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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을 따라 차를 몰고 가다가 애먼 곳에 도착한 일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입니다.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모두 함께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미래의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왜냐면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한 인생 내비게이션은 우리를 애먼 곳으로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기자 말>

 지난 15일 <K팝스타> 경연에서 3번째로 나선 이하이는 윤미래의 '시간이 흐른 뒤'를 열창했다. 이하이는 중학교 때 노래 대회에 출전해 이 노래를 상을 탄 경험이 있다고 한다.
 <K팝스타> 이하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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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일요일 저녁 TV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았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 쭉쭉 뻗어 올라가는 고음이 인상적인 박지민과 개성 있는 허스키 보이스의 이하이가 라이벌 구도를 만들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결국 우승은 박지민씨에게 돌아갔지만 개성 있는 목소리의 이하이씨가 오히려 대중적인 인기는 더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단순히 음정과 박자를 잘 맞춘다고 모두가 좋은 가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목소리에서 다른 사람과는 구별되는 자기만의 개성이 있어야 하지요. <K팝스타>에서 이하이씨가 여성 보컬이 소화하기 어려운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멋들어지게 불러내는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한동안 화제가 됐는데요. 이하이씨의 동영상은 노래라는 장르에서 개성이 발현되는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글쓰기 역시 노래와 마찬가지로 '개성'이 중요합니다. 글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 이건 ○○○만이 쓸 수 있는 글이야!', '아, 이런 개성 있는 글을 쓸 수도 있구나!'라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을까요? 저는 2011년 12월에 <글쓰기 클리닉> 책을 출간한 이후 여러 곳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는데요, 지금부터 제가 실제 강연에서 들려드리는 얘기를 일부 옮기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하이의 목소리처럼 개성 있는 글을 쓸 수 있는지, 그 비법을 공개합니다.

"여러분! 개성 넘치는 글을 쓰고 싶지 않으세요?"
"당연하죠. 그러려고 강의 듣고 있는데요?"
"하하! 그런데 개성 있는 글을 쓰려면 우선 '개성'이 뭔지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야 '개성'이라는 놈을 글에 넣을 수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 그렇네요."
"그런데 가끔은 '개성'이라는 것을 남과 다른 모습 정도로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TV 생방송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바지를 내려 성기를 노출했던 일명 '카우치 사건' 기억나세요?"
"네에. 저는 직접 방송 보고 있었어요. 정말 황당했죠."
"그 사건은 개성에 대한 몰이해가 빚은 최악의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분명 TV 생방송에서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는 일은 남이 하지 않는 일이며 참으로 일반인과는 다른 행태입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그런 행위를 '개성'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미친 짓이라고 하지요."
"그렇죠. 여러분께 우선 예문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이 글은 제가 아무개대학교 신문사에 기고한 글입니다.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쓴 글인데요. 자! 읽어보세요."

사실 책과 신문 읽기는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남는 장사'입니다. 저는 살면서 책과 신문 읽기보다 더 많이 남기는 장사를 본 적이 없습니다. 책과 신문을 읽는다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책이나 신문을 사려면 내가 돈을 내야 하는데 도대체 뭐가 남는 장사냐고요?

가치판단의 기준에 '돈'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돈'에만 목숨을 걸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시간', 즉 '인생'입니다. '돈'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시간'이라는 기준으로 측정해 보면 책과 신문 읽기가 얼마나 남는 장사인지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제가 10년을 '개고생'해서 쓴 책입니다. 그런데 독자는 그 내용을 하루 이틀 만에 읽어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물론 그것을 충실히 읽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겠지만, 그래도 제 입장에서는 참 약이 오르는 일입니다.

그 책을 구입하려면 15000원을 지불해야 합니다. 돈이라는 기준에서만 보면 호주머니에서 15000원이 빠져나가는 것이므로 손해처럼 보일 겁니다. 하지만 15000원을 내고 책을 읽음으로써 제 10년의 노하우를 하루 이틀 만에 쏙 빨아먹는다는 관점에서는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만약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직접 읽고 그 내용을 정리한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물론 저처럼 10년이 걸리지는 않겠지만 말이죠. 그래도 몇 년의 시간이 걸릴 테니 그 시간만큼 나이를 먹고 인생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읽는 독자는 '돈'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을 엄청나게 절약하는 셈입니다. 15000원에 10년을 벌 수 있다면 이건 보통 남는 장사가 아니지 않나요?

물론 모든 책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류 정신문명의 결정체, 즉 고전으로 불리는 기막힌 책도 있지만 간혹 종이에게 미안해지는 책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인류의 고전으로 불리는 명작 100권을 읽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훌륭한 고전에는 그 글을 쓴 천재의 평생의 노하우가 담겨 있습니다. 사람의 평균수명을 80세로 보고 고전을 쓴 천재의 인생을 일반인의 세 배 가치로 계산하면, 80 곱하기 3은 240년이 나옵니다.

