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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영된 드라마 <더킹 투하츠>는 이렇게 끝난다.

'입헌군주제 국가인 대한민국의 왕 이재하(이승기 분)는 북한특수부대 여장교 김항아(하지원 분)와 사랑에 빠진다. 전쟁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챙기려는 다국적 군산복합체 클럽M의 음모로 미국이 평양을 공격하고, 평양은 서울을 공격하는 전쟁 직전 상황이 전개된다. 남한의 왕 이재하는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약혼자 김항아와 결혼식을 가짐으로써 전쟁을 막는다.'

 '입헌군주제 국가인 대한민국의 왕 이재하(이승기 분)가 북한특수부대 여장교 김항아(하지원 분)와 사랑하는 내용이 핵심 내용이다.
▲ 5월에 종영된 MBC 드라마 <더킹 투하츠> '입헌군주제 국가인 대한민국의 왕 이재하(이승기 분)가 북한특수부대 여장교 김항아(하지원 분)와 사랑하는 내용이 핵심 내용이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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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남북관계는 남한에게나, 북한에게나, 국제사회 모두에게나 피로감을 안겨주고 있다. 남북관계의 비전은 불투명하다. 국민들에게 보여줄 감동이나 이익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 대다수는 '설마 전쟁이 나겠느냐' '불안하긴 하지만 현상유지라도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인 듯하다. 이런 답답한 현실에서 드라마 <더킹 투하츠>는 유쾌하고 신선했다.

1990년대 초 제기된 북핵문제는 30년 동안 지속됐고, 이를 해결할 6자회담도 중단됐다. 2000년 이후 남북경협에 참여한 기업체들이 1100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중 80%가 더 이상 남북경협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남북간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정치·군사적 긴장상황은 안정된 사업을 추진하기 힘들게 한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로 정경분리 원칙이 깨짐으로써 그 불안감과 피해는 더욱 커졌다.

물론 그 원인을 북한의 지리한 벼랑끝 전술과 대책 없는 강경론, 주변국의 협력 부족 등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 정부다. 역대 정부의 노력을 검토해 보면 한국 정부가 주체적으로 나설 때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었고 국민들도, 국제사회도 지지를 보냈다.

김대중의 정치적 상상력에서 배우자

김대중은 1971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나와 3단계 평화통일, 4대국 한반도 평화보장론을 주장해 국민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 대선 포스터 김대중은 1971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나와 3단계 평화통일, 4대국 한반도 평화보장론을 주장해 국민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 김대중평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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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무리한 요구와 납득할 수 없는 행태는 어느 정부 때나 있었던 일이다. 이를 어떻게 다루고 설득하느냐가 남북관계 진전의 성공과 실패를 가져왔다. 성공의 사례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맺은 노태우 정부, 2000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시킨 김대중 정부, 2005년 미국 부시정부의 견제 속에서도 6자회담을 통해 9·19 공동성명을 도출해낸 노무현 정부가 있다.

실패의 사례는 김영삼, 이명박 정부다. 김영삼 정부는 1994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제네바합의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외교적 수모를 당해야 했고,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가며 좌충우돌했다. 이명박 정부는 대북강경 압박정책으로 군사충돌까지 가져온 최악의 정부가 됐다.

남북관계에서 정치적 상상력을 보여준 대표적인 경우가 있다. 1971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김대중이 그 주인공. 김대중은 3단계 평화통일론과 4대국 평화보장론(당시 미국·소련·중공·일본이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자는 것)을 주장했다. 당시 세계적인 냉전 상황, 멸공통일 분위기에서 나온 이 주장은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국민들의 큰 지지를 얻었다.

비록 그해 선거에서는 김대중은 박정희에게 졌지만 3단계 평화통일론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성과를 거뒀고, 4대국 평화보장론은 2005년 6자회담으로 발전했다.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 공동성명에는 한반도 평화체제 방안이 담겨져 있다. 김대중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북한을 거쳐 중앙아시아, 유라시아를 거쳐 유럽을 잇는 '철의 실크로드' 구상을 발표했다. 김대중의 남북관계에 대한 전략과 구상은 이렇듯 원대했고,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김대중의 구상은 북측지역에 남북합작의 공단을 짓고(개성공단), 관광단지를 개발하는(금강산 개성관광) 실제적인 정책을 추구함으로서 뒷받침됐다.

'남북 연합',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2006년 12월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도서관 전시물을 설명하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
▲ 김대중과 노무현 2006년 12월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도서관 전시물을 설명하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
ⓒ 김대중평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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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남북 관계는 모두 막혀있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국제사회도 무덤덤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국정부의 선택이다. 남과 북이 모두 동등한 당사자이긴 하지만 남북 관계의 이니셔티브는 한국정부에 있다. 열악한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식량난 등 내부 체계가 불안정한 북한에게 대외적 주도권을 갖는 역할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니셔티브는 우리에게 있다.

