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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찾아 한국 왔더니, 엄마는 아들 찾아 미국에...

 국제한국입양인봉사회 정애리 회장.
 국제한국입양인봉사회 정애리 회장.
ⓒ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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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인카스 문을 열고 들어오던 그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어요. 마흔 살쯤 됐을까? 손에는 이만큼이나 되는 페이퍼를 들고…. 5년 동안 그렇게 혼자 가족을 찾아다녔대요. 수북이 쌓인 페이퍼를 받는 순간 눈물이 났어요. 그 사람의 애절함,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절박함이 그대로 느껴졌어요."

국제한국입양인봉사회 '인카스(InKAS)' 회장 정애리(53)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해외입양인과 해외입양가족의 복지와 권리를 위해 1999년 설립된 이 봉사회에는 그동안 수많은 입양인이 거쳐 갔다. 그중에서도 제레미(가명·남)의 사연은 정 회장의 가슴 속 깊이 남아 있다.

제레미는 7살 무렵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 아이였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그의 어머니는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그의 옷 주머니에 꿰매 넣어줬다. 그 사실을 아는 건 제레미 뿐이었다. 양부모를 만났지만, 그는 매일 밤 사진을 들여다보며 한국에 돌아갈 날을 꿈꿨다. "이 사진만 있으면 다시 엄마를 만날 수 있어!" 그러나 사실을 알게 된 양부모가 제레미 몰래 사진을 없앴고, 동시에 그는 삶의 목적을 잃었다.

미국 땅에서 그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좋은 직장에서 돈도 많이 벌었다. 그렇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우울증은 계속됐다. 뭔가 알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 그를 옥죄었다. 결국, 정신과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게 된 그는 '한국에 두고 온 엄마'를 만나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제레미는 한국을 오가며 친가족을 찾기 시작했다. 방송국, 청와대, 입양센터 등 사방에 수소문하고 편지를 보냈다. 누구 하나 발 벗고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운명의 장난이었나, 제레미 어머니는 미국에 있었다. 정 회장은 그가 어린 시절 파주의 미군 부대 근처에 살았다는 기억을 바탕으로 곧바로 파주에 가 수소문 끝에 어린 시절 제레미의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도움으로 제레미는 KBS 가족 찾기 프로그램에 나갔고, 우연히 프로그램을 본 친척과 연락이 닿았다. 제레미의 어머니는 아들을 미국에 보낸 뒤 괴로워하다가 그를 찾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는 거였다. 두 모자는 엉뚱한 곳에서 서로 헤매다 30여 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가 정 회장을 찾아온 지 불과 이틀 만이었다.

떠난 이도 보낸 이도 고통의 시간

 인카스를 찾은 해외입양인들이 설을 맞아 한복을 입고 미소 짓고 있다.
 인카스를 찾은 해외입양인들이 설을 맞아 한복을 입고 미소 짓고 있다.
ⓒ 인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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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은 "제레미처럼 많은 입양인이 성장 과정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한없이 방황하고 정신적 고통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를 입양 보낸 부모 역시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한다.

"제천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간 적이 있어요. 두메산골이었어요. 한참 헤매다가 저녁때 도착했는데, 불도 안 켜지고 컴컴한 곳이었어요. 집에 들어가 보니, 어떤 여자가 앉아 있는데 여자 머리 뒤가 다 빠져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애를 입양 보내고, 정신이상이 된 거였어요. 늙은 할아버지랑 딸이랑 그렇게 불도 안 켜지는 곳에서 사는 걸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왜, 이런 상황밖에 안 됐을까 하고요."

결국, 정 회장은 입양인 어머니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일까지 도맡게 됐다. 그는 "아이를 입양 보내 놓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분이 너무 많다"며 떠난 이도 보낸 이도 고통의 시간을 겪어야 하는 입양 문제에 대해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입양과 관련한 아픔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길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다들 입양 자체를 자기의 수치로 생각하니, 문제가 있어도 덮어둘 수밖에 없어요. 사실 당사자가 나서서 개선해야 할 문제인데, 정작 당사자가 떠들 수 없는 문제인 거죠. 우리나라에서 입양 관련 가족은 말 그대로 '죄인'으로 사는 거예요."

