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3월 22일 강서구 모 부대에서 실시된 사격 시험 장면
 지난 3월 22일 강서구 모 부대에서 실시된 사격 시험 장면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국방부가 지난 1998년 발생한 고 김훈 중위 사망사건에 대해 타살에 부합하는 총기 발사 시험결과를 부정하고 다시 자살로 결론 내렸다.

지난 19일 국방부 조사본부(아래 조사본부) 관계자는 국민권익위원회(아래 권익위) 측에 "국방부는 국회 결정도 대법원 판결도 군 의문사위원회의 조사 결론도 인정하지 않는다. 국방부는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기존 결론을 바꾸지 않겠다"는 의사를 통보했다. 국방부의 이러한 입장은 김 중위 사망 직후인 1998년 4월의 1차 조사, 같은 해 11월의 2차 조사, 이듬해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 조사에 이어 4번째의 자살 결론이다.

지난 3월 22일 조사본부는 김훈 중위의 사인을 가리기 위한 총기 발사 시험을 서울 강서구의 한 부대 실내사격장에서 실시했다. 권익위의 재조사 권고를 수용해서 이루어진 이 시험은 기존 자살입장을 고수했던 국방부의 의견도 적극 반영해서 진행됐다.

그동안 김훈 중위의 사인을 가리는데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김 중위의 시신 왼손바닥에서만 발견된 뇌관화약의 존재였다. 오른손잡이였던 김 중위가 자신의 오른손 옆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면 그의 오른손에서도 뇌관화약 성분이 나타나야 했다. 하지만 그의 오른손에서는 뇌관화약 성분이 발견되지 않았던 것.

자살과는 배치되는 이러한 증거를 설명하기 위해 그동안 국방부는 김 중위가 권총을 발사할 때 총구를 고정시키기 위해 왼손으로 총열을 꼭 잡은 상태에서 발사했기 때문에 그의 왼손에서만 뇌관화약에 발견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또 국방부는 실제 총기를 발사한 손에서도 뇌관화약 성분이 발견되는 확률은 38%에 불과하다는 미국 논문 통계를 근거로 김 중위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라 설명해왔다. 뿐만 아니라 자살 소견을 낸 고려대 법의학과 황적준 교수 등이 낸 "김 중위가 오른손 (검지가 아니라) 엄지로 방아쇠를 당겼다면 오른손에 뇌관화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국방부 의견 적극 수용한 가운데 실시된 시험

지난 3월 22일 총기 발사 시험에서는 오른손 엄지로 방아쇠를 당겼을 경우 뇌관화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수용해서 실시됐다.
 지난 3월 22일 총기 발사 시험에서는 오른손 엄지로 방아쇠를 당겼을 경우 뇌관화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수용해서 실시됐다.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지난 3월의 총기시험은 이런 국방부의 의견이 모두 수용된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어서 그 결과를 놓고 관심을 끌어왔다.

이날 시험은 김훈 중위가 사망한 채 발견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인근 241GP(관측소)내 기관총 벙커와 유사한 조건을 재현한 가운데 실시됐다. 시험을 앞두고 조사본부와 권익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아래 국과수)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시험방법을 합의했다. 이날 시험에선 정상적인 권총 격발 자세(오른손 검지 사용) 5명, 비정상적인 권총 격발 자세(오른손 엄지 사용) 5명 등 모두 10명의 사수가 사격을 실시하고 4시간 후 왼손 손등 및 손바닥, 오른손 손등 및 손바닥에서 시료를 채취했다.

김훈 중위 사건 당시 현장에 출동한 미군 수사관들이 김 중위 사망 추정시간으로부터 4시간 만에 시료를 채취했던 실제 상황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와는 별도로 정상적인 권총 격발 자세 1명, 비정상적인 권총 격발 자세 1명씩 2명의 사수는 총기 발사 직후 시료를 채취했다. 이렇게 채취한 시료는 국과수로 보내져 감정을 의뢰했다.

