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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사낙안’(선유 8경의 하나)으로 불리는 선유도 망주봉 사진에 대해 설명하는 김수관 교수
 ‘평사낙안’(선유 8경의 하나)으로 불리는 선유도 망주봉 사진에 대해 설명하는 김수관 교수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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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5일) 오후 7시 군산시립도서관 5층 교양문화실에서 열린 '群山學'(군산학: 군산을 제대로 이해하기) 다섯번째 강좌(제1강)에서 군산대학교 사회과학대 김수관 교수는 '사진으로 보는 군산의 삶과 풍경'이란 주제로 강의를 펼쳤다.

김 교수는 자신이 찍어서 보관해온 사진과 원로 사진작가 신철균(84)씨에게 기증받은 흑백사진 60여 점에 담긴 시대적 배경과 당시 군산 사람들의 생활상을 수강생들과 함께 생각하고 반추하며 기록 사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오늘 사진은 1964년 월명산 정상에서 촬영한 군산 전경, 민둥산 기와집의 일본인 거주 지역, 초가집이 빽빽이 들어선 한국인 거주 지역, 군산 형무소, 나운동 일대 들녘 등 '군산인에 의한 군산의 전체모습'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담겨있는 사진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다림과 순간의 접점에서 탄생한 1960년대 사진들

돛단배들이 정박해 있는 군산 하제포구 모습(1976년).
 돛단배들이 정박해 있는 군산 하제포구 모습(1976년).
ⓒ 신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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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우풍화학 철길에서 기차놀이하는 개구쟁이들(1968년)
 군산 우풍화학 철길에서 기차놀이하는 개구쟁이들(1968년)
ⓒ 신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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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중동 골목에서 물지게 지고 가는 여학생(1964)
 군산 중동 골목에서 물지게 지고 가는 여학생(1964)
ⓒ 신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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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균씨 사진은 대부분 1960년대 군산 풍경.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증기기관차, 벼를 고르는 아낙들, 시장바구니를 가로수에 걸어놓고 농구 경기하는 아이들, 골목에서 딱지치기하는 아이들, 물지게 지고 가는 여학생, 철길 옆에서 기차놀이하는 개구쟁이들, 선유도 망주봉 등 오랜 기다림과 순간의 접점에서 보석처럼 탄생한 작품들이었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사진을 감상하던 수강생들은 "신기하다. 작가 선생님을 만나 뵙고 싶다", "타임머신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다", "사진을 어떻게 찍고, 보관해왔는지 놀랍다", "사진 속 아이들이 귀엽고 깜찍하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등 찬사와 함께 다양한 소감을 쏟아냈다. 어느 수강생은 "저 아저씨는 방구들 청소부다!"라며 사진의 주인공 직업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기도.

이날 사진들은 서민들의 진솔한 삶과 아이들의 천진한 표정이 담겨있어 수강생들을 추억의 향수에 흠뻑 젖게 했다. 공설운동장 사진은 행여 어렸을 때 내 모습도 잡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진 속 인물들을 꼼꼼히 살펴보기도. 그래서 그런지 굳이 주제나 설명이 필요 없었다. 사진 그 자체가 한 편의 시(詩)이고,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서정적 리얼리티 사진을 추구해온 신철균. 그의 작품들은 볼수록 작가의 철학과 사진에 대한 열정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느낀다. 순간의 포착으로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며 곁으로 다가온다. 그냥 다가오는 게 아니라 메시지가 담겨 있어 더욱 흥미를 끈다. 40~50년 전 동네 깨복쟁이(벌거숭이) 친구에게 받은 편지처럼. 

군산 신영동 거리에서 농구경기하는 학생들(1967년)
 군산 신영동 거리에서 농구경기하는 학생들(1967년)
ⓒ 신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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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농구경기 사진. 시대적 배경을 자연스럽게 담고 있는 사진으로 이웃동네 풍경이어서 그런지 50년 전 친구들을 만난 것처럼 반갑고 재미있다. 경기에 열중인 학생들은 물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지켜보는 아저씨와 여아들도 사진의 주인공이 되어주고 있다. 가로수에 올라앉은 학생은 바구니에 들어간 공을 꺼내주기도 하고 심판을 겸하면서 놀이를 이끌어가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사진을 본 대한 농구협회에서 기증해달라는 제의가 신철균 작가에게 들어왔다고 한다. 전화 제의가 들어왔는데 순간의 모습이 렌즈에 잡혀 일반에 공개되기까지 과정을 너무 쉽고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 정중히 거절했다고.

군산 구시장 부근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아낙들(1970)
 군산 구시장 부근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아낙들(1970)
ⓒ 신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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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파마머리와 쪽 찐 머리가 대조를 이루는 두 아낙의 고달픈 삶이 헌 양철 대야에 켜켜이 쌓여 있음을 느낀다. 파마머리 아낙이 속 썩이는 남편과 자식들 때문에 살 수 없다며 하소연을 하는지, 누구와 다툰 얘기를 하는지, 동네에서 떠도는 소문을 전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표정과 몸짓에서 진지함이 묻어난다. 

옛날의 양철 대야는 빨래나 곡식을 담아놓거나 물건을 나르는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특히 행상으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아낙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꼬마들의 목욕탕이 되기도 했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물에 퉁퉁 불려 이리저리 돌려가며 때를 밀어주었다. 어찌나 박박 미는지 아프다며 우는 놈도 있고, 신 나게 물장구치는 놈도 있었다.