그들을 두 번 버리지 않기 위해 택한 일

 서울시 중구 소공동 인카스 사무실 내부. 정 회장과 3명의 직원, 인턴·자원봉사자들이 힘을 합쳐 일한다.
 서울시 중구 소공동 인카스 사무실 내부. 정 회장과 3명의 직원, 인턴·자원봉사자들이 힘을 합쳐 일한다.
ⓒ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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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원을 운영하던 외조부모에서 자란 정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입양의 문제를 느껴왔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한 뒤, 5년간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일하기도 했다. 결혼하면서 10년 동안 가정주부로 지냈지만, 매스컴에서 나오는 입양인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자꾸 눈에 밟혔다. 주변에서 만류하는데도 해외입양인 복지에 뛰어든 것은 자신의 숙명이었다고 회상했다.

"어떻게 보면 입양 문제는 내 모든 삶의 연장선에 있었어요. 갑자기 내가 여기 개입됐나? 이런 생각도 했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어요. 누구보다도 입양인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입양인과 함께해 온 제가 한국사회와 입양인 사이에서 다리로서 적임자가 아니었을까요? 언젠가는 누가 저한테 혹시 입양인이냐고 물은 적도 있어요. 전 입양인은 아니지만, 거의 반은 그런 마음으로 일해요."

88올림픽 이후 한국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90년대 초부터 해외로 입양된 한국인들이 모국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입양된 아이들 대부분이 성인으로 성장한 시기이기도 했다. 정 회장은 당시 한국사회가 해외입양인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당시에는 이렇게 생각하곤 했어요. 좋은 부모 만나서, 좋은 나라에 가니 좋겠다. 다 어렵고 힘든데, 뭔가 좋은 곳으로 선발돼서 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다시 한국을 찾는 입양인을 보면서, 한국에는 왜 돌아온 거지? 부모를 찾아서 뭐하게? 자기 버린 부모도 지금은 새로운 가정 꾸려서 잘살고 있을 텐데…. 굳이 찾아서 왜 피해를 줄까? 이런 편견을 갖고 입양과 관련한 모든 문제의 책임을 입양인에게 몰아가고 있었던 거죠."

입양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정 회장은 우리가 그들을 '두 번 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입양된 아이가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편견 역시 우리의 환상일 뿐이고, 입양인이 겪는 어려움과 외로움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을 할수록 그들이 한국에 돌아오는 것은 본능이라는 걸 느껴요. 입양인이 왜 한국에 돌아 오는지 의문을 갖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너무나 당연한 일들을 우리가 특별한 일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우리 생각이 참 미흡했구나. 이런 반성도 되고…. 많은 사람이 고국을 찾는 일을 당연시하는 풍토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잃어버린 뿌리를 찾아 잇는 과정

 전통의상을 입고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인카스 해외입양인들.
 전통의상을 입고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인카스 해외입양인들.
ⓒ 인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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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은 해외입양인이 입양으로 상실한 세 가지. 즉 뿌리, 문화, 언어를 회복하는 일이 입양 사후관리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해외입양인에게 한국어 학습 기회를 주고, 문화 교육을 지원하는 '인카스'의 모든 사업도 이에 바탕을 둔다. 친가족을 찾도록 도와주는 일도 그 중 하나다.

매년 천 여 명 입양인이 '인카스'를 찾지만, 친부모를 만나는 사례는 10%도 안 된다. 부모와 만나 좋지 않게 끝나는 일도 더러 있다. 그러나 정 회장은 친부모와 만난 뒤에 관계가 어떻게 되든 일단 '만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자기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실, 결과가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문화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부모는 의도해서 보낸 경우가 많고, 자녀 역시 나를 버린 책임감 없는 부모라는 생각이 들어 이미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진 상태에서 만나는 거예요. 그 상태가 좋을 리는 없겠죠. 그렇지만, 입양인이나 친부모가 서로를 확인하고,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게 중요해요. 또 못 찾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찾아보는 과정, 그 과정에서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한국인이라는 소속감을 갖게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해요."