한 권에 240년의 노력이 들어 있는 고전을 100권 읽을 경우, 여러분의 인생은 240년 곱하기 100은 2만4000년으로 늘어납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수지맞는 장사가 또 있을까요? 저는 아직까지 이보다 더 수지맞는 장사를 본 적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고전에 담긴 천재들의 사상을 직접 체득하려 한다면 평생이 걸려도 불가능한 경우가 많을 겁니다. 하지만 책을 통해 천재들의 사상을 얻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엎드려 절 받기 같지만, 어때요? 글 개성 있죠?"
"그…렇네요."
"에구, 무리한 대답을 강요한 건가요? 하하."
"아…니에요."
"하하. 어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에 대한 주장글을 써오라는 과제를 내줬다고 합시다.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은 독서가 지식을 주고 간접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할 것이고, 수많은 위인들이 독서광이었다는 예를 들어 독서의 중요성을 주장할 겁니다. 아마 과제를 읽는 선생님의 입에서 하품이 나오겠지요. 다들 빤한 내용이니까요. 그런데 누군가가 이 글로 과제를 제출하면 선생님의 정신이 번쩍 들 겁니다. '독서는 시간을 벌어주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개성 있는 주장을 펴고 있으니까요."
"네에. 그렇겠지요."
"자, 이제 개성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디서 나오나요?"
"여러분! 개성은 '관점'에서 나옵니다."
"관점이요?"

개성은 관점에서 나온다는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지, 대부분의 청중들이 토끼눈을 하고 제가 무슨 말을 이어서 할지 귀를 쫑긋 세웁니다.

"어떤 사물 및 사건에 대한 글을 쓸 때 그 내용은 관점이 어떠한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가령 독서의 중요성에 관한 글을 쓸 경우 대개는 책이 지식과 경험을 주기 때문에 독서가 중요하다는 식으로 쓰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이 정보를 제공한다는 '관점'에서만 접근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글에 개성을 부여하려면 남들이 접근하지 않는 새로운 '관점'에서 글을 풀어내야 한다."
"아!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네에. 눈치 빠른 분들은 좀 감이 잡히실 겁니다. 저는 독서의 중요성을 피력하기 위해서 남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독서라는 행위를 바라본 거죠. 바로 '시간'이라는 관점입니다.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독서 행위를 바라보니 '지식전달'이라는 관점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독서의 특징이 떠오르는 겁니다. 바로 독서가 시간을 벌어준다는 사실이죠."
"오호라! 마치 하나의 사물을 앞에서 볼 때, 뒤에서 볼 때, 옆에서 볼 때가 다 다른 것과 같군요."
"그렇지요. 예를 하나 더 들어보죠. 다음은 고은 시인의 시입니다."

방금 도끼에 쪼개어진 장작
속살에
싸락눈 뿌린다

서로 낯설다

"선생님. 캬! 시, 정말 죽이네요."
"그렇죠? 고은 시인의 시는 정말 개성이 있습니다. 어떻게 저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이것도 관점을 바꿔서 개성이 발휘된 건가요?"
"네에. 그렇습니다.
"사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장작이나 싸락눈이나 둘 다 흔한 것이죠. 낯설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우리 한 번 나무속에 있는 세포가 돼 봅시다. 저는 금천구에 사는데 금천구 시흥동에 9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은행나무 안쪽의 나무세포라고 생각해 보죠."
"네에. 그런데요?"
"우리는 태어나서 이제껏 바깥세상을 본 적이 없습니다. 주변이 다 나무세포 친구들이죠. 수백 년을 그리 살아왔는데 누군가의 도끼질에 생애 최초로 바깥구경을 하게 된 것입니다. 때는 마침 겨울이고 싸락눈과 처음으로 조우했습니다. 얼마나 낯설까요? 사실 낯설다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죠. 나무세포 입장에서는 천지가 개벽할만한 변화입니다. 싸락눈도 사정은 마찬가지죠. 인간의 도끼질이 아니고서는 언제 싸락눈이 나무의 속살과 만날 수 있을까요?"
"아! 정말 그렇군요. 고은 시인은 시를 쓰면서 사람이 아니라 나무세포가 되고 싸락눈이 됐기 때문에 '서로 낯설다'라는 개성적인 시구를 쓸 수 있었던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개성은 '관점'에서 나옵니다. 관점을 전환하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입니다. 인간 입장에서는 동물원이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이국(異國)의 동물들을 만날 수 있어서 즐겁겠지만, 동물의 입장으로 관점을 전환하면 어떨까요? 그야말로 감옥 생활이 따로 없습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겠지요. 개성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동네가게의 간판이 될 수 있어야 하고, 동물원의 하이에나가 될 수 있어야 하고 지구에 처음 도착한 외계인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간혹 문체에 팍팍 힘을 주는 개성(?)을 발휘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잘만 쓴다면 그런 식으로 개성을 드러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지요. 그러나 이런 식의 승부수는 하수나 하는 짓입니다. 고수는 문체의 현란함이 아니라 관점의 전환을 통해 개성을 드러냅니다. 어설픈 잔재주가 아닌 사고의 폭과 깊이를 통해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죠. 혓바닥 세포만 자극하는 조미료 같은 글 말고 좋은 콩으로 빚은 오래된 장맛 같은 글을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조미료를 친 음식은 금방 질리게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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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청춘에게 딴짓을 권한다>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국가의 거짓말>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몇 권의 책을 쓴 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