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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핑야오꾸청 안에 있는 커잔의 아침 풍경. 하룻밤 묵은 여행객이 방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중국 핑야오꾸청 안에 있는 커잔의 아침 풍경. 하룻밤 묵은 여행객이 방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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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중국풍의 고택이었다. 붉은 빛 감도는 2층짜리 목조건물인데, 홍등이 줄지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노을빛을 고스란히 받은 건물이 더욱 붉게 보였다. 높다란 담벼락까지도 가을색으로 변해있다. 담벼락을 따라 난 길을 걷다 보니 내가 흡사 중국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 만난 방도 그랬다. 약간의 녹이 슨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 만난 방은 원룸 크기만 했다. 방에서 바라본 창밖 모습이 환하다. 순간 걱정이 앞선다. 밖에서도 안이 환히 들여다보일까. 얼른 나가 확인해 보니 다행히 방 안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복도를 지나던 누군가가 금방이라도 문고리를 잡아당길 것만 같다.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창밖으로 보이는 기와지붕과 담벼락의 담쟁이 넝쿨까지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건물의 밖과 안이 온통 중국 무협영화에서 본 풍경 그대로다.

핑야오꾸청에서 만난 커잔의 실내 풍경. 중국 전통의 장식에다 침대 위에 차와 찻잔이 놓여 있다.
 핑야오꾸청에서 만난 커잔의 실내 풍경. 중국 전통의 장식에다 침대 위에 차와 찻잔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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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과 밤에 본 핑야오꾸청의 커잔 복도 풍경. 홍등이 달린 이 복도를 따라 방이 줄지어 있다.
 해질 무렵과 밤에 본 핑야오꾸청의 커잔 복도 풍경. 홍등이 달린 이 복도를 따라 방이 줄지어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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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간이 잠시 흐른 뒤 조심스레 눈동자를 굴려보니 침상이 단아하다. 나무침대가 연한 불빛을 받아 더 붉게 보인다. 그 침대 위에 탁자가 하나 놓여 있다. 차와 찻잔이 놓인 탁자다. 다소곳하게 놓여 있는 모습이 앙증맞다. 일상적으로 차 생활을 하는 중국에 와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한다.

맞은편으로는 최신 텔레비전과 에어컨이 보인다. 의자도 몇 개 놓여있다. 화장실을 겸한 욕실도 깔끔하다. 고풍적인 건물의 외관과 달리 실내는 현대식 호텔에 버금간다.

긴장했는지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숙소가 중국식 전통주막과 비슷하다고 해서 내심 걱정됐는데, 이만하면 좋았다. 하룻밤 묵는 데 전혀 불편할 것 같지 않았다. 기대했던 대로 색다른 멋과 운치가 있을 것 같았다. 여행계획을 짜면서 중국 전통의 커잔(客棧) 체험을 고집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5월 19일 중국 싼시성(山西省) 타이위엔(太原) 핑야오(平遙)에서의 일이다. 커잔은 옛날 나그네들이 술 한 잔 하면서 짐을 풀고 하룻밤 쉬어가는 중국식 여관을 일컫는다. 우리의 주막 문화와 비슷할 것 같다. 여행자의 눈에 비친 커잔의 첫 인상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낮과 밤의 풍경도 색다른 멋으로 사로잡았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한옥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핑야오꾸청에 있는 커잔의 아침풍경. 하룻밤 묵은 여행객들이 커잔을 나가기 위해 전기자동차에 오르고 있다.
 핑야오꾸청에 있는 커잔의 아침풍경. 하룻밤 묵은 여행객들이 커잔을 나가기 위해 전기자동차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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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로우(시루) 주변 거리를 많은 여행객들이 걷고 있다. 쓰로우는 핑야오꾸청의 중심지이면서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쓰로우(시루) 주변 거리를 많은 여행객들이 걷고 있다. 쓰로우는 핑야오꾸청의 중심지이면서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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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잔만 매력적인 게 아니었다. 커잔이 자리하고 있는 핑야오꾸청(平遙古城)은 더 진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꾸청(古城)을 품고 있는 핑야오(平遙)는 우리에게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지역이다. 중국 싼시성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 한때는 융성했던 상업의 중심지였다. 중국 은행의 효시라는 르셩창(日升昌)이 생길 정도로 번창했었다. 지금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핑야오꾸청은 이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옛 성이다. 2700년 전 주나라 때 건립돼서 명·청나라 때 전성기를 누린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도 가장 완전한 형태의 옛 성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1997년의 일이다. 당시 이 성은 유네스코로부터 중국의 문화와 사회·경제·종교 발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찬사를 받았단다.

쓰로우(시루)에서 내려다 본 핑야오꾸청 거리. 여행객들이 상점이 줄지어 선 거리를 따라 거닐고 있다.
 쓰로우(시루)에서 내려다 본 핑야오꾸청 거리. 여행객들이 상점이 줄지어 선 거리를 따라 거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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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야오꾸청에 사는 한 주민이 자신의 집 지붕을 뜯어 고치고 있다. 꾸청의 성벽을 거닐다 만난 모습이다.
 핑야오꾸청에 사는 한 주민이 자신의 집 지붕을 뜯어 고치고 있다. 꾸청의 성벽을 거닐다 만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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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14세기 명·청 시대의 모습은 지금도 짙게 남아있다. 당시를 닮은 건축물이 빼곡하고, 그 사이사이로 크고 작은 길이 사방으로 얽혀있다. 중심거리엔 중국 전통의 음식과 주전부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과 술집이 즐비하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서민들이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고 있다. 옛날 옥사까지도 그대로다.