이 모든 작업에는 "우리 사회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고 정 회장은 말했다. 직원 3명으로 이루어진 '인카스'가 매년 천여 명 해외입양인들을 도울 수 있는 것도 시민사회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지금껏 '인카스'에 도움을 준 자원봉사자 수는 2만 명에 이른다. 정 회장은 "인카스가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자원봉사자들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사회 전체가 건강해야 그 사회 안에 있는 내 자식도 행복할 수 있다는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입양은 개인 아닌 국가의 책임

 한국에 와서 천안독립기념관을 방문한 인카스 해외입양인들
 한국에 와서 천안독립기념관을 방문한 인카스 해외입양인들
ⓒ 인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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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카스' 설립 후 처음 5년간 정 회장은 거의 사비를 털어 운영했다. 후원금으로 일부 충당하기도 하지만, 입양기관은 재정적인 후원이 많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영어도 잘하는 입양인이 뭐가 불쌍하냐'라는 시각이 많아, 후원자 모집이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영국 등 15개국과 교류하다 보면 재정적 어려움이 그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언젠가는 '이 일을 그만둬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한번은 갈등하는 그를 입양인 한 명이 크게 꾸짖었다고 했다.

"고민하는 저를 보면서 입양인 친구가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할 수 있느냐면서 제게 무척 화를 내더라고요. 회장님이 그런 마음이라면 아예 안 하는 것만 못하다. 우리 입양인들은 이미 인카스에 많은 의지를 하고 기대감를 하고 있는데, '내가 하다가 못 하면 말지'는 식이라면 우리는 어떡하느냐고요.

아예 이런 기관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게 나을뻔 했다면서. 그래서 저도 많이 배웠죠. 아, 이제 이건 나만의 일이 아니라 공공의 일이 됐구나. 인카스가 모든 입양인들의 희망이고 마음의 안식처였구나. 나만의 생각으로 내가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게 정말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입양인들은 정 회장이 국가관을 정립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부모가 어려워 아이를 입양 보내는 것이라 합리화한다. 그러나 한 입양인 생각은 달랐다.

"한국에서 해외 입양은 6·25 전쟁고아들을 위해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OECD에 가입한 현재까지 해외 입양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국가가 무엇이고 정부가 무엇입니까? 개인이 책임지지 못하는 것을 책임지고 보호해주는 게 국가와 정부가 아닙니까? 저는 만 불에 팔려간 입양인입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정 회장은 "입양이 국가적 책임이라는 것을 새삼 배웠다"고 한다. 입양은 개인이 아닌 국가와 한국사회 전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정 회장은 "말은 함께 하자고 하지만 정작 힘든 부분은 도려내고 그 부담은 함께 지려 하지 않는다"며 "이미 해외에 입양된 22만 명의 권리를 어떻게 되찾아줄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입양뿐 아니라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입양을 넘어 편견 없는 사회로

 2011 인카스 여름 캠프에 참여한 해외입양인들. 서울에서 전주, 제주도까지 12일간 모국대장정을 통해 한국 문화를 체험했다.
 2011 인카스 여름 캠프에 참여한 해외입양인들. 서울에서 전주, 제주도까지 12일간 모국대장정을 통해 한국 문화를 체험했다.
ⓒ 인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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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1일은 입양의 날이다. '가정의 달' 5월에 한 가정(1)이 한 아동(1)을 입양해 새로운 가정(1+1)으로 거듭나자는 취지에서 2005년 제정됐다. 비밀입양이 성행하고, 입양 사실을 숨기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국내입양문화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해외입양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 변화 중 하나라고 정 회장은 말했다.

"입양아들이 떠날 때, 우리는 그들을 '고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돌아왔을 때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고아라고 생각하죠. 너무 많은 것이 변해서 돌아왔지만, 함부로 대한다든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거였죠. 그렇지만 입양인은 고아가 아닌 존중받아야 할 성인이자 우리 사회와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결혼 문제만 하더라도 한국인 부모는 입양인라고 하면 '고아원에 있던 애'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경우가 많아요. '근본 없는 자식'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죠. 국내 입양을 장려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입양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입양 가정을 평범하지 않게 생각하는 의식구조가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정 회장은 "내가 돕는 게 아니라 그들의 생각을 배우고 도움을 받으며 일할 수 있다"며 해외입양인을 희망있게 생각했다. 지금은 우리가 그의 정체성이나 소속감을 찾아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후에 그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크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해외입양인들이야 말로 가장 세계화한 한국인이고 우리 사회를 선진화하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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