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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수학, 국어, 과학….

한국 학생들이 학원이나 과외에서 배우는 수능 과목들이다. 공교육보다 사교육을 더 신뢰하고 투자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은 줄넘기 실기점수 만점을 받기 위해 체육마저도 학원, 과외를 받는다. 수능 점수가 대학을 결정하고 대학이 인생을 결정하는 서열공화국 한국의 풍속도다. 결국 학교는 10%의 우등생을 위해 운영되고 나머지 학생들은 열등감과 절망감에 젖게 된다.

우등생만을 위한 학교에서 폭력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갈수록 살벌해지는 성적 경쟁처럼 학생들의 폭력도 <말죽거리 잔혹사>나 <친구> 등의 영화보다 더 잔혹해지는 것 같다. 왕따와 폭력에 그치지 않고 성폭력과 살인까지 저지른 학생들의 사건 소식을 접하면서 5년 전, 나의 고등학생 시절은 그래도 순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프리카 남부의 가난한 나라 짐바브웨 학생들은 성적에 얼마나 시달리는지, 왕따와 학교 폭력문제는 없는지 등에 알아보았다.

"왕따와 학교폭력? 여기엔 없다"... 수능시험 한 달 동안 본다!

앞에 보이는 건물 하나 전체가 과학 실험실이다. 대부분의 학교가 잔디로 둘러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학교 전경 앞에 보이는 건물 하나 전체가 과학 실험실이다. 대부분의 학교가 잔디로 둘러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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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의 학제(學制)는 6-3-3인 한국보다 1년 더 길다. 영국 식민지 당시의 학제와 교육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짐바브웨의 공부 수준은 만만치 않다. 학교 규율이나 교과서 내용을 보면 매우 엄격하다. 그러나 수업시간은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선생님과 친구처럼 어울리며 수업을 한다. 짐바브웨의 공용어는 영어이기에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며 영어 수준도 뛰어난 편이다.

'Grade 1~7'은 초등학교 과정, 'Form 1~4'까지는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이다. 'Lower Six(Form 5)'와 'Upper Six(Form 6)'는 고등학교 2~3학년 과정이다. 고등학교 2학년에 진입하기 위해선 O레벨(Ordinary Level)시험에서 일정 과목 이상을 합격해야 한다. 짐바브웨에선 O레벨부터 수험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AS레벨(Advanced S Level) 시험과 고등학교 3학년 때 A레벨(Advanced Level) 시험을 본다. O레벨 시험을 뛰어나게 잘 보면 고등학교 2~3학년 과정 없이 대학교에 바로 진학하는 것이 가능하고, O레벨과 AS레벨 시험만 가지고도 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다.

모든 운동장이 천연잔디로 이루어져 있다.
▲ 천연잔디가 깔려있는 축구장 모든 운동장이 천연잔디로 이루어져 있다.
ⓒ 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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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에 있는 테니스장. 농구장 겸용으로 쓰기도 한다.
▲ 테니스장 학교 안에 있는 테니스장. 농구장 겸용으로 쓰기도 한다.
ⓒ 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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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능과는 다른 점이 많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A레벨로, 하루에 모두 끝내는 한국의 수능과 달리 한 달 동안 시험을 본다. 한 달 내내 시험을 보는 것에도 어려움은 있겠지만 우리처럼 한 번의 수능시험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부담은 덜 수 있다. 그리고 실기시험도 본다. 과학 과목을 선택한 학생들은 실험을 통해 점수를 받고 이 점수는 A레벨에 포함된다. 필기시험만으로 점수를 매기는 한국과 달리 이론과 실험을 통해 평가받는 시스템이다. 기초과학이 비인기 과목으로 전락해버린 한국에 비해 기초과학분야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많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교민 학생들은 "여기에선 한국처럼 사회문제가 될 정도의 '왕따'와 '학교폭력'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짐바브웨 학교에서도 패를 지어 노는 그룹과 외톨이 학생이 존재하지만 '빵셔틀'은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 서로 놀리긴 하지만 서로를 챙겨주거나 아에 외면을 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서로 이해하면서 지내면 되는데 왜 그렇게 때리고, 성폭행까지 저지르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짐바브웨에는 백인들이 상당수 거주하고 있다. 식민지 지배의식을 가진 백인들은 우월감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학교에서 그랬다가는 큰일 난다고 한다. 영국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로부터 흑인들의 평등 의식이 뚜렷해졌다고 한다. 짐바브웨 학교생활을 자세히 알기 위해 Gateway에서 고등학교 2학년(Lower Six)으로 재학 중인 권두호(18)군을 인터뷰 했다. 권군은 짐바브웨에 온지 4년째라고 한다.