그런데 실제 김훈 중위 사건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미군 군의관은 김훈 중위 양손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뇌관화약 성분을 보존하기 위해 시신의 양손에 종이봉투를 씌워 놓았다. 이런 상태에서 4시간 후에 감식반이 시료를 채취했던 것. 지난 3월 시험에서는 권총을 발사한 10명의 사수 모두 종이봉투를 씌우지 않은 상태에서 4시간 후 시료를 채취했다. 뇌관화약 성분이 공기 중으로 흩어질 가능성도 있어 14년 전 실제 상황과는 달리, 어찌 보면 국방부에 유리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지난 11일 국과수가 권익위에 회신한 감정서에 따르면 시험자세와 시료 채취시간에 관계없이 시험에 참가한 사수 전원의 오른손 및 왼손 손등과 손바닥에서 뇌관화약 성분이 납과 바륨, 안티몬 성분이 발견됐다. 즉 엄지로 방아쇠를 당겼건 검지로 당겼건, 오른손으로 방아쇠를 당긴 이들 모두 오른손에서 뇌관화약 성분이 발견된 것이다. 이는 김 중위 시신에 남겨진 흔적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다.

시험 결과 나오자 "오염 가능성" 트집

국과수 총기 시험 분석 결과, 오른손 엄지 발사(A그룹), 오른손 검지 발사(B그룹) 발사자 전원에게서 납>바륨>안티몬 순서로 놔관화약성분이 발견됐다.
 국과수 총기 시험 분석 결과, 오른손 엄지 발사(A그룹), 오른손 검지 발사(B그룹) 발사자 전원에게서 납>바륨>안티몬 순서로 놔관화약성분이 발견됐다.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조사본부는 국과수의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기존의 자살 결론을 뒤집기 어렵다고 밝혔다. 발사자의 오른손 손등에서 뇌관화약이 검출되긴 했지만, 이 수치가 미 육군 범죄수사연구소(USACIL)의 검출 한계치 기준에 미달한다는 것이다. 이 한계치를 적용해 수치를 보정하면 엄지로 방아쇠를 당긴 1명의 오른손 손등과 손바닥에서 한계 기준치 이하(바륨 0.5μg(마이크로그램), 안티몬 0.2 μg의 뇌관화약 잔사물 검출량이 나왔다는 것이다.

또 조사본부는 시험 장소가 사격 연습이 빈번하던 실내사격장이어서 공기가 오염되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풀이하자면 평소 사격 연습하던 곳인 만큼 공기 중에 뇌관화약 성분이 많이 떠돌아다니다 이 성분이 시험 참가에 참가한 사수의 손에 부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런데 이곳을 시험장소로 택한 쪽은 바로 조사본부였다. 또한 시험이 있었던 3월 22일 이전 한 달 가까이 이곳에서 사격 연습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 회담(3월 26~27일)을 앞두고 합동참모본부의 특별 지시로 수도권 일원의 군부대에서 사격 훈련이 전면 중지됐던 것이다.

당시 시험을 참관한 권익위 관계자도 "시험 전 실내 사격장의 출입문을 활짝 열어 놓은 상태에서 여러 차례 물청소를 하는 등 예상 가능한 오염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사수 전원이 권총을 발사하기 전 비누로 손과 팔을 깨끗이 씻은 후 햇볕에 완전히 말린 상태에서 시험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조사본부는 "시험 장소가 오염가능성이 높은 곳이라 그 결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조군 시험을 다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험 전 오염 가능성에 대한 고려를 충분히 했고 시험 방식에 대해서도 합의를 했던 조사본부가 막상 조사결과가 나오자 이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나오는 것은 딴죽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또 뇌관화약 잔재물의 한계치 기준을 높게 설정한 1985년 미 육군 범죄수사연구소(USACIL) 규정을 미군과는 상황이 전혀 다른 이번 시험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립대 법의학 교실의 한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USACIL 기준은 실탄 사격 횟수가 우리보다 훨씬 많은 미군의 기준"이라며 "이를 단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뉴욕 주정부 법의학자로 김훈 중위가 타살되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노여수 박사는 "USACIL을 적용한 분석은 김훈 중위 사건에 사용할 수 없는 것"이라며 "한국에서 김훈 중위 사망 당시 상황을 고려해 시험한 것이 제일 (현실과) 유사한 실험 결과로 가장 신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노 박사는 또 "권총에 숙달된 육군 장교가 엄지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억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권익위는 조사본부의 총기 시험 결과 수용 거부 방침에 대해 "자신들이 원하는 결론이 나올 때까지 우기는 억지주장"이라는 입장이다. 김훈 중위 유족 측은 "국방부는 자신들의 자살결론에 부합하는 않는 과학적 증거들은 애써 모른척하고, 아무런 의미 없는 미군 측 기준을 끌어다가 자살설을 강변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태그:#김훈 중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