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외교안보전문지 <디펜스 21 플러스> 김종대 편집장.
 외교안보전문지 <디펜스 21 플러스> 김종대 편집장.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지난 2002년 6월 29일 오전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정에 선제공격을 가해 정장 윤영하 소령 등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다. 북측은 등산곷 684호가 반파된 상태로 퇴각했으며, 이후 사망자 13명, 부상자 25명이 발생한 것으로 우리 군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군은 애초 '서해교전'으로 부르던 이 해상충돌을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4월부터 공식적으로 '제2 연평해전'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해전 발발 10주년을 맞아 보수 언론은 연일 김대중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21일자 보수 신문들의 사설 제목만 보더라도 "대통령, 참수리호 장병 추도식에 참석해야"<조선>, "연평해전 기념식에서 DJ 대신 反省할 사람들"<동아>, "제2연평해전의 '15자 SI' 묵살 경위 밝혀야"<세계> 등이다.

제2 연평해전 10주년, 보수 언론들 햇볕정책 책임론

포문은 <조선>이 가장 먼저 열었다. 이 신문은 지난 18일 이후 10여개의 관련 기사들을 쏟아 냈다. 이 기사들을 요약하자면 우리 군이 북한의 공격 이틀 전 "발포 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다"는 북한군 교신 내용을 감청해 도발 징후를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도, 당시 정부와 군 수뇌부가 햇볕정책 등 남북 평화 분위기 조성 등을 위해 이를 묵살했으며 계획적 도발이 아닌 우발적 사건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또 이 신문은 "우리 참수리정은 북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5단계로 나뉜 교전규칙을 그대로 따라야 했고, '기습 공격 목표'를 세운 북한 경비정이 500m 안쪽으로까지 다가오는 것을 허용했다"고 보도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전사자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도 문제로 삼았다.

사실 보수 언론들이 제2 연평해전 당시 아군의 피해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탓으로 돌린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남북화해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는 이른바 좌파정부의 잘못된 교전수칙 때문에 우리 장병들이 총알받이로 내몰렸다는 것이 이들 보수 신문의 시각이다.

2002년 6월 29일 북한군의 선제공격을 받고 예인되던 중 침몰했던 참수리 357정이 인양되고 있다. 당시 교전으로 정장 윤영하 소령과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승조원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을 입었다.
▲ 인양되는 참수리 357정 2002년 6월 29일 북한군의 선제공격을 받고 예인되던 중 침몰했던 참수리 357정이 인양되고 있다. 당시 교전으로 정장 윤영하 소령과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승조원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을 입었다.
ⓒ 해군

관련사진보기


김종대 편집장 "보수 언론 보도, 편파적 접근이다"

하지만 군사평론가 김종대 <디펜스 21 플러스> 편집장은 보수 언론들의 제2 연평해전 보도 태도에 대해 "정치적 의도 아래 일면적이고 단편적인 방향만 강조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김 편집장은 또 "이러한 편파적 방식의 접근법으로는 당시의 비극이 왜 일어났는지, 또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진지한 교훈을 얻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편집장은 김대중 정부 이래 NLL에서 남∙북간 발생했던 5개 주요 군사충돌(제 1∙2차 연평해전, 대청해전,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에 대한 책을 집필 중이다. 그는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지난 3년간 국방부와 군, 청와대 안보라인 관계자 50여 명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지난 20일 <디펜스 21 플러스> 사무실에서 김 편집장과 나눈 일문일답 요약.

- 제2 연평해전 당시 '발포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다'는 북한군의 결정적 도발 징후를 김대중 정부 안보라인과 군 수뇌부가 묵살했다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조선>은 당시 대북통신감청부대가 수집해 국방부장관, 국방정보본부, 합참작전본부, 해군작전사령부 등 관련 부대에 통보한 특수정보(SI∙Special Intelligence)를 근거로 들고 있다.
"제일 먼저 이번 <조선> 보도의 근거가 된 15자의 SI 문제는 짚고 넘어가고 싶다. 기사를 보면 당시 김동신 국방장관이 의도적 도발에 해당하는 부분을 삭제한 다음 (예하 부대에) 전파하라고 지시해서 국방부 정보본부에서 대북통신감청부대에 전화를 해서 수정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잘못된 지시를 당시 통신감청부대장이었던 한철용 소장이 따른 것 아닌가. 잘못된 정보를 뿌리는데 한 소장 자신도 협조를 했다는 거다. 물론 본인 입장에서야 억울한 면이 있겠지만, 장관이 잘못된 지시를 내렸다면 직을 걸고서라도 막았어야지. 교전이 터지고 나서도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 개인적 불이익을 당하는 징계가 들어가니까 국정감사장에서 폭로를 하고 나선 것은 그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만약 개인에 대한 징계가 없었다면 영원히 침묵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 분이 10년째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정확한 진의를 알고 싶다. 본인도 잘못된 정보를 전파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는데, 그 부분은 쏙 빼고 햇볕정책 탓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2002년 10월 4일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철용 5679부대장(소장)이 서해교전 직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하는 정보보고서를 올렸다면서 비밀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2002년 10월 4일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철용 5679부대장(소장)이 서해교전 직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하는 정보보고서를 올렸다면서 비밀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기자 주 : 지난 2002년 10월 4일 열린 국방부에 대한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한철용 소장은 북측 경비정의 이상 징후를 담은 첩보보고서를 당시 김동신 국방장관에게 올렸으나 김 전 장관이 주요 항목을 삭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폭로한 바 있다. 특히 그는 군 일급기밀인 '블랙 북(대북첩보 1일 보고서)'까지 공개하며 "(관련내용은) 여기에 다 있다"는 폭탄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 국방부로부터 정직 1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한 소장은 이에 반발해 자진 전역했다.

