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다음 기사는 곽진성 시민기자가 쓴 것으로, 고 송지선 아나운서의 1주기를 맞는 소감이 담겨 있습니다. 2011년 5월 22일, 곽진성 기자는 고인의 사망 전 날 인터뷰 기사를 통해 당시 송 아나운서의 심경을 자세하게 전한 바 있습니다. 편집자 말

2012년 5월 23일, 오늘은 고 송지선 아나운서 1주기이다. '행복한 야구' 방송을 꿈꿨던 그녀, 열정 가득했던 한 야구인을 회상하며 이 글을 쓴다.

 고 송지선 아나운서

고 송지선 아나운서 ⓒ 송지선

23일 새벽, 서랍에 넣어둔 채 오랫동안 읽지 못했던 책 하나를 꺼냈다. <토크 토크 야구>(고 송지선·김민아 저)였다. 그깟, 책 하나가 무엇이길래, 지난 1년 동안, 감히 펼쳐볼 마음을 먹지 못했을까.

오늘은 마음을 먹고 책을 열어본다. 이윽고 책의 첫 페이지, 그리운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송지선 아나운서, 생각해보니, 근 1년 동안 그에 관한 이야기를 쓰지 못했다. 지인의 이야기, 게다가 개인적으로 쓰라린 이야기라, 선뜻 꺼낼 용기가 없었다.

"곽진성, 좋은 글 부탁해."

책 한 켠, 저자가 정성스레 써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먹먹해졌다. '희망과 기대'기 담겨있었던 그 문구는 이미 지면에 건조하게 말라 있었다. 야구계에서는 이미 고 송지선 아나운서가 잊혀진 존재가 된 것 같다.

1년이 지났는데, 책임 있게 한마디 해야할 사람들은, 사과와 해명이 필요한 사람들은 모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들은 그저 조용히, 모두가 잊어가길 바라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상당수 야구팬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트위터 상에서, 고 송지선 아나운서의 1주기를 잊지 않고 추모하는 행렬, 고마운 일이다.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부디, '행복한 야구인'이었던 그녀를 잊지 말아달라고.

야구가 '생활'이라 말했던 그녀

"야구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야구장에서 가장 행복했던 그녀의 밝은 모습을 기억 저편으로 남겨두어야 하기에 책장을 넘기는 마음이 저려옵니다."  (토크 토크 야구 중)

2년 전인 2010년 5월. 기자는 인터뷰를 통해 송지선 아나운서를 처음 대면했다. 당시 그녀는, MBC SPORTS+ 야구프로그램 '야'의 공동 진행자였다. 당시 그녀는, 전문성 있는 프로그램 진행으로 야구팬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그런 아나운서를 인터뷰 할 수 있다는 기회였고, 또 설레는 일이었다.

인터뷰 당시 송 아나운서는 방송 일정이 겹쳐 고단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피곤한 내색을 하지 않고, '야구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냈다. 야구 문외한이었던 기자가 일일이 다 써내지 못할 정도로, 

"야구는 제 생활이에요."(고 송지선 아나운서)

그녀는 자신에게 야구가 '생활'이라고 했다. 얼마나 자기 일을 사랑하면 '생활'이라고 까지 할까. 참 행복한 방송인, 근사한 야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 야구를 사랑하고 아꼈기에.

천사표 야구 아나운서가 LG팬들에게

 고 송지선 아나운서가 준비하던 책 <송지선, 김민아의 시시콜콜 야구 인터뷰 토크토크 야구>

고인과 김민아 아나운서가 쓴 <토크 토크 야구> ⓒ 형설출판사

2010년 5월 인터뷰 후, 고 송지선 아나운서와 반 년 가까이 흔한 안부 문자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 정도 친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사소한 사건하나로 인해 송 아나운서를 좀 더 잘 알게 됐다. 잘못 전송한 '문자'덕분이었다.

2011년 초, 지갑을 분실해 친구에게 '속상한 마음'을 담은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경황이 없던 탓에 문자를, 비슷한 이름의 송 아나운서에게 잘못 보냈던 모양이다. '반말과 짜증'섞인 문자였기에, 받는 사람입장에서 당황스럽고 화가 날 법 했다.

그런데, 송 아나운서의 반응은 달랐다. "잘 지내냐"는 안부와 함께, 장문의 문자로 '지갑분실'에 대해 걱정을 해줬다. '진심'으로 걱정해준다는 것만큼,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는 일이 또 있을까?

그 후로, 친해져서 고인과 이런저런 사안에 대해 좀 더 자유롭게 대화를 했다. 특히 그녀는 '자신의 야구 방송'에 대한 평가를 듣는 부분에 있어서, 열정적이었다. 작은 의견도 놓치지 않고, 귀 기울였다. 당시 그녀의 열정에 반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중, 하루는 난감한 문제에 부딪쳤다. 2011년 4월, 송 아나운서가 야구 방송 중에 LG팀은 "○○팀의 밥"이라고 한 발언이 LG 팬들의 입방아에 오른 것이다. 양 팀 전적을 바탕으로 한, 비유적 표현이었다.

결국 그녀의  미니홈피 등에 비판, 비난 댓글이 가득찼다. 인신공격성 발언도 많았다. 당시 송 아나운서와 그 문제로 대화를 많이 했다. 그때 송 아나운서는 의도와 다르게 LG팬들이 화가 난 것에 대해, 많이 아파했고, 속상해했고...그리고 미안해했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것이니, 굳이 대응하지 말고 그냥 대범하게 넘어가세요"라고 조언을 했다. 하지만 고인의 생각은 달랐다. 용기를 내어, 방송에서, 예정에 없는 '사과' 코멘트를 했다. 하지만 사과 후에도, 한동안 비난 여론은 높았다.