학생 중심의 짐바브웨 학교! 예체능 중심의 즐거운 학교생활

짐바브웨 게이트웨이 재학 중인 권두호(18)군
 짐바브웨 게이트웨이 재학 중인 권두호(18)군
ⓒ 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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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의 구성원들은 인종 비율은 어떻게 되나요?
"역사는 대략 5~60년 정도 되었구요, 고등학교(Form 1~Upper Six)만 해서 600~650명 정도인데 흑인이 대다수이고 그 다음으론 백인과 칼라드(Colored 인도, 파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출신 혹은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예요. 제가 이 학교로 전학 왔던 2010년 초에는 백인이 20명도 못 됐는데 지금은 40명 넘게 늘어났어요. 동양인은 저와 중국인 이렇게 2명뿐이에요."

- 짐바브웨는 영어로 수업하죠. 처음엔 힘들었을 텐데 어땠나요?
"처음엔 영어로 수업하기 때문에 정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좋은 백인 친구를 만났어요. 그 친구가 잘못된 영어 표현을 하면 고쳐주는 거예요. 덕분에 이렇게 영어를 할 수 있게 됐어요."

- 학교 수업이나 학교 시스템, 학비는 어때요?
"한국에서 이곳으로 왔을 때의 느낌은 '편하다'였어요. 영어에 존칭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선생님을 편하게 대할 수 있어서 수업시간이 정말 자유로워요. 수업시간 내내 자기의 의견을 표현하고 질의응답도 끊이지 않아요. 한국의 수업 분위기는 무겁고 부담이 많았는데 여기는 재밌고 자유로워요.

무엇보다 실기나 실험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요. 한국에선 실험실에 앉아서 그냥 프레젠테이션으로만 보고 끝나지만 여기서는 실험 설계부터 끝까지 직접 다 해요. 해부도 하고 약물도 직접 배합해보며 화학작용을 눈으로 관찰하고, 실험이 끝나면 앞에 나와서 결과에 대해 발표를 합니다. 실험 시간뿐만이 아니라 다른 수업시간에서 발표하는 시간이 많아요.

학비는 고등학교 치고는 비싼 편이에요. 2학기제인 우리와 달리 3학기제인 이곳에서는 한 학기마다 사립학교는 2000달러(220만 원)이니까 대학교 학비랑 맞먹는 수준이죠. 1년에 6000달러를 내야 하니 부담스러운 편이죠. 그런데 국립학교는 학기에 300~500달러 정도로 사립학교에 비해 학비가 훨씬 저렴하죠."

- 한국에선 체육이나 음악, 미술 등을 없애고 대신 그 시간을 수학이나 영어시간으로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예체능을 없애고 국영수만 남기려는 한국 학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그래서 여기 온 게 너무나 좋아요. 여기서는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오히려 운동을 더 시켜요. 1군(First team)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수험생이 운동을 더 많이 해요. 체육시간뿐만이 아니라 방과 후에도 클럽에서 운동을 해요. 여기 학교에서는 운동부 말고도 클럽 등 모두 세 가지 종목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의 운동을 할 수가 있어요.

다른 학교와의 대항전도 하고, 시에서 주최하는 리그도 있어서 순위도 매길 수 있어요. 리그는 실력에 따라 1부 리그, 2부 리그 이렇게 나뉘어요. 운동에는 골프, 수영, 럭비, 하키, 크리켓, 육상(육상부가 아니더라도 창던지기, 장대높이뛰기 등에 모두 참여) 등의 운동이 있어요. 이 중에서 선택해서 들어갈 수가 있는데 좋은 점은 선수가 아니더라도 대회에 참가할 수도 있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 운동시간이 많으면 공부에 지장이 있지는 않을까요?
"그래서 작년부터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운동 팀을 2개로 줄였어요. 3개는 많고, 2개가 적당한 것 같아요. 그런데 운동만으로 대학가는 학생들도 있어요. 육상을 너무 잘해서 대학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영국의 유명 대학을 간 선배도 있었어요. 고등학교에선 뛰어난 선수를 장학금 주면서 스카우트도 하고, 각 운동부마다 코치들도 있어요. 외국(주로 영국) 학교에선 스포츠학과를 가지 않더라도 예체능으로 받은 상들을 인정해 주고 있어요. 하지만 한국은 운동수업도, 클럽활동도 없고, 대학에선 예체능 실력을 인정하지도 않는다면서요."