전역 직후 국방부를 상대로 정직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낸 한 소장은 2004년 10월 1심에서 패소했지만 2005년 1월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원고가 2002년 6월13일 장관 보고과정에서 북한 경비정 침범을 단순 침범으로 보고한 것은 정보 분석 업무에 있어 성실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징계사유로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단순 침범 보고가 원고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정보본부가 정보 분석을 잘못하고 정보보고 지휘체계에 혼선이 일어 생긴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YS 당시 이양호 국방장관 "NLL 침범 정전협정 위반 사항은 아니다"

- 햇볕정책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당시 교전수칙에 대해 묻고 싶다. 보수 언론들의 대체적인 시각은 햇볕정책으로 인한 잘못된 교전 수칙 때문에 우리 해군이 당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견해를 말해 달라.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김성만 전 해군작전사령관이 쓴 책 <천안함과 연평도>에 나와 있는 구절로 대신하겠다. 이 책에는 '선제사격하지 마라', 'NLL을 지켜라', '교전규칙대로 해라', '확전하지 마라' 이렇게 나온 부분에 대해서, 김 제독은 당시 김대중 정부의 교전 규칙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다음 대목을 읽어보면 '그러나 이런 지시를 내렸다고 해서 마냥 대통령만을 비난할 일이 아니다. 우리 군은 60만 명의 대규모 조직으로 운용되고 있다. 국군을 지휘하는 국방부와 합참, 각 군 본부에는 수 천 명의 군사전문가가 일하고 있다. 군사지식이 부족하고 현장경험이 전혀 없는 문민 대통령이 이런 지시를 할 때 군 통수권을 보좌해야 될 국방부와 합참 지휘부는 무엇을 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6년 7월 16일, 당시 야당인 국민회의 천용택 의원이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의에서, '서해에서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을 5㎞나 넘어왔는데도 국방부 대응이 미흡하고 24시간이 지난 뒤에야 보도된 경위가 무엇이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당시 이양호 국방장관은 "북한 함정이 해상 북방한계선을 넘어와도 정전협정 위반과는 관련 없다"고 답변했다.

다음날 <조선>은 'NLL은 휴전 한 달이 지난 1953년 8월30일 유엔사 측이 최접경 수역인 백령도·연평도 등 6개 도서군(群)과 이를 마주하는 북한 측 지역과의 중간 지점 해상에 임의로 설정한 것이기 때문에 서로 간의 수역을 침범했을 경우 국제법적으로 제소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무력 충돌을 우려해 양측이 '힘의 균형'을 통해 자제하고 있을 뿐으로 이양호 국방부 장관이 NLL 침범이 '정전협정 위반 사항은 아니다'라고 한 것은 맞다고 보도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비로소 군에서 NLL사수 의지를 밝힌 셈인데, 보수 세력은 이제 와서 NLL을 마치 국제법적 영토선인 것처럼 하면서 모든 문제를 햇볕정책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비극은 합참의 잘못된 작전 지시 때문"

- 당시의 교전규칙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말인가.
"아니다. 당시 교전 규칙 중에 선제사격을 하지 말라고 한 부분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런데 2002년 6월 29일 교전 당일 해군의 작전을 보면, 당시 해군본부 정보작전부장은 반드시 북한 함정과 4Km의 거리를 유지해야한다는 의견을 통보했고, 2함대사령관의 지시도 3km 거리를 유지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해군본부와 2함대사령부가 공히 북한 함정과 3~4km 거리를 유지하라는 방침을 세웠는데, 왜 수 백 미터 코 앞까지 접근했는가? 선제사격하지 말라는 지시와 북한 함정과 근접하는 경우, 이 두 가지가 합쳐졌을 때 가장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되는데, 불행히도 당시 상황이 그랬다. 그 때 2함대사령관이었던 정병칠 제독이 3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이 분이 생전에 '당일 잠깐 사령관실에 올라간 사이 합참에서 상황실에 직접 지시를 해 고속정이 차단 기동을 하게 되었다. 내가 상황실에 내려와 있을 때는 이미 근접한 상황이었다'는 증언을 군 선배들에게 했다.

