가 합쳐져서 우리 사회가 소통이 안 되는 거죠. 이 세 가지의 핵심은 진부하게 얘기하면 봉건주의,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집단주의, 우리주의인 셈이죠. 개인이 강해진 것 같지만 사실 굉장히 약해졌다고 볼 수 있어요."

이택광 : "고은태 선생님은 개인이 약해졌다 하셨는데, 전 개인이 획일화된 거라고 봅니다. 개인의 특이성을 수용하는 방식들이 약해진 거죠. 그러니까 괴짜나 특이함은 다 배제를 시켜버리는 거예요. 얘가 나를 괴롭힌다 생각되면 없애버리는 거죠. 전 이걸 굉장히 중요한 문화적 반전이라고 봅니다. 무슨 말이냐면요, 스펙터클에서 쾌락을 주지 않는 스펙터클을 제거시켜 버린다는 거예요. 한국 사회에서 평등주의라는 것은 소비주의가 제공하는 평등주의예요. 즉 시장에 의해 부여받은 평등주의인데요, 이게 개성을 배제하고, 개성적인 사람들을 추방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검투사를 보기 위해 돈이나 대가를 지불했다고 보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검투사를 평가하는 입장이 되는 거예요. 이게 자신에게 적용이 되면 참을 수가 없지만 타인에게 적용하는 것은 룰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요."

하승창 : "우리 사회가 원활히 소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혹은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택광 : "소비주의가 삶의 중심에 놓여 있는 한국에선 무엇을 입고 쓰는가로 사람의 내면까지 평가합니다. 타인에 대해 신경 쓰며, 타인에게 나를 알아봐달라고 요구하는 게 소비주의가 만들어놓은 소통의 코드인 셈이죠. 그 안에선 호불호가 갈리는데요. 얘는 우리하고 같은 놈이네, 얘는 우리하고 다른 놈이네 그러면서 좋고 나쁘고로 가버린다는 거죠. 전 이런 소통들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바꿔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자꾸 딴지 논리를 걸면서요. 우리가 하고 있는 소통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불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말이죠.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을 보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침팬지 시저가 진화를 해가지고 인간의 명령엔 "노(No)!"라고 말하며 거절할 때잖아요. 그 순간 사람들이 깜짝 놀라죠. 그때부터 '얘는 뭐지?'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하고요. 그 "노(No)!"라고 할 수 있는 불통의 코드 혹은 실천지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용기와 노(No)라고 말했을 때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성찰의 자세도 물론 있어야하겠죠."

고은태 : "결국 불통을 극복하는 건 개인으로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권력은 어떤 의미에서는 대중에게 이미 넘어갔어요. 그게 진정한 권력이든 아니든 그걸 떠나서 어쨌든 선택하는 건 대중이니까요. 희망버스도 그렇고, 강정마을도 그렇고 전 이런 데서 희망의 싹을 발견했어요. 개인이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 발로 뛰고 서로 힘을 모아 연대하고…. 분쟁과 불통의 현장에서 주체적으로 직접 움직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의 힘을 앞으로도 더 기대합니다.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이 희망인 것 같아요."

말 잘하고, 글 잘 쓰고, 사회참여도 열심히 하는 진정 쌍방향 소통을 실천하고 계신 두 분을 모시고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서로의 입장만 내세우는 정치권을 비롯해서 다름에 대한 관용이 없는 문화 현상에 이르기까지 불통의 다양한 원인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았습니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군요, 혹시 나는 내 편, 네 편을 갈라놓고 나와 다른 편엔 공격적이진 않은지? 주변의 시선과 눈치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진 않은지. 소통이 절실한 시대, 우리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벽은 사회구조나 다른 사람이 아닌 어쩌면 우리 자신에게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가끔은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의 초상을 돌아보는 게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면상 대담의 주요 부분만을 요약·발췌한 글로, 원문은 씽크카페컨퍼런스@대화2012가 끝난 후 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씽크카페(thinkcafe.org)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태그:#씽크카페, #고은태, #이택광, #불통, #소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