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미FTA와 한-EU FTA가 올 3월, 지난해 7월에 각각 발효되면서 소비자들은 각종 FTA 효과를 기대했었다. 득보다는 실이 많은 체결이지만, 그래도 '높으신 분'의 말씀에 따르면 조금은 득이 되겠지 하며, 되지도 않는 기대를 했더랜다. 하다못해 비싸서 못 사먹던 체리라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사먹을 수 있으려니 했으나 어린 아이를 키우는 초보 살림꾼의 장바구니는 여전히 답답하기만 하다.

무조건 국산 제품을 이용하는 것이 애국과 상관없어진 시대. 제품의 국적 보다는 개인의 취향과 제품의 질, 가격 등이 구매 조건으로 중요해진 지금, FTA체결은 많은 이들의 관심일 수밖에 없었다. FTA 체결로 관세가 철폐되면 그만큼 가격이 인하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한 해외구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니, 어쨌든 일반 소비자들로서는 이왕 FTA 맺은 거, 그 효과를 바라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달리 수입제품들의 가격인하가 체감되지 않고 있다는 게 주변 반응이다. 해외구매의 경우 관세철폐 혹은 인하의 효과를 어느 정도 보고 있다고 하지만, 해외구매자의 수보다는 일반 국내 시장에서 수입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의 수가 월등히 많은 현실에서 FTA 효과는 미비하게만 느껴진다.

우리집 살림과는 거리가 먼 'FTA 체결 효과'

레몬, 오렌지,파인애플 같은 수입과일들. (자료 사진)
 레몬, 오렌지,파인애플 같은 수입과일들. (자료 사진)
ⓒ 조을영

관련사진보기


우선 우리집 살림부터 살펴보자. 육아용품, 주방용품 등 수입산이 꽤 있다. 나도 남편도 특별히 애용하는 브랜드가 따로 없고, 국산, 수입산에 대한 선호도가 극명하지도 않지만, 필요에 따라 시장 조사 후 결정해 구매를 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소형가전제품과 육아용품에 수입산이 많은 편인데 국산에 적절한 제품이 없거나, 가격대비 수입산이 더 나은 경우 수입제품을 구매했었다. 수입제품의 경우 현지와 국내의 가격 차이가 너무 커 현지에 사는 지인에게 부탁해 공수하기도 했다. 수입이라는 중간 유통과정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가격 차이는 왜 이렇게 많이 나는지. FTA가 발효되면 조금이라도 효과를 볼 수 있으려나?

먹거리 시장도 마찬가지다. 생협과 로컬푸드 사이트를 이용해 가능하면 우리땅에서 나는 건강한 우리 먹거리를 먹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편이지만, 너무 비싼 견과류와 식구들이 좋아하는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과일 등은 어쩔 수 없이 수입산을 산다. 여전히 부담되는 비싼 가격의 수입 견과류와 건과일, 수입과일들. FTA 반대 입장이었지만, 농약 덩어리라 할지라도 배불리 체리는 먹을 수 있겠구나 했던 어린 생각마저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백화점이나 큰 마트에 가야 구경이 가능했던 체리가 FTA 이후 동네 재래시장 과일 가게에도 맨 앞줄에 진열되어 있다. 그 옆에는 포도, 오렌지, 키위, 망고스틴 등 수입 과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슬쩍 가격을 물어보았으나 역시나 지갑은 열리지 않았다. FTA 이후 수입 과일이 많이 유통되고 있지만 가격이 크게 내리진 않았다고 한다. 물론 다량 유통되다보니 예전에 비해 비교적 가격이 내린 과일도 있지만, 질적으로 그만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품이 많아져 굳이 수입과일을 권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동네 과일가게 아저씨의 정직한 말씀이었다.

여름인 게 무색하리만치 아직도 비싼 야채와 과일값. 그리고 그 때문에 높은 가격도 그러려니 하며 체념하고 마는 수입과일들.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는 미국이 물가는 비싸지만 싱싱하고 질 좋은 과일만은 마음껏 먹을 수 있어 그것 하나만은 좋다고 하던데, 왜 난 올 여름 셋째까지 임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체리를 선뜻 사먹지 못하고 있을까…….

물론 농약에 담궜다 온다고 표현할만큼 몸에 좋을 거 하나 없으니 수입과일을 차라리 안 먹는 게 건강을 위한 길이겠지만, 그래도 정부는 답을 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도대체 왜 수입제품들이 비싼지. 대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FTA 발효이건만 왜 아직도 시장은 그대로인지.

FTA 전후 '수입물품 가격 변화' 별로 못 느껴

연년생을 태울 값비싼 수입 유모차.
 연년생을 태울 값비싼 수입 유모차.
ⓒ 정가람

관련사진보기


FTA 체결 소식 후 주부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모은 제품은 육아용품과 주방용품이었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에는 유럽산 프라이팬의 가격 거품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원산지 가격과 국내 판매 가격이 거의 2~3배 나는 불편한 진실은 비단 프라이팬 뿐만이 아니다. 프라이팬, 무선주전자, 다리미, 전동칫솔 등 가정에서 쓰임이 많은 수입 소형 가전제품 대부분이 FTA 전후 가격 변동이 크지 않은 현실이다.

