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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으로 김주호 편이 나왔다.
▲ 헥사곤 한국현대미술선 003 으로 김주호 편이 나왔다.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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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돌아가는 꼴이 마뜩찮다. 극심한 가뭄처럼 팍팍하다. 어디 메마른 가슴, 시원하게 적셔 줄 일 없을까? 김주호 조각전이 위로가 될 지 모르겠다. 그의 조각은  이웃 '사람'들이 겪는 삶의 욕망과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일상의 생생한 풍경이 친근한 재료에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기지로 깍고, 빚고, 칠하고, 구워져 유쾌함과 통쾌함을 주기 때문이다. 

두 군데 전시장에서 100여점이 전시된다니 자못 기대가 된다. 관훈미술관은 층마다 돌, 나무, 흙, 철 등 재료 별로 나누고, 스토리텔링 곁들여 전시를 한다. 길 건너 나무 갤러리는 함축적인 메시지가 담긴 최근작들을 전시한다. 2년 만에 벼르고 초대하는 작가의 초대전이라 각별한 뜻도 있을 것이다. 부제는 '사람 사이'다. 김주호 전 기획 취지를 나무화랑 대표 김진하씨에게 물었다.

"우리들의 삶을 여유와 아이러니로 바라보는 김주호만의 시선이 있다. 그리고 이런 내용과 형식의 근원적인 지점에 입체든 평면이든 사물의 속을 비워버리며 울림의 구조를 갖는 '통(筒)'과, 작가, 미술, 관객을 넘나들며 소통하려는 통(通)이 있다. 김주호에게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세계를 보는 맑은 시선과, 그에 걸 맞는 조형어법의 구축, 그리고 이를 지속적으로 밀어붙이는 뚝심. 나는 거기에서 작은 이익 때문에 자신의 이념을 버리며 닳고 약아가는 요즘의 화단 사람들과는 다른 한 작가의 인간적 진실성과 정직한 표현성을 만나고 있다. 자신의 인생을 담는 미술. 소박하고 담백하다. 나는 그게 좋다."

이번 개인전을 앞 둔 몇 개월 전. 강화군에 있는 김주호 작업장을 찾았다. 작업장에서 보는 작가의 작품은 작업의 현장감과 작가의 일상과 맞물려 전시장과 또 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작업장에 들어서는 작가
▲ 김주호 작업장에 들어서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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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작업장을 들어 섰을 때 고요하고 한적한 듯했다. 그러나 작업장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허! 여기 저기 구석구석에 놓인 조각들이 가지가지 표정과 몸 짓으로 말을 걸어 온다. 작업장 벽, 작업대 위, 다락, 부엌, 심지어 책상 아래 후미진 곳에서 눈빛과 벌어진 입과 조아린 가슴으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왁자지껄 불만들을 쏟아 낸다.

2층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 흙판 작업- 살림과 시사적인 문제들은 작업의 주요한 모티브들이다
▲ 김주호 작업장 2층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 흙판 작업- 살림과 시사적인 문제들은 작업의 주요한 모티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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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의 시선은 일상적이고 사소한 살림에서도 비롯된다. 사건, 사고와 같은 매일 뉴스도 작업의 모티브다. 작가에게 일상과 현실은 세상과 예술을 이루는 기본 단위요, 살아 숨쉬는 삶의 현장이다.

심지와 초로 이루어진 촛불에 비유 하자면, 현실과 일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심지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나무와 돌을 깍고, 흙을 빚고, 채색하여 구어내고, 철판을 자르고, 잇는다. 닥치는 대로 잡히는 일상적 재료에 심지를 꽂아 불을 밝힌다. 이 둘은 마치 촛불과 같아서 떼어 놓을 수 없는 내용과 형식으로 연결 되어 있다. 그래서 때로는 심지에 부싯돌 같이 바로 불꽃을 일으켜 어둠을 밝히려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작가는 기법이나 기술은 어려운게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며칠 연습을 하면 풀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일으켜 세우고 담느냐다. 김주호 작가는 조각도 인간다운 삶의 회복을 위해 기여 하기를 바라며, 그게 아니라면 예술도 부질 없는 것일 수 있다는 자조를 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조각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삶이며, 삶 속에 조각은 글자 그대로 조각일 수밖에 없다. 그 만큼 현실 문제에 대한 개혁에 강한 애정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김주호 조각에서 현실과 사람 사이의 문제들은 불꽃을 일으키는 심지요 놓칠 수없는 실마리요 외면할 수 없는 주제인 셈이다.