그 길을 따라 뉘엿뉘엿 걸으니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 중국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만 같다. 건물과 골목에서 오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났다. 바람결까지도 명·청시대의 바람 같다. 내가 조선의 사신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열하일기>를 쓴 조선의 박지원이 그랬을까. 모든 게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황실의 별장으로 쓰였다는 뻬이징의 이허위엔(이화원)이나 샹하이의 위위엔(예원)보다도 훨씬 더 정겨웠다. 규모도 훨씬 크고 웅장했다.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우리나라의 낙안읍성민속마을이나 안동 하회마을, 양동마을에 빗대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전기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본 핑야오꾸청 안의 성벽 모습. 밖에서 본 것과 달리 흙으로 쌓여 있다. 아주 오래 된 흙담이다.
 전기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본 핑야오꾸청 안의 성벽 모습. 밖에서 본 것과 달리 흙으로 쌓여 있다. 아주 오래 된 흙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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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들이 성벽을 따라 핑야오꾸청을 돌아보고 있다. 굴뚝처럼 보이는 곳이 옛 옥사다.
 여행객들이 성벽을 따라 핑야오꾸청을 돌아보고 있다. 굴뚝처럼 보이는 곳이 옛 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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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즐길거리만 알찬 게 아니었다. 규모도 상상을 초월했다. 성의 둘레가 15리(6㎞)를 넘었다. 발병이 나고도 한참 더 나야 할 거리였다. 면적도 서울 여의도의 5배나 된다고 했다. 그 안에 실제 주민들이 살며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예전엔 수십 만 명이 살았는데, 그 동안 많이 이주하고 지금은 3만여 명이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엔간한 군(郡)단위 인구였다.

이 성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지역주민과 관계당국의 노력도 엿볼 수 있었다. 성내 여행은 전기자동차를 이용하거나 걸어야 했다. 자전거 이용도 가능했다. 나와 동행한 길동무들도 모두 성 밖 주차장에서 전기자동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문화유산과 환경을 같이 보호하고 주민들의 일자리까지 만들며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고 있었다. 여행자의 입장에서도 전기자동차를 타고 성내를 누비는 재미도 남달랐다.

여행객들이 전기자동차를 타고 핑야오꾸청 거리를 구경하고 있다. 전기자동차는 꾸청의 안과 밖을 연결해주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다.
 여행객들이 전기자동차를 타고 핑야오꾸청 거리를 구경하고 있다. 전기자동차는 꾸청의 안과 밖을 연결해주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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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만날 수 있는 핑야오꾸청 거리. 명·청시대의 흔적을 여러 군데서 만날 수 있다.
 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만날 수 있는 핑야오꾸청 거리. 명·청시대의 흔적을 여러 군데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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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청은 밤에 더 빛났다. 야경이 황홀경이었다. 성내 거리가 불빛과 홍등으로 휘황찬란했다. 여행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하기 위해 마련된 전통 의상의 옛사람들도 흥미를 북돋았다. 여행자들의 마음도 덩달아 반짝이며 한껏 부풀어 올랐다. 조명의 밝기는 다를지라도 명·청나라 당시 번화가의 분위기가 이러했을까 싶었다.

일반적으로 민속마을이고 세계문화유산이라면 정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선입견을 갖기 마련. 하지만 핑야오꾸청은 역동적이었다. 모든 게 생동감으로 넘쳐났다. 여행객들의 발걸음도 활기찼다. 쓰로우(市樓)와 어우러진 밤거리 풍경은 핑야오 여행의 만족도를 더 높여 주었다. 중국 내에서 야경이 아름답다는 샹하이보다 훨씬 더 매혹적이었다. 상업화된 야경이라기 보다 고풍적인 야경이었다.

그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흥분됐다. 발길 닿는 곳, 눈길 머무는 곳마다 명·청시대의 역사요, 문화였다. 사람들까지도 옛 사람들로 느껴졌다. 걷다가 다리를 쉴 수 있는 현대식 카페도 옛 건축물과 조화를 이뤄 모나지 않았다. 중국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발마사지 업소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옛 중국을 만난 것 같았다. 몸은 지쳐도 마음은 뿌듯했다. 하룻밤 이틀 낮 동안 핑야오꾸청을 돌아보면서 드는 생각은 살아 숨쉬는 민속마을이었다는 것. 명·청 시대의 박물관이 따로 없다는 것이었다. 진짜 중국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알토란 같은 보물창고가 핑야오꾸청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래저래 정말 오진 핑야오꾸청이다.

핑야오꾸청의 거리 공연. 전통 복장의 행렬이 거리를 활보하며 여행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핑야오꾸청의 거리 공연. 전통 복장의 행렬이 거리를 활보하며 여행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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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야오꾸청 인증샷. 핑야오꾸청은 살아있는 민속마을이고 박물관이다. 중국 역사문화의 보물창고다.
 핑야오꾸청 인증샷. 핑야오꾸청은 살아있는 민속마을이고 박물관이다. 중국 역사문화의 보물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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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핑야오꾸청, #평요고성, #평요, #객잔, #중국 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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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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