북한 함정에 바짝 근접했던 이유는 해군의 자체판단이 아니라, 당시 합참에서 2함대사령부 상황실을 직접 통제해서 내렸던 지시사항 때문이었다. 그런데 당시 근접기동을 명령한 사람은 누구인지 조사도 되지 않았고 책임 규명도 없었다. 당시 육군 일색으로 된 합참의 주요 작전 직위자들이 육군 식으로 해역을 통제하려고 했던 데서 초래된 불행이었던 것이다. 앞서 김상만 제독은 제2 연평해전 당시 국방부와 합참에서 전투원칙에 반하는 지시를 하달했다고 했는데, 이들이 바로 김동신 국방장관, 이남신 합참의장, 이상희 합참 작전본부장이다. 특히 이남신 의장과 이상희 작전본부장이 당시 비극에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이다.

그랬는데, 이 잘못된 전투 지시에 대해서는 아무도 조사하지 않았고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상희 본부장은 이명박 정부의 초대 국방장관이 되지 않았는가. 그러고는 잘못된 작전 지시를 내린 책임자들이 본인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모든 것을 햇볕정책 탓으로 몰아붙이는데 가담을 했던 것이다. 제2 연평해전 때의 아군 피해의 가장 큰 원인은 현장지휘관의 지휘권을 거의 박탈하다시피해서 파국으로 몰고 갔던 합참의 독선과 과도한 간섭 때문이었다. 전투원들을 사지에 몰아넣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모든 것을 햇볕정책 탓이라고 하니 어이가 없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군사적 합리성의 문제이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 제2 연평해전 이후 군의 대응방식이 나아졌다고 평가하는가?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겠다. 진보진영의 착각 중에 하나는 남북관계가 진전이 되면 군대와 군대끼리의 긴장도 쉽게 해소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제 1∙2 연평해전은 남북관계가 가장 좋았을 때 일어났다. 남북한 군대 사이에는 수 십 년 동안 유지되었던 적대감이 존재하고 있는데다, 군은 수없이 많은 SOP(표준 행동절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절차대로 움직이려고 하지, 대북 정책 때문에 이런 절차를 수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이런 점들을 미처 제대로 고려하고 관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뼈아픈 실책을 했다. 이런 저변에는 대북정책만 잘하면 안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안이함이 깔려 있다.

반면 지금 보수는 안보만 튼튼히 하면 북이 다시는 보복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들어올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착각이 천안함∙연평도의 비극을 불러온 것 아닌가. 제2 연평해전 이후 벌어진 대청해전에서 한 번 본때를 보여줬기 때문에 북이 앞으로는 도발하지 못할 거라고 깔보았던 게 국방부 아닌가. 그런데 그 뒤에 벌어진 일련의 비극적 사태를 따져 보자. 아무런 대잠 능력도 없는 천안함을 최전방에 배치했던 것이나, 연평도 포격 도발 때는 사전에 경고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합참작전본부장은 '지들이 쏘면 얼마나 쏘겠느냐'고 오판했던 것 아닌가. 이것은 햇볕정책보다도 몇 배 더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이런 사고의 근저에는 상대방에 대한 오판, 무시, 우월감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이런 점이 보수의 오류다.

이런 점이 제2 연평해전을 통해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다. 이제라도 이런 점들을 균형 있게 반성하고 성찰해도 모자랄 판에 이걸 정치적으로 활용해서 햇볕정책 죽이기로만 연결하면 어쩌자는 건가. 그래 좋다. 제2 연평해전 당시 우리 군의 희생이 잘못된 햇볕정책 때문이었다고 치자. 그러면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달빛정책 때문이었다고 할 건가? 이런 식의 정치 논리로 지난 교전을 다 해석해버리면, 앞으로도 과도한 이념과 정치논리가 계속 현장 지휘관의 통찰력을 압도해버림으로써, 비전문가들이 면책을 받고 합참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조장하게 된다. 그래서 조선일보 식의 보도가 위험한 것이다."


태그:#제2 연평해전, #김종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