다가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복지, 양극화 문제가 대선의 중심 이슈가 될 전망이다. 한반도 평화 의제는 항상 포함되는 여야의 공약이지만, 남북 관계 피로증에 빠진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특별한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다행인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제시된 정책들, 특히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 9·19 공동성명의 합의들이 진보개혁 진여에게 정책적 자산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12월 대선을 통해 진보개혁 진영은 남북관계에 대한 분명한 정치적 목표를 제시해 유권자들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진보개혁 진영은 정치적 목표로 '남북 연합'의 출범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것은 6·15 공동선언 제2항의 합의사항이며, '사실 상의 통일단계'다. 차기 정부는 남북 관계를 통일의 첫 번째 단계인 '남북 연합' 단계로 만들어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남북 연합'을 어떠한 절차를 통해 실현시킬 것이며, 이것이 국민 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우리 경제와 국가 비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를 실감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화해협력 단계의 구체적 정치적 성과로서 '남북 연합'을 제시해야 한다.

혹자는 북핵문제도 있고, 남북간에 신뢰가 쌓이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연합'이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소극적인 태도로는 국민의 관심과 동의를 얻기 힘들다. 더욱이 '남북 연합'은 또 하나의 국가를 세우는 일도 아니고, 남북정상회담, 장관급회담 등 각종 남북간의 합의를 관장하는 '사무국'을 세우는 일이다.

둘째, 북핵문제의 해결이다. 차기 정부는 9·19 공동성명에 기초해 6자회담을 통해 북한핵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 실질적으로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차기 정부는 북한,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 민족사적 책무를 안고 있다. 북핵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남북 연합'의 실현의 과정이며, 그 토대를 쌓는 일이다.

생활밀착형 대북정책 개발해야

김대중 대통령 족본. 2007년 가을 노르웨이 스타방게르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정상회의에 참석해 찍은 김대중 대통령의 유일한 족본이다.
▲ 족본 김대중 대통령 족본. 2007년 가을 노르웨이 스타방게르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정상회의에 참석해 찍은 김대중 대통령의 유일한 족본이다.
ⓒ 김대중평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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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남북관계 발전의 청사진을 로드맵, 시간표와 함께 보여줘야 한다. 대선 후 남북관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정책 역량이 필요하다. 국민의 이익을 확장시키는 생활밀착형의 남북관계 발전 정책이 필요하다. 이것은 남과 북 주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체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 ▲ 제2, 제3개성공단 건설과 중소기업 문제 해결 ▲ 금강산 개성관광과 접경지역 개발 ▲ 10·4 선언에서 합의한 서해평화협력지대 건설의 실행(인천시의 절대절명의 요구이다) ▲ 한강하구 모래채취 사업 ▲ 신의주 황금평, 나진-선봉특구개발 참여 ▲ 대북 인도적 식량지원과 쌀 수급문제 해결 ▲ 획기적인 이산가족문제 해결 등이다.

마지막으로 진보개혁 진영에 필요한 것은 확고한 '피스메이커'의 입장에서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평화를 지키는 과감하고 선제적인 평화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지금 우리 곁에 맴도는 전쟁세력(흡수통일 세력)의 의도를 폭로하고 맞서는 과감한 국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여기에는 양심적인 시민세력이 동참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술과 같은 반북 적대심리를 유포하며 햇볕정책과 그 정신을 땅에 묻고자 하는 전쟁세력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 이은 새누리당 정권의 대북선동의 위험을 폭로해야 하고, 대북강경정책이 얼마나 큰 실패를 가져왔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남북 관계는 북한 탓, 미국 탓만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주어진 우리의 이니셔티브를 활용하여 구상을 갖고 실천할 때 남북 관계에서 성과가 생긴다. 남북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 피로증은 정치가 만들어낸 것이다. 감동을 주지 못하는 정치, 생활과 유리된 정책이 국민의 관심을 멀게 했다. 이런 무관심과 피로증은 결국 지금의 대결상황을 즐기는 현상유지파의 득세에 이용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1971년 김대중 후보의 정치적 상상력에 버금가는 감동과 관심을 끌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의 출현을 기대한다. 사랑을 지키고 전쟁을 막기 위해 판문점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더킹 투하츠>의 주인공들처럼 신선하고 유쾌한 환타지를 만들어줄 후보는 없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었으며, 지금은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 겸 대변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김대중, #6.15남북공동선언, #남북연합, #최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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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한 마지막 비서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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