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자신의 아버지와 시력을 빼앗아버린 이들 앞에 다시 나타난 KBS 2TV <적도의 남자> 주인공 김선우(엄태웅 분)의 복수는 가히 성공적이었다. 검사가 된 살인미수 가해자를 응징하기 위해 피해자 선우가 취한 방식은 법보다 더 무서운 파멸이었다.

24일 방송된 <적도의 남자> 마지막 회에서 15년 전 선우의 뒤통수를 친 이장일(이준혁 분)은 과거 선우가 당했던 것처럼 처절히 망가지다가 끝내 그 벼랑 끝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진노식(김영철 분)의 사주를 받고 선우 아버지를 살해한 장일 아버지(이원종 분)는 자살을 택했고, 노식은 공소시효 만기로 15년 전 살해 사주 죄 처벌은 면하는 대신 횡령, 뇌물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게 되었다.

 지난 24일 종영한 KBS 수목 드라마 <적도의 남자> 한 장면

지난 24일 종영한 KBS 수목 드라마 <적도의 남자> 한 장면 ⓒ 팬엔터테인먼트


자기가 던진 짱돌에 골리앗이 맞아 쓰러지면 행복할 줄 알았던 선우. 그래서 그는 골리앗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빼앗기 위해 있는 힘껏 짱돌을 던졌다. 그러나 선우의 짱돌에 맞은 골리앗은 선우를 낳아준 생물학적 친아버지였고, 자신의 몸에 악마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에 맞선 선우는 충격에 빠졌다.

그동안 선우에게 노식은 아버지를 죽인 원수이고, 반드시 무너뜨려야 하는 강적에 불과했다. 그래서 선우는 노식을 증오하고 덤벼들면 복잡한 실타래가 풀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선우와 노식의 관계는 원한 관계 그 이상의 끈끈한 혈연으로 묶어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잔인한 운명. 노식을 감옥에 보내면서 양아버지를 위한 복수를 마무리 지은 선우는 그제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친아버지 노식을 받아들인다.

대부분 대한민국 드라마가 어머니를 논했다면 <적도의 남자>는 아버지의 뜨겁다 못해 지독한 사랑을 그린다. 태어날 때부터 모성이 결핍된 불완전한 남성은 부족한 여인의 체취를 채우기 위해 '사랑'이란 미명 하에 몹쓸 집착을 자행하고, 자식에게까지 자신의 죄를 대물림하게 한다.

자식의 학비를 벌고자 손에 피를 묻힌 아버지 때문에 앞날이 창창한 수재 장일은 한순간에 친구를 배신한 악마가 되어버렸다. 또한 진실을 몰랐기에 그동안 자신의 복수를 정당화할 수 있었던 선우는 단지 노식의 친아들이란 이유로 장일 아버지를 살인자로 만들어버렸다는 연좌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선우와 장일은 자신들을 참혹한 고통으로 밀어 넣은 아버지를 원망할 수는 있어도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아무리 아버지 때문에 힘들어도, 아버지가 미워도 결국은 아버지를 이해하고 따스하게 안아주는 것이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난 인간의 운명이니까 말이다.

 지난 24일 종영한 KBS 수목드라마 <적도의 남자> 한 장면

지난 24일 종영한 KBS 수목드라마 <적도의 남자> 한 장면 ⓒ 팬엔터테인먼트


아버지들이 저지른 과오로 15년을 고통 받으며 살아온 선우와 장일은 뒤늦게야 아버지를 용서한다. 그리고 장일은 선우에게 자신과 아버지의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한다. 아들 간의 진정한 용서와 사과에 대를 이어 모두를 괴롭히던 운명의 끈도 그제서야 풀어졌다.

선우를 죽이려고 한 원죄가 있는 장일은 실족사로서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마감했다. 아버지에게 수도 없이 짱돌을 던진 선우는 자신의 눈을 찌르는 대신 아버지를 용서했다. 잃을 뻔한 시력을 완전히 되찾은 선우는 '제 2의 고향' 적도 행을 택했다.

<적도의 남자> 속 복수는 주인공의 태성적인 운명의 한계에 맞물려 약간의 미완으로 남았다. 하지만 몬테크리스토의 탈을 쓴 2012년 오이디푸스 엄태웅은 어느새 <부활> <마왕>을 훌쩍 넘는 또 하나의 복수극의 신화가 되었다.

적도의 남자 엄태웅 김영철 이준혁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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