- 체육 말고 미술이나 음악 같은 과목은 어때요?
"A레벨에서도 미술로 대학시험을 볼 수가 있는데 그림을 그려서 영국으로 보냅니다. 미술을 통해 영국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미술실에서 생활해요. 한국 같은 입시 미술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미술을 하는 거예요. 그림뿐만 아니라 전시 모형이나 조각도 되고요. 음악은 짐바브웨 사정상 악기 구하기가 힘들어서 시행하는 학교가 적은데, 우리 학교는 지금 악기를 모으고 있대요."

- 짐바브웨의 영어 수준은 어때요? 이곳 생활이 행복한가요?
"아프리카라고 우습게 봤는데 교육수준은 높아요. 영국의 지배를 받아서 그런 것 같아요. 짐바브웨가 영국이나 미국보다 영어 배우기는 좋은 것 같아요. 여기에서는 마약이나 술에 빠질 위험이 적어요. 밤 문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한국이나 미국처럼 심하지 않거든요. 차 없이는 이동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오후 5시가 되면 대형 슈퍼마켓 외에는 모두 닫아요. 오후 6시~7시 사이에는 모든 가족이 집에 와 있습니다. 또한 PC방과 노래방이 없으니 책을 볼 수밖에 없어요. 짐바브웨 사람들은 친절하고 날씨도 좋아서 이곳에서 생활하는 게 행복해요."

- 한국에선 왕따와 학교폭력이 사회 이슈인데 여기도 그런 일이 존재하나요?
"아뇨, 여기엔 왕따나 학교폭력은 없다고 보면 돼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지만 무시하거나 인간 취급을 하지 않는 경우는 없어요. 여기는 선도부 체계가 잘 되어 있어요. 선도부는 고3(Upper Six)중에 절반 이상이 참여해요 이들의 권한은 선생님과 같아요. 공부를 시키기도 하고, 학교 예절을 가르치고, 질서를 유지시키죠. 말을 안 듣는다면 벌을 주기도 하고, 공책에 '잘못했습니다!'를 가득 써서 채워오라는 벌을 시킬 수도 있어요. 이 제도를 악용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선도부 덕에 왕따와 학교폭력이 없는 것 같아요."

- 대학 진학은 대부분 어떻게 하나요?
"대학 진학 범위는 정말 넓어요. 영국, 미국, 남아공, 호주, 그리고 한국 사람은 한국 대학에도 갈 수 있는 등 영어가 가능하기에 전 세계 대학이 진학 대상이죠. A레벨은 SAT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험이니까요. 현지인들은 대학 진학이 꼭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대학을 가지 않아요. 우선 취업하고 나중에 공부하고 싶거나 필요에 의해서 대학을 가게 되죠. 한국처럼 맹목적으로 대학을 추구하지는 않아요. 그만큼 대학 공부는 매우 힘들기 때문에 정말 공부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가죠. 짐바브웨 인근 국가인 남아공의 대학교도 수준이 높은 편이에요."

- 어느 나라 대학으로 어디로 진학할 생각인가요?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한국으로 가지 않을까 싶네요. 남아공을 제외하고는 해외에서 대학을 나오는 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니까요.

학교 관련 인터뷰 중 환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학교 관련 인터뷰 중 환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 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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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두호군의 형인 두성(21)군은 디자인과 지망생이다. 짐바브웨에 와서 소질을 발견한 두성군은 미술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부으며 연습했고, 현재는 한국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한국에 체류 중이다. 두성군의 고민은 한국 수능 방식이다. 다른 나라의 미대 진학에선 그렇지 않은데 한국은 국영수 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다.

짐바브웨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두호군은 한국 학교 분위기가 어두웠다고 느꼈다. 짐바브웨 고등학교 캠퍼스는 대학교 크기만 하고, 모든 운동장이 잔디로 되어 있다. 또한 테니스장, 축구장, 럭비장, 수영장 등의 운동시설이 갖춰져 있다. 무엇보다 학교는 학생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만을 본다면 한국은 낙후된 국가이고 짐바브웨는 선진 국가라고 할 수 있다.


태그:#짐바브웨, #교육, #A레벨, #왕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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