그래도 송 아나운서는 후련해 보였다. '사과'를 하는 용기를 냈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사과 방송 후, 그녀와 짧게 통화를 했다. 그때 그녀가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 정말 큰 용기를 내서 사과를 한 건데, 여전히 비난을 하니까 아쉬워요. 그래도 언젠가는 (LG팬들도) 마음을 알아주겠죠?"

송지선 아나운서가 운명한 후, 어떤 야구팬들은 자신들이 남긴 악플, 비난에 죄책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정말, 악플과 비난은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다른 누군가에 대해 안 좋은 말을 쓸 때는, 상대방의 마음을 한 번 쯤 헤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죄책감은 갖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내가 기억하는 고인은, 야구팬들을 미워한 적이 없으니까, 아니 어쩌면 그녀는, 누구를 미워한다는 것을 잘 몰랐던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LG팬들에게 '사과'한 것을 뿌듯하게 생각했고, 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수히 쏟아지던 인신공격성 글도 담담히 견뎌냈다. 그러니 자신이 쓴 글로 인해, 미안함을 느끼는 야구팬들이, 부디 그 죄책감을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죄인은 야구팬들이 아니니까.

 2010년 5월 인터뷰 당시 고 송지선 아나운서와 김민아 아나운서

2010년 5월 인터뷰 당시 고 송지선 아나운서와 김민아 아나운서 ⓒ 곽진성


행복한 야구에게

2011년 4월, 기자는 고 송지선 아나운서와 특별한 야구 기사 하나를 준비했다. 야구에 관한 현장 스케치 기사였다.

송 아나운서도 이 취재에 기대가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는 "야구를 더 잘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며 뿌듯해 했다. 번거로운 취재였음에도 그녀는 2번이든, 3번이든 상관없이 도와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행복하게 야구를 즐기는 송 아나운서의 모습은 기자에게도 자극이 됐다. 그동안 야구에 관심 없는 문외한이었지만, 그녀로 인해 야구가 참 매력적인 스포츠일 것 같다고 생각을 바꿨다. 행복한 야구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일 것이란 기대를 했다.

"자, 이제 가슴 벅찬 그 흥분 속으로 저와 함께 가 보실까요?" (토크 토크 야구 중에서)

하지만 행복한 야구 여행의 출발 선상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터졌다. 바로 그 일, 야구팬들에게 '슬픔'으로 기억하는 5월의 이야기다. 

결국 2011년 5월 22일, 우리가 준비했던 야구기사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즐거운 취재 대신, 안타까운 심정으로 송 아나운서의 인터뷰를 담아내야 했다. 하지만 그 마지막 '진심'마저 진실이 되지 못했다. 결국 안타까운 끝을 맺었다.

누군가를 탓할 생각은 없다. 무책임한 어떤 이들을 비난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부디 많은 야구팬들이 이 사실 하나만은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고인은 누구보다 야구를 사랑했고, 야구팬들의 말에 누구보다 귀 기울이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야구가 '생활'이었던 송 아나운서에게, 친구들은 야구 선수들이 거의 전부였다. 하지만, 故 송지선 아나운서가 가장 힘들어했을 때, 그녀가 믿었던 '행복한 야구'는 곁에 없었다.

"이들은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여러분과 같은 인간이죠. 이들이 그려내는 야구가 게임 속의 야구보다 더 감동적인 것도 이 때문 아닐까요. 실수도 하고, 그래서 자책도 하고, 또 그것을 가지고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신화와 같은 것, 저는 이것이 야구라고 생각합니다."

 고 송지선 아나운서의 빈소가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강남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있다. 발인은 25일 오전 6시이며 장지는 성남영생사업소이다.

2011년 5월...고 송지선 아나운서의 빈소 모습 ⓒ 이정민


올해 프로야구를 보면서 가슴이 먹먹한 이유

다시 시작된 2012년 프로야구, 이제 그 자리에 고 송지선 아나운서는 없다. 혹자들은 그저 한 아나운서의 부재일 뿐이라고 할 지 모른다. 또 어떤 이들은 비야구인 한 명이 사라진 것뿐이라고 애써 무시할지 모른다.

그런데, 왜일까. 그녀가 빠진 야구는 별반 재미가 없어 보인다. 고 송지선 아나운서가 알려주겠다던 '행복한 야구'를, 당신들의 야구에서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능력만 되면 '아무 문제없다'는 식의 성적 지상주의, 경기 조작, 나아가 범죄, 그럼에도 그런 사안에 대해 제대로 된 해명과 사과 한 마디 없는 그 뻣뻣함과 오만. 그런 현장을 볼 때 가슴이 먹먹하다. 

고 송지선 아나운서가 책에 남긴 한 문장이 가슴에 남는다. "실수도 하고, 자책도 하지만, 언젠가 올바름을 이끌어 내는 것".

부디, 언젠가는 그녀의 말처럼 "게임처럼 삭막한 야구"가 아니라, '진짜 사람 냄새 풍기는 야구'가 됐으면 한다. 진심으로 그런 바람을 갖는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들의 팬을 위해서.

 2010년 5월 인터뷰 당시 고 송지선 아나운서와 김민아 아나운서

2010년 5월 인터뷰 당시 고 송지선 아나운서와 김민아 아나운서 ⓒ 곽진성


송지선 아나운서 1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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