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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총선거를 치른 지도 어느새 한 달 남짓, 그렇게 올 봄도 민주주의의 꽃이 저물어 갑니다.

이번 19대 총선 '투표율'은 지난 18대보다는 조금 낮았고 지방선거보다는 조금 높았는데, 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거웠고, 다양한 분석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한 편에서는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투표 인증샷 캠페인을 벌이는가 하면, 다른 한 편에선 반대로 투표 보이콧 운동을 벌일 정도였으니까요.

아마 월드컵 때 못지 않게 가슴 졸이며 밤새 개표방송을 시청하신 분들이 많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우리지역, 우리 동네를 대표할 일꾼으로 누구를 뽑느냐 하는 것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아주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제, 다시 일상이 시작됐습니다. 언제 선거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바쁘고 팍팍하게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이어지는 가운데, 청년 인턴제를 폐지하는 기업들이 속출한다는 소식,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 가계 빚 역시 사상 최고치인 1000조원(국민 1인당 1천450만원)을 돌파했다는 우울한 소식이 줄을 잇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가장 의아한 것은 비정규직 비율에 대한 뉴스입니다. 지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무려 4년 동안이나 꾸준히 34%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이는 OECD 가입국가 가운데 최고수준 입니다만, 학습지교사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여전히 여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비정규노동센터 등 노동계와 학계에서는 실제 49.2%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선거 때마다 '일자리 창출', '서민경제 활성화' 등등의 구호를 숱하게 들었고, 그들에게 내 소중한 한 표를 매번 열심히 행사했는데, 대체 그 많던 정치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요지부동 비정규직 비율 @ wikipedia 4년동안 꾸준히 35%를 유지
▲ 요지부동 비정규직 비율 @ wikipedia 4년동안 꾸준히 35%를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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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같은 난감한 상황을 맞이한 것은 비단, 우리가 처음은 아닙니다. 18세기 프랑스인들이 그랬습니다. 선거론 부족해 아예 혁명을 일으켜 절대왕정을 타도하고 구체제를 무너뜨렸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제정'으로 되돌아가는 역사적 퇴행을 겪고말아 한동안 팍팍한 삶을 더 견뎌야만 했으니까요.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이 문제에 골똘하며 프랑스 혁명을 분석했던 역사학자 토크빌 (A. de Tocqueville)은 바다 건너 미국 시민사회를 둘러본 뒤 비로소 답을 찾았다고 합니다. 바로 미국에는 교회, 자선단체, 학술모임, 동호회처럼 다양한 모임이나 조직, 단체가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와 달리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고 꽃을 피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영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미국 시민들은 불만이 있거나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스스로 다양한 성격, 다양한 목적, 다양한 수준의 사회적 결사체를 만들어 요구를 드러내고, 토론하며, 합리적 결론을 내려가는 과정 속에서 일상적으로 민주주의를 훈련하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쉽게 후퇴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리먼브러더스 파산 등 세계를 뒤흔든 금융위기의 진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지난해부터 전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99%를 위한 월스트리트 점령' 시민운동이 시작된 곳이기도 했습니다.

이 운동은 최근에는 한 발 더 나아가, 몇몇 민간 비영리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 계좌를 옮깁시다(Move your money).' 운동으로 까지 확대되었다고 합니다. 탐욕으로 가득한 월가의 금융기관에 맡겨놓은 돈을 신용협동조합, 마을금고 등 소규모 지역은행으로 옮긴 사람이 지난 18개월 동안 400만명을 넘어섰을 정도이니(2년내 1200만명 예상) 조직된 시민의 힘과 운동, 그리고 이를 통해 일상적으로 학습되고 체화되는 민주주의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합니다.

조직된 시민들의 연대와 참여민주주의, 경제를 바꾸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사례가 또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이웃나라, 캐나다 퀘벡입니다. 이 곳에서는 이미 1995년에 '퀘벡여성연대'가 경제정의, 빈곤추방 등 9개 요구사항을 내걸고 그 유명한 '빵과 장미' 행진을 시작, 수많은 시민들의 호응과 동참을 이끌어 낸 바 있습니다.

이 '빵과 장미 행진'을 계기로 1997년에 두 가지 큰 변혁이 시작됐는데, 하나는 오늘날 매 해 여름 열리고 있는 '세계여성행진'이고, 다른 하나는 캐나다에서 '연대'협동조합 설립이 법적으로 허용되면서 비로소 웅비하기 시작한 퀘벡의 사회적경제 (Social Economy)입니다.

"빵과 장미" flickr@여성연합 "빵과 장미" 행진 중인 시민들의 모습
▲ "빵과 장미" flickr@여성연합 "빵과 장미" 행진 중인 시민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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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퀘벡에서는 200년 전부터 다양한 협동조합들이 생겨나 관련 법과 제도가 마련되는 등 당시 어느 정도 사회적경제가 자리를 잡은 편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협동조합은 기본적으로 '1인 1표'의 민주적인 조직운영 원리가 핵심이긴 하지만, 자기 조합과 조합원들의 발전과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점차 커지다 보니, 지역사회 및 지역경제에 역기능을 하는 곳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여타의 영리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지역의 자원이 외부로 유출되기도 하고, 비용절감을 위해 사업부문이나 서비스를 '외주화' 하는 경우도 있어 실업문제가 심화되면서, 가뜩이나 고령화가 심하고 자원이 부족했던 시골마을 퀘벡에서는 이에 대한 반성과 함께 끊어진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던 것이지요.

