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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후보로 시장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
 4.11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후보로 시장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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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에'(ふみえ,踏(み)絵 )

'후미에'는 천주교 신자만 아니라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권력이 얼마나 잔인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빼앗았는지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후미에는 일본 에도 막부 시대에 기독교인(기리시탄)을 가려내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서 매달린 예수나 성모 마리아가 새겨진 목제 또는 금속 성화상을 신자로 의심되는 사람에게 밟고 지나가게 하여,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거나 밟지 않으면 신자로 간주하여 체포한 것에서 생겨난 단어입니다.

후미에가 탄생한 배경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정벌에 실패하고 사망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03년 3월 24일 패권을 완전히 잡고 에도 막부를 건립했지만 아직 정권이 안정되지 않자 희생양으로 기리시탄을 삼으면서입니다.

에도 막부는 "성모 그림을 밟고 짓이겨라"고 했습니다. 성모 마리아를 믿는 이들이 어떻게 성모상을 밟고 짓이기면서 지나가겠습니까? 그런데 400여 년이 지난 2012년 대한민국에서 후미에가 부활하고 있습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파문은 지금, 종북 사냥으로 비화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새누리당 의원이 에도막부가 자행한 후미에를 언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 (강원 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은 8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에 출연하여 "옛날에 천주교가 들어와서 사화를 겪으면서 십자가를 밟고 가게 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한 의원은 종북을 가려내기 위해 후미에를 적용하자는 말입니다. 그는 또 "지금 약 30명 정도가 법을 위반한 전력자들"이라며 "그럼 이들이 이후에 사면되거나 복권됐다 하더라도 그거에 대한 전향 확인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한 의원이 언급한 "법 위반"은 아마 국가보안법으로 보입니다.

천주교 신자들에게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라고 했는데 그럼 지금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한 의원은 "북한 핵을 인정하느냐, 3대 세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게 맞느냐, 북한에 대해 조건없이 지원하는 게 맞느냐, 연평도나 천안함 사건등이 일어났을 때 무대응 하는게 맞느냐 등의 질문을 하면 대답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정말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사람 머리를 활짝 열고서 모든 사상을 하나하나 재단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일입니다. 물론 국회의원이라면 북한에 대한 생각을 답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종북을 가려내기 위한 수단이라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닙니다.

한 의원은 이상돈 전 비대위원이 "국가관이나 사상 문제로 의원을 제명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역풍이 불 수도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정도를 간다면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나라가 망하는데 모르는 척 하는 게 맞냐"고 했습니다.

정도를 간다면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후미에를 언급한 자체가 이미 자유민주주의 정도를 벗어난 일입니다. 과연 한 의원이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고나 있는지 묻고 싶을 따름입니다.

한 의원이 얼마나 왜곡된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문대성 의원과 김형태 의원 거취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도 확인됩니다. 민주통합당이 '제수 성폭행 의혹'을 받는 김형태 의원의 사퇴 촉구 결의안을 발의한 것에 대해 한 의원은  "충분히 논의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지만 "이것을 이번에 이석기 의원이나 김재연 의원과 엮어서 생각할 수는 없는 거죠. 동일선상에서 볼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석기와 김재연 의원 문제는 사실 종북이 아닙니다. 비례대표 부정 의혹입니다. 일부 보수세력마저 사상 문제로 이석기와 김재연 의원 제명을 논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머리를 열고 '빨갱인지 아닌지" 구별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대성과 김형태 의원은 실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종북 공세로 한국사회는 400년 전 에도 막부 시대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2012년 대한민국에서는 정말 놀랍고, 두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태그:#한기호, #후미에, #종북,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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