전시장으로 옮겨지기 전,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체온이 느껴지는 살갛과 옷 색깔을 살리기 위해 채유 후 1000도C에서 서너번 구워내는 일이 만만치 않다.
▲ 보관실을 가득 메운 작품들 전시장으로 옮겨지기 전,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체온이 느껴지는 살갛과 옷 색깔을 살리기 위해 채유 후 1000도C에서 서너번 구워내는 일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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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호도 초기에 서양 조각에 대한 교육을 받고 습작기를 보냈지만 궁극적으로 그가 찾으려 한 조형의 뿌리는 전통과 민중들 삶과 정서였다. 그의 작업노트에 나타난 대로 로뎅과 브랑쿠지보다 운주사 석불과 같은 민중 조각에 담긴 기원과 해원의 진실한 마음을 조형의 근본과 작업 동기로 삼았다.

대~한민국 외치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뭔가 소리를 질러 대지만 소통이 되지 않는 답답한 현실에 대한 외침 같기도 하다...
▲ 작업장 벽에 진열된 작품들 대~한민국 외치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뭔가 소리를 질러 대지만 소통이 되지 않는 답답한 현실에 대한 외침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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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호 작가는 비행사 같다. 어디론가 날아갈 듯한 차림이다. 바깥으로 나들이 할 때, 늘 가벼운 배낭이 짊어져 있다. 언제, 어디던 출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집을 나설 때는 배낭이 비어 있지만 작업장으로 돌아 올 때는 삶의 아우성들이 그 속에 담겨 있기도 하다. 그 소리들은 작가만의 숙련된 요리법으로 맛을 낸다. 거침없고 주저하지 않는다. 지지고, 볶아, 가뭄에 단비 같이 시원하고 통쾌한 조각으로 불러 일으켜 세워 놓는다.

헥사곤에서 발행하는 '한국현대미술선003'은 이번 개인전에 마추어 김주호 편을 출간했다. 김주호 조각의 변천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사람사이, 생생풍경, 스틸드로잉, 열 받는다, 돋보인다... 등' 작업 주제를 10가지 섹션으로 나누어, 재료 별로 엮고, 작가의 목소리도 담았다.

아트북 선정 작가들은, 20년 넘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일궈 온 의미있는 동시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한국현대 미술작가들을 대중들과 보다 가까이 소통을 하려는 점은 기존 미술책과 차별성을 띈다. 그래서 권위적이거나 어려운 글 보다 작가의 작품 이미지와 작가의 생생한 작업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부피와 판형이 휴대하기 편하고, 편집 과정에 작가가 참여하여 작가 의도를 살리려는 점도 특색이다.

이미, 이건희, 정정엽, 박형진 편이 나왔고, 다음 주에 송영규 편이 개인전에 맞추어 출간된다. 그리고 올 해, 12권을 펴낼 계획이다. 헥사곤 아트북은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보다 깊고 친근하게 교감하여 작가와 컬렉터들에게 행복한 미술책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동시대 작가들이 아름다운 나무가 되고, 한국현대미술의 울창한 숲을 이루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김 주호 1949. 한국 출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 조소과 졸업.

개인전: 2012 관훈갤러리, 나무화랑 (사람사이), 2010 가회동 60 (생생풍경), 2009 나무화랑 (삶의 돋보기), 2007 우덕갤러리 (흐뭇한 풍경), 2006 갤러리 도스 (패션 쇼), 2004 학고재(세상을 들여다보기),2002 강화군청 민원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외 6차례.


단체전: 2012 서촌, 땅속에서 만나다 (아트사이드), 2011 생활의 발견展 (부평 아트센터), 가만히 들이다(인천 아트플랫폼), Happy together (롯데갤러리. 영등포), 나무 조각전 (경북대학교 미술관), Korean Art Today (호주 시드니 한국문화원), 빌라다르와 예술가들 (토포하우스), 분쟁의 바다, 화해의 바다 (인천 아트플랫폼), 2010 우리들 사는 이야기 (대전 롯데갤러리), 인터_뷰 (인천 아트플랫폼) 등

관훈갤러리 :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195 (전화 02-733-6469)
나 무 화 랑 :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전화 010-2272-7760)



태그:#김주호, #생생조각, #아트북, #헥사곤, #한국현대미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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