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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똥벌레, 어쩔 수 없네.
손을 잡고 싶지만 모두 떠나가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 번만 손을 잡아주렴.'

신형원이 부른 '개똥벌레' 노랫말의 일부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곤충에 왜 이런 흉측한 별명이 붙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본명을 불러준다면 '반딧불이'. 빛을 깜빡이는 이유는 암·수가 교배를 위해 서로 위치를 확인하려는 것이란다. 교배는 6월에 이루어져 지금이 반딧불을 볼 수 있는 시기다.

새벽 1시 무렵, 밤안개 자욱한 충북 옥천군 동이면 안터마을 뒷길을 걸었다. 모를 낸 논의 흙과 풀 내음이 코끝에 싱그럽다. 달을 등지고 십 분이나 걸었을까. 음산해 보이는 숲 속 어둠을 배경으로 뭔가 '반짝', 약간 빛이 엷어지는 듯하더니 다시 '반짝'. 빛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도깨비불처럼 어둠 속을 유영한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들로서는 처음 목격하는 경이로운 존재였다. 반딧불은 당연히 동물의 눈에서 나오는 목광(目光)인 줄 알았는데, 풀섶에 앉아있는 한 마리를 살펴보니 배 마디 끝에서 빛을 발한다. 좀 더 발걸음을 옮기자 수십 마리가 신비로운 숲 속에서 동화 같은 광경을 연출한다.

예전에는 이 조그만 영물이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초여름 밤을 수놓았다는데 지금은 환경오염으로 귀하디 귀한 몸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옥천의 반딧불이 서식지도 곧 불도저에 밀려날 운명이었던가? 골프장을 건설하겠다니.

"우리 삶에 끼어든 골프장... 방어 나선 겁니다"

골프장이 들어설 곳에서 2Km쯤 떨어져 있는 대청호. 상수원 보호를 위한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이다.
 골프장이 들어설 곳에서 2Km쯤 떨어져 있는 대청호. 상수원 보호를 위한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이다.
ⓒ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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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농성장 뒤 옥천군청 외벽에 '대한민국 자치1번지, 주민이 만들어가는 옥천'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천막 농성장 뒤 옥천군청 외벽에 '대한민국 자치1번지, 주민이 만들어가는 옥천'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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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한 부동산개발업체가 27홀, 48만7739평 규모의 '골프장건설제안서'를 옥천군에 내자 주민들은 골프장반대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주민들은 골프장 만들어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평범하게 사는 우리 삶에 골프장업체가 끼어들어 우리가 방어에 나선 겁니다."

지난 2월부터 군청 마당에 천막을 친 골프장반대대책위의 오한흥(54) 운영위원장은 업체와 군청이 내세우는 논리가 타당성이 없다고 말했다. 옥천군청은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며, 5만 명 고용창출, 600억 원 경제효과, 20억 원 세수증대를 내세웠다.

하지만 대책위는 효과가 부풀려진데다 수질오염 문제가 심각해질 것으로 본다. 골프장 예정지에서 2Km쯤 떨어진 곳에 상수원 보호를 위한 대청호 수질보전특별대책지역이 있다. 대청호는 300만 충청도민의 식수와 생활용수를 책임지고 있어 골프장을 건설하면 오염될 게 뻔하다는 주장이다.

주민들은 지난 1월부터 95%가 넘는 참석률로 서명을 하는 등 골프장 건설에 반대해왔다. 2월에는 대청호 보전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골프장 사업체 관계자와 옥천군 당국자가 참석한 가운데 다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동이면 골프장 반대 대책위'는 '옥천군 골프장 반대 범군민 대책위'로 확대됐다.

3월에는 군청 앞에서 옥천군의 불합리한 행정을 규탄하는 주민 집회를 열었다. 강원도 홍천군 주민들이 '생명버스'를 타고 와서 골프장 반대 투쟁에 연대하기도 했다. 4월에는 골프장 예정지 인근 주민들한테서 95%가 반대한다는 서명을 받았고, 대전지역 시민과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옥천 생명버스'를 타고 와 반대운동을 지원했다. 5월에는 골프장 반대를 위한 원로회를 구성해 반대 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골프채 고춧대와 지팡이... "우린 시위 아닌 행위예술 중"

천막 농성장 앞에 있는 고추화분. 고춧대 대신 골프채가 고추를 지지한다.
 천막 농성장 앞에 있는 고추화분. 고춧대 대신 골프채가 고추를 지지한다.
ⓒ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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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 주차장에 천막을 설치했을 뿐, 시위는 없었습니다. 그저 찾아오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즐길 뿐이죠. 여기는 창작 공간입니다. 우리는 시위가 아닌 행위예술을 하는 겁니다."

오 위원장은 즐기는 시위의 한 방법으로 중고 골프채를 모아 고춧대로 활용하는 퍼포먼스를 폈다. 천막농성장 앞에는 고추를 심은 화분에 골프채가 지지대로 꽂혀있다.

"발상의 전환이죠. 골프 칠 때만 골프채를 사용하는 게 아닙니다. 군청을 찾는 취재진에게는 기삿거리를, 건설사 관계자들에게는 교훈을 주고 싶습니다. 시위는 치열하게 해야 한다는 편견을 버리면 지속 가능한 시위를 할 수 있지요."

오한흥 운영위원장이 골프장 건설 반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오한흥 운영위원장이 골프장 건설 반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 홍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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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을 찾는 할머니들에게도 지팡이 대용으로 골프채를 나눠줬다. 그래서 허름한 천막 안에는 '골프채 지팡이'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오 위원장은 "이제는 할머니들이 자발적으로 골프채를 찾는다"며 주민들 호응도 좋다고 했다. 천막 안에는 냉장고와 커피자판기, 식사도구가 준비돼 있다. 천막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쉼터가 된다.

'대한민국 자치 1번지, 주민이 만들어가는 옥천.' 군청에 걸린 현판은 '구호 다르고 현실 다른' 지방자치의 현주소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추진되는 골프장 건설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개똥벌레'는 저렇게 '손을 잡아달라'고 노래하는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옥천, #골프장, #반딧불, #반딧불이, #개똥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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