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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스티브 마한씨가 지난 3월 구글 무인 자동차(self driving car)를 시험 운전하고 있다.(유튜브 동영상 캡처)
 시각장애인 스티브 마한씨가 지난 3월 구글 무인 자동차(self driving car)를 시험 운전하고 있다.(유튜브 동영상 캡처)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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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8일 시각 장애인 스티브 마한씨가 구글 무인 자동차(Self driving car) 운전석에 앉아 일반도로를 달리는 모습이 유튜브 동영상으로 올라와 큰 관심을 끌었다. 미국 네바다주에선 이달 초 무인 자동차에 시험운전용 면허증을 발급했고 이르면 3년 안에 상용화되리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구글 카'가 전 세계를 누빌 날도 머지않았지만 한국은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선 무인 운전을 돕는 구글 지도(구글 맵스) '자동차 길 찾기'(내비게이션) 서비스가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당장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음성 길 안내 서비스도 한국에선 이용할 수 없다. 국내 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을 금지한 현행 법 탓이다. 

한국 정부-구글 '지도 분쟁'에 국내 이용자들만 '고립'

지난 21일 행정안전부에서 주최한 '모바일 접근성 향상 전략 세미나' 참석차 한국에 온 구글 시각장애인 연구 과학자 T.V. 라만 박사는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선 자신이 개발한 '인터섹션 익스플로러(교차로 탐색기)'와 '워키토키(휴대용 무선전화기)' 기능 덕에 스마트폰으로 음성 길 안내를 받을 수 있었지만 한국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구글코리아 관계자는 "국내법상 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이 금지돼 있어 한국에선 시각장애인용 서비스는 물론 빠른 길 찾기나 내비게이션 같은 서비스를 쓸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 측량법(측량·수로조사 및 지적에 관한 법률) 제16조에는 "누구든지 국토해양부 장관의 허가 없이 기본측량성과 중 지도 등 또는 측량용 사진을 국외로 반출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내비게이션 서비스에 적합한 5000분의 1짜리 대축척 지도나 50cm급 고해상도 항공사진 유출은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구글 시각장애인 연구 과학자인 T.V. 라만 박사가 22일 저녁 역삼동 구글코리아에서 열린 '인터넷 개방성 포럼'에서 구글의 웹 접근성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라만 박사는 구글의 음성 길찾기 기능이 자신의 안내견을 대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구글 시각장애인 연구 과학자인 T.V. 라만 박사가 22일 저녁 역삼동 구글코리아에서 열린 '인터넷 개방성 포럼'에서 구글의 웹 접근성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라만 박사는 구글의 음성 길찾기 기능이 자신의 안내견을 대신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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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국내 서비스 제한 불가피"... 정부 "국익에 반해"

구글 지도 서버가 외국에 있는 탓에 국내 지도 데이터를 가져가려면 일단 국토해양부 장관에게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토해양부는 국가 안보와 국익 문제 등을 들어 구글의 지도 반출 요청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

결국 구글은 지난 2008년 한국 지도 부분만 국내 서버 업체를 통해 제공하고 있지만 자동차 길 찾기나 교통정보, 도보 내비게이션, 3차원 지도, 실내 지도 등 구글 지도의 주요 기능과 고해상도 항공사진은 이용할 수 없다. 

구글코리아는 "구글 서비스는 해외에 있는 구글 데이터 센터에서 서비스가 동작되도록 서비스 및 관련 소프트웨어가 개발되고 있다"면서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면 국내 서버 업체를 통해서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재작성이 힘들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글로벌 구글 지도 서비스 중 동작되지 않는 기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입장은 단호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23일 <오마이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구글에서 5년 전부터 지도 반출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지만 법적으로 안 될뿐더러 국가 안보 등 국익에도 반하기 때문에 허가해 줄 수 없다"면서 "지도와 위성사진 국외 유출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연구 목적 등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구글은 해당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실제 네이버, 다음 등 국내 포털 지도 서비스의 경우 서버가 국내에 있어 국가안보지침에 따라 항공사진 해상도를 50cm급으로 제한하고 중요 보안 시설을 가리는 등 통제가 가능하다. 반면 구글 위성 사진 서비스인 '구글 어스'에는 청와대 등 국가 중요 보안 시설이 모두 노출돼 우리 정부와 갈등을 빚어왔다.(관련 기사: 국정원, 구글에 '국가전략지도' 주려했다 )

청와대 경내(모자이크 부분)를 노출한 구글 어스(위)와 그래픽으로 가린 다음 지도 스카이뷰(아래).
 청와대 경내(모자이크 부분)를 노출한 구글 어스(위)와 그래픽으로 가린 다음 지도 스카이뷰(아래).
ⓒ 구글/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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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길 찾기 서비스는 국내 업체들도 충분히 개발할 수 있겠지만 기술력이 앞선 구글이 전 국토 자료를 다 가져가게 되면 국내 포털이나 지도 서비스 업체들은 다 죽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구글코리아 관계자는 "네이버와 다음도 현재 전 세계에 지도 서비스를 하고 있고 구글이 반출하려는 것도 이와 동일한 지도 데이터이기 때문에 국가 기밀 데이터가 아니다"라면서 "국내 업체 보호나 국가 안보를 내세운 과도한 규제"라고 맞섰다.

정부가 '국익'을 앞세우고 구글 역시 민간기업으로서 '실리'를 따지면서 그 사이에 낀 국내 이용자들만 골탕을 먹을 수밖에 없다. 내비게이션 기능 등은 국내 업체들도 서비스하고 있지만 스마트폰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길찾기 기능 등은 현재 구글에서만 제공한다. 구글 지도와 내비게이션에 바탕을 둔 구글 무인 자동차의 국내 이용도 제한이 불가피하다.    

6년 전 교통사고로 전신 마비가 된 '한국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지난 22일 서울디지털포럼에서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CEO에게 "모바일과 스마트폰 보급은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큰 기회"라면서 "한국 정부나 연구기관과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포용, 공존을 위한 기술 개발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정작 라만 박사를 세미나 기조 연설자로 초청했던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라만 박사가 제기한 문제(지도 반출)는 국토해양부와 관계된 내용이어서 정책적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국익과 국내 이용자 편익 사이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정부 스스로 발을 빼고 있는 셈이다.


태그:#구글, #구글지도, #무인자동차, #시각장애인, #구글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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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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