'연대'협동조합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지역'과 '연대'를 핵심가치로 삼아 ▲ 조합서비스 이용자(소비자)와 노동자를 동시에 조합원으로 인정하고 ▲ 외부인 또는 기업도 연대협동조합 목적을 실현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후원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처럼 조합원 이기주의를 넘어서 협동조합이 애초 목표한 호혜와 연대의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자정노력은 전세계적인 공감대가 이루어져, 이미 한 해 전인 1995년 세계협동조합총회(ICA)는 결의를 통해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를 협동조합의 7원칙 가운데 하나로 새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 기존의 협동조합들도 이러한 흐름에 함께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퀘벡지방정부 주도로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협치) 조직이 설치되었고, 민간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이들이 여럿이 함께 사회적경제 정책과 제도를 만들고 다듬어 갔습니다. 또한 퀘벡노동자연맹(QFL, CSN) 회원들과 일반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노동자연대 펀드' , '노동연대 펀드' 가 만들어짐과 동시에, 지자체 역시 세금감면, 인센티브 등을 더하면서 사회적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큰 규모의 자본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퀘백 사회적경제 현황 사회적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자본투자
▲ 퀘백 사회적경제 현황 사회적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자본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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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퀘벡의 사회적경제는 꾸준히 발전해 2011년 현재 7000개가 넘는 사회적경제조직에서 12만5000명이 일하면서, 17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는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4년째 전체 노동자 34%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우리네 현실과 비교하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꽃이 진다고, 민주주의를 잊을 순 없다

이러한 성과와 문제의식을 더 심화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캐나다 지방자치부, 퀘벡주정부, 몬트리올시와 사회적경제 민간협의체는 2011년 '정부지자체와 시민사회(Government and Civil Society)'라는 주제로 세계 67개국 1500명을 초청해 <제15회 세계사회연대경제 포럼>를 개최했습니다.

낸시 님턴(Nancy Neamtan) 대회 공동조직위원장은 개최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역설합니다.

"시민참여, 민주주의, 연대와 통합에 기초한 사람중심 경제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경제는 서로 간에 많은 차이점이 있다 할지라도 국제적인 연대협력을 통해 함께 경험을 나누고 근본적인 신념을 공유할 때, 지역공동체와 정부, 국제기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을 때, 비로소 새로운 미래에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 여타의 경제개발과 달리, 부를 창출함과 동시에 민주주의를 강화하면서 말이죠."

2012년 UN이 지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우리나라도 오는 12월 역사적인 '협동조합 기본법'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직 가다듬고 정비해야 할 부분도 많지만, 이 법에는 캐나다 연대협동조합과 유사한 조항도 포함돼 있고, 기타 여러 나라의 앞선 제도와 사상, 고민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벌써부터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에서는 이를 계기로 확대발전 될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무척 뜨겁습니다.

12월, 민주주의의 꽃이 다시 한 번 피어납니다

나라의 수장을 뽑는 가장 크고 중요한 선거인 만큼, 역시 관심을 갖고 잘 지켜보고 참여해야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야 말로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일상 속에서 항상 민주주의에 애정을 쏟고 함께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법령이 시행되고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된다 할 지라도 비정규직 비율 34%의 벽은 이번에도 깨지기 어려울 거라는 사실을요.

꽃이 진다고, 민주주의를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민주주의의 열가지 기술
<살아있는 민주주의(Getting a grip)> - 프란시스 무어 라페

1.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기 : 말하는 이를 격려하고, 말하려는 뜻 이해하기
2. 창조적으로 논쟁하기 : 생산적인 방식으로 상대방을 대하기
3. 중재하기 : 싸우고 있는 이들이 서로의 말을 경청할 수 있도록 돕기
4. 협상하기 :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몇몇 핵심 관심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문제 해결하기
5. 정치적 상상력 기르기 : 우리가 지닌 가치에 맞게 우리 미래를 새롭게 그리기
6. 공적인 대화하기 :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기
7. 공적으로 판단하기 :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수행하려는 사안에 대해 선택권을 허용해 함께 공적으로 의사결정 하기
8. 축하하기 : 우리가 배운 것, 우리가 성취한 것에 대해 기쁨과 감사 표현하기
9. 평가와 성찰하기 : 행동을 통해 우리가 배운 교훈을 평가하고 우리 것으로 하기
10. 지도하기 : 이러한 공적인 삶의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안내자가 되기

덧붙이는 글 | 이재흥 기자는 사회적경제센터 선임연구원(weirdo@makehope.org)입니다. 희망제작소 사회적경제센터의 '사회적경제리포트'에서 더 많은 사회적경제의 동향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blog.makehope.org/smallbiz/category/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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