군산 성광교회 골목 입구의 어느 여름날 풍경(1965년)
 군산 성광교회 골목 입구의 어느 여름날 풍경(1965년)
ⓒ 신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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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이성당 얼음과자(아이스케이크) 통을 지키며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는 아저씨 모습이 참으로 한가롭다. 양산으로 햇볕을 가리고 걸어오는 아낙, 양손에 보따리를 들고 힘겹게 걸어가는 젊은 여성 모습의 여름날 풍경은 시공을 40~5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 골목은 아침저녁으로 오가던 등굣길이었고, 이성당은 학창시절 단짝들 아지트였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 군산에는 이성당을 비롯해서 역전당, 황금당, 진미당, 대화당, 남풍당, 대성당, 군산당, 풍미당, 시민당, 중앙당, 영화당, 조화당 등 얼음과자를 만드는 제과점이 20여 곳에 달했다. 그러나 1970년대 초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경제와 산업이 서울로 집중되면서 모두 사라졌다. 빙과류 제조업에 뛰어든 재벌기업들의 마케팅 전력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
 
액티브한 삶의 현장에서 거짓 없는 인간의 순수성을 감지하고, 그 순간을 포착하기 좋아하는 작가 신철균은 포커스 잡기가 빠른 사진기와 높은 감도의 필름을 즐겨 사용한다고 말해왔다. 또한, 고가품을 구입하는 일보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카메라의 성능과 특성을 확실하게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군산의 1세대 작가들, '기록성' 도외시 한 점 아쉬워

필자가 편집했던 사진집 표지(1989년)로 '군산일요사진 동호회' 전시회가 열리는 군산 제일다방 입구 모습(1969년)이다. 사진은 신철균 작 <街頭>
 필자가 편집했던 사진집 표지(1989년)로 '군산일요사진 동호회' 전시회가 열리는 군산 제일다방 입구 모습(1969년)이다. 사진은 신철균 작 <街頭>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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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은 일제강점기에도 사진관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해방 후에는 미군이 계속 주둔해왔고, 항구도시여서 외국인과의 교류가 활발했다. 그러한 영향을 받아 사진문화도 타 도시보다 일찍 정착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사진 모임(群山寫友會)이 발족하고 아마추어 사진콘테스트와 회원전을 개최했을 정도.

해방 이후 군산의 사진문화는 한국전쟁 전후 북에서 내려온 홍건직, 채원석 등이 씨앗을 뿌렸고, 이어 신철균, 김학수, 문길수 등이 가세했다. 특히 1·4 후퇴 때 평양에서 내려온 홍건직은 군산 사진계의 모태로 알려진다. 그는 군산사범학교 미술교사와 화가로도 활동했으며, 한때는 예명(홍건표)을 즐겨 썼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교수는 "군산의 사진은 1세대 작가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수준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입상 실적을 거듭하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으나 당시 군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작가들이 '예술성'에 치우친 나머지 사진의 본성인 '기록성'을 도외시한 결과로 생각된다"며 아쉬운 점도 밝혔다.

이어 "아쉬운 마음으로 군산의 옛 사진을 찾아다니다 신철균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신 선생님으로부터 '군산의 모습'이 담긴 귀중한 사진 100여 점을 기증받아 일부를 2011년 여름에 군산대학교 박물관에서 전시한 바 있다"며 "이번에 내놓은 60여 점은 1960년대 이후 군산의 삶과 풍경이 담긴 사진들을 골랐다"고 사진 강의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김수관 교수가 2008년 촬영한 구 군산역 역전 새벽시장(도깨비시장). 불과 4년 전 풍경이지만 4차선 도로가 뚫리면서 건물들이 사라져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다.
 김수관 교수가 2008년 촬영한 구 군산역 역전 새벽시장(도깨비시장). 불과 4년 전 풍경이지만 4차선 도로가 뚫리면서 건물들이 사라져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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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군산군도에 속한 사자 형상의 무인도(2008)와 구 군산역전 새벽시장(2008), 은파호수공원(2009), 금강하구의 서정적인 풍경(2010), 군산 내항의 제빙공장 쇄빙탑(2012) 등 자신이 최근에 촬영한 사진을 설명하던 김 교수는 "변화된 모습을 가식 없이 전달하고, 원만하게 얘기해줄 수 있는 것은 사진만이 가능할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김수관 교수는 "열악한 시대에 찍어놓은 하찮은 사진도 훗날 귀한 기록이 되고, 군산의 문화 콘텐츠가 된다"며 "차제에 연대별 군산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 모으기' 운동을 제안하는 바이며 지금부터라도 시각적인 효과가 그 무엇보다 뛰어난 사진으로 군산을 기록해보자"는 제의를 끝으로 강의를 마쳤다.

사진작가 신철균은?
주로 서민의 진솔한 삶과 어린이의 천진스런 모습을 흑백으로 표현하는 원로 사진작가 신철균(1929)은 1966년 호남 사진공모전 '금상'을 비롯해서 1968년 '대구매일' 어린이 사진공모전 '금상' 및 '특별 장려상', 1978년 일본 동경 유네스코 아세아 지역 어린이 사진 콘테스트 '대상', 전라북도 미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운영위원 등을 지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1960년대 사진, #군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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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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