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미로

안다미로 ⓒ 트로피엔터테인먼트


'원민지'라는 평범한 이름이 '안다미로'로 불리면, 서있는 곳이 무대가 되면 180도 달라지는 사람이 있다.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딘 가수 안다미로(ANDAMIRO)다. '그릇에 넘치도록 많이'라는 순우리말 뜻에 걸맞게 무대에만 서면 그 끼가 넘치고도 남지만, 일상에서는 여느 또래처럼 수줍음 많은 모습이다.

"결사 반대하셨던 부모님, 이제는 최고의 지원군"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수는 안다미로의 운명이었다. 침대에 올라가 이불을 덮어쓰고 드레스 흉내를 내며 빗을 들고 노래 부르던 꼬마, 이어폰을 끼고 화장실에서 휴지 심을 들고 노래 부르던 중학생은 2012년 가수가 됐다. 안다미로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한 번도 다른 직업을 꿈꾼 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50번 정도 오디션을 봤는데 많이 떨어졌어요. 모델 제의도 받았는데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거절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때는 노래 실력도 부족했고요. 제가 또 소녀 같고 예쁘장하기보다는 개성 강한 외모잖아요. 잘 안 맞았던 것 같아요. 그때에 비해선 지금이 더 나아진 듯해요."

"실력파 가수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안고 한우물을 파야 한다는 생각에 모델 제의를 거절했지만 대학 입시에 떨어지면서 후회도 했다. 자신감은 바닥을 쳤고, '이 길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고. 처음으로 찾아온 슬럼프였다. 미술을 전공한 어머니는 "평범하게 살면 안되겠느냐"면서 헛된 꿈을 꾸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이듬해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에 합격한 안다미로는 열정을 되찾았고, 지금의 회사(트로피엔터테인먼트)와 인연도 맺게 됐다.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부모님은 제가 노래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셨어요. 하는 아이들도 많고 경쟁률도 세니까요. '네가 어떻게 하려고?' 하셨던 거죠. 하지만 막상 앨범을 결과물로 보여 드리니까 자랑스러워 하세요. 표현은 많이 안 하시지만 이제 저보다 더 관심이 많으세요."

 안다미로

안다미로 ⓒ 트로피엔터테인먼트


"양동근 선배와 기싸움이요? 어휴. 할 수도 없죠"

안다미로는 타이틀곡 '말고'의 데뷔 무대에서 양동근의 피처링 지원사격을 받기도 했다. 기 싸움 또한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생각도 없고 할 수도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어 안다미로는 "매번 무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인드 콘트롤을 한다"면서 "긴장을 많이 하는데 마음속 나를 비우며 집중한 뒤에 무대에서 모든 에너지를 터뜨리는 편이다"고 설명했다. 

안다미로를 설명할 때, 독특한 의상을 빼놓을 수 없다. 기하학적인 무늬의 타이즈를 입기 때문이다. 남자 댄서들은 민망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대기실에서 허리에 셔츠를 두를 정도다. 안다미로는 "뚱뚱하진 않지만 골격이 커 보이는 몸매라 다이어트를 했다"면서 "처음엔 방법을 몰라서 무작정 굶었더니 요요현상이 오더라. 요즘은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개성 강한 외모 때문에 손해를 볼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만의 매력인 것 같아 감사하다는 안다미로. 실제로는 낯을 많이 가리고 부끄러움도 많은 성격이다. 그래서 스스로는 걸 그룹의 일원이 될 줄 알았지만 솔로 가수로 나서게 됐다. 안다미로는 "개성 있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를 시도할 수 있다"면서 "'아시아의 레이디 가가'를 콘셉트인 만큼 가가의 퍼포먼스적인 장점과 아티스트로서의 다양함을 닮고 싶다"고 전했다.

여느 신인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안다미로의 2012년 목표 또한 '신인상'이다. 꾸준히 활동하며 얼굴을 알리고, 매 순간 재밌고 즐거운 무대를 만들겠다는 각오다. 2012년, 드디어 시작된 안다미로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안다미로

안다미로 ⓒ 트로피엔터테인먼트


안다미로 말고 양동근 솔로가수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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