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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부산국제외국어고등학교에서 색다른 행사가 열렸다. 2012학년도 학생 논문발표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고등학생들이 쓴 논문, 뭐 들어볼 것이 있냐 싶지만 논문발표대회를 지켜보면서 그 생각은 싹없어졌다. 학생들이 문제를 대하는 태도의 진지성은 물론이고 그들 나름대로 창의적이고 설득력 있는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의 수준에 의심이 간다. 하지만 김인배(부산국제외고, 교감)의 말을 들어 보면 수긍이 간다.

 

"우리 학생들은 이 논문을 쓰기 위해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 각자 발표할 논제에 대해 토의하고 수정의 과정을 거치면서 논제를 정한다. 그리고 그 논제를 증명하기 위한 틀을 짜고 발표하면서 치열한 논쟁을 거친 후 한 편의 논문을 완성하고 있다.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면 긴장감이 돌 때도 많다. 그러한 과정이 6개월 동안 지속되어 왔다. 단언컨대 우리 학생들의 논문은 외부의 힘이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은 부족할지라도 앞으로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알고 채워 나가는 자주인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교감 선생님은 그에 대한 단적인 예의 하나로 지난해 한 학생이 쓴 논문에 대해 언급하였다.

 

"며칠 전 부산권 뉴스에, 부산 관광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부산을 찾은 해외 관광객들이 부산은 바다를 제외하고는 볼거리가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었다. 뉴스를 보면서 지난해 우리 학생이 쓴 논문이 생각났다. 그 학생은 '부산 도시브랜드 발전 방향 연구'라는 논문을 썼는데 거기서 부산의 브랜드 형성을 위해 부산의 골목문화에 대해 이야기 했다. 부산의 골목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6.25 전쟁 때의 피난의 고통을 함께 하면서 서로 처지를 이해하고 함께 하려는 끈끈한 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 정을 전쟁과 평화라는 기반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부산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기성세대의 표절과 대필 논문이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는 이 시점에서 오늘 학생들의 논문 발표는 따뜻한 햇살만큼이나 싱그럽게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10편의 논문 발표가 있었다. 조은진 학생은 전공하고 있는 독어과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 나라의 문화가 문학 작품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를 '한국과 독일의 성장소설 비교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성장소설에 나타난 공통점과 차이점을 양국 문화 현상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이주완 학생은 중국어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면서 중국어는 외래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국어로 재생산하여 받아들이는 과정에 관심을 기울여 '중국어의 외래어 수용 방식 연구'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하였다. 외래어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셋으로 분류하고 그에 대한 예시를 들면서 중국어는 표의문자이며 현재 영어 패권주의에 맞서 중국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하였다. 대상을 구분하고 그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였다.

 

자신의 관심 분야를 파고들어 그것을 논제로 삼아 논문을 쓴 학생도 있다. 소비자 경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 임지수 학생은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마케팅 전략 비교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신세계 백화점과 홈플러스가 서로 이웃하면서도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서로 다른 소비자층을 공략하는 차별화된 마케팅을 전략으로 하고 있음을 설문조사와 그 분석을 통해 밝혔다.

 

지리학에 관심이 많은 변수진 학생은 '한,미,중 인터넷 지도 서비스 비교 연구'를 통해 각 나라의 지도 서비스 특징을 표면, 검색, 내용면으로 나누고 그러한 특징이 나타나게 된 원인을 각 나라의 문화 특성과 연계하여 발표하였다.

 

소비자 경제와 일본에 관심이 많은 장하은 학생은 많은 분야에서는 국산품이 널리 애용되고 있는데 유독 학용품은 일본제가 많음을 눈여겨보고 '국산 학용품의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은 미래의 소비자 중심을 이룰 학생들이 국산보다 일본산을 더 좋아 하면 우리 경제가 어두워질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이 논문을 썼다고 한다. 설문조사와 그에 따른 분석을 치밀하게 하여 학생들이 일본산을 선호하는 이유를 밝히고, 이를 통해 국산 학용품이 경쟁력 제고를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최예슬 학생은 '소설 <도가니> 속 등장인물의 심리 연구'를 발표하였다. 소설 속에 드러나는 인물의 심리를 방어기제와 소아기호증 두 이론을 바탕으로 등장인물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인물 유형은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에 흔히 일어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외고에 다니면서도 우리말에 관심을 가진 두 학생이 있었다. 주은진은 '국민 전반적 국어 능력 저하의 원인과 개선 방안'을 통해 현재 우리 국어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고아라 학생은 '한국어 해외 전파의 필요성과 방향 연구'를 통해 앞으로 우리나라가 세계의 경쟁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우리말의 전파가 필요함을 독일과 대비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 나라의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호감도와도 직결된다는 것을 설문조사를 통해 밝혔다.

 

학생들이 자신이 생활하고 있는 학교 현장을 대상으로 하여 쓴 논문도 있다. 장윤서의 '고등학교 학생회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통해 현재 고등학교 학생회의 유명무실함을 15학교 학생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밝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구체적인 학생회 활동 공개, HㆍR 시간 활성화, 학생회 대상의 리더십 교육 활성화 등을 들었다.

 

원정희 학생은 '급식 잔반 실태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통해 잔반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해결 방안을 제도적인 측면과 의식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제시하였다.

 

논문 발표가 끝나고 총평 부탁을 받은 이언태(망미중, 교장)는 이날 발표한 학생들의 논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논문 수준이 다른 곳보다 훨씬 높다. 그것은 학생들 자신의 관심을 논문으로 표현하고자 하였기에 논제가 다양하였고, 그 논제에 대한 정확한 문제점을 찾아내고, 기성의 것에 곁눈질하지 않고 학생들의 자신 나름대로 해결 방안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논문을 발표한 학생들은 참으로 대단하다."

 

흔히들 21세기의 인재로 창의성을 말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의 창의성을 어떻게 길러주고 있는지 늘 의문이 간다. 하지만 오늘 논문 발표대회 지켜보면서 정순택(부산국제외고, 교장)의 말에서 희망을 찾아본다.

 

"본교 교육 목표는 창조인ㆍ자주인ㆍ세계인입니다. 그 이념 실현하는 하나의 방안으로 논문발표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교과 시간에 학습한 개념과 원리를 스스로 학습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주인), 이것을 자신의 관심 분야에 적용ㆍ응용하여 대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창조인). 이러한 능력의 육성은 세계화를 이끌어 갈 인재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세계인)."

 

학생들이 지닌 다양한 관심을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 바로 창의력 교육의 출발점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오늘 논문 발표대회도 그 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태그:#교육,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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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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