혼수를 준비하며 조금 무리를 해서 좋다고들 하는 수입 주방용품 몇 가지를 마련했지만, 초보 살림꾼이라 그런지 1년이 지나자 코팅이 벗겨지고, 기름때가 심해져 새로 사야했다. 주위 엄마들에게 물어보니, 괜히 비싼 거 사지 말고 맘 편하게 싼 걸로 사 자주 바꾸는 게 낫다고 조언해주었다. 수입 프라이팬 두 개 살 가격으로 국내 중소기업 프라이팬 두 개에 냄비 세트까지 살 수 있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지만, 잘 쓰고 있다.

또한 아이들이 어리다보니 육아용품에서도 수입제품의 가격부담을 느낀다. 우리집의 경우 아이들이 천기저귀를 사용하지만 밤과 외출 시엔 친환경 종이기저귀를 사용하고 있다. 일반 종이기저귀에 비해 거의 두 배 가량 비싼 친환경 종이기저귀. 가격 부담 때문에 몇 번은 일반 종이기저귀를 썼지만 쓰면서 늘 환경오염과 기저귀발진 때문에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FTA가 발효되면 10원이라도 가격이 내려가겠지 기대했지만, 2년 넘게 사용하고 있는 유럽산 친환경 기저귀의 가격은 요지부동일 뿐만 아니라, 고유가로 인해 더 인상되고 있다.

그 다음은 화장품. 큰 아이가 약한 아토피가 있어 보습제 선택에 늘 고심이다. 결혼 후 3년이 다 되도록 난 화장품 하나 사지 않고 지내오고 있지만, 가려워 긁어대는 큰 아이는 벌써 몇 통의 보습제를 썼는지 모른다. 국산부터 수입산까지 매번 바꿔가며 아이에게 맞는 보습제를 찾고 있는 중이다. 효과가 조금 좋다 싶으면 수입산은 가격이 몇 만원을 훌쩍 넘겨버린다. 역시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미국은 거의 반값이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친구에게 또 부탁할 수밖에.

연년생을 키우면서 둘을 한꺼번에 태울 수 있는 유모차를 알아봤더니 안타깝게도 국산 제품엔 우리가 찾는 유모차가 없었다. 매번 외국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하는 게 미안했지만 몇 십만원 차이 앞에 어쩔 수 없이 또 친구에게 번거로운 부탁을 해 무거운 유모차를 해외택배로 받았다.

동네 엄마 중 할인 쿠폰을 잘 이용해 육아용품을 아주 저렴하게 소위 '직구'(직접 해외구매)를 하는 엄마가 있다. 원산지 가격에서도 거의 반값이나 할인을 받아 해외배송료는 가뿐히 챙기는 쇼핑 노하우가 있는 엄마이다. FTA 체결 이후 관세가 폐지되어 그나마 이득을 본 경우에 속한다. 그런데 세관 통과하면서 예상치 못한 관세를 몇 번 물었다고 한다. 분명 외국 브랜드의 제품이었는데, 제3국 OEM 제품의 경우 관세폐지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데 FTA 체결문은 정말이지 꼼꼼하게 끝까지 읽어보고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정부, 국민들의 장바구니 물가 대책 세워야

몇몇 육아용품 수입업체들이 FTA 발효 후 가격을 내리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아직 그 인하된 가격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고유가에 따른 물가 인상이라는 방패가 등장하면 인하는커녕 가격이 더 뛸 것 같은 초보 주부의 불길한 예감!

그동안 '관세'라는 발목 때문에 원산지와 국내 수입산의 가격 차이가 크다고 수입업체들은 변명을 해왔었다. FTA만 체결되면 잡힌 발목에서 자유로워지고 소비자의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 정부는 큰소리 쳤는데, 작은 육아용품부터 주방용품, 먹거리, 화장품, 수입차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시장경제는 어둡기만 하다.

그래도 몇몇 제품들은 철폐 혹은 인하된 관세만큼 가격이 인하되었다고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제품들을 살펴보니 서울 변두리 전셋집에 살며 두 아이를 키우는 아줌마인 나에겐 너무나 먼 제품들이다. 몇십만원을 호가하는 옷, 화장품, 시계…. 술 좋아하는 남편도 FTA 체결에 결사반대 했지만 은근히 수입 술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마실 수 있겠구나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동네 마트에서 만 원에 다섯병 특가 세일을 해야만 좋아하는 맥주를 골라 담을 뿐, 비싼 위스키는 꿈도 못꾸고 있다. 결국 FTA가 서민경제에 도움을 주는 건 그나마 당도 떨어지는, 농약 가루 뽀얗게 내려앉은 작은 오렌지 몇 알 뿐이란 말인가!

FTA 발효 후에도 여전히 비싼 수입제품들. 합리적인 소비가 아니라 외제 고가 명품에만 열광하는 소비태도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FTA 발효 후 중간 수입업체만 이득을 보고 있는 현실이다.

기껏해야 몇몇 대기업과 수입업자들에게만 적용되는 혜택을 가지고 국익 운운하는 정부는 FTA를 재검토하거나 어쩔 수 없다면 국민들의 장바구니 물가 대책을 먼저 세우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태그:#FTA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